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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을 빌어주는 생활(06-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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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양식 댓글 0건 조회 16,397회 작성일 06-10-01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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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을 빌어주는 생활
마10:5~15

남을 잘되게 한 사람들
도요타, 닛산과 함께 일본 3대 자동차기업인 혼다의 창업자 혼다 쇼이치로는 초등학교 학력이 전부입니다. 그가 창업한 혼다는 물론 쇼이치로 역시 세계적으로 존경받는 경영자가 되었습니다. 특히 일본 사람들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 중의 한 사람으로, 그에 대한 책이 무려 28권이 나왔다고 합니다. 저는 그가 이렇게 되는데 그의 인간 관계론이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학자들은 혼다의 인간 관계론을 세 가지로 요약합니다.
①남에게 좋은 인상을 준다.
②시간을 잘 지킨다.
③남에게 돈을 벌게 한다.
특히 세 번째의 내용이 저에게 충격과 감동을 주었습니다. 상식적으로 이것을 어떻게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이익을 남기기 위해 기업하는 사람의 마인드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까? 하지만 깊이 생각하고 멀리 생각해 보면 이것이야 말로 큰 경영, 크게 이익을 남기는 비결이라 생각합니다.

부불삼세(富不三世)란 말이 있습니다. 어느 부자도 삼대를 못 간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 12대, 300년에 걸쳐 만석꾼을 지낸 집안이 있습니다. 바로 ‘경주 최부자’입니다. 조선시대 최고 부자였던 경주 최 부잣집은 1600년대 초반부터 1900년대 초반까지, 300년간 만석꾼의 부를 유지했습니다. 비결은 집안 대대로 철칙으로 내려오는 6가지 가훈 때문이라고 합니다.
첫째, 과거를 보되 진사 이상 벼슬은 하지 마라.
벼슬을 하면 권력에 맛을 들이게 되고, 결국 권력다툼에 말려서 온 가족이 화를 입는 일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최 부잣집은 돈은 벌되 권력은 처음부터 포기했던 것입니다.
둘째, 만석 이상의 재산은 사회에 환원하라.
최 부잣집은 1년 소작료 수입은 1만석을 넘기지 않았고, 그 이상은 소작료 할인 방식으로 사회에 환원했습니다. 다른 부자들이 소작료를 수확량의 70% 정도 받았다면 최 부자는 40%에서 멈췄던 것입니다. 사촌이 논을 사면 배 아파 하는 게 우리네 인심이었지만 최 부자가 논을 사면 박수를 쳤다고 합니다.
셋째, 흉년기에는 땅을 늘리지 마라.
조선시대에는 흉년이 들면 수 천 명씩 굶어죽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은 당장 굶어죽지 않기 위해 갖고 있는 논과 밭을 그야말로 헐값으로 내다 팔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최 부잣집은 이런 논과 밭을 결코 사들이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가진 사람이 취할 도리가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넷째, 과객을 후하게 대접하라.
1년에 약 1,000석의 쌀을 과객들의 식사대접에 사용했고, 뿐만 아니라 과객들이 묵고 가는 사랑채에는 별도의 뒤주를 둬 누구든지 쌀을 가져가 다음 목적지까지 노자로 사용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고 합니다.
다섯째, 주변 100리 안에 굶어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
주변 사람이 굶어죽는데 나 혼자 만석꾼으로 잘 먹고 잘 사는 것은 부자의 도리가 아니라고 생각해 경주를 중심으로 사방 100리 안에 굶어죽는 사람이 없도록 쌀을 무료로 나누어 주었습니다.
여섯째, 시집 온 며느리들은 3년간 무명옷을 입어라.

요즈음 ‘가진 자의 사회적 의무’를 강조하는 ‘노블레스 오블리제’라는 말을 자주 듣습니다. 최 부자야말로 이 의무를 성실히 실천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남을 잘되게 하는 것이 300년 동안 부를 이어올 수 있었던 비결이었습니다. 위와 같은 예들을 통하여 “흩어 구제하여도  더욱 부하게 되는 일이 있나니 과도히 아껴도 가난하게 될 뿐이니라. 남을 윤택하게 하는 자는 윤택하여지리라”(잠11:24~25)는 말씀을 다시 한 번 실감해 봅니다.

전도자의 자세
본문은 주님께서 제자들을 전도지로 파송하시면서 주신 교훈입니다. 주님은 제자들을 선교지로 파송하기에 앞서 몇 가지 당부를 하셨습니다.
①먼저 가까운 사람들에게 가서 복음을 전하라(5~6).
②거저 받았으니 거저주어라(7~8).
③일상에 매이지 말고 복음전파에 전념하라.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사역에만 전념하라(9~10).
④한 곳에 거처를 정하고 그곳에서 집중적으로 사역하라(11).
⑤어느 집이나 누구에게나 먼저 복을 빌어주어라(12).

“또 그 집에 들어가면서 평안하기를 빌라.” 어느 집에 들어가든지 먼저 그 집에 평안(복)을 빌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집이 이에 합당하면 빈 평안(복)이 거기 임할 것이요, 만일 합당치 아니하면 그 평안이 자신에게 돌아올 것이라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늘 남을 축복하는 습관을 가져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남이 잘되고, 평안하도록 복을 빌어주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전도자가 어느 집에 들어가거나 사람을 만났을 때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입니다. 세상에서 복을 빌어주는 사람, 이것이 신자의 이름입니다. 이것이 신자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이자 목적이고, 사명이며, 우리 신자만이 가지고 있는 특권입니다.

