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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랬으면 좋겠습니다. ‘버팀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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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양식 댓글 0건 조회 14,209회 작성일 14-01-12 1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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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랬으면 좋겠습니다. ‘버팀목’

출17:8~16

2014. 1/12. 08:00, 11:00

비익조(比翼鳥)

 비익조라는 새가 있다. 암수 모두 날개가 하나씩 밖에 없다는 전설의 새다. 날개가 하나이니 혼자서는 날 수가 없다. 새는 두 날개로 나는 동물인데, 날 수가 없으니 비익조는 이름만 새지 새라고 할 수 없다. 혼자 힘으로 날지 못하는 새를 새라는 이름으로 부른다는 것은 참으로 서글픈 일이다. 그러나 이 비익조도 때로는 잘 날 수 있다. 그것은 자신의 반쪽을 만나 하나가 되었을 때다. 암수가 마치 한 몸처럼 붙어 좌우 날개를 만들면 어디든지 마음대로 날아다닐 수가 있다. 물론 뜻이 하나 되지 못하면 어디로 갈지 방향을 잃을 것이고, 그러면 땅으로 곤두박질치는 비극을 경험할 것이다. 하지만 비익조는 그렇게 암수 둘이 만나 푸른 하늘을 마음껏 날아다닌다. 그로부터 비익조는 금슬 좋은 부부의 상징이 되었고, 하늘에는 비익조, 땅에는 연리지(連理枝), 그리고 바다에는 비목어(比目魚)라는 말이 탄생되었다.

 

인간이 만들어낸 말 중에 가장 아름다운 것이 ‘사랑’이다. 이 사랑을 완벽하게 보여준 것이 바로 하늘엔 비익조, 땅엔 연리지, 바다엔 비목어다. 이것은 인간은 홀로 살 수 없는 치명적인 약점을 가진 존재이지만 서로 연합하여 협력할 때 그 약점을 극복하고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을 교훈한다.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능히 당하나니 삼겹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전4:12)고 했다. 혼자서는 실패하기 쉽고, 넘어지기 쉽고, 무너지기 쉽지만 곁에서 함께 기도하며 걱정해주고, 붙들어주고, 격려해주고, 용기를 주는 사람이 있으면 넉넉히 이길 수 있다. 그러므로 내가 치명적인 약점을 담당해 줘야할 사람, 곧 한 쪽 날개가 되어줘야 할 사람, 함께 기도하며 걱정해주고, 붙들어주고, 격려해주고, 용기를 줘야할 사람은 지금 여러분 곁에 있는 바로 그 사람이다. 옆 사람을 보라! 혼자서는 결코 날 수 없는 비익조다. 그것은 나도 마찬가지다. 그러니 서로 함께 협력해야한다는 것이다.

 

버팀목과 같은 사람

도종환 시인은 지난 주일에 소개한 「그랬으면 좋겠습니다.」는 시의 둘째 연에서 이렇게 노래하고 있다.

 

병풍처럼 바람을 막아주지만

바람을 막아주고는

그 자리에 늘 그대로 서 있는 나무처럼

늘 그대와 나도 그렇게 있으면 좋겠습니다.

 

바람을 막아주는 병풍처럼 서로에게 인생의 세찬 바람을 막아주는 방풍림(防風林) 같은 존재, 어떤 비바람에도 넘어지지 않도록 붙들어주는 버팀목과 같은 존재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뜻이다. 지난 주일에 말씀 드린 것처럼 우리 서로 ‘말없이 마음이 통하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고, 이제는 ‘버팀목과 같은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물론 우리 인생의 영원한 버팀목은 우리 예수님이시다. 하지만 신자는 서로 버팀목이 되어야 한다. 비익조 이야기에서 보았듯이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홀로 설 수 있을 만큼 강하고, 완벽한 사람은 없다. 누군가 붙들어주고 도와주어야 살 수 있다. 그리고 이렇게 돕는 사람들을 통하여 영향력 있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오늘 본문이 이를 잘 보여주고 있다.

 

광야를 성공적으로 건너는 법

본문은 이집트를 나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겪은 최초의 전쟁이야기인데, 홍해이후 경험한 가장 힘든 시험이었다. 아말렉 족속은 에서의 손자 아말렉의 후손(창36:12)으로, 당시 팔레스타인 남부에서 시나이 반도 북부에 걸쳐 거주하면서 목초지를 찾아 이곳저곳을 유랑하던 호전적인 유목민족이었다. 그들은 광야여행에 지친 이스라엘 백성의 후미를 기습 공격하여(신25:17∼18) 살상과 약탈을 행했다. 광야 행진도 힘든데 적의 공격까지 받으니 이스라엘에게는 심각한 일이었다. 그래서 모세는 르비딤에 도착했을 때 여호수아를 앞세워 그들과 맞서 싸우게 하고, 자신은 아론과 훌을 데리고 근처 산꼭대기로 올라갔다. 전력상으로 이스라엘이 결코 이길 수 없는 싸움이었다. 아말렉은 광야에서 나고 자랐기에 그곳의 지리에 밝고, 거친 환경에 적응하다보니 모두가 싸움에 능한 용사들이었다. 반면에 이스라엘은 노예생활만 했기에 전쟁을 해본 적이 없고, 광야생활에도 익숙하지 못했고, 변변한 무기도 없었다. 그저 하나님의 사람 모세의 명령에 따라 여호수아의 지휘 하에 싸움터로 나간 것이다.

