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대로 된 사람, ‘요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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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양식 댓글 0건 조회 15,202회 작성일 13-04-28 13:01본문
꿈대로 된 사람, ‘요셉’
창41:37~45
2013. 4/28. 08:00, 11:00
꿈이 사람을 이끈다.
지금은 끝났지만 모방송국에서 〈남자의 자격〉이란 프로그램을 방영했다. 여기서 만 52세 이상 남녀로 청춘합창단을 모집했는데, 지원자가 무려 3천 명이나 몰려와 오디션을 거쳐 단원을 선발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여기에 도전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나이가 많은 어르신들이었다. 심지어 91세나 된 할머니도 이 합창단에 지원을 했고, 지원하게 된 사연도 다양했다. 자식을 먼저 보낸 부부, 암으로 투병 중인 사람, 젊을 때 꼭 해보고 싶은 일이었으나 먹고 살기 바빠서 못했다며 지금이라도 해보고 싶어서 도전한다는 등등. 이렇게 삶에 무게를 안고 노래하기 위해 도전한 사람들의 사연 그 자체가 감동이었다. 무엇이 이들을 이와 같이 아름다운 도전을 하게 했을까? 그것은 ‘꿈’이다. 꿈이 그들을 여기까지 이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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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전(꿈)은 비천한 사람도 비상한 사람으로 만든다. ‘비전이 없는 끝’(end without vision)을 보면 실패하지만, ‘끝이 없는 비전’(vision without end)을 보면 성공한다. 힘들 때 꿈이 없는 사람은 말한다. ‘이제 끝장이다!’ 반면에 꿈이 있는 사람은 ‘끝장을 보자!’고 말한다. 그렇다. 꿈이 끝나지 않으면 인생도 끝나지 않는 것이다. 다들 끝장이라고 좌절해도 끝장을 보리라 팔을 걷어붙이고 의지를 불태우게 되는 것이다. 꿈 안에서는 절망이 소망되고, 역경이 역사가 된다. 꿈은 삶의 발전소이다. 그래서 꿈이 사람을 이끌고, 꿈을 꾸는 그 사람을 통하여 세상이 바뀐다. 본문은 꿈의 사람 요셉에게 그 꿈이 성취된 장면이다. 요셉이 18살의 나이에 형들에 의해 노예로 팔려 이집트 왕 바로 앞에 서기까지 걸린 시간이 13년이다. 그에게 이 13년의 세월은 빛 한 점 들지 않는 어두운 터널과 같은 시간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모진 세월을 견딜 수 있었던 것은 그에게 주신 하나님의 꿈 때문이다(37:). 그 꿈이 도단에 있는 어느 물 없는 구덩이에서, 노예살이 하던 보디발의 집에서, 이집트 궁궐 시위대의 감옥에서 그를 지켜준 것이고, 급기야 이집트 총리 자리까지 오르게 한 것이다. 이와 같은 요셉의 생애는 꿈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새삼 생각하게 한다.
꿈의 실현을 위한 대가
초등학교시절 반에서 축구선수로 뛴 적이 있다. 경기도중 내가 공을 잡으니까 상대편 선수들이 공을 빼앗으려고 달려들었다. 그래서 몇 번 심하게 넘어지고, 공도 빼앗기고, 친구들의 원성까지 샀다. 그래서 이래선 안 되겠다 싶어 나름 수를 썼다. 공이 오면 속히 다른 사람에게 전달했고, 나중에는 아예 공이 오지 않을 만한 곳만 골라 다녔다. 그러다보니 상대편이 달려드는 일도, 공을 빼앗길 일도, 책임질 일도 없었다. 결국 우리 편은 열 명이 뛰는 팀이 되었고, 나는 아무 소용없는 사람이 되었다. 그 다음부터 나는 더 이상 선수로 뛰지 못했다. 열심히 뛰는 사람에겐 많은 시련이 닥친다. 상대편에게 태클을 당해 넘어지거나 다치기도 하고, 공을 빼앗기기도 하고, 그래서 같은 편 사람들에게 비난과 원성을 듣기도 한다. 마찬가지로 꿈을 실현하기 위해선 많은 대가를 치러야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가 꾼 꿈은 망상이 되고, 그는 망상에 사로잡힌 쓸모없는 사람이 될 뿐이다.
