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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의 통로13, ‘경건한 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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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양식 댓글 0건 조회 15,055회 작성일 12-05-06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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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의 통로13, ‘경건한 가정’

시127:1~5

2012. 5/6. 08:00  11:00

가정의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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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ml:namespace prefix = w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word" />KND.jpg 미국의 전 대통령 케네디의 아버지 패트릭 케네디는 가난한 아일랜드 이민자였다. 그는 신대륙에 와서 밀주(密酒)와 청과상 등으로 돈을 벌어 아들을 하버드에 보내고, 결국 대통령까지 만들었다. 그런데 그의 가계는 끊임없는 사고와 불행이 잇달았다. 케네디의 형 조셉 케네디는 2차 대전에 참전하여 전사했고, 누나 로즈마리 케네디는 정신발달 미숙과 뇌수술 실패로 1941년부터 병원신세를 지고 있고, 여동생 캐슬린 케네디는 28세에 프랑스에서 비행기 추락사고로 죽었다. 케네디 2세의 동생인 패트릭 부비에이 케네디는 조산아로 태어나 아버지가 암살되기 3달 전 죽었고, 동생 로버트 케네디는 42세로 민주당 대통령 후보 지명전에서 예비선거운동을 벌이다 암살되었고, 로버트 케네디의 아들 데이비드 케네디는 약물과용으로 숨졌으며, 데이비드의 동생 마이클은 한 스키장에서 스키를 타다 사고로 죽었다. 케네디 2세는 대통령에 출마하면 되는 것보다 떨어지는 것이 더 어려울 것이라고 말할 정도로 인기 있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사촌여동생 결혼식에 가다가 추락하여 젊은 나이로 부인과 함께 한줌의 재로 바다에 뿌려졌다. 그의 가계는 3대에 걸쳐 암살, 사고 등으로 10명이 요절했다. 이런 가계를 보면 어떤 생각이 드는가?

 

미국인들은 ‘하나님은 케네디가(家) 사람들의 성공과 명성을 질투하는 것인가?’ 라고 질문하고 있고, 유럽인들은 ‘케네디가의 저주’ 라고 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대통령, 상원의원, 하원의원, 주지사를 낸 미국의 귀족가문이라 하나님이 시기하신 것일까? 청교도 신앙을 가진 아버지가 밀주와 술집으로 부자가 되었고, 케네디가 대통령이 되어 공립학교에서 기도와 성경공부를 금해서 하나님의 저주를 받아서 그랬을까? 물론 둘 다 맞을 수도 있고, 어느 것도 아닐 수도 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이 있다. 그것은 ‘가정문화’다. 케네디의 가정은 모험심이 강하고 권력 지향적이다. 그래서 사고도 많고, 저격을 당한 것이다. 평범한 사람이면 저격당할 이유가 없다. 또한 신앙인이면서도 법을 어기며 밀주를 팔아 돈을 번 아버지처럼 그의 가정은 경건하지 못했다. 믿는다고는 하지만 신앙적인 경건한 가정문화가 없었다. 그러다보니 많은 스캔들에 휩싸였다. 바로 이런 가정문화가 그 가계(家系)에 불행을 가져온 것이다.

 

