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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양하는 생활Ⅰ(06-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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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양식 댓글 1건 조회 15,538회 작성일 06-11-05 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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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양하는 생활Ⅰ
히13:15

수년 전 미국의 프란시스 로셔 박사와 고든 쇼우 박사가 이색적인 연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6개월간 모차르트 곡으로 피아노 레슨을 받은 미취학 아동들이 그렇지 않은 아동들에 비해 뛰어난 학습 능력을 발휘했다고 합니다. 특히 수학과 과학에 두각을 나타냈다는 것입니다. 좀더 확실한 근거를 위해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연구해 봤는데, 역시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고 합니다. 학생들을 두 그룹으로 나눈 후 한 쪽엔 10분간 모차르트 곡을 들려주고, 다른 한쪽은 들려주지 않고 수학과 과학 시험을 보게 했습니다. 그랬더니 음악을 들은 쪽 학생들이 반대쪽 학생들에 비해 평균 30% 높은 점수를 얻었다는 것입니다. 또 다른 음악은 어떨까 비슷한 실험을 했습니다. 락 음악(rock music) 등 시끄러운 음악을 들려주고 시험을 치렀더니 평소보다 낮은 점수가 나왔다고 합니다. 그래서 한 때 순천에서도 모차르트 음악을 들으면 똑똑해진다며 모차르트 음악학원이 유행하기도 했습니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식물들도 음악에 대해 반응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미국의 도로시 리틸락 박사는 하루 3시간 락 음악(rock music)을 식물에게 들려주었더니 애호박에 주름이 생기고, 토마토가 납작해지고, 옥수수가 구부러졌다고 합니다. 반면에 왈츠나 세레나데를 들려준 식물은 싱싱하게 잘 자라고 열매도 실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린 결론은 좋은 클래식 음악을 듣는 게 여러 면에서 유익하다는 사실입니다. 두뇌 활성화, 학습 능력과 생산성의 향상 등의 효과가 있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사람들의 장애나 질병을 치료해 준다고도 합니다. 그래서 ‘음악 치료법’도 있습니다. 누군가 음악을 가리켜 ‘영적인 언어’라고 했는데, 이 말처럼 음악은 영혼뿐 아니라 육체에까지 영향을 끼치는 것입니다. 아니 식물에게까지 영향을 미치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좋은 음악을 선별하는 것이 아주 중요합니다.

감사하게도 우리에게는 가장 좋은 음악이 있습니다. 그것은 ‘찬송’입니다. 이 세상에서 찬송처럼 경건하고 은혜롭고 유익한 것은 없습니다. 하나님을 높이고 우리의 신앙을 표현하는 찬송. 가장 좋은 음악인 것입니다. 찬송은 신앙생활에 필수적인 것으로 개인적으로나 교회 공동체적으로나 너무 중요한 요소입니다. 여러분, 한번 상상해 보십시오. 찬송이 없는 신앙생활, 찬송이 없는 예배. 생각만 해도 숨이 막힙니다. 이처럼 찬송은 신앙생활에 있어 너무 중요합니다. 찬송 생활을 잘 하면 신앙이 풍성해지고, 반면에 찬송 생활이 빈약해지면 신앙에 문제가 생깁니다. 그러므로 오늘 말씀을 통해 다시 한번 찬송의 중요성을 재인식하고, 올바른 찬송 생활로 승리하는 신앙 인생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그렇다면 찬송이란 무엇입니까?
찬송은 종체적인 우리 신앙의 표현입니다. 우리 마음속의 신앙에 대한 고백이 찬송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찬송을 좋아하십니다. 그리고 찬송을 통해 영광을 받으십니다. 찬송은 피조물인 인간으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으로 구원받은 성도로서 행할 특권이요, 동시에 의무입니다. 우리는 찬송을 통해 신앙을 총체적으로 다양한 면에서 표현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 하나하나를 기뻐하시고 응답해 주십니다.