잘 알고 있는 대로 요셉은 어려서 아주 의미심장한 꿈을 두 번이나 꿨다. 한 번은 열 한 개의 곡식 단이 요셉의 곡식 단을 둘러서서 절을 하는 꿈이었고, 또 한 번은 하늘의 해와 달, 그리고 열 한 개의 별들이 요셉의 별을 보고 절을 하는 꿈이었다. 그 꿈들은 요셉이 부모형제들 중에서 탁월하게 되리라는 뜻이고, 두 번이나 반복되었다는 것은 반드시 실현되리라는 뜻이다. 흔히 사람들은 꿈을 잠재의식의 표현이라고 한다. 하지만 요셉의 꿈은 자기가 꾼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다. 하나님께서 요셉을 통하여 앞으로 이루실 일들을 보여주신 것이다. 그래서 ‘계시적’ 꿈이라고 한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사명이고 비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그 꿈이 실현되기까지 요셉은 참혹한 ‘대가’를 치렀다. ①시기와 질투에 사로잡힌 그의 형제들에 의해 노예로 팔려가게 되었고. ②보디발 아내의 유혹을 거절하자 감옥에 갇히게 되었다. 노예에다 죄수라는 최악의 상황에 직면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③감옥에서 2년이란 긴 세월동안 누구도 기억해 주지 않는 완전히 잊혀진 존재가 되고 말았다. 형제들과 주인에게 버림받은 노예를 누가 기억하겠는가? 이 모두가 요셉이 자신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치러야했던 대가들이다. 이런 그가 마치 무덤을 열고 부활하신 주님처럼 감옥에서 나와 이집트의 총리로 우뚝 서게 된 것이다. 모든 것이 꿈대로 실현된 것이다. 본문이 바로 그 장면이다.
꿈이 있는 사람은 시련을 피해갈 수 없다.
꿈이 있는 사람은 시련을 피해갈 수 없다. 하나님이 주신 꿈은 현실과 충돌하기 때문이다. 세상은 그 꿈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래서 꿈을 무시하고, 시기하고, 짓밟고, 조롱한다. 그것을 찢어버리고, 무너뜨리려고 한다. 그래서 꿈이 있는 사람에게 시련이 닥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꿈꾸는 자에게는 포기하지 않는 끈기가 필요하다. 어떤 경우에도 흔들리지 않는 신뢰, 포기하지 않는 믿음이 필요하다.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않으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갈6:9)고 했다. 꿈의 성취는 내 시간표가 아니라 하나님의 시간표에 의해 이뤄진다. 하나님의 때가 되어야 이뤄지는 것이다. 요셉은 하나님이 주신 꿈이 이루기까지 13년의 시간이 걸렸다. 요셉이 치러야 했던 13년 동안의 이 시련은 꿈을 실현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꿈을 실현하기에 합당한 사람으로 만들기 위한 하나님의 섭리였다. 형제들의 시기와 질투라는 시련을 통해 아버지와 아버지의 집을 떠나서 그의 꿈을 실현할 장소 이집트로 가게 되었고, 노예살이와 감옥살이라는 시련을 통하여 꿈을 해석하는 것은 물론, (꿈을 꾼 자신도 기억하지 못하는)다른 사람의 꿈까지 알아보는 예지력, 미래를 내다보고 그것을 대비할 수 있는 영적 통찰력과 지혜를 갖게 되었다. 그래서 바로가 요셉에 대하여 “이와 같이 하나님의 영에 감동된 사람을 우리가 어찌 찾을 수 있으리요.”(38)하며 그 자리에서 그를 총리로 임명하였고, 이런 처사에 누구도 반대하는 사람이 없었다. 이는 그가 누구도 반대할 수 없을 만큼 탁월한 존재였음을 증명해 준다. 시련이 그를 이렇게 탁월한 존재로 만들어 멋지게 그의 꿈을 실현시킨 것이다. 이와 비슷한 말을 맹자(孟子)도 했다.