 

그런데 이 전투에서 한 가지 특이한 점이 있다. 전세(戰勢)를 좌우는 하는 것이 전장에서 싸우고 있는 여호수아와 군사들이 아니라 멀리 산 위에서 기도하고 있는 모세였다. 마치 모세가 원격조정이라도 하듯이 그의 손이 올라가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그의 손이 내려가면 아말렉이 이겼다(11). 여기서 우린 기도가 얼마나 중요하고, 기도하는 사람이 얼마나 중요한지 실감할 수 있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모세도 사람인지라 자꾸 그의 손이 내려왔고, 그 때마다 사랑하는 백성들이 아말렉의 칼에 무참히 쓰러졌다. 이런 안타까운 광경을 곁에서 지켜보던 아론과 훌이 이스라엘이 승리할 때가지 모세의 손이 내려오지 않도록 좌우에서 떠받쳐주었다(12). 그리하여 절대 불가능한 싸움에서 이스라엘이 승리한 것이다. 이 사건은 이스라엘이 경험한 최초의 전쟁 이야기다. 그러면서 동시에 신학적으로 아주 중요한 의미가 있는 사건이다. 이것은 장차 광야를 성공적으로 건널 수 있는 비결을 보여주는 사례(case)이다. 그 비결은 (모세처럼)기도이고, (아론과 훌처럼)상호협력, (여호수아처럼)맡겨진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이것은 오늘 우리가 우리 앞에 놓인 2014년도라는 광야, 나아가서 인생이란 광야를 성공적으로 넘을 수 있는 비결이기도 하다. 그 중에서도 우리가 특히 기억해야 할 것은 바로 ‘상호협력’이다. 서로에게 버팀목이 되어주는 것이다. 비목어처럼 눈이 되어주고, 비익조처럼 날개가 되어주는 것이다.

 

이름 없이 빛도 없이

이 사건에서 한 가지 의구심이 드는 것이 있다. 그것은 ‘기도의 형식이 그렇게 중요한가?’ 하는 것이다. 어떻게든 기도하면 됐지, 모세가 왜 손을 들고 기도를 해야만 이스라엘로 이기게 하신 것일까?(11). 그렇다. 어떻게든 기도하는 것이 중요하지, 형식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이것은 성경적인 기도신학에도 맞지 않는 내용이다. 그런데도 모세의 손이 올라가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손이 내려오면 아말렉이 이겼다. 이것은 앞에서 말한 대로 이 사건이 단순한 전쟁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 여기엔 기도만큼 중요한 것이 또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것은 상호협력의 중요성이다. 자신의 손이 올라가야 자기 백성이 이긴다는 것을 모세 자신이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는 자꾸만 내려오는 손을 어쩔 수가 없었다. 이것은 기도의 사람 모세로서도 어떻게 할 수 없는 일이다. 아무리 탁월한 사람도, 아무리 기도를 많이 하고, 하나님과 대면(對面)할 만큼 영성이 뛰어난 사람도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협력자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론과 훌을 모세에게 붙여주신 것이고, 그들이 곁에서 모세를 도와 기적을 경험하게 되었다. 모세처럼 탁월하고 위대한 사람에게도 협력자가 필요하다면 저와 같은 사람에겐 얼마나 절실하겠는가? 지금까지도 여러분의 아름다운 협력으로 살아왔지만 금년 한해도 여러분의 변함없는 협력을 부탁드린다. 지처 넘어지지 않도록, 올바로 갈 수 있도록 좋은 버팀목이 되어주기 바란다. 버팀목은 붙들어주는 역할뿐만 아니라 잘 자라도록 돕는 역할도 한다. 그리고 서로 서로 좋은 버팀목(협력자)이 되어 하나님의 선한 뜻을 이뤄드리자.

 

아무리 버팀목의 역할이 중요해도, 버팀목을 기억하는 사람은 없다. 그래서 협력자로 섬긴다는 것은 곧 ‘이름도 빛도 없이’ 섬기는 것을 뜻한다. 본문에 나온 ‘훌’이 바로 그런 사람이다. 훌에 대한 기록은 본문과 출24:14, 35:30절에만 나온다. 역사가 유세비우스에 의하면 그는 모세와 아론의 누나 미리암의 남편이라고 한다. ‘빛 남’이란 그의 이름처럼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그저 모세를 빛나게 했던 사람이다. 그저 묵묵히 나무를 붙들어주고 있는 버팀목처럼 이름도 빛도 없이 협력하며 섬기는 삶을 살았다. 그렇지만 이렇게 다른 사람을 빛나게 섬기는 사람은 ‘심는 대로 거두는 원리’(갈6:7)에 따라 반드시 복을 받는다. 훌의 경우는 그의 손자 브살렐이 그 복을 받았다(35:30~). 브살렐은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성막 건축의 총감독이 되었다. 남을 빛나게 했더니 자신도 자신의 자손도 빛나게 되었다(잠11:25). 금년 한해 우리 모두 모세의 버팀목 훌처럼 서로를 잘 붙들어주고, 나아가서 잘되게 하는 그런 사람들이 되었으면 좋겠다.

 

당신에게 ‘해’를 선물합니다.

여러분에게 ‘해’를 선물하고 싶다. 마음에 깊이 간직하여 잘 사용하기 바란다. 자주 부르고 많이 말할수록 마음이 따뜻하고 행복해질 것이다. 삶이 아름답고 풍성해 질 것이고, 모든 관계가 더욱 두터워질 것이다. 주님의 은혜와 복을 부르는 소중한 마중물이 될 것이다.

 

사랑!

좋아!

미안!

용서!

감사!

축복!

함께!

네가 필요!

그래서 행복!

 

이 ‘해’를 여러분에게 선물한다. 곁에서 삶의 버팀목이 되어준, 그리고 앞으로 되어줄 소중한 지체들에게 이 ‘해’를 선물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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