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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의 통로29, ‘忍忍不忍 忍不忍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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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양식 댓글 1건 조회 13,677회 작성일 12-08-26 1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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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의 통로29, ‘忍忍不忍 忍不忍忍’

약5:7~11

2012. 8/26. 08:00  11:00

얼어붙은 눈물(Frozen Tears)

진주는 땅에서 캐내는 보석이 아니라 바다에서 나오는 보석이다. 어쩌다 모래알이 조개 속으로 들어가면 그 깔깔한 모래알이 조갯살에 박히게 된다. 그때 조개는 본능적으로 두 가지 중에서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하나는 모래알을 무시해 버리는 것이다. 그러면 결국 조개는 모래알 때문에 병들어 죽고 만다. 다른 하나는 모래알을 품는 것이다. 조개는 진주층이라는 생명의 즙을 짜내서, 이 생명의 즙으로 모래알을 감싼다. 하루, 이틀, 한 달, 두 달, 일 년, 이 년 계속해서 생명의 즙으로 모래알을 감싸고 또 감싼다.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것이 바로 ‘진주’다. 진주는 조개가 모래를 품고 그 고통의 세월을 인내하여 만들어 낸 것이다. 서양에서는 친정 엄마가 시집가는 딸에게 진주를 주는 풍습이 있다. 그때의 진주를 ‘얼어붙은 눈물’(Frozen Tears)이라고 부른다. 딸이 시집살이하다가 속상할 때 모래를 품고 고통을 이겨내서 아름다운 진주를 탄생시킨 조개처럼 잘 참고 견뎌내라는 것, 그러면 반드시 아름다운 진주와 같은 삶이 되리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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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도 살다보면 이런저런 모래알이 우리의 삶과 가정과 교회와 일터에 들어올 때가 있다. 그것을 우리는 ‘시련’이라고 부른다. 이 때 시련에 대한 우리의 태도가 중요하다. 그 태도에 따라 시련이 조개를 죽이는 독이 될 수도 있고, 아름다운 보석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어떤 시련을 만났을 때 ‘내가 지금 진주를 품고 있구나!’고 생각하자. 내가 당하는 시련이 크면 ‘내가 품고 있는 진주도 더 값지고 더 크겠구나!’고 생각하자. 그러면 오늘 우리가 참고 흘리는 눈물이 내일이면 아름다운 진주(보석)로 바뀔 것이다. 사실 우리가 맛보고 있는 삶의 모든 열매는 인내의 산물이다. 우리가 매일 먹는 밥이나 과일도 절로 된 것이 아니다. 인고(忍苦)의 시간을 거쳐 우리의 밥상에 오른 것이다. 모든 것이 다 그렇다. 그래서 인내를 복이라고, 참는 사람에게 복이 찾아온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래서 서양 어머니들이 시집가는 딸들에게 인내의 상징인 진주를 선물한 것이다. 이 시간에는 복의 통로 스물아홉 번째, ‘忍忍不忍 忍不忍忍’이란 제목으로 ‘인내’에 대하여 은혜를 나누고자 한다.

 

인내의 중요성

인내(忍耐)라는 한자를 보면 인내가 무엇인지 잘 알 수 있다. 忍(=刃+心)은 칼(刃)이 심장(心)에 꽂혀 있는 모습이다. 忍이란 칼을 심장에 꽂고 사는 것, 즉 극심한 고통을 참고 견디는 것이다. 耐(=而+寸)는 수염(而)을 손가락(寸)으로 잡아당기고 있는 모습이다. 오랜 옛날부터 수염은 남성미(권력, 체력, 정력)와 권위의 상징이었다. 그런데 그 수염을 잡아당기거나 뽑는 것은 큰 수치와 수모를 뜻한다. 耐란 수염이 뜯기는 수치와 수모를 참고 견디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내란 극심한 고통과 수치, 수모를 묵묵히 참고 견디는 것이다.

