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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기하지 맙시다.(06-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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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양식 댓글 0건 조회 15,300회 작성일 06-09-08 17:09

본문

포기하지 맙시다.
시40:1-3

어느 의과대학에서 교수가 학생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한 부부가 있는데, 남편은 매독에 걸려있고, 아내는 심한 폐결핵에 걸려있다. 이 가정에는 아이들이 넷 있는데, 하나는 며칠 전에 병으로 죽었고, 남은 아이들도 결핵으로 누워 살아날 것 같지 않다. 이 부인은 현재 임신 중인데,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

그러자 한 학생이 대뜸 소리쳤습니다. "낙태수술을 해야 합니다." 여러분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이 때 교수가 말했습니다. "자네는 방금 베토벤을 죽였네."

이 불행한 상황에서 다섯 번째 아이로 태어난 사람이 바로 베토벤이었습니다. 아버지는 매독에 걸려있고, 4남매 가운데 하나는 이미 죽었고, 셋은 결핵에 걸려 살 희망이 없는데, 폐결핵의 중증인 어머니는 임신을 했습니다. 오늘날의 의료적 판단으로는 낙태해야 한다고 결정 내릴지도 모를 그 아이가 악성(樂聖) 베토벤이 되었습니다.  

참으로 오묘하고 기이한 것이 하나님의 일입니다. 하나님은 불가능에서 가능을 보시고, 절망에서 소망을 보시고, 헝클어진 상황을 역전시켜 회복시키시는 분이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눈에 보이는 대로 함부로 판단하고, 자신의 지식과 경험을 지나치게 신뢰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때로는 너무 쉽게 포기하기도 하고, 때로는 너무 쉽게 사람들을 정죄하기도 합니다. 심지어는 인간의 이성의 법정에서 하나님의 섭리와 뜻까지도 함부로 비판합니다.

종종 TV에서, 기독교 채널을 통해 강사들의 특강을 듣습니다. 그곳에 나온 강사들 대부분이 큰 교회를 목회하는 목회자들이 주를 이룹니다. 한결같은 이야기가 자신들도 처음부터 큰 교회를 담임한 것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그 분들 역시 개척교회 시절 때 큰 어려움을 겪었는데, 포기하지 않았더니 어려움들을 잘 극복하여 오늘이 있다고 말합니다. 결국 결론은 어느 경우에도 ‘포기하지 말자’는 것이지요. 견디고 인내하면 반드시 좋은 기회가 온다는 것입니다. 목회뿐 아니라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성공한 사람들의 열매만 보고, 그들이 치룬 희생과 대가는 헤아리지 않습니다. 오늘이 우리 교회 개척 1년 9개월째입니다. 이 마당에 평가를 한다는 것은 우스운 이야기지만 지난 시간들이 참으로 꿈만 같습니다. 물론 아직은 만족스런 모습은 아니지만 지금은 과정(ing)입니다. 문제는 지금부터입니다. ‘어렵다고 힘들다고 포기하느냐, 아니면 이 어려움들을 도전하여 극복하고 전진하느냐.’ 이것이 문제입니다.

다윗이 처한 상황
본문은 다윗이 왕위에 오르기 전 사울 왕에게 쫓겨 다니던 시절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시입니다. 사울이 날마다 군대를 동원하여 다윗을 쫓아 다녔고, 다윗은 이런 사울을 피하여 고단한 하루하루 보내고 있었습니다. 본문에서 다윗은 당시 자신이 처한 상황을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웅덩이는 ‘둘러보아도 꽉 막힌 상황, 사방이 막혀서 완전히 고립된 상태’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수렁은 ‘더 이상 발 디딜 근거가 없는 상황’을 가리킵니다. 여기에 ‘기가 막힐’이란 형용사가 붙어 있습니다, 너무도 절망적인 상황을 두고 ‘기가 막히다’고 합니다. 다윗의 상황이 어떠했는지를 짐작케 해주는 표현들입니다. 당시 다윗은 사울의 군대에 의해 사방으로 포위되어 사면초가의 상황에 있었고, 사울의 군대를 피하여 매일같이 이곳 저곳으로 근거지를 옮기며 살아야 하는 불안한 나날이었습니다. 그 세월이 무려 10년이나 계속되었습니다.