ygj.jpg 평양산정현교회 유계준 장로 이야기다. 그는 열심히 교회를 섬기느라고 자녀들에게 별다른 재산을 남겨주지 못했다. 하지만 경건한 신앙을 물려주었다. 경건한 가정문화를 유산으로 물려주었다. 8남매 중 아들과 사위 모두 장로가 되었고, 장남은 국립의료원원장, 큰사위는 이한빈 부총리, 둘째는 부산의대학장, 셋째는 부산에서 병원장, 넷째는 유기천 서울대총장, 다섯째는 시카고 시립병원 근무, 여섯째는 캘리포니아에서 병원장, 장녀는 용산 누가병원원장, 차녀는 뉴욕 생화학 연구원 재직, 그리고 이후에 자손들의 수가 129명에 이르고 있는데 그들 가운데 80%가 의료계에 종사를 하고 있다고 한다. 사람이 변하고 변화된 그를 통하여 가정문화가 바뀌니까 자녀들을 통하여 이런 놀라운 일이 일어난 것이다. 그 경건하고 좋은 가정에서 이렇게 훌륭한 자녀들이 나온 것이다. 씨앗도 중요하지만 토양이 더 중요하다. 사막에서 자라는 식물들은 모두가 날카로운 가시를 가지고 있다. 물이 부족한 곳에서 자라다보니 물을 아끼기 위해 잎이 가시로 변한 것이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그러니 가정문화는 참으로 중요하다. 부모의 기질, 성격, 모습, 습관이 자녀에게 그대로 유전되듯 가정문화 역시 가족 구성원들에게 절대적인 영향을 끼친다. 그러므로 가정문화를 잘 만들고 세워야한다. 그래야 후손들이 복스러운 삶을 살 수 있다. 가정의 좋은 문화가 행복한 가정을 만들고, 자자손손 복의 통로가 된다. 이는 자손뿐만 아니라 주변에도 같은 영향을 미치게 된다. 옛 우리 선조들의 가정교육도 똑똑한 개인이 아니라 가풍(家風)에 있었다. 가풍을 바로 세우는 것이 가족을 바로 세우는 것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복의 통로 열세 번째, ‘경건한 가정’에 대하여 은혜를 나누고자 한다.

 

경건한 가정

지금 우리나라는 세 쌍 결혼에 한 쌍을 훨씬 넘어서는 이혼율을 기록하고 있고, 또한 일인가구가 급증하고 있다(1/4을 넘어섬). 이는 한 마디로 경건한 가정문화가 최악의 상황임을 뜻한다. 그렇다면 이런 비극적 조류를 막아서서 가정문화를 다시 세울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본문이 이에 대한 좋은 해답이다. 옛날 이스라엘 사람들은 절기(유월절, 오순절, 장막절)가 되면 가족이 함께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하여 예루살렘으로 순례의 길을 갔다. 이 시는 순례가족의 아름다운 모습을 그리고 있다. 여기에 경건한 믿음의 가정 모습이 잘 나타나 있다. 우선 우리 가정을 경건한 믿음의 가정으로 세우려면,

 

1. 하나님을 가정의 ‘건축자’(home-builder)로 모셔야 한다.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1상).

 

이 말씀은 하나님이 ‘가정의 건축자’(home-builder)가 될 때 경건한 가정을 세울 수 있다는 뜻이다. 하나님이 바로 ‘가정의 설계자’(home-designer)시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오늘날 건축에서는 설계자와 건축자가 구별되어 있지만 현대 서구적 건축문화의 시발점이 되었던 로마시대에는 설계자가 곧 건축자였다. 이것이 이상적이라고 생각한다. 훌륭한 건축가는 설계자의 의도를 잘 표현하는 사람이다. 그렇다. 설계자보다 더 정확하게 설계도면을 이해하고 지도하고 감독할 사람이 어디에 있겠는가?

 

하나님께서 남자와 여자를 지으시고 그들이 부부가 되어 가정을 이루게 하셨다. 가정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아이디어였고, 인류가 타락하기 전 하나님께서 만드신 유일한 기관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가정의 설계자로 만족하시지 않고, 그가 설계한 의도대로 가정이 만들어지는 것을 보고 싶어 하신다. 현대 가정의 모든 비극의 출발점은 가정에서 하나님을 추방하는데서 비롯되었다. 더 이상 그분을 가정의 설계자로, 건축자로 인정하지 않는 데서부터 비극이 시작되었다. 그러므로 흔들리는 가정을 바로 세우는 길은 하나님을 가정의 설계자, 가정의 건축자로 인정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분의 지시하심을 따라 다시 가정생활을 배우는 것이다. 그 분의 가르침에 따라 부부가 사랑하고, 부모를 공경하고, 자녀들을 양육해야 한다.

 

2. 하나님을 가정 ‘지킴이’(home-keeper)로 모셔야 한다.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깨어 있음이 헛되도다.”(1하)

 

마귀의 복음은 인간중심이다. ‘내가 힘쓰고 내가 노력하면 안되는 일이 없고, 내 가정, 내 자녀, 내 일터는 내가 지킨다.’고 말한다. 바로 이것은 마귀의 복음, 사람의 복음, 세상의 복음이다. 이 복음에 의해 아담이 타락했고, 모든 사람들이 타락해 왔다. 본문은 이런 잘못된 교리를 전면 부정한다. 하나님이 함께하지 않고, 하나님이 지켜주시지 아니하면 인간의 모든 수고, 노력, 지혜, 능력은 무용지물이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 하나님이 가정의 건축자인 것처럼 ‘가정 지킴이’(home-keeper)시다.

