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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의 사람, ‘야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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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양식 댓글 0건 조회 18,843회 작성일 13-03-03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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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의 사람, ‘야곱’

창32:24~32

2013. 3/3. 08:00, 11:00

사람은 외로워서 죽는다!

프랑스 최고의 인기모델이었던 마르셀 피숑은 64세가 된 1984년 9월 23일에 굶어서 죽기로 결심하고, 같은 해 11월 6일까지 45일간 물만 마시면서 단식하다 죽었다. 죽은 지 10개월이 지난 1985년 8월 23일에 그녀의 시신이 발견되었는데, 주변 사람들과 단절된 생활을 해온 그녀였기에 아무도 그녀의 죽음을 몰랐던 것이다. 그녀는 죽기 얼마 전 텔레비전에 출연하여 집에 들어섰을 때 ‘여보 왔소?’라는 말을 들을 수 없는 것이 가장 괴롭다고 했다. 그녀는 두 번이나 결혼했지만 실패하고 혼자 살다가 이런 비극을 맞았다. 그녀는 45일간의 비극을 일기로 남겼는데, 그 ‘죽음의 일기’에서 ‘외로움은 죽음보다 두렵다.’고 썼다.

 

힘들어도 힘든 것을 알아준 사람이 있으면 힘이 덜 들고, 아파도 함께 울어줄 사람이 있으면 덜 아프고, 배고파도 배고픔에 동참할 누군가가 있으면 배부름보다 더 행복할 수 있다. 태산 같은 문제, 한 겨울 칼바람에도 함께 할 사람이 있으면 견딜만하다. 사람은 힘들어서 망하고, 힘들어서 죽는 것이 아니다. 위로받지 못해서 망하고, 알아주는 사람이 없어 외로워서 죽는다. 병이 들어서 죽는 것이 아니라 사랑을 받지 못해서 죽고, 배고파서 죽는 것이 아니라 함께 해주는 사람이 없어서 죽는 것이다. 그러므로 곁에 힘들어해 줄 사람이 있고, 아파해 줄 사람이 있고, 무슨 일이든 함께 할 사람이 있으니 얼마나 기뻐하고 고마운 일인가? 그런 사람을 곁에 붙여주신 주님께 춤추며 영광을 돌리자! 그런데 문제는 인생의 밤이 너무 깊고 힘들면 이런 사람조차도 위로가 안될 때가 있다는 것이다. 그럴 때 어떻게 해야 할까? 본문은 바로 이에 대한 답을 우리에게 준다.

 

인생의 밤을 직면한 야곱의 선택

 지금 야곱은 지독하게 힘든 인생의 밤에 직면하였다. 앞에는 그에게 원한에 사무친 형 에서가 400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오고 있고, 뒤에는 화해를 하긴 했지만 도망치다시피 해서 나온 외삼촌 라반이 버티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앞으로 나아갈 수도, 그렇다고 뒤로 물러설 수도 없는 사면초가(四面楚歌)의 형국이 되고 말았다. 상황이 이렇게 되고 보니 그에게는 4명의 아내와 11명의 자녀들이 있었지만 이들이 문제해결의 도움보다 이들을 지켜야 한다는 책임감 때문에 오히려 커다란 짐이 되고 있었다. 아무튼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다해서 에서를 맞이할 준비를 철저하게 한 다음 모두 강을 건너게 하고 자신만 얍복강 나루에 남았다(24). 그리고 하나님 앞에 엎드렸다(updream). 홀로 엎드려 할아버지 아브라함과 아버지 이삭의 하나님, 즉 살아계시는 전능하신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였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이 기도를 통하여 야곱은 어두운 밤을 지나 빛나는 새 아침을 맞이하게 되었다. ‘텅 빈’(얍복의 뜻) 인생이 ‘하나님의 얼굴’(브니엘의 뜻)을 본, 곧 하나님을 만난 복된 인생으로 변하게 되었다.

 

그가 브니엘을 지날 때에 해가 돋았고 그의 허벅다리로 말미암아 절었더라.”(31).

