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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금기둥이 된 사람, ‘롯의 아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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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양식 댓글 0건 조회 22,181회 작성일 13-06-16 1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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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금기둥이 된 사람, ‘롯의 아내’

창19:23~29

2013. 6/16. 08:00, 11:00

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보지 않는다.

옛날 전북 옥구군 미면(米面) 미제지(米堤池, 현재 군산의 은파유원지)에 큰 부자가 살고 있었는데, 욕심이 많고 포악한 사람이었다. 하루는 스님이 시주를 부탁하였는데, 그는 시주를 쇠똥으로 주었다. 때마침 그 광경을 본 그의 부인이 몰래 스님을 불러 쌀을 주면서 남편의 잘못을 용서해 달라고 빌었다. 스님은 그 부인에게 부처님의 심부름으로 남편을 벌주기 위해 왔다면서 내일 아침 집을 나와 뒷산으로 달아나되 무슨 소리가 나도 뒤돌아보지 말라고 당부하였다. 이튿날 부인은 어린아이를 업고 뒷산으로 올라가던 중에 천지가 진동하는 소리에 놀라 스님의 당부를 잊고 뒤를 보았더니 있던 집은 간 곳없고 물만 고여 있었다. 여인이 너무 놀라 비명을 지르는 순간 아이와 함께 돌로 변하고 말았다. 이후로 큰 부잣집은 큰 연못이 되었다고 전한다. 미제지에 대한 유래다.

 

이 설화는 본문에 나온 롯의 아내가 천사의 지시를 어기고 뒤를 보았다가 소금기둥이 되었다는 이야기와 비슷하다. 둘 다 앞만 보고 달려도 살까 말까한 위급한 상황에서 뒤를 보았다가 큰 변을 당했다는 이야기다. 류시화 시인의 시에 〈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보지 않는다.〉라는 시가 있다. 이 시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다시는 묻지 말자.

내 마음을 지나 손짓하며 사라진 그것들을,

저 세월들을,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것들을,

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보는 법이 없다.

고개를 꺾고 뒤돌아보는 새는

이미 죽은 새다.

 

뒤를 돌아보는 것은 스스로 하는 일에 확신이 없거나 집중하지 못할 때, 현재의 일이 잘 풀리지 않거나 만족하지 못할 때 일어나는 현상이다. 좋은 일이든 좋지 않은 일이든 뒤를 돌아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이것이 습관적으로 굳어버리면 영적 성장에 치명적인 어려움을 가져온다. 그래서 성경에는 뒤돌아보지 말라는 경고가 많다. 성경에서 뒤돌아보지 말라는 대부분 배교(背敎)하지 말라는 경고인데, 어떻든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뒤돌아보는 행위는 경계해야만 한다. 그것은 류시화의 시구처럼 이미 죽은 것과 같다. 뒤돌아보다가 소금기둥이 된 롯의 아내는 바로 이런 점을 우리에게 경고하고 있다.

 

롯의 처를 기억하라!

 성경에는 롯의 아내에 대한 정보가 거의 없다. 그녀의 이름도, 가족도, 언제 롯과 결혼을 했는지도 아무런 정보가 없다. 단지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하던 날, 그곳을 탈출할 때 뒤를 돌아보았다가 소금기둥이 되었다는 이야기가 전부다. 소수이긴 하지만 그녀가 소돔출신 가나안 사람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창14:16). 롯이 아브라함과 헤어진 다음 소돔지역으로 이주하여(창13:), 그곳에서 그녀를 만나 결혼했다는 것이다. 확실한 것은 아니지만 충분히 개연성이 있는 주장이다.