1. 경배와 감사입니다.
찬송은 기본적으로 하나님을 높이고 경배 드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를 구원하신 은혜를 포함하여 베푸신 모든 은혜에 감사를 표현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은 찬송을 가리켜 ‘찬미의 제사’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제사(신약의 개념으론 예배)의 핵심은 경배와 감사입니다. 그런데 이 찬양이 제사라 함은 찬양의 본질 또한 경배와 감사라는 뜻입니다. 찬송은 우리의 입술로 드리는 제사입니다. 하나님이 이 찬송을 얼마나 기뻐 받으시는지 다윗이 이렇게 표현합니다. “내가 노래로 하나님의 이름을 찬송하며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광대하시다 하리니 이것이 소 곧 뿔과 굽이 있는 황소를 드림보다 여호와를 더욱 기쁘시게 함이 될 것이라”(시69:30~31). 예배에 있어서 참으로 중요한 것이 무엇이었는가를 잘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그것은 바로 찬송입니다.

제사에 있어서 핵심은 제물입니다. 제물이 없는 제사는 제사가 아닙니다. 그런데 다윗은 제물보다 찬송이 더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제물보다도 우리의 찬송을 기뻐하신다는 것입니다. 비록 다윗이 구약시대 사람이지만 그는 예배의 본질을 깨달은 것입니다. 찬양의 중요성을 일찍이 깨달은 것입니다. 다윗은 찬양에 무척 관심이 많았던 사람입니다. 많은 찬송들을 작곡 작사하기도 하고 본인이 직접 연주도 했습니다. 그래서 다윗시대 성전예배를 보면 288명의 웅장한 찬양대가 있었습니다(대상25:7). 찬양대의 영광스럽고 아름다운 찬양으로 하나님께 찬미의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러므로 찬송은 예배의 본질에 나아가는 비결입니다. 우리 모두 찬양으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를 드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2. 신앙 고백입니다.
본문은 찬송을 그 이름을 증거하는 ‘입술의 열매’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입술의 열매란 곧 신앙고백을 뜻합니다. 찬송은 우리의 신앙을 시와 멜로디로 고백하는 것입니다. 사랑이 표현되지 전까지 참 사랑이 아닌 것처럼,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라”(롬10:10)고 말씀합니다. 우리의 구원은 내적인 믿음과 외적인 고백으로 되어 있습니다. 내적인 믿음은 마음으로 믿음이고,  외적인 고백은 입으로 시인입니다. 이 두 가지가 조화를 이뤄야 건강한 믿음이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고백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기 때문입니다.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시인할 것이요.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부인하리라”(마10:32~33)고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반면에 믿음이 없는 고백은 거짓된 고백입니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게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마7:21).

물론 여러 가지 방법으로 우리의 신앙을 표현할 수 있습니다. 그 중 가장 중요한 방법이 찬송입니다. 찬송은 곧 신자의 신앙고백입니다. 모든 찬양은 신앙고백을 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참 신앙인은 찬송할 수밖에 없습니다. 연애를 하는 사람이 자기도 모르게 콧노래를 흥얼거리듯, 참 신앙인은 저절로 찬송하게 됩니다. 때로는 구원의 은총이 감격스러워 눈물로 찬송하기도 합니다. 마음이 답답하고 고통스러울 때 주님을 소망하면서 찬송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만일 찬송이 잘 안된다! 자신의 신앙을 다시 점검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내 입술에서 찬양의 향기가 그치게 되었다는 것은 내 신앙에 문제가 생겼다는 표시입니다. 반면에 나도 모르게 입술에서 찬양이 흘러나오고 있다! 성령이 충만한 증거입니다. 심지어 어떤 목사님은 찬송을 구원받은 증거라고도 하였습니다. 틀린 말이 아닙니다. 찬송은 구원받은 사람들이 부르는 구원의 노래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신앙 회복을 위해 의도적으로 찬양을 듣고, 찬양을 드려야 합니다. 그러다보면 은혜가 임하고 신앙이 회복됩니다.

