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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심으로 돌아가자.(06-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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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양식 댓글 0건 조회 22,562회 작성일 06-09-11 1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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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심으로 돌아가자.
계 2:1-7

영국의 어느 청년이 완전한 교회를 찾아 등록하길 원했으나 찾지를 못했습니다. 그래서 스펄전 목사님과 상담을 했는데, 그의 답은 이랬습니다. “완전한 교회를 찾으면 절대 등록하지 마라. 등록하는 순간 그 교회는 자네 때문에 불완전한 교회가 되기 때문이다.” 지상교회는 완전하지 않습니다. 성경에 많은 교회들이 나오지만 완전한 교회는 하나도 없습니다. 아무리 좋은 교회, 훌륭한 교회도 가보면 그 곳에도 문제와 약점이 있습니다. 교회사를 보면 완전한 교회운동을 했던 사람들이 나옵니다. 그런데 이들 모두가 결국은 이단이 되고 맙니다. 불완전성은 인간이 피할 수 없는 문제요, 그것을 인정하는 것이 은혜이고 겸손입니다.

고전1:2절에서 바을은 고린도교회를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라고 부릅니다. 이는 지상에 있는 교회의 정체성을 이 보다 분명하게 나타내주는 말씀은 없습니다. 교회는 우선 고린도라고 하는 세속도시에 있습니다. 이 세상에 근거를 두고 있는 세상에 있는 단체들 중의 하나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용서받은 죄인들의 모임이 교회입니다. 이는 교회의 한계성을 의미합니다. 교회가 완전하지 못하고 문제가 있는 것은 바로 이 점 때문입니다. 그것은 이 세상을 상징하는 고린도라고 하는 곳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교회는 하나님의 교회입니다. 이 점이 교회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단체들과 다른 점입니다. 고린도라고 하는 세속도시에 있기에 불완전하고 문제도 많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교회는 하나님의 교회라는 것입니다. 즉 교회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신적인 기관이라는 의미입니다. 이는 교회의 거룩성에 대한 말씀입니다. 문제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교회에 소망을 두고, 사랑하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입니다. 성경에 나온 교회들 중에 문제가 많은 교회 중 하나가 고린도교회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이 고린도교회를 ‘하나님의 성전, 성령이 거하는 전’이라 부릅니다(고전3:16). 수많은 결점과 문제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교회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완전하고 완벽한 교회를 찾을 것이 아니라 현실의 교회에서 이 교회가 가지고 있는 장점은 살리고 단점은 극복하면서 얼마나 성장해 나가느냐에 있습니다.

우리들의 삶도 마찬가집니다. 장점만 보고 교제를 하고, 장점만 보고 결혼을 하고, 장점만 보고 교회를 찾았다면 반드시 실망할 것입니다. 단지 장점을 조금 많이 가진 사람과 단점을 조금 많이 가진 사람의 차이만 있을 뿐 사람에겐 장점과 단점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람은 상대방의 단점을 보면 크게 실망할 사람입니다. 중요한 것은 장점은 더욱 북돋아주면서 단점을 보완해 주리라는 태도를 가져야 합니다. 이런 사람이라야 상대방의 단점을 보고 실망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단점 때문에 자신의 존재이유를 느끼게 됩니다. ‘이 사람의 이 점을 보완하라고, 이 교회의 이 점을 도우라고 주님이 이 사람을 만나게 하셨구나. 혹은 이 교회로 나를 보내셨구나.’고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모든 관계가 긍정적으로 발전해 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은 요한이 부활하신 예수님으로부터 당시 소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에게 주신 계시의 말씀을 기록한 책입니다. 오늘 본문은 그 일곱 교회 중에 첫 번째 교회인 에베소 교회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저는 이 에베소 교회에게 주신 말씀을 가지고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에베소교회에 역시 여느 교회와 마찬가지로 장단점이 있었습니다. 저는 이 에베소 교회의 장단점을 통하여, 우리와 우리 교회가 에베소 교회의 장점은 살리고 단점은 극복해서 주님이 기뻐하시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에베소 교회의 장점(2~3)
1. 수고의 행위입니다.
힘쓰고 애쓰는 것이 수고입니다. 수레를 밀 때, 말만 하거나 손가락이나 손바닥만 대고 있는 사람, 두 손을 대되 힘을 주지 않는 사람은 수고하는 자가 아닙니다. 두 손을 대고 땀을 뻘뻘 흘리며 애쓰는 자가 수고하는 자입니다. 이런 수고가 그들에게 있었습니다. 주님을 섬기는 수고, 몸 된 교회를 돌보는 수고, 지체들을 섬기는 수고가 있는 교회였습니다. 사랑의 섬김과 봉사가 풍성한 교회였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교회는 섬기는 공동체입니다. 주님을 섬기고, 지체들을 섬기고, 이웃을 섬기는 곳이 교회입니다.