 

소돔과 고모라가 죄악 때문에 패역하여 하나님께서 그 도시를 엎으시려고 할 때, “아브라함을 생각하여”(29) 롯과 그의 가족에게 구원의 은혜를 베푸셨다. 그래서 하나님의 천사가 직접 롯을 찾아가 그들의 도피를 도왔으나 그의 두 사위는 하나님의 말씀을 우습게 여겨 따르지 않았고(14), 그의 아내도 따라 나오다가 뒤돌아보지 말라는 천사의 지시를 무시하고 뒤돌아보았다가 소금기둥이 되고 말았다(26). 단지 롯과 그의 두 딸만 겨우 구원을 받았다. 여기서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요11:40)는 말씀을 절감하게 된다. 천사의 지시를 무시하고 뒤돌아보았다가 소금기둥이 된 롯의 아내는 우리에게 중요한 교훈을 준다.

 

첫째, 롯의 아내는 세상에 대한 미련의 치명적인 위험성을 교훈한다.

지금도 성지순례를 가면 사해동쪽(요르단) 아라드(Arad) 지역 소금산에 여인 모양의 돌기둥(돌기둥이 아니라 소금기둥)이 우뚝 솟아 소돔과 고모라 지역을 바라보고 서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사람들은 그것을 본문에 나온 소금기둥이 된 롯의 아내라고 한다. 이는 세속적인 것에 대한 미련을 끊지 못하고 뒤를 돌아보는 것이 얼마나 치명적인가를 웅변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롯의 아내를 비유로 종말에 대한 교훈을 주셨다.

 

인자가 나타나는 날에도 이러하리라. 그 날에 만일 사람이 지붕 위에 있고 그의 세간이 집 안에 있으면 그것을 가지러 내려가지 말 것이요, 밭에 있는 자도 그와 같이 뒤로 돌이키지 말 것이니라. 롯의 처를 기억하라.”(눅17:30~32).

 

세상 것에 대한 미련 때문에 지체하고 뒤를 돌아보아 소금기둥이 된 롯의 아내처럼 이 세상 것에 절대로 미련을 두지 말라는 것이다. 신앙생활이란 세속적인 것을 끊고 주님을 따르는 것이다. 제자들처럼 주님께서 부르셨을 때 즉시 모든 것을 버려두고 주님을 좇아가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할 바다. 세상에 대한 미련은 치명적이다. 이집트에서 나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두 주일이면 갈 수 있는 거리를 40년이나 걸렸던 이유가 바로 이것 때문이다. 떠나온 이집트 생활에 대한 미련 때문이었다. 그래서 성경은 뒤돌아보지 말고 앞만 보고 전진할 것을 신신당부한다. ‘과거에 집착하지 마라. 뒤를 돌아보지 마라. 떠나온 세상, 떠나온 놀이와 문화, 떠나온 습관, 떠나온 모든 것들에 대한 미련을 버려라. 대신 위엣 것을 생각하고, 위엣 것을 찾으라. 오직 주님께만 집중하라.’고 말씀한다.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치 아니하니라.”(눅9:62).

 

둘째, 롯의 아내는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지 못함의 위험성을 교훈한다.

2~3년 전에 신문에 두 가문이 소개되었다. 하나는 미국 35대 대통령 존 F. 케네디의 가문이고, 다른 하나는 우리나라 최초 선교사 중 한 분인 언더우드 가문이다. 케네디 가문은 한마디로 피살, 각종사고, 스캔들로 얼룩졌다. 케네디 전 대통령은 9남매였는데, 그 중 2명이 암살당하고, 2명이 비행기 사고로 죽고, 1명은 정상적인 생활을 하지 못하고 있다. 그 비운은 후대에도 계속 이어졌다. 반면 언더우드 가문은 경건한 믿음의 가문으로 생명어린 일들에 헌신했다. 언더우드 선교사는 연세대학교에 있는 동상에 새겨진 글귀처럼 진정 ‘하나님의 사자’로 우리나라에 와서 ‘그리스도의 제자’로 살다가 ‘한국인의 친구’가 된 사람이다. 그리고 그의 후손들도 같은 길을 걷고 있다.

