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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집에 유언하라(06-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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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양식 댓글 0건 조회 15,014회 작성일 06-08-28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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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집에 유언하라.
사38:1~8

인생에 대한 고민이 많은 어떤 청년이 있었습니다. 그는 왜 살아야 하는 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 지에서부터 시작하여 모든 것이 의문점이고 혼란스럽고 고통스러웠습니다. 그래서 그는 유명한 스승을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말하기를 ‘이 세상에서 아무런 문제가 없는 곳이 있으면 가르쳐 주십시오’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그 스승이 그 청년을 어느 공동묘지로 데리고 갔습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바로 여길세, 여기야말로 아무런 문제도 없는 곳이지. 여긴 갈등도 경쟁도 시기도 질투도 시비도 없고, 삶에 대한 생활에 대한 염려, 자녀나 가정에 대한 고민, 장래에 대한 걱정도 없는 곳이지.’라고 했습니다. 세상에 문제없는 곳은 없고, 문제없는 인생이 없다는 이야깁니다. 이 말을 우리가 신앙적으로, 신학적으로 해석하면 ‘모든 사람들에겐 하나님이 필요하다’는 뜻이요, 또한 ‘기도가 필요한 존재, 즉 기도할 필요가 없을 만큼 평안한 사람은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선인들이 우리 인생을 고해(苦海)라고 한 것은 참으로 통찰력있는 표현입니다. 바람과 파도 때문에 한순간도 쉬지 않고 찰싹대는 바다처럼 우리 인생도 마찬가집니다.

그러나 바람과 파도가 항상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지구상의 모든 오물과 하수가 바다로 흘러들어가지만 바다가 썩지 않는 이유, 인류를 먹여 살릴 풍부한 수산자원을 제공하는 비결이 이 바람과 파도에 있습니다. 바닷물이 움직이지 않고 고여만 있다면 금방 썩고 말 것입니다. 그러면 바다생물들을 물론 인간 역시 살 수가 없습니다. 지구 표면적의 71%가 바다입니다. 그런데 이 바다가 썩었다고 상상해 보세요. 인간은 그 냄새에 질식되어 죽고 말 것입니다. 그런데 바다의 썩음을 방지에 해 주는 것이 바람과 파도입니다. 또한 이 바람과 파도는 바다의 환경을 바꾸어줍니다. 특히 여름이면 어김없이 찾아와 우리에게 큰 피해를 안겨주고 있는 태풍조차도 바다와 바다생물들을 위해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태풍으로 인해 바다는 속까지 깨끗하게 청소가 되고, 바다 환경이 바뀌게 되고, 미생물이 풍부해저 커다란 어장이 형성됩니다. 다시 말하면 바다를 정화시키고 생명을 더욱 풍성하게 해준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겪는 고난도 분명 고통스럽고 힘든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것 때문에 우리도 자신의 존재가치와 의미를 새롭게 발견하고, 부모형제를 비롯하여 주변에 있는 사람들의 중요성을 깨닫게 됩니다. 나아가서 하나님을 찾고 의지하게 됩니다.

성경에는 신앙의 영웅들이 많이 나옵니다. 모두가 한결같이 고난을 통과한 의인들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고난을 통과함에 한 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기도입니다. 모두가 기도의 사람들이고, 기도의 영웅들이었습니다. 저는 이 시간 그 중에 한 사람을 여러분들에게 소개 드리고자 합니다. 그는 남쪽 유다의 13번째 왕 ‘히스기야’입니다. 히스기야의 아버지 아하스는 하나님 보시기에 악을 많이 행한 왕이었습니다. 심지어는 자기 아들을 몰렉 우상에게 제물로 드렸던 사람입니다. 아주 사악하고 나쁜 왕이었습니다. 그 때문에 하나님이 진노하셔서 유다가 앗수르에게 침략을 받게 했습니다. 그런데 그의 아들 히스기야는 하나님을 아주 사랑하는 ‘믿음의 왕’이었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나쁜 왕에게서 이렇게 훌륭한 왕이 나왔는지 참으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특히 그는 다윗처럼 기도하는 왕이었습니다. 성경에는 그에 대한 이야기를 세 군데서(왕하, 대하, 사) 다루고 있습니다. 그런데 모두가 그의 기도와 관계가 있습니다. 특히 앗수르 왕 산헤립의 침략을 기도로 물리친 사건은 너무도 유명합니다. 본문 앞장 사37:에 나오는데, 그 기도는 너무도 간절하고 그 내용은 유명합니다. 그리고 기도를 통하여 산헤립을 물리친 이야기는 너무도 통쾌합니다. 기도로 18만 5천 명의 앗수르 군대를 물리쳤던, 소위 기도대첩입니다.