 

인내를 헬라어로 ‘휘포모네’(ὑπομονή)라고 한다. 이는 ‘무거운 짐 아래서 피하지 않고 묵묵히 견디는 것’을 뜻한다. 크리소스톰은 인내를 ‘미덕의 여왕’이라고 불렀다. 덕(德) 중에 가장 아름답고 고귀한 것이라는 뜻이다. 우리 속담에도 ‘세 번 참으면 살인을 면할 수 있다.’는 말이 있다. 모든 일에 참는 것이 큰 미덕이다. 설령 그것이 강요된 것일지라도 결과는 마찬가지다. 찰스 알렌(C. Allen)은 지능지수(IQ)가 높은 사람보다 인내지수(PQ)가 높은 사람이 승리한다고 하였다. 로마가 세계를 재패한 것은 인내지수가 높았기 때문이라고 분석하는 역사학자도 있다. 항복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도 항복하지 않고 끝까지 버텼기에 마지막 승자가 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우리 인격도 인내의 용광로 속에서 단련됨으로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금과 같이, 은과 같이 빛나게 된다. 그러므로 성숙한 인격, 성공적인 인생, 승리하는 신앙생활을 위해 인내의 은혜를 구해야 한다. 성경은 인내의 책이다. 성경에 나온 인물들은 모두가 인내의 사람들이다. 그 중에서도 야보고서는 신자의 인내를 매우 강조하고 있는 책이다. 본서는 여러 시험(련)에 직면해 있는 교회들에게 보낸 편지로, 그 시험들을 인내하라는 격려성 권면이다. 특히 본문은 주님의 재림을 소망함으로 여러 환란과 시련을 끝까지 잘 참고 견디라는 말씀이다. 그래서 인내의 본보기로 농부와 선지자들, 욥을 소개하고 있다. 그리고 이를 통하여 인내의 방법과 한계, 자세(태도), 결과를 보여주고 있다.

 

인내의 방법과 한계(7,8)

우물을 잘 파기로 소문이 난 업자가 있었다. 다른 사람이 그만둔 곳도 그가 파면 물이 나왔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의 능력을 신기하게 여겼다. 어떤 사람이 그에게 우물을 잘 파는 이유를 물었다. 그러자 그가 이렇게 대답했다. ‘내가 우물을 잘 파는 비결은 딱 하나입니다. 다른 사람은 물이 나올 곳을 골라서 파다가 안 나오면 포기하지만 나는 아무 곳이라도 물이 나올 때까지 팝니다.’

 

물은 100°에 이르지 않으면 결코 끓지 않는다. 증기기관차는 수증기 게이지가 212°를 가리켜야 움직인다. 99°, 211°에서는 절대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다. 고작 차이인데 말이다. 인생의 성패를 좌우하는 것도 바로 마지막 이 에 있다. 이 ‘1°’의 인내가 인생의 차이를 만든다. 성공하려면 두 가지 바보가 되어야한다. 첫째는 진전이 없어도 노력을 포기하지 않는 바보, 둘째는 힘들고 어려워도 끝까지 참는 바보다.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참고 견디는 것이 성공의 비결이다. 우리가 살면서 흔히 범하는 실수가 있다면 그것은 ‘조급함’이다. 모든 문제는 기다리고 인내하지 못하는 것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아브라함의 생애에서도 이를 절감할 수 있다. 사실 오늘날 중동문제의 원흉은 아브라함이다. 그가 하나님의 약속을 좀 더 참고 기다리지 못하고 몸종 하갈을 통하여 이스마엘을 낳은 것이다(창16:). 참으면 약속의 자녀 이삭이 탄생하지만 참지 못하면 육신의 자녀 이스마엘이 탄생하게 된다! 그래서 본문은 시험을 만난 사람들에게 이렇게 격려한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주께서 강림하시기까지 길이 참으라.......”(7).

 

이는 인내의 방법과 한계에 대한 말씀이다. 그 방법은 ‘길이’ 참는 것이다. 본문에 같은 표현이 세 번이나 나온다(7,8). 힘들다고 어렵다고 중도에 그만 두지 않고 ‘끝까지’ 참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 10년 동안 참았다가 폭발했다. 결국 이것은 10년간 참은 것이 아니라 두고 보자고 10년을 벼른 것이다. 벼르면서 참는 것은 참는 것이 아니다. 사실 진정한 인내는 내가 얼마나 참았는지에 대한 생각조차 없다. 그냥 끝까지 참고, 참아주는 것이 인내다. 그리고 인내의 한계는 ‘주께서 강림하시기까지’(7)다. 주님의 재림이 우리 인내의 한계다. 그런데 그 주님의 재림이 멀지 않다는 것이다. “주의 강림이 가까우시니라.”(8). “심판주가 문 밖에 서 계시니라.”(9). 조금만 ‘더’ 참으면 된다는 말씀이다.

