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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의 통로Ⅺ, ‘순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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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양식 댓글 0건 조회 15,422회 작성일 12-04-15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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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의 통로Ⅺ, ‘순종’

창22:15~19

2012. 4/15, 08:00  11:00

아브라함의 순종

성경은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이라고 부른다. 여기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아브라함이 믿음의 시조(始祖)라는 뜻과 함께, 그가 가장 탁월한 믿음의 사람이었다는 뜻이다. 아브라함의 믿음에서 가장 특징적인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철저한 ‘순종’이다. 순종을 통하여 하나님께 대한 믿음과 사랑을 증명했던 사람, 그래서 하나님을 감동시켜 하나님께 칭찬과 인정을 받고, 하나님의 큰 복을 받았던 사람이다. 이 시간에는 아브라함을 통하여 복의 통로 열한 번째, ‘순종’에 대하여 은혜를 나누고자 한다. 아브라함의 순종은 크게 3가지 하나님의 명령과 관련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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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떠나라’는 명령에 대한 순종

아브라함의 고향은 갈대아(Chaldea) 우르(Ur)지방이다. 우르는 현재 이라크 남부 유프라테스강 가까운 곳에 있는 당시 세계최고의 문명을 자랑하던 수메르(Sumer)의 도시국가다. 따라서 우르는 과거 세계최고의 문명도시였다. 어느 날 하나님께서 이 문명도시에서 살고 있는 아브라함에게 나타나 그곳을 ‘떠나라’고 명령하셨다.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줄 땅으로 가라.”(창12:1). 익숙한 지역, 익숙한 사람들을 떠나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살고 있는 미지의 땅으로 가라는 것이다. 그때 그의 나이는 75세였다. 이는 뭔가 새로운 것에 대한 도전을 시도할 수 있는 나이가 지났다는 뜻이다. 그것도 분명한 목적지가 있는 것도 아니고 무조건 떠나라는 것이다. 한마디로 순종하기 힘든 상황이었다. 그리고 자신이 살던 고향을 떠난다는 것은 당시 사람들에게는 죽음과도 같은 위험한 행위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브라함은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으며”(히11:8)라고 성경은 말씀한다. 이것이 순종의 첫 번째 관문이었다.

 

신앙이란 ‘떠나는’ 훈련이다. 익숙한 세상(고향)으로부터 떠나는 것, 익숙한 세상 사람들(친척과 아비 집)로부터 떠나는 것이다. 이 세상에 살면서 익숙해진 세상문화, 세속적 가치, 생활방식, 태도, 습관으로부터 떠나는 것이 신앙이다. 나쁜 것, 악한 것도 길들여지고 익숙해지면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하게 된다. 바로 이런 것들을 삶에서 떠나보내야 한다.

 

2. ‘버리라’는 명령에 대한 순종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고향을 떠난 아브라함은 떠돌이 생활 속에서도 큰 부자가 되었다. 순종한 그의 삶에 하나님이 복을 주신 것이다. 하지만 그의 가정에 문제가 있었다. 부자가 되었으나 그 부를 물려줄 상속자가 없었다. 그래서 그의 아내 사라가 자신의 몸종 하갈을 그에게 첩으로 주어 아들을 낳게 했다. 여기서 태어난 아들이 ‘이스마엘’이다. 그리고 약 10년 후 그의 나이 백세 때, 아내 사라를 통해서 이삭을 낳게 된다. 뜻하지 않게 한 집에 본처의 소생과 여종의 소생이 같이 살게 되면서 문제가 일어났다. 이스마엘이 어린 이삭을 괴롭히게 된 것이다. 그런데 이것을 사라가 보게 되었고, 이를 보고 화가 난 사라는 남편에게 ‘여종과 그 아들을 내쫓으라.’고 강요했다. 그 말을 듣고 아브라함이 근심하고 있을 때, 하나님이 그에게 말씀했다. ‘.......근심하지 말고 네 아내 사라가 네게 이른 말을 다 들으라.’(창21:12). 하갈과 이스마엘을 집에서 내보내라는 뜻이다.

