복의 통로Ⅶ, ‘주일성수’ > 설교말씀 기뻐하는교회 - 대한예수교장로회

본문 바로가기

설교말씀

설교말씀 HOME


복의 통로Ⅶ, ‘주일성수’

페이지 정보

작성자 장양식 댓글 0건 조회 16,560회 작성일 12-03-11 15:40

본문

복의 통로Ⅶ, ‘주일성수’

사58:13~14

2012. 3/11   08:00, 11:00

이상한 질문

정말 이상한 질문을 하나 하겠다. 자동차를 훔친 것과 주일을 지키지 않은 것 중 어느 것이 더 큰 죄일까? 그것은 말할 것도 없이 주일을 지키지 않는 것이다. 도적질은 다른 사람을 해친 것이고, 주일을 지키지 않은 것은 다른 사람에게 해친 것도 아니데 왜 그럴까? 그 이유는 도적질은 십계명 두 번째 돌판 사람에 대한 계명에 해당되는 것으로 사람에게 지은 죄이고, 주일을 지키는 것은 첫 번째 돌판 하나님에 대한 계명에 해당되는 것으로 하나님께 죄를 짓는 것이다. 그리고 성경은 도적질의 경우는 물건의 주인에게 배상을 해주면 되지만(출22:1~4), 주일을 지키지 않는 사람은 돌로 쳐 죽이라고 했다(출31:14). 후자를 훨씬 엄격하게 취급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사람이나 사회에 대한 죄도 중하고 무섭지만 하나님에 대한 죄는 더욱 크고 무섭다. 죄의 결과도 사람이나 사회에 대한 최고 결과는 육체적 죽음이지만 하나님에 대한 죄는 육체적 죽음은 물론 영적 죽음이다.

  <?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

그런데 유감스러운 것은 사람들이 이것을 거꾸로 생각하고 있다. 사회적 규범은 강제력이 크기 때문에 중요하게 생각하고, 윤리적인 규범은 비난이 따르니까 약간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러나 종교적인 규범은 당장에 불이익이 따르지 않으니까 쉽게 여긴다. 그래서 사람에게 잘못한 것은 심각하게 생각하면서도 주님에게 잘못한 것에 대해서는 심각성을 깨닫지 못한 것이다. 사람과의 약속은 잘 지키면서 주님과의 약속은 잘 잊어버린다. 결국 주님을 우습게 여기는 까닭이다. 그러나 믿음의 사람은 주님을 두려워한다. 주님을 두려워하기에 자기 양심에 어긋난 일을 비롯해서 윤리적이고 사회적인 것들까지 조심한다. 주님을 사랑하고 존중하니까 사람도 사랑하고 귀히 여긴다. 주님과의 약속을 소중히 여긴 만큼 사람과의 약속도 소중히 여긴다. 이것이 올바른 신자의 모습이다.

 

주일 성수는 영적 온도계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는 것은 그 사회와 교회, 개인의 영적 상태를 말해 주는 영적 ‘온도계’다. 사56장을 보면, 안식일을 지키는 것과 언약을 지키는 것이 함께 연결되어 있고(6), 안식일을 더럽히는 것과 다른 죄악을 저지르는 것이 함께 연결되어 있다(2).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 언약을 지키는 것이고, 안식일을 더럽히는 것이 죄를 지은 것과 같이 취급하고 있다는 뜻이다. 이는 주일성수가 영적 상태와 깊은 관련이 있음을 보여준 것이다. 그리고 오늘날 사회로부터 교회가 가장 강하게 도전을 받고 있는 내용이 무엇인줄 아는가? 십일조와 더불어 주일성수다. 저들이 그토록 주일성수를 무너뜨리려고 하는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그 만큼 중요하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사람은 몰라도 마귀는 그것을 안다. 그래서 마귀가 사람들을 움직이고, 혹은 여러 방법을 동원하여 주일성수를 무력화시키려고 하는 것이다. 왜? 이것이 영적 상태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할례와 함께 안식일은 이스라엘을 나타내는 가장 오래되고 가장 중요한 표시(mark)다. 안식일은 이스라엘이 이 땅의 다른 모든 나라와 민족과 구별지어주는 것이고, 그들이 하나님과 특별한 관계에 있음을 나타내 보여주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주일이 그와 같다. 믿는 사람과 믿지 않는 사람을 구분하는 가장 객관적인 표시가 무엇인가? 그것은 주일성수다. 그래서 이 시간은 복의 통로 일곱 번째로 ‘주일성수’에 대하여 은혜를 나누고자 한다.