 

시련의 밤은 기도의 초대장이다.

바울은 우리 신자를 ‘보배를 담은 질그릇’(고후4:7)과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않고,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않는 존재’(:8)라고 하였다. 질그릇처럼 값싸고 연약한 존재이지만 보배이신 그리스도를 담고 있고, 사방이 막혀도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는 하늘 길이 열려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경은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라.”(시50:15)고 말씀하였고, 반면 “네가 만일 환난 날에 낙담하면 네 힘의 미약함을 보임이니라.”(잠24:10)고 하였다. 신자의 진가는 위기 때 드러난다. 그 때 낙심하여 포기하고 주저앉느냐! 아니면 주님 앞에 손들고 나아가 엎드리느냐! 그것을 보면 알 수가 있다. 사실 신자가 할 일은 낙담이 아니라 부르짖는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주님 앞에 엎드려 부르짖는 사람은 더욱 강하게 일어난다. 그것은 주님이 찾아오셔서 그를 만나주시기 때문이다.

 

야곱은 홀로 남았더니 어떤 사람이 날이 새도록 야곱과 씨름하다가”(24).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이 씨름의 주체다. 이 씨름의 주체가 야곱이 아니라 ‘어떤 사람’이고, 그 어떤 사람이 씨름을 걸어왔다. 그 어떤 사람은 ‘하나님, 혹은 하나님의 천사’다. 홀로 남아있는 야곱에게 하나님이 먼저 찾아오신 것이다. 요셉 호프만 콘(J. H. Cohn)은 하나님이 야곱에게 씨름을 걸어온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네가 너와 함께 있었고, 아버지의 집을 떠날 때부터 너를 지켜봐왔다. 라반의 집에서도 너와 함께 있었고, 이제껏 너를 지켜본 것처럼 내일 에서를 만날 때에도 너와 함께 있겠다. 그러니 에서를 두려워마라.’ 랍비 와스코(A. Waskow)는 이 야곱의 씨름을 깊은 ‘영적 친밀감’이라고 해석하였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씨름을 기도로 해석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기도는 곧 주님과의 깊은 영적 교제이기 때문이다. 그리니 기도의 자리로 나아가면 주님을 만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야곱의 경우처럼 주님이 더 적극적으로 찾아오셔서 만나주신다는 점이다.

 

어느 제재소 직원이 아침에 출근해 보니 아무런 설명도 없이 해고 통지서만 책상 위에 놓여 있었다. 그 충격으로 그는 몇 달을 방황했다. 그리고는 집에 돌아와서 아내에게 모든 노력을 다해 보았지만 되는 일이 없으니 죽고 싶다고 했다. 이 때 그의 아내가 ‘당신 정말 이 문제와 상황을 놓고 진지하게 기도해 보았냐?’고 물었다. 그런데 참 이상한 일이었다. 아내의 이 말이 도전이 되었다. ‘맞아. 나는 기도한 적이 없지!’하고 말하며 그날부터 기도를 시작했고, 아내 역시 함께 기도에 동참했다. 기도하는 동안 이유도 말해주지 않고 자신을 해고한 직장에 대한 서운한 감정이 치유가 되면서 새로운 아이디어들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래서 그는 자기 집을 담보로 건축업을 시작하였고, 5년 만에 제법 큰 회사로 성장했다. 그는 기도하면서 새로운 소원을 갖게 되었는데 깨끗하면서 싼 가격에 쉼을 제공할 수 있는 작은 호텔을 짓는 것이었다(당시 좋은 호텔은 너무 비싸고 작은 호텔은 지저분하고 분위기도 좋지 않아 여행에 불편한 점을 착안). 그는 이런 호텔을 하나 둘 짓기 시작했고, 이것이 세계적인 체인이 되었다. ‘홀리데인 인’ 호텔의 창업자 케몬스 윌슨(K. Wilson)의 이야기다. 끝장이라고 생각했는데, 야곱처럼 기도를 했더니 길이 보였고 재기에 성공했다는 이야기다. 때때로 거대한 철의 장막처럼 다가오는 인생의 밤은 우리를 기도에로 초청하시는 ‘주님의 초대장’이다. 여기에 흔쾌히 반응하여 기도의 자리로 나아간 사람은 야곱이나 윌슨처럼 새로운 길을 찾을 수 있고, 더욱 멋지게 일어설 수가 있다.