 

또한 신앙은 ‘버리는’ 훈련이다. 이삭을 핍박하는 이스마엘을 내쫓는 것이다. 즉 이스마엘로 상징되는 모든 악한 생각, 부정한 생각, 음란한 생각을 버리는 것.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을 버리는 것. 방탕과 술 취함, 시기와 다툼과 같은 모든 어둠의 일들을 버리고, 땅에 있는 지체들을 죽이는 것이다. 영적 성장에 방해가 되는 것들을 끊고, 영적 가치와 충돌하는 것들을 내려놓고, 버리는 것이다.

 

3. ‘드리라’는 명령에 대한 순종

이제 아브라함에게는 사라가 낳은 이삭밖에 없다. 대를 이어갈 유일한 후손이고, 상속자였다. 그러니 얼마나 귀했겠는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그의 행복을 시기라도 하듯 하나님께서 그에게 명령하셨다.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일러 준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창22:2). ‘번제’란 제물을 불로 태워드리는 제사다. 그런데 그 제물이 동물이 아니라 사람, 그것도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드리라는 것이다. 여기서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이라는 표현을 통해 하나님 역시 이삭이 아브라함에게 어떤 존재인지 잘 알고 계셨다는 뜻이다. 그렇게 잘 아신 분이 어떻게 이런 야만적이고, 비도덕적이고, 비상적인 명령을 내릴 수 있을까? 그것도 자기 손으로 사랑하는 아들을 죽여 불로 태워서 제물로 드리라고 말이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이 또한 순종했다. 이것이 순종의 마지막 관문이었다.

 

여기서 또 하나 중요한 신앙의 원리를 발견하게 되는데, 그것은 ‘드리는’ 것이다. 내가 가장 소중히 여기는 것, 내가 가장 아끼고 사랑하는 것을 주님께 내가 직접 드리는 것이다. 라틴어로 ‘믿다’는 말을 ‘credo’라고 한다. 이는 ‘cre’(마음, 심장)+‘do’(주다)이다. 그러므로 믿는다는 것은 ‘나의 가장 소중한 것, 곧 내 마음, 내 심장을 꺼내서 주님께 드리는 것’이다.

 

순종의 의미

신앙이란 ‘떠나는 것’, ‘버리는 것’, 그리고 ‘드리는 것’이다. 사실 이 셋 중, 어느 하나도 쉬운 것이 없다. 모두가 고통스럽고 힘든 일들이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이 모든 것에 순종하였고, 그 결과 하나님으로부터 인정(감동과 칭찬)을 받고, 커다란 복을 보장받았다.

 

“......네가 네 아들 네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창22:12).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도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가 크게 번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성문을 차지하리라. 또 네 씨로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16~18).

 

순종이 엄청난 복(①자손번영, ②승리의 삶, ③복의 통로가 되게 함)의 통로임을 확인할 수 있는 말씀이다. 그렇다면 왜 순종이 복의 통로가 되는가? 이는 순종의 의미를 따져보면 알 수가 있다. 하나는, 순종은 ‘믿음’의 표현이기 때문이다. 믿음이 없으면 순종할 수 없고, 참된 믿음은 순종을 통하여 드러나게 된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음으로 ‘떠나라’, ‘버리라’, ‘드리라’는 명령에 순종할 수가 있었고, 또한 순종을 통하여 하나님에 대한 그의 믿음이 참된 것이었음을 증명해 보인 것이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은 우리의 믿음뿐이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순종에 감동하여 칭찬하시고, 큰 복을 약속하신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순종을 통하여 드러난 그의 믿음을 보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주의 복을 받아 누리는 비결 또한 여기에 있다. 그것은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우리의 믿음을 보여드리는 것이다. 순종의 크기와 믿음의 크기, 순종의 질과 믿음의 질은 서로 비례한다.