신자의 존재 이유
창세기 12장에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사람으로 부름을 받는 장면이 나옵니다. 거기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부르신 이유와 목적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창12:1~2).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부르신 이유와 목적은 땅의 모든 민족의 복이 되도록, 땅의 모든 민족이 아브라함으로 인하여 복을 받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우리 명석이 집사님이 찬양 중에 종종 ‘당신은 하나님의 축복의 통로입니다’라고 인사하자고 하는데, 같은 의미입니다. 주님이 이 험한 세상에서 우리 부르신 목적은 복이 되도록 부르신 것입니다. 여기에 우리 교회를 세우신 목적은 하나님의 축복의 통로가 되도록 세우신 것입니다.

신자의 사명
종종 우리 신자들을 비판하는 말 중에, ‘기복(祈福)적이다’는 말을 듣습니다. 기복이란 복을 비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저는 복을 빈다는 것 자체는 잘못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복을 전제하지 않는 종교는 없습니다. 모든 종교는 복을 이야기하고 있고, 우리 기독교도 예외일 수 없습니다. 그리고 복을 받기 위해 신앙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자가 복을 비는 것은 결코 비난의 대상이 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문제는 그 복을 누구를 위해 비느냐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는 순간 지복(至福)을 소유한 사람들입니다. 이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바로 그 복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을 위해, 세상을 위해 복을 빌어주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신앙인들이 받은 복을 나눌 생각은 않고 여전히 자신을 위해서만 복을 빌고 있기에 기복신앙이라는 비난을 듣는 것입니다.

신자는 타인을 위해 존재하는 사람입니다. 다른 사람이 잘되고, 다른 사람이 복을 받고, 다른 사람이 행복하도록 하기 위해 존재하는 사람입니다. 교회 역시 마찬가집니다. 이것이 바로 신자의 사명이고 교회의 사명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살 때 세상에 소금이 되고 빛이 되어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것입니다. 창12:3절은 아브라함의 사명과 관련된 말씀입니다.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민족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하신지라.” 축복의 통로가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적극적으로 표현하면 축복해 주는 사람, 하나님의 복을 세상에 유통시키는 사람이 되라는 것입니다. 장경철 목사님(서울여대교목)의 표현대로 우리 신자는 유통업자들, 특히 천국의 복을 세상에 유통시키는 유통업자들입니다. 이것이 우리 신자의 사명입니다.

창세기 39장에서부터 요셉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요셉은 참된 신자의 모델이 되는 인물입니다. 그는 형들로 인하여 다른 나라에 노예로 팔려가게 되었습니다. 한 마디로 요셉의 형들은 남의 꿈을 찢고 짓밟는 사람, 다른 사람을 불행하게 하는 사람의 대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팔려온 요셉은 그 어려움 중에도 하나님을 신실하게 섬겼고, 만나는 주인들을 하나님을 섬기듯 섬겼습니다. 그래서 그가 섬기는 사람들마다, 그가 가는 곳마다 복을 받게 되었습니다(창39:5.....). 요셉처럼, 사람들에게 복이 되고 세상에 축복의 통로가 되도록 주님이 우리를 부르셔서 우리를 다시 세상으로 보내신 목적(사명)입니다.

신자의 특권
구약시대 제사장의 가장 중요한 사역은 백성을 대신하여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일입니다. 그리고 또 다른 하나는 하나님을 대신하여 백성들을 축복하는 일입니다. 민6:23~26에 제사장의 축복예문이 나옵니다. “아론과 그 아들들에게 고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이렇게 축복하여 이르되,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로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할지니라 하라.” 이렇게 백성을 축복하는 것은 제사장의 유일한 특권입니다. 그런데 신약시대에는 이 특권이 모든 믿는 사람에게 주어졌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신자가 제사장이기 때문입니다(벧전2:9). 그러므로 다른 사람을 위해 복을 빌어주는 것은 우리 신자에게 하나님께서 주신 특권입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우리가 복을 빈대로 하나님이 복을 주신다는 사실입니다.

바로 이런 이유들 때문에 우리는 복을 빌어주는 사람이 되고, 복을 빌어주는 것이 우리의 생활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자인 나 때문에 주변이 하나님의 복을 받고 주변 사람들이 복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이렇게 복을 빌어주는 생활을 하면 내 자신도 복을 받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자연법칙이고, 영적 원리입니다.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갈6:7~8).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심은 대로 심은 만큼 거두게 하시는 분입니다. 복을 심으면 복을 거두게 됩니다. 사랑을 심으면 사랑을 거두고, 평화를 심으면 평화를 거두고, 용서를 심으면 용서를 거둡니다. 다른 사람에게 복을 빌어주는 것은 곧 복을 심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본문에서도 “또 그 집에 들어가면서 평안하기를 빌라. 그 집이 이에 합당하면 너희의 빈 평안이 거기 임할 것이요, 만일 합당치 아니하면 그 평안이 너희에게 돌아올 것이니라.”(12~13)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빈 평안이 결코 헛되지 않고 반드시 결실을 맺는다는 말씀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모두 복을 빌어주는 것을 생활이 되도록 합시다. 그래서 주변을 잘되게 하고, 행복하게 하고, 복되게 하는 사람이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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