2. 인내의 행위입니다.
그들은 참고 견뎠습니다. 수고는 하되, 한 번뿐이고, 시작은 거창하되 흐지부지하고, 기분 내키면 열심히 하다가 기분 나쁘면 그만두고, 편안할 때 하다가 힘들면 그만두는 것은 인내의 행위가 아닙니다. 그들은 수고하되 참고 견뎠습니다. 맡은 일에 대해선 아무리 힘들어도 끝까지 감당했다는 것입니다. 불이익을 당해도 참고, 오해를 받아도 참고 참았습니다. 이런 인내의 열매가 풍성한 교회가 에베소 교회입니다.

3. “내 이름을 위하여”입니다.
그들은 수고하고 인내하되 자신들의 이익과 인간적 야망을 위해 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주의 이름을 위하는 목적이었다는 것입니다.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그저 주님의 영광을 위하여 수고하고 인내한 것입니다. 주님 앞에서, 주님을 위하여, 주님의 영광에 초점을 두고 살았다는 것입니다. 특히 3절 말씀을 다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주님의 이름을 견디고, 주님의 이름을 위하여 게으르지 않았다고 말씀합니다. 이는 주님을 위해 고난당하면서 주님을 부지런히 섬겼다는 말씀입니다. 주님의 이름을 위하여 고난 속에서 견디며 온갖 열심을 다 드린 것입니다.  

4. 정통신앙입니다.
그들은 악한 자, 자칭 사도, 거짓된 것, 니골라당을 배격했습니다. 이단을 거부하고 정통신앙을 파수한 교회였습니다. 정통신앙을 위해 목숨을 걸고 싸웠습니다. 특히 에베소 지역은 우상숭배가 어느 지역보다 성행했던 곳입니다. 다이애나(아데미)라는 여신을 숭배했는데, 그 규모가 엄청났습니다. 신전 여(女)사제만도 삼천 명이 넘었다고 합니다. 온 도시가 아데미를 숭배했다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입니다. 이런 곳에서 정통신앙을 지킨다는 것은 목숨을 거는 일입니다. 그런데 에베소 교회는 복음의 진리를 사수했습니다.

이런 장점들을 가진 교회가 에베소 교회입니다. 이것들은 현대교회, 특히 우리와 우리 교회가 본받아서 더욱 발전시켜야 할 소중한 내용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베소 교회는 단점도 있었습니다.

에베소 교회의 단점(4)
4절 말씀입니다.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초심을 잃어버린 것. 이것이 에베소 교회의 단점이었습니다. 에베소 교회는 바울이 3차 전도여행 중에 세운 교회인데, 말씀에 대한 열정(행19:9), 기도의 간절함(행20:17:35), 주의 종과의 친밀성(행20:36-38)이 있었던 교회였습니다. 주님에 대한 사랑, 말씀에 대한 사랑, 목회자에 대한 사랑이 깊은 교회였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40년이 지나면서 수고와 인내는 있지만 주님과의 밀접한 교제를 소홀히 하게 되었습니다. 이단과 싸우며 정통신앙을 지키다보니 처음 사랑을 잃어버린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수고와 열심은 있는데, 사랑이 없는 것입니다. 주님을 섬기는 일이나 교회를 섬기는 일에 있어서 중요한 동기는 사랑입니다. 사랑이 없는 수고는 불평과 원망으로 떨어지고 쉽고, 사랑이 없는 열심은 율법주의 혹은 공로주의로 흐르기 쉽습니다. 사랑이 없는 정통신앙은 생명력이 없는 형식적인 죽은 신앙이 될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정통신앙이란 이름으로 서로를 비판하고 정죄하여 분열의 원인이 됩니다.