 

주일성수의 복

본문 13절은 주일(안식일)을 지키는 방법에 대한 말씀이고, 14절은 주일(안식일)을 잘 지킨 사람들이 누리게 될 복에 대한 말씀이다. 여기에 주일 성수에 대한 세 가지 복이 약속되어 있다(나는 이 설교에서 주일과 관련된 제반 내용은 생략하고 14절을 중심으로 주일성수의 복에 대해서만 이야기하겠다).

 

첫째, 영혼의 안식

 

“네가 여호와 안에서 즐거움을 얻을 것이라.......”

 

여기서 “즐거움”은 영혼의 안식과 기쁨이다. 이것이 주일을 지킴으로 누리게 되는 소중한 복이다. 모든 불행과 질병의 원인은 영혼의 안식과 기쁨을 잃어버린데 있다. 그리고 죄가 모든 불행과 질병의 원인이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죄를 지으면 영혼의 안식과 기쁨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윗은 회개하면서 구원의 즐거움을 회복시켜 달라고 간구했던 것이다(시51:12). 바로 이 구원의 즐거움, 곧 영혼의 안식과 기쁨을 누리는 비결이 주일을 거룩하게 지킴에 있는 것이다. 계1:10보면 이런 말씀이 나온다.

 

“주의 날에 내가 성령에 감동되어 내 뒤에서 나는 나팔 소리 같은 큰 음성을 들으니”

 

요한은 주의 날에 성령의 감동과 계시를 받았다. 그러므로 주일은 하늘 문이 열리고, 성령의 은혜가 쏟아지는 날이란 뜻이다. 주일은 하늘의 신령한 은혜와 평안이 임하고, 주일예배는 이것을 미리 시식하는 것이다. 그래서 루터는 ‘주일을 지키는 것은 천국을 연습하는 것이다.’고 했다. 우리가 주일을 소중히 여기며, 잘 지켜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둘째, 생활의 승리

 

“......내가 너를 땅의 높은 곳에 올리고......”

 

여기서 “높은 곳에 올리고”는 승리를 보장해 주고, 명예롭게 해준다는 뜻이다. 주일을 지키는 사람에게는 생활의 승리가 주어진다는 말씀이다. 이는 역사적으로 검증된 사실이다. 프랑스혁명 당시 산업능률을 높인다며 주일성수를 방해하려고 10일제를 시행한 적이 있다. 그러나 실패하고 7일제로 다시 환원했다. 러시아에서도 공산당혁명 당시 생산성 향상이란 미명아래 주일성수를 방해하려고 10일제를 시행했다. 결과는 오히려 산업재해가 많이 발생하고, 능률이 저하되었다. 결국 본래대로 환원할 수밖에 없었다. 교통법규를 지키면 그 법규가 나를 지켜준 것처럼 주일을 지키면 주일이 나를 지켜준다. 아니 주일의 주인이신 주님이 나를 지켜주신다. 인간은 주님을 의지함으로 영적인 힘을 얻어야 생활에서 승리할 수 있다.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사40:31). 주님을 의지함으로 얻는 새 힘으로 우리는 승리할 수 있다. 그 힘으로 생활의 승리, 인생의 승리를 보장받게 된다. 주일은 바로 그 힘을 공급받는 날이다.

 

셋째, 육신의 풍요

 

“......네 조상 야곱의 기업으로 기르리라......”

 

주일을 지키는 사람에게는 육신의 풍요가 주어진다는 말씀이다. “야곱의 기업”은 물질의 축복을 의미한다. 주일을 잘 지키면 주님이 물질의 복, 나아가서 건강의 복을 주신다. 사실 이것은 이미 앞에서 예견된 내용이다. 영혼의 안식과 기쁨은 마음의 즐거움과 평안, 건강한 삶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육일약국 갑시다.」의 저자 메가스터디 엠베스트 김성오 대표를 기억할 것이다. 그는 대학 졸업 후 마산에서 600만원 빚을 내서 4.5평짜리 가게를 얻어 약국을 개업했다. 그로부터 1년 후 빚을 다 갚고, 10년 만에 200배의 매출을 올리는 쾌거를 이루었다. 마산에서 육일약국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해졌다. 어떻게 가능했는지 그 비결이 그의 책에 소개되어 있다. 그것은 친절과 주일성수다. 약국 이름부터 육일만 문을 열어서 ‘육일약국’이다. 그는 시골 가난한 목사의 아들로 태어나 대학도 고학으로 다녔다. 그는 부모님으로부터 물질적 유산은 받지 못했으나 신앙의 유산을 물려받았다. 특히 주일성수신앙을 물려받았다. 그래서 손해를 각오하고 주일을 잘 지켰더니 주님이 기뻐하시고 그를 축복하신 것이다. 주일을 우습게 여기는 세상이지만 그런 중에도 주일을 소중히 여기고 헌신하는 아름다운 사람들이 있다. 주님께서 이런 사람들을 얼마나 자랑스럽게 여길까? 이런 사람들이 바로 주님의 자랑이고, 교회의 자랑이고, 목회자의 자랑이다. 그리고 이것이 축복의 원리다. 나 역시 주님의 자랑이 되는 목사, 여러분의 자부심이자 자랑이 되는 목사를 목표로 삼고 있다. 여러분도 또한 주님의 자랑, 교회와 나의 자랑이고 자부심이 되는 신자가 되기를 바란다.