다윗의 태도
여러분, 이와 같은 상황에 대한 다윗의 태도와 반응이 궁금하지 않습니까? 본문은 “기다리고 기다렸더니.”(1)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는 이 기가 막힐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다윗은 포기하지 않고 하나님을 기다렸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을 기다렸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귀를 기울이사 그의 부르짖음을 들으셨고, 그를 웅덩이에서 끌어 올리시고, 그의 발을 반석 위에 굳게 세워 주셨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새 노래가 그의 입에서 흘러나왔고, 이전에 그를 무시했던 많은 사람들이 그를 두려워하고, 그를 보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일이 생겨났습니다. 절망적 상황에서 기다리고 기다린 결과입니다. 이것은 포기하지 않고 하나님을 기다리고 기다린 사람들이 받은 복입니다.

그렇다면 다윗이 이 기가 막힌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기다릴 수 있던 비결
1. 하나님에 대한 신뢰
저자의 하나님에 대한 신뢰의 고백이 본 시편 전체에 절절이 배어 있습니다. 저자는 하나님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고백합니다.
1) 설명할 수도 헤아릴 수도 없을 만큼 많은 기적과 생각이 많으신 분(5)
2) 긍휼과 인자와 진리로 항상 보호하시는 분(11)
3) 원수로 수치와 낭패, 욕을 당하게 하시는 분(14~15)
4) 도움이시요, 구원자가 되시는 분(17)

세상을 보고, 사람을 보면 실망과 낙심, 포기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은 암담한 현실 때문에, 고통스럽고 힘든 세상에 대한 무기력한 자신 때문에 스스로 포기하게 됩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을 신뢰하면 상황은 달라집니다. 당시 다윗이 처한 상황은 2절에서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이라고 표현한 그대로 절망적이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위와 같이 하나님을 신뢰한 까닭에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그는 기다리면서 기도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성경은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떠나니 밤이었다(요13:30)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는 매우 상징적인 표현입니다. 예수님을 떠난 가룟 유다의 삶이 밤, 절망, 사망에 사로잡히게 되었음을 의미합니다. 성경은, 예수님은 빛이고 소망이고 생명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하나님을 떠나고, 주님을 떠나면 인생의 밤, 절망의 밤, 사망의 밤을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2. 승리에 대한 확신(14,15,16)
이는 자신이 가야 할 목표, 이루어야 할 비전과 그 결과에 대한 분명한 확신을 의미합니다. 다윗은 자신이 가야 할 목표, 즉 이루어야 할 비전이 분명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에 대해서도 분명한 확신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는 하나님에 대한 신뢰,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에 대한 신뢰, 하나님이 보여주신 비전과 그 비전의 실현에 대한 확신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전 날에 하나님이 사무엘 선지자를 통하여 장차 이스라엘의 왕으로 기름을 부어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때부터 다윗은 자신이 가야할 목표, 이루어야 할 비전을 가슴에 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신뢰한 그였기에 이 목표와 비전이 반드시 성취될 것을 확신하였습니다. 바로 이것이 다윗을 포기하지 않고 힘든 현실과 싸워 이기게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당한 지금의 어려움이 주님이 주신 비전을 성취하기 위한 치러야 할 대가로 생각하였습니다. 그는 사울 왕을 자기 손으로 죽일 수 있는 기회가 몇 번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주님 안에서 자신의 승리를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기다리면 하나님께서 승리를 주시는데 무엇 때문에 자신의 손에 피를 묻히겠습니까? 그냥 하나님의 때를 참고 기다리는 것입니다.

목표가 분명치 않는 사람, 비전이 없는 사람, 결과에 대한 확신이 없는 사람은 쉽게 현실에 타협하거나 작은 어려움만 닥쳐도 쉽게 포기하고 맙니다. 그러나 비전이 있고, 그 성취를 분명히 확신하는 사람은 포기하지 않습니다. 현실에서 당한 어려움이나 고통, 불이익에 대하여 불평하거나 원망하지 않고 도리어 기뻐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신자의 싸움은 이겨놓은 싸움이고, 신자의 항해는 안전한 착륙을 보장받은 항해이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현재 당한 고난이 장차 받은 영광에 비교될 수 없기 때문인 것입니다.

