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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숨을 건 중보자, ‘모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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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양식 댓글 0건 조회 16,918회 작성일 13-11-03 1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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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숨을 건 중보자, ‘모세’

출32:30~35

2013. 11/3. 08:00, 11:00

휴대폰과 기도

 휴대폰과 기도를 비교해 놓은 글이다. 휴대폰은 사람과 소통하는 도구이고, 기도는 하나님과 소통하는 도구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지만 동시에 많은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휴대폰은 매월 정기적으로 사용고지서가 날아오지만 기도에는 평생 어떤 고지서도 없다. 휴대폰은 연결되지 않아 통화 장애가 있는 곳이 있지만 기도는 어디에서든 통화 장애가 없다. 휴대폰은 분실과 도난이 종종 발생하지만 기도는 분실이나 도난의 염려가 없다. 휴대폰은 고장이 잦고 충전이 안되면 통화가 불가능하지만 기도는 고장과 분실의 염려도 없고 영구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 휴대폰은 통화시간이 길어질수록 물질적 손실이 발생하지만 기도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엄청난 혜택이 돌아오다.

 

내용이 다소 유치하긴 해도 기도의 중요성을 생각해 보도록 한 것 같다. 아무튼 우리에게 삶의 일부분이 된 휴대폰을 보면서 기도를 생각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래서 기도가 휴대폰처럼 우리 삶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우리는 휴대폰으로 통화는 물론이고, 사진도 찍고, 동영상도 찍고, 노래도 듣고, 영화도 보고, 게임도 하고, 정보도 검색하고, 여러 정보를 교환도 하고, 책도 읽고, 결재도 하고, 물건을 사고팔기도 하는 등 참으로 다양하게 활용하고 있다. 이렇게 휴대폰을 사용하듯 기도를 생활 속에 잘 활용했으면 좋겠다. 모세는 삶으로 기도의 중요성을 잘 보여준 사람이고, 또한 기도를 잘 활용한 사람이다. 오늘 본문도 이와 같은 내용이다.

 

목이 뻣뻣한 백성

시내산에서 장엄하게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에 언약이 맺어졌다. 하나님은 모세를 다시 시내산으로 부르셨다. 그것은 십계명을 돌에 직접 새겨주시고, 아울러 하나님께서 거하실 처소인 성막에 대한 규례(25:~31:)를 주시기 위해서다. 그래서 모세는 시내산 정상에서 사십일을 금식하며 하나님 앞에 머물게 되었다(24:18).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모세의 하산이 지연되자 백성들 사이에 동요가 생긴 것이다. 모세가 이미 죽었을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모세를 대신할 지도를 뽑자고 했다. 그래서 뽑힌 사람이 그동안 모세의 입(대변인) 역할을 했던 아론이다. 아론은 백성들과 함께 그들이 이집트에서 항상 보았었던 이집트 사람들이 섬기는 송아지를 금으로 만들고, 그것이 자신들을 이집트에서 구원하신 하나님이라고 선포했다. 그리고는 축제를 열었다. 언약을 맺은 지 불과 한 달 정도 지나서 일어난 일이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그들을 교만하고 강퍅한 백성이라고 규정하신 것이다(9). 아무튼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는 인색하고 게으르던 저들이 하나님을 떠난 악한 일에는 저토록 아낌없이 헌신을 하고 열심인 것이 그저 놀랄 뿐이다.

 

아론과 백성들의 이와 같은 행위는 며칠 전에 맺은 시내산 언약을 파기한 것을 넘어 하나님의 이름과 그의 역사를 도적질 한 것이다. 사실 언약을 파기한 것만으로도 죽음을 면할 수 없는 일이다. 히브리어로 언약을 베리트(ברית)라고 하는데, ‘자르다’, ‘쪼개다’, ‘파괴하다’는 뜻이다. 고대 사회에서 언약을 맺을 때 짐승을 둘로 쪼갠 다음 당사자들이 그 사이로 통과하므로 언약이 성립되었다. 이것은 어느 쪽이든 언약을 파괴할 경우, 제물처럼 그 몸을 쪼갠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것이다. 그러므로 언약의 파기는 곧 죽음을 뜻한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은 언약파기를 넘어 하나님의 이름과 그의 역사를 도적질까지 한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이렇게 진멸(殄滅)을 선언하신 것이다.

 

여호와께서 또 모세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 백성을 보니 목이 뻣뻣한 백성이라. 그런즉 내가 하는 대로 두라. 내가 그들에게 진노하여 그들을 진멸하고 너를 큰 나라가 되게 하리라.”(9,10).