 

아름다운 전통, 그 전통을 이어가는 교회

황해도 장연군 대구면 송천리에 세워진 ‘소래교회’는 우리나라 최초의 교회다. 그 교회를 중심한 대구면 일대는 불신자까지도 주일을 성수하는 고장이었다. 대구면지(大救面誌)의 기록을 통해 소래교회 신자들의 주일성수를 확인할 수 있다.

 

첫째, 주일이 되면 거리의 상점은 문을 닫고 철시를 하였으며, 바쁜 농사철이라도 주일이 되면 모두 일손을 놓고 교회에 나가 예배를 드렸다. 저들은 세속의 일보다 하나님을 경배하는 일을 우선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둘째, 주일에는 지주(地主)로부터 소작인과 머슴까지 한 자리에 합석하여 한 마음과 한 입으로 하나님을 예배하였다. 평일에는 주인이며 머슴이지만 주일날 교회에서 예배를 드릴 때는 모두 예수님 안에서 평등한 형제요 자매였다. 그러기에 저들은 주일이 기다려졌고 한 주일간의 노동으로 지쳤던 심신이 예배를 통하여 안식을 누리며 새로운 힘으로 충만해질 수 있었다.

 

셋째, 만일 이 날 상점 문을 열거나 들에서 농사를 한다면 이웃의 안목을 의식해서가 아니라 자신이 ‘남부끄럽게 생각할 정도로’ 대부분의 주민들이 신앙적으로 무장이 되어 있었기 때문에 아주 철저하게 주일성수를 시행할 수 있었다.

 

네째, 가난한 사람들이 머슴살이를 하더라도 소래로 머슴살이 가는 것을 최고의 영광으로 알고 있었다. 소래의 주민들이 빈부를 초월하여 인간의 존엄성과 하나님 앞에서의 평등을 피부로 느낄 수 있도록 신앙 안에서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섯째, 주일아침 소래교회에서 울리는 종소리는 소래교회가 개척한 인근의 여러 교회와 산골마을의 처소회(處所會)까지 울려 퍼지므로 소래를 중심한 대구면 일대는 주일만 되면 희망과 축복의 종소리로 가득 차게 되었다.

 

그래서 소래를 제2의 예루살렘, 혹은 한국의 예루살렘이라 하였고, 성수주일이 사람들의 삶 속에 깊이 스며들게 된 신앙의 고장이 되었다. 선교의 역사는 짧지만 우리 한국교회는 주일 성수에 대한 이런 아름다운 전통을 가진 교회다. 이는 훌륭한 신앙적 유산이다. 그런데 주일 성수의 이런 아름다운 신앙전통이 무너지고 있는 것은 참으로 안타깝고 두려운 일이다. 성경은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히10:24). 주일성수를 가볍게 여기는 것은 명백한 말세적 현상이고, 이런 현상에 강력하게 도전하라는 것이다. 우리와 우리교회가 이런 아름다운 신앙의 전통을 이어갈 수 있기를 바란다. 이런 우리에게 주님은 수천, 수만 배의 복으로 응답해 주실 것이다.

 

 

※ 함께 생각해 봅시다.

1. 오늘 말씀을 통하여 새롭게 깨달은 내용은 무엇입니까?

 

2. 오늘 말씀 중에 당신에게 도전이 되었던 내용이 있다면 어떤 부분입니까?

 

3. 주일 성수에 장애가 되는 것이 있다면 무엇이며, 어떻게 극복하겠습니까?(극복한 사례를 이야기하는 것도 좋습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Total 834 / 11 page

설교말씀 목록

게시물 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