 

세속적으로 탁월한 케네디 가문의 비참한 몰락과 평범하지만 경건한 언더우드 가문의 영광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그것은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그 말씀에 순종하는 경건한 신앙에 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그 말씀을 우습게 여기는 사람이나 가문은 결코 형통할 수가 없다. 특히 본문에서 롯의 두 사위와 그의 아내가 좋은 본보기다. 롯이 사위들에게 하나님의 심판으로 소돔과 고모라 성이 멸망하리라고 말했으나 그들은 그 말을 농담으로 여겼다(14). 롯의 아내 역시 뒤를 돌아보지 말라는 천사의 지시를 어기고 뒤를 돌아보았다. 결국 모두가 비참한 최후를 경험하였다. 하나님의 말씀을 우습게 여기고 무시한 것은 곧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기에 하나님의 말씀 또한 가볍게 여기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곧 진노와 파멸로 이어진다. 이것이 롯의 아내가 주는 또 하나의 교훈이다.

 

하나님께 마음을 맞춰라!

어떤 분은 소금기둥은 비극의 상징이 아니라 휴머니즘의 극치이고, 인간애의 최고봉이라고 했다. 그리고 롯의 아내가 뒤를 돌아본 것은 ‘생명에 대한 애틋함과 애석함 때문이다.’라고 했다. 즉 두고 온 모든 것들(아버지와 어머니를 비롯한 혈육들과 정들었던 친구들, 아끼고 사랑했던 개와 고양이, 살아있는 생명들, 뜨락에 피어난 라일락, 돌 틈 사이에 난 민들레와 봉숭아, 남새밭에 심어놓은 채소들.......)의 생사가 궁금해서 돌아보았다는 것이다. 생명을 사랑하는 애틋한 마음이 그녀의 발목을 잡아 뒤를 돌아보게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롯의 아내는 죽어가는 모든 것들을 사랑하고 불쌍히 여기라는 상징으로 소금기둥이 되어 남아있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생명을 사랑하는 애틋한 마음 더 없이 소중하다. 아파하는 사람과 함께 아파하는 것 참으로 아름다운 모습이다. 그런데 이 글을 읽으며 한 가지 의문이 생겼다. 결정적인 순간에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뒤돌아볼 만큼 그들과 그 모든 것들에 대한 애틋한 마음이 있었다면 이런 불행이 닥치기까지 왜 저들의 타락을 방조했을까? 사실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한 것은 의인 10명이 없었기 때문이고, 그곳에서 롯의 가족이 구원을 받은 것도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생각하여 은혜를 베풀어주셨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롯의 가족이 소돔과 고모라의 구원을 위해 아무런 노력이나 기여가 없었다는 이야기다. 그러니 롯의 아내를 멋진 휴머니스트로 그린 것은 허구적 상상력에 지나지 않고, 도리어 휴머니즘의 한계를 보여줄 뿐이다. 휴머니즘은 자신도 다른 사람도, 세상도 구원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반면 하나님께서 버리신 것에 관심을 두는 것이 큰 불행을 자초한다는 사실을 교훈으로 얻을 수 있다. 하나님은 당신이 버리신 것들에 마음 두는 것을 싫어하신다(삼상16:1).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들을 기뻐하고, 좋아하시는 것들을 좋아하고, 사랑하시는 것들을 사랑하기를 원하신다. 또한 하나님이 싫어하신 것들을 싫어하고, 미워하시는 것들을 미워하고, 하나님이 버리신 것들에 관심을 두지 않기를 원하신다. 결국 이 일에 대한 실패가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세속적인 것들에 대한 미련,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불순종으로 이어지게 된다. 이것이 롯의 아내가 실패한 결정적인 원인이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을 기뻐하고, 좋아하시는 것을 좋아하고, 사랑하시는 것을 사랑하는 마음이다. 이것이 세속적인 것들에 대한 미련을 끊고, 하나님의 말씀에 즐겁게 순종하는 길이다. 주님의 말씀을 다시 한 번 기억하자! “롯의 처를 기억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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