 

인내의 자세(9)

끝까지 잘 참는 것도 중요하지만 참는 자의 태도와 자세 또한 중요하다. 본문은 우리에게 이 점을 말씀하고 있다.

 

“형제들아 서로 원망하지 말라......”(9上).

 

이는 온갖 핍박과 환난 가운데서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며 참고 견디는 신자들에게 ‘어떤 자세로 주님을 기다려야 하느냐?’ ‘어떤 태도로 참고 견뎌야 하느냐?’에 대한 말씀이다. “서로 원망하지 말라.” 참으로 중요한 말씀이다. 아이들이 출타한 부모를 기다리는데 칭얼대는 동생을 누나가 업고 달래며 기다리고 있었다. 돌아와서 이 모습을 본 부모의 심정이 어떻겠는가? 이런 모습으로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고, 이런 모습으로 인내하라는 것이다. 여기서 ‘서로 원망하는 것’은 인내가 부족한 사람의 특징이다. 자신의 부족한 인내를 정당화시키기 위해서 누군가를, 혹은 무엇인가를 걸고 원망을 하고 불평을 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잘 참고 견디는 사람은 유구무언이다. 묵묵히 참으면서 기다리는 것이다. 그런데 이 원망처럼 하나님이 싫어하신 죄는 없다. 고전10장에 가장 악질적인 죄 세 가지가 나온다. 이 세 가지 죄 때문에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넘어졌다. ①우상숭배, ②간음, ③원망이다. 이 중에서 원망은 죄 같지 않은 죄다. 죄 같지 않은데 치명적인 영향을 주는 것이다. 그래서 무서운 것이다. 본문이 이를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자세, 인내의 자세로 말씀하신 이유도 이 때문이다. 죄 같지 않기 때문에 쉽게 범할 수 있고, 죄 같지 않기에 회개도 하지 않는다. 그래서 치명적인 결과로 이어지게 되는 것이다.

 

인내의 결과(11)

이와 같이 서로 원망하지 않고 주님께서 재림하실 때까지 길이 참는 사람은 복이 있다(11). 인내의 결과는 일상에서도 무수히 찾을 수 있지만 본문은 욥의 결말로 이를 소개하고 있다. 욥은 정말 느닷없이 영문도 모른 채 엄청난 시련을 겪은 사람이다. 재산과 자녀, 몸의 건강, 영예까지 잃고 사람들(특히 친구들)의 조롱거리가 되고, 심지어는 자기 아내에게서까지 하나님을 저주하고 죽으라는 악담을 들었다. 하지만 끝까지 잘 참고 견뎠더니 주님께서 모든 것을 회복시켜 주셨다. 물질의 경우는 갑절로 회복시켜 주셨다(욥42:12~17).

 

캘빈 쿨리지(C. Coolidge)는 이렇게 말했다. ‘세상에 인내를 대신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재능이 인내를 대신할 수 없다. 재능을 가지고도 성공하지 못한 사람들이 많다. 천재적인 자질도 인내를 대신할 수 없다. 천재가 다 성공하지 못한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교육도 인내를 대신할 수 없다. 이 세상에는 교육을 받고도 자기 역할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인내의 사람은 무엇이든 이루어낼 수 있다.’ 거센 파도가 유능한 해군을 만들고, 오래 묵은 장이 맛이 있고, 오래 뿌리 내린 나무가 거목이 된다. 마찬가지로 인내가 신앙과 인생을 더욱 굵게, 더욱 아름답게, 더욱 풍성하게 만든다. 1°에 축복과 기쁨이 있다는 것을 명심하자! 신자의 트레이드 마크는 바로 인내다. 조금만 더 참자!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갈6:9). 忍之爲德! 忍之爲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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