3. 하나님의 은혜 선포입니다.
찬송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행하신 일과 그 은혜를 증거하고 선포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본문에서 ‘그 이름을 증거하는’ 입술의 열매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그 이름이란 예수님의 이름, 하나님의 이름을 뜻합니다. 이 이름이란 그 사람, 그 사람의 인격, 혹은 그 사람의 삶을 의미합니다. 여기서 그 이름은 증거한다는 것은 주님과 주님의 인격과 삶을 증거하는 것을 뜻합니다. 이런 점에서 찬양은 예수님의 생애와 사역을 가장 효과적으로 증거하는 방법입니다. 더 나아가서 우리에게 행하신 일과 그 은혜를 증거하고 선포하는 방법입니다. 일종의 곡조를 붙인 간증입니다.

종종 찬송가와 복음성가를 구분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저는 이를 무의미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만 이를 굳이 구분하자면 찬송은 그 이름을 증거하는 것이고, 복음성가는 주님께서 내게 행하신 일과 그 은혜를 증거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하나님이 들으시는 것이지만 인간이 들으면서 동일한 은혜를 나누게 되는 것입니다. “여호와께 감사하며 그 이름을 불러 아뢰며 그 행사를 만민 중에 알게 할지어다.”(시105:1). 주변에서 찬양을 통해 은혜를 경험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찬양 자체가 강력한 메시지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찬양 자체가 예수님을 증거하는 방법입니다. 열심히 찬양하는 생활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입술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4. 하나님께 올리는 간구입니다.
흔히 찬송을 가리켜 ‘곡조 있는 기도’라고 부릅니다. 하나님을 높이며 자신의 형편과 처지를 아뢰며 기도하는 내용을 담는 경우가 많습니다. 다윗의 시편을 보면 상당수가 기도시인 것을 봐도 잘 알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찬양이 기도고, 기도가 찬양인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기도를 하다가 기도가 잘 되지 않으면 찬양을 합니다. 항상 기도하라!는 말씀에 많은 신자들이 부담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그런데 항상 기도하는 비결이 있습니다. 그것은 찬양입니다. 찬양은 어디서든지 어느 때든지 할 수 있고, 들을 수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설거지를 하고 청소를 하면서도, 길을 가거나 운전을 하면서도 찬송을 부를 수가 있습니다. 부르지 못할 경우엔 들을 수 있습니다. 이렇게 찬송을 부르고 듣는 것 자체가 기도인 것입니다. 열심히 찬양하는 것이 열심히 기도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는 찬송을 통해 하나님 앞에 우리 신앙을 종합적으로 표현합니다. 우리는 이런 사실을 명심하고 늘 찬송을 통해 우리 신앙의 세세한 부분까지 표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왜 찬송의 생활을 해야 합니까?
찬송은 우리의 존재 이유이고 목적입니다. 이사야43:21절을 보면,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이 땅에 존재케 하신 이유와 목적이 주님을 찬송하게 하기 위함이란 것입니다. 에베소에도 비슷한 말씀이 나옵니다. “이는 그리스도 안에서 전부터 바라던 우리로 그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엡1:12). 그렇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찬송하며 섬기도록 부름받은 하나님의 자녀요, 하나님 나라의 백성입니다. 그래서 찬송해야 하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 찬송은 우리가 천국에 가서도 영원히 계속되는 일입니다. 이 땅에서의 모든 일들은 천국에 가면 다 그치게 됩니다. 믿음도, 소망도, 기도도 다 그치게 됩니다. 하지만 찬양은 계속됩니다. 때문에 우리가 이 땅에 살면서 열심히 찬양하는 생활은 장차 천국생활을 연습하는 것이요, 그 천국을 미리 경험하는 일인 것입니다.

우리가 정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원한다면 찬송하며 살아야 합니다. 찬송은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신 이유요, 목적이기도 하지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제사요, 입술의 열매입니다. 우리가 간절히 찬양하는 것이 간절히 예배하는 것이요, 부지런히 찬양하는 것이 부지런히 주님을 향한 나의 사랑을 고백하는 일입니다. 열심히 찬양하는 것이 열심히 주님을 증거하는 것이요, 열심히 찬양하는 것이 열심히 기도하는 것입니다.

댓글목록

김홍주님의 댓글

김홍주 작성일

가끔씩 와서 묵상하고 갑니다.
정말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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