바울은 고전 13장에서 사랑이 빠진 모든 종교행위나 열심을 가리켜 ‘아무것도 아니다’고 했습니다(고전13:1~3 찾아서 읽음). 그래서 주님은 에베소 교회를 향하여 처음 사랑을 회복하라, 거룩한 사랑으로 충만했던 초심으로 돌아가라고 권면한 것입니다. 그 사랑의 수고, 사랑의 열심, 사랑으로 서로를 용납하는 신앙으로 돌아가라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촛대를 옮기겠다고 경고하십니다. 이 말씀은 심판하시겠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주님의 이 권면과 경고 속에는 첫 사랑, 초심을 회복하는 방법이 제시되어 있습니다(5). 그 방법은 영어 약자로 ‘3R’입니다. 그것은 회상하라(Remember)! 회개하라(Repent)! 회복하라(Restore)!입니다

1. 회상하라(Remember).
오 헨리의 단편소설 ‘소매치기’에 보면, 소매치기가 길을 가던 어릴 적 여자친구를 보고 어린시절을 회상하다가 자신의 타락한 모습을 발견하고 과거의 일을 청산한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처음을 회상하는 것, 이것이 회복의 첫 걸음입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에베소 교회에게 주신 첫 말씀이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입니다. 첫 사랑의 상실 이유를 생각해 보라는 것입니다.

‘전사불망(前事不忘)하여 후사지사(後事之師)하라’는 말이 있습니다. 앞일을 잊지 않고 기억하여서 뒷일의 스승(교훈)으로 삼으라는 말입니다. 역사를, 현재를 들여다볼 수 있는 거울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오늘을 바르고 의미있게 살 수 있는 방법 중 하나가 과거를 잊지 않고 기억하는 것입니다. 제가 확인한 사실은 아니지만 지금도 네덜란드 사람들은 식탁 중앙에 우리나라로 말하면 장과 같은 것을 놓고, 다른 음식을 먹기 전에 그것을 먼저 맛보고 다른 음식을 먹는다고 합니다. 이는 선조들의 개척정신을 잊지 않기 위함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아는 대로 네덜란드는 독일과의 전쟁으로 북쪽의 좋은 땅을 다 잃고 바닷가로 내몰리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바다를 막아서 오늘의 네덜란드를 만들었습니다. ‘북에서 잃은 땅 남에서 찾자! 총 칼로 잃은 땅 호미로 찾자!’는 구호 아래 허리끈을 동여매고 장하나 놓고 거친 음식을 뜯으면서 오늘처럼 부유한 나라를 만들었습니다. 그 선조들의 땀과 눈물, 헌신의 정신을 잊지 말고 기억하자는 것입니다. 오늘이 아무리 풍요롭고 부유해도 그 때를 잊지 말자는 것입니다. 저들이 이렇게 선조들의 땀과 눈물, 그 정신을 회상하고 기억하면서 살고 있기에 오늘의 번영을 가져오고 그것을 지켜 나가는 것입니다.

현재의 불평과 원망, 불행은 과거를 기억하지 않는데서 비롯됩니다. 그러므로 기억해야 합니다. 예수를 처음 믿을 때, 교회에 처음 나왔을 때, 직장에 처음 들어갔을 때, 내 아내 혹은 남편과 처음 만났을 때, 그때를 생각해 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지금의 문제가 보이고, 해결책이 보입니다. 불평이나 원망이 사라지고 감사가 터져 나오게 됩니다. 이것이 첫 사랑과 첫 마음을 회복하는 비결입니다.