天將降大任於是人也(천장강대임어시인야)신대
必先苦其心志(필선고기심지)하며
勞其筋骨(노기근골)하며
餓其體膚(아기체부)하며
空乏其身行(공핍기신행)하여
行拂亂其所爲(행불란기소위)하나니
所以動心忍性(소이동심인성)하여
曾益其所不能(증익기소불능)이니라.
하늘이 장차 큰 일을 맡기려하는 사람에게는
반드시 먼저 그의 마음과 뜻을 고통스럽게 하고,
힘줄과 뼈를 지치게 하고,
그 육체를 굶주리게 하고,
그 살림을 궁핍하게 만들어,
그 행동을 실패하게 하여 하고자 하는 일을 흔들고 어지럽게 하나니
이로써 마음을 분발하고 성질을 참을성 있게 하여
이제껏 하지 못했던 일을 더 많이 할 수 있게 해주기 위함이다.
꿈꾸는 인생에서 꿈을 실현하는 인생으로
요셉의 생애를 한 마디로 표현하면 설교 제목처럼 ‘꿈대로 된 인생’이라 할 수 있다. 요셉처럼 자신의 꿈을 실현하는 것 결코 흔치 않는 일이다. 꿈은 누구든지 꿀 수 있어도 그것을 성취하는 과정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꿈을 꾸는 것은 무료지만 꿈을 실현하는 여정은 유료다.’는 말이 있다. 꿈을 실현하기 위해선 대가를 치러야한다는 뜻이다. 대가를 치루지 않고 실현할 수 있는 꿈은 어디에도 없다. 물론 이는 꿈뿐만 아니라 삶의 모든 것이 성취의 대가를 요구한다. 노력 없이 저절로 되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순자(荀子)가 말했다. ‘길이 아무리 가까워도 가지 아니하면 이르지 못하고, 일이 아무리 작아도 하지 아니하면 이루지 못한다. 그 사람됨이 놀기 좋아하며 게으르면 남보다 뛰어날 수 없다.’ 아무리 사소한 것도 대가를 지불해야 얻을 수 있다는 뜻이다. 성취를 위해서는 꿈과 아울러 그 꿈을 이루기 위한 투자(대가)가 꼭 있어야 한다. 사실 꿈을 꾸는 사람은 많아도 그 꿈을 실현한 사람이 적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것은 꿈의 실현을 위한 대가를 치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셉은 꿈꾸는 인생에서 꿈을 실현하는 인생이 되었다.
중국 전설에 몸은 곰, 코는 코끼리, 눈은 코뿔소, 꼬리는 소, 발은 범과 비슷한 ‘맥’(貘)이라는 동물이 있다. 이 동물은 꿈을 먹고 산다고 한다. 특히 사람의 악몽을 먹고 산다. 사람이 바로 이 맥과 같다. 꿈을 먹고 사는 유일한 존재가 사람이기 때문이다. 산다는 것은 곧 꿈을 갖는 것이다(生卽夢). 인간은 꿈을 상실했을 때 그 존재의 이유를 상실하게 된다. 꿈이 없는 것은 곧 정신적인 죽음을 뜻한다. 꿈을 가지고 꿈을 이루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것은 인간만이 해낼 수 있는 위대한 능력이다. 주님은 우리 모두에게 꿈을 주셨다. 주님은 우리가 그 꿈을 발견하기를 원하시고, 그 꿈을 실현하기 위해 기꺼이 대가를 치루기를 기대하신다. 오늘 본문에 나온 요셉의 생애가 우리에게 주는 커다란 울림이 바로 이것이다. 주님의 주신 꿈을 위해 대가를 지불하라! 그러면 네 인생이 그 꿈대로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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