오늘 본문도 산헤립을 물리친 이야기만큼이나 극적(劇的)입니다. 그가 병에 걸렸습니다. 그것도 죽을병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말씀하십니다. “너는 죽고 살지 못하리니, 네 집에 유언하라.”(1) 겨우 외적인 적 앗수르를 물리치고 나니, 이제 자신의 내적인 문제로 죽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외부의 적보다 내부의 적이 더 무섭고, 치명적입니다. 히스기야는 믿음으로 외적은 물리쳤는데, 자신의 내적인 문제로 죽게 된 것입니다. 얼마나 고통스럽고 절망적이었겠습니까? 그런데 히스기야는 이 문제도 하나님께 기도하여 해결을 받은 것입니다. 저는 히스기야의 이런 모습을 보면서 우리도 기도하면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없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지금 우리도 많은 문제 속에 살고 있지만 우리의 문제는 히스기야보다 더 심각하고 어려운 문제는 아닐 것입니다. 세상에 죽음보다 크고 심각한 문제가 어디 있겠습니까? 히스기야는 당장 자신의 눈앞에 죽음의 문제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히스기야는 자신의 죽음의 문제를 기도로 해결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죽음의 문제도 기도로 해결했다면 우리도 우리의 문제를 기도로 충분히 해결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이런 교훈을 주시기 위해 성경은 여기에 히스기야의 이야기를 적어 놓은 것입니다. 히스기야처럼 무슨 문제든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비록 죽음의 문제일지라도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해결의 길이 있다는 것입니다.

벌써 몇 년 전의 이야기가 되었습니다. 차범근씨가 축구국가 대표팀 감독으로 있을 때 일입니다. 그가 축구경기 때마다 기도하는 것을 보고 김용옥씨가 시비를 걸어 화제가 된 적이 있습니다. 그 때 차범근 감독이 이렇게 답변을 했습니다. ‘........어린아이가 부모님의 손을 잡고 가다가 겁이 나면 그 손을 꼭 쥐는 것처럼, 지금 나는 내가 믿는 하나님의 손을 꼭 쥐고 도저히 놓을 수 없는 심정이다. 그래서 나는 늘 기도한다.......’ 어쩌면 이렇게도 기도를 잘 표현했는지 모르겠습니다. 기도는 작위적인 것이 아니라 자발적인 것입니다. 정상적인 신자들에겐 자연스러운 반응입니다. 문제가 발생하면 자연스럽게 하나님 앞에 엎드리게 됩니다. 피곤하면 쉬고, 잠이 오면 자는 것처럼, 배가 고프면 밥을 먹고, 목이 마르면 물을 마시는 것처럼 실제적이고 자연스러운 것이 기도입니다. 그러므로 기도는 추상적인 것이 아닙니다. 실제적인 것입니다.