2. 회개하라(Repent).  
빙점을 비롯하여 수많은 믿음의 글들을 남긴 일본의 크리스천 작가 미우라 아야꼬의 ‘사랑한다는 것과 믿는다는 것’이란 책에 나온 내용입니다. 저자는 이 책에서 방문객들보다 그들의 선물에 관심을 갖게 된 자신의 ‘고등거지’의 모습에 놀라 회개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13년이란 오랜 병상 생활을 통해 자신도 모르게 방문객들로부터 받은 선물에 익숙해져 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의 방문보다는 그들의 선물에 더 관심을 갖게 된 것입니다.

물이 고이면 썩듯이 신앙도 사랑도 타성에 젖으면 변질됩니다. 그런데 우리가 우리 자신을 돌이켜 생각하기 전에는 이런 사실을 모릅니다. 그저 잘살고 있는 것으로 착각을 하게 됩니다. 마치 암 세포가 온 몸에 퍼져있는데도 건강하다고 믿고 사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몸이 이상하여 병원에서 검진을 해보니 암이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회상입니다. 이 때 비로소 가슴을 치면서 후회하며 치료에 매달리게 됩니다. 이것이 회개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억을 통해 처음과 지금을 비교해 보고 잘못을 발견했으면 이제 그것들을 구체적으로 회개하는 것입니다. 기억만 하고 회개하지 않는 것은 마치 거울을 통해 자신의 모습을 보고 잊어버리는 것과 같습니다. 회상해서 잘못을 발견했으면 이제 회개로 나아가야 합니다. 회개란 단어가 성경에 아주 다양한 의미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가장 기본적인 의미는 마음과 생각을 돌이키는 것입니다. 헬라어로 메타(변화, 바뀜)+노이아(마음, 생각)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회개란 단순히 의식적인 차원을 뛰어넘어 실천적인 영역까지 포함합니다. 행동까지 포함한다는 뜻입니다. 성경에서 주로 사용되고 있는 회개의 의미는 기억(생각)과 회복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유명한 신학자요, 또 목회자였던 에드워즈 목사님의 목회 일화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가 목회하던 교구 내에 주정뱅이고, 도박꾼이고, 교회에는 나오지 않는 타락한 자가 한 사람 있었습니다. 한 번은 그가 이른 아침에 새파랗게 질려 에드워즈 목사에게 달려왔습니다. 그리고 하는 말이 간밤에 꿈을 꾸었는데 천사가 나타나서 "너, 만일 회개하지 않으면 내년 오늘 너를 불러가겠다"고 하더라는 것입니다. 하여튼 그 날부터 그는 술을 끊고 도박도 끊고, 교회에 충실했습니다. 그러나 몇 개월 지나가더니 그의 발걸음은 교회에서 뜸해지고 점점 열심도 없어지더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술도 다시 조금씩 마시고 도박도 또다시 손대기 시작했습니다. 에드워즈 목사는 그를 심방하고 그가 본 꿈의 환상을 회상시켜 주었으나 그 사람은 "글쎄요, 글쎄요" 하면서 더욱 교회에서 멀어져갔습니다. 드디어는 완전히 이전 상태로 돌아갔으며 이제는 목사님께는 반항적으로 나오면서 "무얼요, 개꿈을 가지고 그걸 생각하는 것은 어리석지 않습니까?" 하더랍니다. 어느날 밤 그는 어떤 술집에서 술에 만취가 되어 계단을 내려오다가 떨어져 목이 꺾여 급사를 했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에드워즈 목사가 일기책을 찾아보니 그날이 바로 1년 전 그가 자기를 찾아온 날이었다는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은 주의(主意) 주시는 환상에 순종하지 않는 자를 모두 이런 식으로 징벌하시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이는 회개하지 않는 경우에 대한 명백한 경고인 것입니다. 회개하라는 우리 하나님의 마지막 경고의 음성으로 알아들어야 합니다.

