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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된 자리를 떠난 사람, ‘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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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양식 댓글 0건 조회 17,866회 작성일 13-02-03 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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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된 자리를 떠난 사람, ‘롯’

창19:23~29

2013. 2/3. 08;00, 11:00

居必擇鄕, 遊必就士

거필택향, 유필취사(居必擇鄕, 遊必就士)란 말이 있다. 이는 ‘거할 곳은 반드시 좋은 곳을 택하고, 사귈 사람은 반드시 선비를 택하라.’는 순자(荀子)의 말이다. 순자는 인간의 본성이 ‘선하다’(性善說)고 주장한 맹자와 달리 ‘악하다’(性惡說)고 했다. 하지만 좋은 환경, 좋은 사람을 만나면 그 본성이 ‘선하게’ 바뀐다고 했다. 그 예로 ‘마중지봉’(麻中之蓬)을 들었다. 이는 삼밭에서 자라는 쑥이란 뜻인데, 쑥은 잘 구부러지는 성질을 가지고 있어나 이런 쑥도 삼밭에서 자라면 붙들어주지 않아도 삼의 방향으로 곧게 자란다. 이를 ‘불부이직’(不扶而直)이라고 한다. 비록 인간의 본성이 악하지만 좋은 가정이나 환경에서 자라고, 좋은 사람과 사귀면 자연히 주변의 감화를 받아 선하게 된다는 뜻이다. 후천적 환경의 중요성, 곧 소속감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이다. 그래서 순자는 ‘군자는 처음부터 다른 사람과 다르게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사물의 이점을 잘 이용하는 사람이라.’고 하였다.

 

사람은 관계적인 존재이다. 관계를 떠나서는 살 수가 없다. 사람에게 관계는 물과 같고, 공기와 같은 것이다. 그런데 그 관계 속에서 더불어 살다보면 어느새 서로 닮아있는 모습을 보게 된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주변 환경이나 사람들의 삶이 배어들어와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자신도 모르게 영향을 받은 것이다. 관계의 중요성, 소속의 중요성을 강조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아무튼 우리는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살고 있다. 그러니 내가 누구를 만나고, 누구와 함께 있고, 어디에 살고 있느냐가 나의 일생과 운명을 좌우한다. 좋은 환경 좋은 사람을 만나면 좋은 영향을 받고, 좋은 영향은 좋은 결과를 낳는다. 반대로 좋지 않은 환경 좋지 않은 사람을 만나면 좋지 않은 영향을 받고, 좋지 않은 결과를 낳게 된다. 그러니 순자가 말한 居必擇鄕(거필택향), 遊必就士(유필취사)가 얼마나 중요한지 모른다. 본문에 나온 롯의 삶을 통해 이 점을 확인할 수 있다.

 

롯이 받은 복

 롯은 아브라함의 형제 하란의 아들로 아브라함에게는 조카다. 롯은 아버지 하란이 일찍 죽자 아브라함을 아버지처럼 따랐다. 아브라함이 갈대아 우르에서 하나님의 부름을 받아 나올 때 롯도 함께 나왔다. 아브라함의 아버지 데라가 하란에서 죽고, 아브라함이 가나안을 향해 다시금 전진할 때 롯도 역시 함께 따라나섰다. 가나안 땅의 극심한 가뭄 때문에 아브라함이 이집트로 내려갈 때도, 그곳에서 우여곡절 끝에 다시 가나안으로 올라올 때에도 롯은 아브라함과 함께 했다. 아브라함이 있는 곳에는 롯도 있었다. 그래서 이렇게 매사 아브라함과 함께 했던 롯 역시 아브라함처럼 큰 부자가 되었다.

 

물론 이 물질적인 부가 두 사람 사이의 갈등원인으로 작용하여 결국 서로 갈라서게 되었지만 둘 다 큰 부자가 된 것은 사실이다. 여기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하나는 물질적인 부의 한계이다. 물질적으로 넉넉하지 못할 때는 우애가 깊어 서로 돕고 의지했는데, 부유해지니까 갈등이 생긴 것이다. 이것은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이다. 그래서 지혜로운 사람은 너무 부하게도 말고, 그렇다고 너무 가난하게도 말게 해달라고 기도한 것이다(잠30:8,9). 다른 하나는 같은 곳에서 함께 살 수 없을 만큼 큰 부자가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베푸신 복의 특징이다. 하나님의 복은 우리가 감당할 수 없도록 쏟아부어주신다. 갈 바를 알지 못하면서도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한 아브라함의 믿음에 대한 보상이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당장에는 해가 되고 불이익처럼 보이지만 결국에는 우리에게 몇 배의 복으로 돌아온다. 아브라함은 이에 대한 증인이다. 그리고 이 아브라함과 함께 했던 롯 역시 아브라함이 받은 복을 받게 된 것이다. 복 받은 사람과 함께 하면 반드시 그 사람도 복을 받게 된다. 은혜 받은 사람 곁에 있으면 은혜를 받고, 되는 사람 곁에 있으면 그 역시 잘된다. 이것이 롯이 받은 복이다. 롯이 한 일이라고는 아브라함과 함께한 것밖에 없었는데, 그 역시 복을 받은 것이다.