기도의 사람 죠지 뮬러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무릎으로 인생의 싸움을 싸우는 것을 배우지 못한 사람은 아직도 기독교 신앙의 기초를 모르는 사람이다.’고 했습니다. 우리의 신앙은 기도에서 시작이 됩니다. 이 무릎에서 시작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모든 것이 여기서 결론이 나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영적 전투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싸움은 우리의 무릎에서 시작이 됩니다. 얼마나 우리가 무릎으로 기도하느냐에 그 승패가 달려있는 것입니다. 기도를 쉬면 머리를 드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마귀의 세력입니다. 기도하는 사람이 적고, 기도시간이 적어지면 교회나 우리의 생활 속에서 마귀의 활동무대가 넓어집니다. 교회 안에서 기도소리 찬양소리가 높으면 마귀소리 사람의 소리가 잠잠해 지고, 기도소리 찬양소리가 사라지면 마귀소리 사람의 소리가 커집니다. 이는 개인이나 가정도 마찬가집니다. 그러므로 기도를 쉬는 순간 우리의 삶은 마귀에게 점령을 당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앙생활을 곧 기도생활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스 신화에 아름다운 목소리로 남성들을 유혹하여 죽음에 이르게 하는 세이레네스라는 여신이 나옵니다. 이 여신의 얼굴은 사람(미모의 여인)인데, 몸은 새입니다. 바위섬에 머물면서 노래를 부르면 지나가던 사공들이 그 노랫소리에 홀려서 바위섬에 좌초되어 죽었습니다. 그런데 그녀의 노랫소리에 홀리지 않는 유일한 남성이 있었는데, 음악가의 신 오르페우스였습니다. 그 비결은 오르페우스는 자신의 노래로 세이레네스의 노래를 압도했기 때문입니다. 영적인 세계도 마찬가집니다. 내 삶에서, 교회나 가정에서 기도소리 찬양소리가 마귀와 세상과 자기 욕망의 소리를 압도하면 영적 승리를 얻을 수 있습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은총을 여는 열쇠입니다. 하나님을 움직이는 힘입니다. 그리고 사탄의 침입을 막는 자물쇠입니다. 그러나 이를 잘 아는 사탄은 사람들에게서 기도를 빼앗아갑니다. 새뮤얼 차드위크는 "사탄의 한 가지 관심은 사람들이 기도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악마는 기도 없는 성경공부, 기도 없는 봉사, 기도 없는 종교의식에 안심한다. 악마는 우리의 수고를 비웃고, 우리의 지혜를 조소하지만 우리가 기도할 때 떤다."고 말했습니다. 세일즈맨의 신으로까지 불리는 엘머 레터맨은 ‘판매는 거절당한 때부터 시작이다.’고 했습니다. 영어로 No를 거꾸로 쓰면 On이 됩니다. On이란 전치사에는 전진(진행)의 의미가 있습니다. No를 전진의 의미인 On으로 바꾸고, 거절을 시작으로 외치는 힘이 어디서 올까요? 그것은 기도의 힘입니다. 기도하는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마인드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아주 인상적인 것은 히스기야가 기도하는 모습입니다. 얼굴을 벽으로 향하고 심히 통곡을 하면서 기도를 했습니다(2~3). 이는 응답 받는 기도의 아주 중요한 태도입니다. 여기엔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그가 ‘얼굴을 벽으로 향했다’고 하는 것은 더 이상 세상에 대한 기대와 미련을 버린다는 의미입니다. 이젠 더 이상을 세상이나 사람을 바라보지 않고, 세상적인 방법에 의존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만 상대하겠다는 뜻입니다. 하나님만 믿고 의지하면서 그분에게 전적으로 매달리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만 소망을 두고 하나님께만 집중하겠다는 의미입니다. 기도는 바로 이렇게 해야 합니다. 단 몇 분을 해도 이렇게 집중하는 기도가 응답을 받습니다. 성경을 보면 히스기야는 기도한지 몇 분도 되지 않아서 응답을 받았습니다(왕하20:4). 우리가 기도하지 못한 이유 중 하나가 여기에 있습니다. 세상에 대한 기대와 미련 때문입니다.

두 손을 모으기 위하여 가진 것 모두가 버렸네.
세상에 눈 감고 유혹에 귀 막고 오로지 주님만 바라보네.
아 아 주님은 내 모든 사랑의 주인
아 아 주님은 내 모든 소망의 주인
못 채울 가슴을 당신께 여옵니다.
어서 오소서 주님이여               - 빈손의 기도

우리가 정말 응답받는 능력있는 기도를 드리려면 먼저 내 안에 있는 것들을 다 내려놓아야 합니다. 다 포기해야 합니다. 우리의 시선과 귀와 마음을 빼앗는 모든 것들을 제거해야합니다. 이것이 바로 히스기야가 얼굴을 벽으로 향한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야 우리의 시선과 귀와 마음이 하나님께로만 행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는 하지만 응답을 받지 못하는 쓰레기와 같은 기도만 드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리고 ‘심히 통곡했다’는 말은 문제의 심각성과 긴박성을 깨닫고 간절히 부르짖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너무 간절하면 절로 눈물이 나오면서 부르짖게 되는 것입니다. 너무나 절실하고 절박하면 말이 나오지 않습니다. 그냥 눈물의 부르짖음만 나올 뿐입니다. 눈물이 무엇입니까? 간절함의 표시입니다. 너무 간절하면 말보다 눈물이 앞섭니다. 주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으실 뿐만 아니라 우리의 눈물도 보십니다(5).