3. 회복하라(Restore).  
‘우리는 사소한 것에 목숨을 건다’라는 책으로 유명해진 리처드 칼슨이란 사람이 있습니다. 그의 다른 책 ‘사랑은 사소한 일에도 상처를 받는다’에서, 인간관계의 처방책 100가지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는 이 책에서 인간관계 처방책 99번째로 ”처음처럼 행동하라“고 권면합니다. 본문에서 주님은 에베소 교회에게 “처음 행위를 가져라.”(4)고 하십니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회복하라’(Restore)는 말씀입니다. ‘처음 상태로 돌아가라, 그때처럼 행동하라.’는 말씀입니다. 생각하고 회개하는 것에 멈추지 말고 실천하라는 것입니다. 처음에 가졌던 그 열심, 그 감사, 그 감격, 그 사랑을 실천하라는 것입니다. 회복은 회개의 결과입니다. 회개하여 원래 상태로 되돌려 놓은 것을 회복이라고 합니다. 굳은 것을 부드럽게 하고, 굽은 것을 곧게 하고, 울퉁불퉁한 곳은 평탄하게 하고, 솟은 곳은 깎아 내리고, 움푹 페인 곳은 채워 넣는 것입니다. 이런 회복의 역사가 있는 곳에 부흥이 따르게 되는 것입니다. 심령이 회복될 때 심령의 부흥이 있고, 교회가 회복될 때 교회의 부흥이 있습니다. 가정이 회복될 때 가정의 부흥이 있습니다.  

훌륭한 인물이 되고, 중요한 과업을 성취하기 위해선 세 가지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합니다. 첫째는 초심이요, 둘째는 열심이요, 셋째는 뒷심이라고 합니다. 이 중에서 가장 중요한 마음은 역시 초심입니다. 이 초심에서 열심과 뒷심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초심이란 무슨 일을 시작할 때 처음 품은 마음, 처음에 다짐한 마음, 첫 사랑의 마음입니다. 그러므로 이 초심은 겸손한 마음, 순수한 마음, 배우는 마음입니다. 이 마음에서 나온 열심이라야 선한 열심, 선한 뒷심이 되는 것입니다. 모든 관계의 악화는 첫 사랑, 첫 마음을 잃어버린데 있습니다. 그것을 회복하는 방법은 회상하고, 회개하고, 회복하는 것입니다. 바로 이 3R에 있습니다.

서울 신림동 뒷골목 5평 식당에서 18년 뒤 583개의 프랜차이즈로 발전한 주식회사 ‘놀부’의 김순진 사장은 성공의 비결을 “순간의 이익보다 고객이 먼저”라는 초심을 잃지 않은데 있다고 고백합니다. 어느 날 손이 뻣뻣해지고 목이 잘 안돌아가면, 우리는 급히 병원에 가서 정상으로 돌아오기를 위해 애씁니다. 그런데 왜 사랑의 상실, 신앙의 마비, 뻣뻣하고 굳어진 마음은 고치려 하지 않는지 모르겠습니다. 처음 사랑을 회복합시다. 초심으로 돌아갑시다. 이것이 살길입니다.

“여러분 잠시 눈을 감고 제 말에 귀를 기울여 주시기 바랍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살아온 날들은 은혜의 날들입니다. 하나님을 비롯하여 부모형제, 아내와 남편, 자녀, 스승, 친구, 이웃. 가정과 교회, 직장 등. 이들 모두가 내 인생의 버팀목이 되어 오늘의 내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나는 얼마나 이런 사실을 기억하며 살고 있습니다. 혹 지금의 내 삶이 만족스럽지 못하다고 여기는 분들은 없습니까? 처음을 생각해 보십시오. 처음 교회에 나올 때의 그 떨림, 처음 아내를 만나고 남편을 만났을 때 그 설렘, 처음 직장에 출근 할을 때의 그 감격, 첫 월급을 받고, 처음 학교에 등교를 하고, 처음 엄마 아빠 소리를 들었을 때의 그 감격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리고 그것이 어디서 떨어졌는지 생각하고, 회개하여 회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다같이 생각하고 회개하며 회복을 위해 통성으로 기도를 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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