3. 기다리며 기도함(1)
흔히 낙타무릎을 기도무릎으로 이야기합니다. 낙타무릎이란 원래 ‘기도 무릎’이 아닙니다. 강한 모래 바람이 불 때 그 자리에 무릎을 꿇고 바람이 지나갈 때까지 기다려서 생긴 ‘기다림의 무릎’입니다. 기다림은 소망을 품는다는 증거고 포기하지 않았다는 증거입니다. 그리고 기다림은 바로 기도로 이어집니다. 특히 신자에게 있어서 기다림의 시간은 기도 시간이 됩니다. 그러나 기도를 그칠 때 기다림을 포기하게 되고, 그것이 곧 절망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때를 기다렸습니다. 무작정 기다리지 않고 기도하면서 기다렸습니다. 이런 기다림과 기도가 그를 하나님에 대한 신뢰와 승리에 대한 확신으로 이어졌고, 현실을 극복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속성 중 하나가 결코 포기하지 않으심입니다. 내가 하나님을 포기해도 하나님은 나를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누가복음 15장에 세 개의 잃은 것에 대한 비유가 나옵니다. 잃은 양, 잃은 동전, 잃은 아들이 그것입니다. 그런데 양을 잃은 목자나 동전을 잃은 여인이 그것들을 찾을 때까지 찾았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잃은 아들에 대한 비유도 마찬가집니다. 이 비유들은 하나님의 마음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잃어버린 것들에 대하여 포기하지 않고 그것들을 찾을 때까지 관심을 가지고 찾으시는 분이심을 보여줍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 바로 이런 하나님이십니다. 이런 하나님을 믿기에 우리도 포기하지 않는 것입니다. 아니 포기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열 세 살 키라’라는 책에 이런 글이 나옵니다. “우리 마음속에는 도움꾼과 방해꾼이 있는데, 방해꾼은 ‘포기해. 의미없는 일이야’라고 말하고, 도움꾼은 ‘포기하지 마라’고 격려한다.”고 합니다. 방해꾼은 사단이고, 사단에게 점령된 세상이고, 사단의 도구로 전락한 우리의 육체적인 욕심입니다. 반면에 도움꾼은 하나님의 성령입니다. 성령을 헬라어로 ‘파라클레토스’(곁으로 부른자)라고 하는데, 영어 성경은 ‘Helper’(도우미, 우리 성경은 保惠師)로 번역을 하고 있습니다. 성령은 우리로 하나님을 믿고 따르도록, 하나님을 사랑하며 섬기도록 돕고, 진리에 이르도록 이끌어주고, 우리의 기도를 돕고,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누구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따르느냐에 따라 우리의 삶을 포기할 수도 있고, 포기하지 않고 도전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미국 백악관 정책보좌관을 맡고 있는 한국인 강영우 교수는 열 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11살 때 축구를 하던 중 공에 맞아 시력을 잃었습니다. 슬픔에 빠진 어머니는 2년 후 돌아가셨고, 공장 일에 지친 누나 역시 과로로 숨을 거뒀습니다. 강영우 교수는 절망과 슬픔으로 하루하루를 살면서 여러 번 자살을 시도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만난 어떤 분을 통해 신앙을 얻은 후 자신에게 남아있는 것에 감사하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이후, 긍정적인 사고로 학업에서 뛰어난 성적을 거두었고, 미국 유학 3년 만에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지금은 일리노이 대학의 교수로 일하고 있습니다. 그는 두 아들에게 항상 이렇게 말합니다. "포기하지 말라, 자신감을 가지라, 긍정적으로 생각하라." 이것이 강영우 교수의 인생 역전의 비결입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처칠이 남긴 유명한 연설이 있습니다. 어느 고등학교 졸업식에서 한 연설입니다. 뚜벅 뚜벅 단 위로 올라온 그는 이렇게 외쳤습니다. “절대, 절대, 절대 포기하지 마라.”(never, never, never give up)였습니다. 지금 내가 처한 상황이 어떠하든 포기하지 맙시다. 믿음이란 그 어떤 경우에도 포기하지 않고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포기는 불신앙이고 하나님의 능력을 스스로 제한하는 것입니다. 비록 지금 내 인생이 강한 폭풍우를 동반한 비바람 속에 묻혀 있을지라도, 끝이 보이지 않고 방향을 알 수 없는 사막 가운데 있을지라도 포기하지 않고 하나님을 기다리고 기다리면 좋은 결과가 있을 것입니다. 이런 좋으신 하나님을 기대하면서 모든 상황에 소망을 갖고 도전하시기 바랍니다. 우리 다같이 이 좋으신 하나님을 찬양합시다!

좋으신 하나님
좋으신 하나님
참 좋으신 나의 하나님

우리의 기도를
응답해 주시는
참 좋으신 나의 하나님

우리게 기쁨과
소망을 주시는
참 좋으신 나의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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