 

야곱처럼 기도하라.

야곱은 모든 시대의 신자에게 기도의 귀감이 되는 사람이다. 무엇보다도 기도의 ‘자세’에 좋은 본보기가 되고 있다. 여기서 한 가지만 말하면, 그것은 ‘끈질김’이다. 끈질김은 응답받는 기도의 자세다. 이는 ‘간절함’에서 온다. 너무 간절하니까 어떤 상황에도 포기하지 않고 끈질기게 매달리게 되는 것이다(본문이 기도를 씨름으로 표현한 것도 기도의 간절함을 강조). 끈질김은 성경이 강조하는 기도의 중요한 자세다(눅18:1~8). 기도에 대한 성경구절들을 보면 공통점이 있는데, 모두가 ‘현재 명령형’으로 되어 있다. 현재형은 기도의 ‘계속성’과 ‘반복성’을 강조한 것이고, 명령형은 반드시 해야만 하는 ‘필연성’을 강조한 것이다. 어떤 경우에도 포기하지 말고 끈질기게 계속해서 기도해야 한다는 뜻이다. 유명한 기도의 사람 바운즈(E. M. Bounds)는 끈질긴 기도에 대하여 이렇게 말하고 있다.

 

끈질긴 기도는 하나님을 향한 영혼의 강력함 움직임이다. 그것은 하늘나라에 있는 은혜의 보좌를 향해 영혼의 가장 심오한 힘이 분발하는 것이다. 그것은 계속 붙잡고, 계속 밀고 나가며, 계속 기다리는 능력이다. 그 안에는 끊임없는 갈망과 조용한 인내와 붙잡고 늘어지는 힘이 모두 포함되어 있다. 그것은 영혼의 열정이다. 그것은 약간 필요한 것이 아니라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다.

 

끈질긴 기도는 영혼의 열정이다. 간절함이다. 열정이 없이는 이런 기도가 불가능하다. 본문에서 야곱이 보여준 가장 중요한 기도의 자세는 이 ‘끈질김’이다. 야곱은 ‘허벅지 관절이 어긋나도’(25), ‘날이 새도록’(26上), ‘축복할 때까지’(26下) 천사를 붙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본문에서 ‘야곱’(야코보/‘붙잡는 자’)과 ‘얍복’(야보크/‘텅 빈’, ‘비움’), 그리고 ‘씨름’(야바크/‘격투’)이란 단어들의 히브리어 발음이 비슷하다. 이런 언어적 유희를 통해 기도의 성격을 보여주고 있다. 기도는 모두 비워낸 텅 빈 마음으로(야보크) 격투를 하듯(야바크) 끈질기게 하나님을 붙잡는 것(야코보)이다. 이것이 곧 야곱의 기도였다. 이와 같은 야곱의 끈질김에 하나님도 당하지 못했다(25). 지난 설교에서 말씀드렸지만 어떻게 사람이 하나님을 이길 수가 있겠는가? 여기서 하나님이 이기지 못했다는 것은 하나님의 복에 대한 야곱의 사모함과 간절함, 끈질김을 강조한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주님을 감동시키는 비결이다. 주님은 깊은 신뢰와 믿음을 가지고 끝까지 끈질기게 기도하는 사람을 기뻐하시기 때문이다. 성경이 야곱을 ‘이쉬 탐’(경건한 사람, 믿음의 사람)이라고 한 것도 이 때문이다. 야곱은 문제 많은 인생을 살고 있는 우리에게 좋은 본보기다. 문제로부터 도망치기보다 야곱처럼 문제를 주님의 초대장으로 생각하고, 그 문제를 주님 앞에 들고 나아가 엎드릴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응답을 받을 때까지 끈질기게 기도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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