 

롯의 불행

복을 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유지하며 누리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롯은 그 복을 계속 유지하지 못했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땅과 하나님께서 복의 통로로 택하신 아브라함을 떠났기 때문이다. 그는 소유를 핑계로 아브라함을 떠나 소돔과 고모라 지역으로 옮겼다. 그곳은 가축을 기르는데 필요한 풀과 물이 풍부하여 마치 하나님의 동산과 같고 이집트와 같았다. 자신의 재산을 더욱 증식시킬 수 있는 장소처럼 보였다. 그래서 롯은 그곳에서 거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겉모습이었고,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 악하며 큰 죄인이었다(창13:14, 19:4~8). 이 말은 그곳은 하나님의 심판이 불가피한 악의 소굴이라는 뜻이다. 본문의 말씀처럼 롯은 아브라함의 간절한 중보 때문에 목숨은 건질 수 있었지만 그토록 아꼈던 재물들은 소돔과 고모라가 불탈 때 모두 불타 없어지고 말았다. 심지어는 고락을 함께 했던 사랑하는 아내까지 잃고 말았다. 그래서 이런 경우를 두고 우리 찬송가(522장)는 이렇게 노래하고 있다.

 

웬일인가 내 형제여 마귀만 따르다

저 마귀 지옥 갈 때에 너도 가겠구나.

 

웬일인가 내 형제여 재물만 취하다

세상물질 불탈 때에 너도 타겠구나.

 

롯의 실패는 복된 자리를 떠난 것이다. 복된 자리를 떠나면 복된 사람도 떠나게 된다. 즉 약속의 땅을 떠나고, 아브라함을 떠난 것이다. 아브라함은 늘 약속의 땅에 거했고, 그리고 그곳에서 하나님과 항상 함께 했던 사람이다. 그러니 그에게는 하나님의 복이 함께 했다. 이런 아브라함을 떠남은 하나님을 떠남이고, 하나님의 복을 떠남이다. 롯의 불행은 여기서부터 시작되었다. 소돔과 고모라 지역에 거했던 롯에 대하여 베드로는 이렇게 기록하였다. “소돔과 고모라 성을 멸망하기로 정하여 재가 되게 하사 후세에 경건하지 아니할 자들에게 본을 삼으셨으며, 무법한 자들의 음란한 행실로 말미암아 고통당하는 의로운 롯을 건지셨으니, 이는 이 의인이 그들 중에 거하여 날마다 저 불법한 행실을 보고 들음으로 그 의로운 심령이 상함이라.”(벧후2:6~8). 무법한 자들과 함께 했던 롯이 저들의 악한 행실을 보고 들음으로 심령이 상했다는 것이다. 마음 편할 날이 없었다는 뜻이다. 그들 중에 거했기 때문이다. 함께 있으면 보고 들을 수밖에 없고, 불편한 이야기를 듣고, 좋지 않은 모습을 보면 마음이 편할 수가 없다. 아무튼 마음이 편해야 형통한 법인데 무법한 자들과 함께 하므로 마음 편할 날 없었던 롯은 재물과 아내까지도 모두 잃게 되었다. 불행은 있어야 할 사람이 있어야 할 자리에 있지 않을 때, 있어서 안 될 사람이 있어서는 안 될 자리에 있을 때 찾아온다. 그래서 시편은 ‘악인의 꾀를 따르지 않고 죄인의 길에 서지 않고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않는 것’(1:1)이 복 있는 사람이라고 강조한 것이다. 그렇다. 복을 받는 것도, 그 복을 유지하는 것도 모두 ‘함께 함의 법칙’에 있다. 누구와 함께 하고, 어디에 소속되어 있느냐가 우리의 삶을 결정한다. 그래서 ‘내가 누구냐?’보다 ‘내가 누구에게 소속 되었느냐?’가 중요하다고 말하는 것이다. 즉 정체성보다 소속감이 중요하다는 말이다. 소속감이 곧 정체성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주님 더 가까이! 주님과 함께!

자녀의 복은 부모와 함께, 부모 가까이 있는 것이다. 부모를 떠나고, 가정을 떠난 자녀는 형통할 수 없다. 신자의 복은 주님을 가까이 하는 것이다(약4:8). 무엇보다도 주님을 가까이 하고 함께 하면 모든 불행의 원인인 마귀가 떠나게 된다. 그래서 복의 통로가 되고, 복의 장소가 된다. 롯이 아브라함과 함께 있을 때 복을 받고, 아브라함이 거했던 황량한 땅 헤브론이 복지(福地)가 된 것은 아브라함이 하나님과 함께 했기 때문이다. 하나님과 함께 했던 요셉도 마찬가지다. 그가 만나는 사람마다 복을 받았다. 그가 보디발의 집에 있을 때는 보디발의 집이 복을 받고, 옥에 있을 때는 간수장이 복을 받고, 이집트의 총리가 되었을 때는 이집트가 복을 받았다. 이와 같이 주님을 가까이 하고, 함께 하면 단순히 복을 받는 것을 넘어 복이 되는 삶을 살게 된다. 이것이 주님을 가까이 하고 함께 한 사람들의 공통점이다. 지금 내가 있는 곳이 어떤 곳이고, 어떤 사람과 함께 하고 있느냐? 매우 중요하다. 더 중요한 것은 내가 어떤 사람이냐이다. 나를 가까이 하고, 나와 함께 한 사람들에게 복이 되고, 내가 머문 곳을 복의 장소로 만드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물론 소극적으로 축복의 사람, 축복의 장소를 떠나지 않고 잘 지키는 것도 중요하다. 그렇지만 적극적으로 나를 만나고 내가 머문 곳을 복되게 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주님 더 가까이, 말씀 더 가까이, 교회 더 가까이 하는 것이다. 저와 여러분 모두 이런 사람이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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