자기 부모를 살해한 범인을 추적해서 채포하는 형사의 이야기를 다른 공공의 적이란 영화가 있습니다. 이 영화에서 주인공 강 형사가 피해자 아들이 살해범이란 단서를 갖게 된 부분이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피해자 아들이 경찰서에서 조서를 받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강 형사가 바닥으로 떨어져 볼펜을 줍다가 우연히 다리를 떨면서 울고 있는 피해자의 아들을 보게 됩니다. 이것을 본 강 형사는 이 아들이 범인이란 심증을 갖게 됩니다. 한 마디로 이 아들이 슬퍼서 우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부모가 그렇게 처참하게 살해가 되었는데 어떻게 다리를 떨면서 울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가 우는 것은 참으로 슬퍼서 우는 것이 아니라 그저 슬픈 척 한다는 것입니다. 맞는 이야깁니다.

사무엘 상 1장에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의 기도가 나옵니다. 한나는 자식이 없어서 당한 수모 때문에 상심이 컸던 사람입니다. 그래서 그녀는 늘 하나님의 전을 찾아가 기도했습니다. 그녀의 기도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간절했습니다. 엘리 제사장으로부터 술을 끊으라고 책망을 받을 만큼 마치 술에 취하여 기진맥진해서 횡설수설하는 사람처럼 간절한 기도에 빠졌습니다. 너무 간절하고 절실하면 눈물과 통곡밖에 남지 않는 것입니다. 한나는 이런 기도 덕분에 사무엘이라는 믿음의 영웅을 선물로 받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기도하지 못한 또 하나의 이유, 우리의 기도가 응답받지 못한 또 하나의 이유는 문제의 심각성, 해결에 대한 간절함의 부족입니다.

오랜 시간 기도한다고 응답 받는 것 아닙니다. 말을 많이 한다고 하여 하나님께서 들으시는 것도 아닙니다. 기도는 간절함에 있습니다. 얼마나 진실하게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간절하게 기도하느냐가 중요합니다.

여러분, 해바라기 아시죠? 그리고 왜 해바라기라고 이름을 붙인 줄도 아시죠? 아침에 동쪽을 향하여 몸을 돌리는 해바라기는 어두움 속에서 찬란하게 떠오른 해를 사모하며 기다립니다. 그리고 해가 떠서 저녁노을이 질 때까지 해바라기는 계속 해를 따라 움직입니다. 해가 져서 캄캄한 밤이 되어도 해바라기는 실망하지 않습니다. 내일 또 다시 해가 뜰 것을 굳게 믿고, 캄캄한 밤에도 해바라기는 쉬지않고 계속 자기의 몸을 해가 뜨는 동쪽으로 움직입니다. 이렇게 해를 따라 움직인다고 하여 그 이름을 ‘해바라기’라고 한 것입니다. 저는 우리 신자들도 해바라기 꽃과 같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눈을 주님께 고정시키고, 우리 귀는 주님의 음성에 기울여야 합니다. 마음은 주님을 향해야 합니다. 주님이 움직이는 대로 우리도 움직이는 것입니다. 그래서 해바라기처럼 주님만 바라보는 ‘주바라기’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기도도 해바라기 꽃과 같다고 봅니다. 기도란 해바라기와 같이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사모하고 갈망하며 항상 하나님과 동행하는 마음의 상태입니다. 하나님을 향하여 마음을 열어 놓고 은혜와 사랑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기도는 하나님께 우리의 사정과 형편을 알려드리는 말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위하여 아낌없이 드리고 바치는 우리의 마음, 그 자체입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기도는 "입"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그 대신 "귀"를 요구합니다. 주님을 끊임없이 사모하고 갈망하는 마음의 상태가 곧 기도이기 때문입니다. 기도의 중요성과 필요성을 모르는 신자는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알면서도 실천하지 않는 것입니다. 실천하지 않기 때문에 기도의 능력을 체험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모두 기도의 실천자가 됩시다. 히스기야처럼 우리 인생의 문제들을 기도로 풀어가는 기도의 사람들이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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