 

나 좀 막아다오!

하나님께서 단단히 화가 나셨던 것이다. 그래서 모든 이스라엘을 다 죽이고, 모세를 통하여 새로운 나라를 세우시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론, ‘나 좀 막아 달라.’는 말씀이기도 하다. 아무리 악한 죄를 범한 사람이라도 그들이 망하는 것을 원치 않는 것이 하나님의 마음이다. 에스겔서에 진노를 막아줄 사람을 찾았으나 찾지 못해 안타까워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이 잘 나타나고 있다. “이 땅을 위하여 성을 쌓으며 성 무너진 데를 막아서서 나로 하여금 멸하지 못하게 할 사람을 내가 그 가운데서 찾지 못하였으므로 내가 내 분노를 그들 위에 쏟으며 내 진노의 불로 멸하여 그들 행위대로 그들 머리에 보응하였느니라.”(22:30,31). 그런데 본문에서 모세가 이런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차리고 하나님의 진노를 막아서서 백성을 위해 기도를 드린 것이다. 모세의 기도는 크게 세 가지다.

 

1.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뜻을 돌이키소서!(11,12).

모세는 먼저 하나님께 자기 백성들을 진멸하시겠다는 뜻을 돌이켜 달라고 기도했다. 그 이유는 백성들 때문이 아니다. 하나님 자신을 위해서였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였다. 만약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이 광야에서 다 죽이신다면 이집트 사람들이 하나님을 어떻게 생각하겠느냐는 것이다. 이집트에서 구출한 것이 결국은 광야에서 죽이려고 한 것이 아니냐? 혹시 하나님이 무능해서 자기 백성을 죽인 것이 아니냐? 등. 결국 하나님께서 저들에게 이렇게 놀림감이 되어 하나님의 영광에 누(漏)가 될 것이니 뜻을 돌이켜 달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영광에 초점을 두고 백성을 위해 기도한 것이다.

 

모든 일이 그렇지만 기도에 있어서도 초점이 중요하다. 물론 모세의 목적은 하나님의 뜻을 돌이켜 백성을 구원하는 것이지만 기도의 초점은 하나님의 영광이었다. 이것이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이는 중요한 동기가 되었다. 그러므로 모든 기도의 초점은 항상 하나님의 영광에 맞춰야 한다. 이런 기도가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

 

2. 언약의 말씀을 기억하소서!(13).

이어서 모세는 그의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야곱)에게 약속하신 말씀에 기초하여 기도를 드렸다. “내가 너희의 자손을 하늘의 별처럼 많게 하고 내가 허락한 이 온 땅을 너희 자손에게 주어 영원한 기업이 되게 하리라.” 이것이 하나님께서 조상들과 하신 언약의 말씀이다. 이 말씀을 기억하셔서 뜻을 돌이켜 달라고 했다. 만약 하나님께서 언약의 후손인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여 그들을 진멸하신다면 결과적으로 하나님 스스로도 이들 조상에게 한 약속을 깨뜨린 셈이 된다는 뜻이다. 더욱이 하나님이 스스로 자신을 걸고 맹세하셨으니 조상에게 하셨던 약속을 지켜야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모세는 언약의 말씀에 기초하여 기도를 드린 것이다.

 

기도에 있어서 또 하나 중요한 것이 기도의 내용인데, 그 내용이 ‘무엇에 기초하고 있느냐?’이다. 그 내용은 모세처럼 언약의 말씀에 기초해야 한다. 하나님은 언약에 신실하신 분이시다. 때문에 언약에 기초한 기도가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

 

3. 내 이름을 지워버리실지언정 그들을 용서하소서!(32).

그리고 마지막으로 자신의 이름을 기록된 하나님의 책에서 지워도 좋으니 백성들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기도했다. 물론 하나님의 책에 기록된 이름을 하나님은 결코 지우시지 않는다. 모세가 이 사실을 모르고 이렇게 말한 것도 아닐 것이다. 이는 자기를 희생해서라도 자기 백성을 구원하고 싶다는 간절한 소망의 표현이다. 하나님의 언약을 파기한 것도 모자라 하나님의 이름과 역사를 도적질한 사람들을 위해서 자신의 목숨을 건 것이다. 자신의 목숨을 걸만한 가치가 없는 사람들을 위해 이렇게 희생을 각오한 것이다. 이것은 기도의 자세(태도)에 대한 중요한 교훈이다. 기도에서 있어서 자세 또한 기도의 초점과 내용만큼 중요하다. 목숨을 건 간절함이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인다. 이같은 모세의 기도는 단순히 말뿐이 아니라 이미 행동으로 보여주었다.