 

홈페이지에서 성지순례 이야기를 읽어보신 분은 생각이 날 것이다. 요르단에 페트라라고 하는 거대한 바위를 그대로 쪼고 깎아서 집도, 신전도, 극장도, 무덤도, 탑도 만든 바위도시가 있다. 그 도시에 도달하려면 높이 2~300미터 가량의 높은 절벽 사이이로 난 협곡을 2㎞이상 들어가야만 한다. 그러니 어떤 적이 감히 그곳을 넘볼 수가 있었겠는가? 그런데 이와 같은 천연요새에서 살았던 호리족, 에돔족, 나바티안 모두 무너졌다. 두 서너 번의 지진으로 도시 전체가 완전히 모래 속에 잠겨버렸다. 그러다가 200여 년 전에 스위스의 한 탐험가에 의해 발견이 되어, 지금 1/3정도 발굴되었다. 그곳에서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깨어 있음이 헛되도다.”는 이 말씀을 절감했다. 내 인생, 내 건강, 내 자녀, 내 가정 내가 지킨다! 물론 이런 책임감을 갖는 것은 좋지만 이것은 완벽한 착각이고 교만이다. 요로(尿路)에 작은 돌 하나 박히니까 무너지는 것이 인간이다. 이런 인간이 어떻게 자기 건강을 지킬 수 있겠는가? 건강도 지키지 못하면서 어떻게 인생을 지키고, 자기 인생도 지키지 못하면서 어떻게 남의 인생을 지킬 수 있을까? 그러므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맡기는 것이다. 주님께 내 인생을 맡기고, 내 건강을 맡기고, 내 자녀를 맡기고, 내 아내, 내 남편, 내 부모를 맡기고, 내 가정을 맡기는 것이다. 그러면 주님의 보호를 받고, 돌봄을 받는다. 주님은 우리를 지켜주시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경은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벧전5:7)고 하셨다. 이것이 경건하고 건강한 믿음의 가정을 세우는 또 하나의 비결이다.

 

헛되지 않는 삶을 위하여

분문 1~2절에서 ‘헛되다’는 표현이 강조되고 있다. 3회나 반복이 되고 있다. 집을 세우는 것도 성을 지키는 것도 수고하고 고생하는 것도 다 헛되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전제가 있다. 하나님이 세우시지 않고, 하나님이 지키시지 않고,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않으면 헛되다는 것이다. 성경을 많이 읽으신 분들은 이 표현을 대하면서 전도서의 메시지가 생각났을 것이다. 전도서의 저자가 솔로몬이고, 이 시 역시 솔로몬이 지었다. 솔로몬은 일생 많은 것을 누렸다. 지혜와 부귀와 영화, 사람들이 바라던 모든 것을 누렸다. 그런 그가 노년에 말하길 이 모든 것이 헛되다고 했다. 사실 이 시도 이와 같이 인생무상을 노래한 것이다. 사람이 하는 일이란 ‘세우고 지키는 것’, 그리고 이를 위해서 ‘수고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이 없이는 다 허사라는 것이다. 가정을 세우고 지키기 위해서 힘쓰고, 자녀교육을 위해서 노력을 하는 것도 다 헛된 일이라는 것이다. 물론 그것이 필요 없다는 뜻이 아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않으면 이 모든 수고가 무위(無爲)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공동체는 가정이다. 하나님의 창조사역은 남녀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이 직접 주례하여 가정을 세우는 것으로 끝난다. 예수님의 첫 기적은 혼인잔치에서 부족함을 채워주신 것이다. 우린 여기서 아버지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님께서 가정을 얼마나 소중하게 여기시고 계신지 발견할 수가 있다. 그러므로 이렇게 소중한 가정을 위해서 십자가를 지는 마음으로 아끼고 참고 사랑하는 일이야말로 가장 거룩한 일이다. 우리에게는 우리의 가정을 복의 통로가 되도록 경건한 믿음의 가정을 만들어야 할 책임이 있다. 그리고 그 비결은 주님을 가정의 건축자, 가정의 지킴이로 모시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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