 

다른 하나는, 순종은 ‘사랑’의 표현이기 때문이다. 순종은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그 무엇보다, 그 누구보다 당신을 정말 사랑합니다.’ 라는 의미다. 그래서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는 무엇이든 할 수 있고, 사랑하는 사람의 말이라면 무엇이든 순종할 수가 있는 것이다. 아브라함이 사실 야만적이고, 비도덕적이고, 비상식적인 하나님의 명령에 불평하거나 의심하거나 심지어는 지체하지도 않고 순종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하나님을 사랑하였기 때문이다. 고향을 사랑하고, 친척과 부모님을 사랑하지만 하나님을 더 사랑하기 때문에 그것들을 떠나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할 수가 있었고, 하갈과 이스마엘을 사랑하지만 하나님을 더 사랑하기 때문에 그들을 내보내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할 수가 있었다. 외아들 이삭을 사랑하지만 하나님을 더 사랑하기 때문에 그를 제물로 드리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할 수가 있었다. 사랑하면 순종하게 된다. 술과 담배를 비롯한 신자로서 덕스럽지 못한 습관들을 끊지 못하고, 영적 생활에 장애가 되는 것들을 버리지 못하고, 우리의 시간과 열정과 재능과 물질을 드리지 못한 것은 주님을 사랑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사랑하면 순종하게 된다. 순종하는 것을 보면 사랑의 깊이와 높이, 넓이를 알 수가 있다. 그래서 주님은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요14:23)라고 하셨다. 반면에 “나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내 말을 지키지 아니하나니.”(요14:24)라고 하셨다. 믿음과 순종이 서로 비례한 것처럼 사랑과 순종도 서로 비례한다.

 

순종의 복

복은 절로 오지 않는다. 순종을 통하여 온다. 순종해야 복을 받는다. 순종이 복의 통로이기 때문이다. 주님의 말씀과 뜻에 순종한 만큼 복이 온다. 순종을 통해 큰 복을 받은 한 사람을 소개하고자 한다.

 

JC메가월드 대표 박종규 장로가 그 사람이다. 그는 뉴욕초대교회 장로다. 그가 집사이던 어느 해, 신년부흥회 강사로 오신 목사님이 신자들에게 기도제목을 적어내라고 했다. 그는 ‘교회에서 십일조를 가장 많이 드리는 신자가 되게 해달라.’고 적어냈다. 기도제목을 읽던 목사님이 그를 불러 세웠다. 그리고 물었다. ‘집사님, 십일조 드립니까?’ ‘아니요. 감사헌금만 드리고 있습니다.’ 그러자 사람들이 웃었다. 십일조도 안하면서 십일조를 가장 많이 드리게 해달라니 웃을 수밖에. 그러자 목사님은 계산기를 가져오게 하여 그의 월수입을 묻고, 거기에 신앙생활을 시작한 햇수를 곱하고, 이자까지 더하더니 한국 돈으로 8,000만원을 헌금하라고 했다. 그동안 떼어먹은 십일조 금액이다. 8,000만원이면 당시 맨하탄에 매장을 얻을 수 있는 큰돈이다. 그러자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저 사람 이제 교회에 안 나오겠다.’고 수군거렸다. 그런데 어디서 용기가 났는지 그는 대뜸 ‘10월에 곗돈 타면 모두 내겠습니다.’고 대답했다. 그의 십일조생활은 이렇게 시작됐다. 10월에 곗돈을 타서 밀린 십일조 8,000만원을 드리고, 지금까지 ‘정확하게’ 십일조를 드리고 있다고 한다. 더욱 중요한 것은 그 날 이후, 그는 그의 기도대로 자기 교회에서 가장 많이 십일조를 드리고 있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십일조는 내 것이 아니더군요. 십일조를 정확히 드리자 하나님은 말씀대로 제게 쌓을 곳이 없도록 복을 부어주셨습니다.’ 십일조뿐만 아니다. 모든 일에 있어서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주님은 복을 주신다. 복이 따라다니는 인생이 되게 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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