 

앞부분에(15~20), 모세가 하나님께서 친히 돌에 새겨주신 십계명을 깨뜨린 장면이 나온다. 이것은 백성을 위해 목숨을 건 행위이다. 어떻게 하나님께서 주신 계명을 깨뜨릴 수 있단 말인가? 죽음을 각오하지 않고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상식적으로 생각해 보자!). 그런데 모세는 그렇게 했다.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백성들을 위해 이런 엄청난 일을 저지른 것이다. 모세가 이렇게 무모한 일을 저지른 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범죄에 대한 처벌의 근거를 없애기 위해서였다. ‘법이 없으면 죄도 없기 때문’(롬4:15)이다(죄형법정주의 원칙: ‘법률이 없으면 범죄도 없고, 법률이 없으면 형벌도 없다.’). 사실 이스라엘 백성이 지은 죄는 십계명 제1,2계명을 범한 것이었다. 모세가 그 십계명을 깨뜨림으로 처벌의 근거가 사라진 것이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이와 같은 모세의 행위를 묵인하셨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모세의 이 엄청난 불경을 묵인하신 것은 백성을 향한 그의 마음을 알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마음이 곧 하나님의 마음이었다. 하나님은 죄는 미워하시지만 죄인은 사랑하신다. 이처럼 백성을 사랑하는 충성스러운 모세의 기도에 대한 응답으로 하나님께서 뜻을 돌이켜 이스라엘을 용서하셨다.

 

한 사람의 기도가 민족의 운명을 바꾼다!

남미 과테말라에 알모롱가라는 인구 2만 명의 작은 도시가 있다. 하루가 멀다 하고 돌 세례를 퍼부었던 깡패들이 변화되어 지역을 섬기는 목사가 되었고, 도시 인구 90%가 복음화 되었으며, 4개의 감옥이 폐쇄되어 관청업무나 결혼 예식장으로 사용되고 있다. 과테말라 사람들은 이 알모롱가를 ‘교회의 도시’라는 부른다고 한다. 20년 전만해도 알모롱가는 폭력이 난무한 곳으로 4개의 감옥도 모자랐다. 그런데 지금은 깨끗하고 행복하고 풍성한 도시로 변화되었고, 빈곤도 완전히 사라졌다. 이 지역에 있던 36개의 술집들 중 33개가 문을 닫았고, 음주의 감소는 범죄율 감소로 이어졌다. 이렇게 된 배경에는 이 지역 출신 마리아노 목사의 목숨을 건 기도가 있었다. 그는 자신의 고향을 더 이상 가난하고 폭력이 난무한 위험한 도시로 남겨둘 수 없어 일주일에 3~4일씩 금식하며 기도하기 시작했고, 이 금식기도는 지금까지도 지속되고 있다. 계속되는 금식기도의 결과로 교회들은 눈에 띄게 성장했고, 수백 명의 사람들이 그와 함께 도시를 위해 기도하기 시작했다. 이 기도의 위력은 이 지역 농업용 토지들도 변화시켰다. 갑자기 비옥한 토질이 되면서 모든 농작물의 크기가 2~3배씩 커졌고, 맛도 더 좋아졌다. 수확량도 비교조사결과 영적 각성전보다 무려 1천배 이상으로 늘었다. 이런 변화에 대해 미국과 남미의 몇 나라에서 농업전문가들이 방문하여 조사했지만 특별한 원인을 발견할 수가 없다고만 보고했다.

 

본문이 주는 기막힌 교훈은 기도의 중요성이다. 한 사람의 간절한 기도가 민족의 운명을 바꾼다는 사실이다. 하나님의 진노로 진멸의 위기에 처한 이스라엘이 모세의 간절한 기도로 용서를 받았다. 마리아노 목사의 기도가 폭력이 난무한 가난한 도시를 살기 좋은 경건한 신앙의 도시로 변화시켰다. 위기 때 허물과 아픔을 품고 기도하는 사람이 중보자다. 이런 사람이 있을 때 개인도, 가정도, 교회도, 사회도 치유되고 회복되고 부흥한다. 하나님은 이런 사람을 기다리고, 또한 찾고 계신다. 여러분이 바로 이런 사람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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