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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랬으면 좋겠습니다. ‘아름다운 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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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양식 댓글 0건 조회 16,785회 작성일 14-01-26 1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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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랬으면 좋겠습니다. ‘아름다운 배경’

요3:22~30

2014. 1/26. 08:00, 11:00

안개꽃처럼

 약방의 감초처럼 꽃다발이나 꽃바구니를 만들 때 빠지지 않는 꽃이 있다. ‘안개꽃’이다. 대개의 사람들은 안개꽃만으로 꽃다발이나 꽃바구니를 만들지 않고. 다른 꽃의 배경 꽃으로 안개꽃을 많이 사용한다. 그러니까 안개꽃은 장미나 백합과 같은 주연 꽃을 아름답게 받쳐주는 조연 꽃, 주연 꽃이 더 아름답도록 받쳐주는 배경이 되는 꽃인 셈이다. 이와 같은 안개꽃을 주제로 한 복효근 시인의 시가 있다.

 

꽃이라면 안개꽃이고 싶다.

장미의 한복판에

부서지는 햇빛이기보다는

그 아름다움을 거드는

안개이고 싶다.

나로 하여 네가 아름다울 수 있다면

네 몫의 축복 뒤에서 나는 안개처럼 스러지는

다만 너의 배경이어도 좋다.

 

시인 역시 상대방의 아름다움을 거들고, 배경이 되는 안개꽃과 같은 존재가 되고 싶다고 말한다. 사람들은 자신이 드러나기를 원한다. 인생이란 무대에서 중요한 사람이 되고 싶어 한다. 화려한 조명 아래서 청중의 박수를 받으며 무대에 서고 싶어 한다. 그래서 주연이 되고 싶은 사람은 많아도 조연이 되고 싶은 사람은 드물다. 그렇지만 조연 없는 감동적인 영화나 연극, 드라마는 없다. 이름 없는 수많은 조연이 있기에 주연이 더욱 빛나는 것이다. 배경이 아름다우면 그 가운데 있는 사람이나 건물도 돋보이는 법이다. 복효근 시인처럼 스스로 배경이 되기를 자처하는 사람이 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그대는 장미꽃으로 빛나십시오. 나는 당신을 빛내주는 안개꽃이 되겠습니다. 그대는 바이올린이 되십시오. 나는 콘트라베이스가 되어 당신의 음악을 빛내주는 잔잔한 배경이 되겠습니다.’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것. 이것이 사랑이고, 성숙함이다. 그 사람이 바로 오늘 본문에 나온 ‘세례요한’이다.

 

들러리가 된 것을 기뻐한 사람

세례요한은 경건한 제사장 사가랴와 엘리사벳이 나이 들어 기도로 얻은 믿음의 아들이다(눅1:13). 낳기 전에 천사를 통하여 ‘주 앞에 큰 자가 되리라’(:15)는 계시를 받았고, 주님께서도 ‘여자가 낳은 자 중에 가장 큰 자’(마11:11)라고 평가하셨다. 그는 주님보다 6개월 앞서 태어났는데, 모든 특권을 포기하고 광야에 거하면서 짐승의 가죽으로 옷을 지어입고 메뚜기와 석청으로 연명하면서 회개의 복음을 전파하였다. 그에게서 백성들은 말라기이후 400년 만에 나타난 선지자의 모습을 발견하고 열광하였다. 그는 자기에게로 나아오는 사람들에게 회개를 촉구하며 요단강에서 물로 세례를 주었다. 주님도 그에게서 세례를 받으셨다. 그의 비범함에 사람들은 그가 혹시 성경에 약속된 그리스도(메시야)가 아니냐고 물었고, 그 때마다 그는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요 그의 앞에 보내심을 받은 자라”(28)고 자신의 존재와 사명을 분명하게 밝혔다.

 

요한은 자신은 지는 달이고, 주님은 떠오르는 태양으로 여겼다. 태양이 떠오르면 달이 사라지듯이 그는 주님께 자리를 내어드리고 서서히 사라졌다. 본문이 바로 그 내용이다. 30절, “그는 흥하여야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는 고백에 잘 나타나고 있다. 그야말로 주님을 돋보이게 하고 자신은 배경이 된, 안개꽃과 같은 사람이다. 그는 자신의 존재를 신랑의 ‘들러리’라고 표현했다. “신부를 취하는 자는 신랑이나 서서 신랑의 음성을 듣는 친구가 크게 기뻐하나니 나는 이러한 기쁨으로 충만하였노라.”(29). 신랑은 주님이시고, 자신은 신랑을 맞이하는 ‘들러리’(‘배경이 되어준 사람’)라는 것이다. 그것도 신랑을 맞이한 들러리의 기쁨으로 충만하다고 말한다. 사실 주님의 등장은 그를 초라하게 만들었다. 그의 인기를 사그라지게 하고, 그의 공동체를 무너뜨린 장본인이다. 심지어는 따르던 제자들까지도 그를 떠나갔다(요1:35,37). 베드로의 형 안드레가 그 중 한 사람이다(:40). 모두가 주님 때문이다. 그런데도 그 주님의 들러리를 자처하면서 주님을 자신의 기쁨으로 삼았다.

 

들러리 정신, ‘자기 비움’

우린 여기서 주님께서 요한을 여인이 낳은 자 중에서 가장 큰 자라고 평가하신 이유를 알 수가 있다. 다른 사람이 나보다 잘 된 것, 그것도 나를 누르고 잘 된 것을 진심으로 박수쳐주고, 그것을 기쁨으로 삼는 것 결코 쉽지 않다. 가인이 동생 아벨을 죽이고, 사울이 자신의 사위 다윗을 죽이려고 한 이유가 이 때문이다. 자기보다 잘 된 것을 두고 볼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수도자들이 이것을 영적 수련의 최후 관문으로 삼은 것이다. 그런데 요한은 이 일을 해냈다. 그는 자신이 주님의 들러리, 곧 배경이 된 것을 기쁘게 여겼다. 이것은 요한이 얼마나 깊은 신앙과 높은 인격을 가진 사람인지를 보여준다. 그러므로 누군가의 들러리가 되고, 배경이 된다는 것은 철저한 자기 비움(자기부정)이 있어야 한다. “그는 흥하여야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들러리 인생

많은 사람이 우리나라 사람에게 부족한 것 중 하나가 ‘들러리 의식’이라고 한다. 우리나라 사람은 3명이 길을 가도 일렬횡대로 간다고 한다. 모두 1등이 되고 싶고, 주인공이 되고 싶은 것이다. 반면 일본 사람은 일렬종대로 걷는다. 1등이 있고, 2등이 있고, 3등이 있다. 서열을 중요하게 여기고 또한 존중한다. 그리고 대만 사람은 순위를 무시하고 뭉쳐서 걷는다고 한다. 서열의식이 없다. 아무튼 우리나라에서는 1등외에는 인정을 받지 못한다. 요즘 싱글(single)족이 늘어나는 것도 들러리가 되기 싫어서란다. 괜히 그 ‘놈’, 혹은 그 ‘녀’의 들러리로 사느니 혼자 살겠다는 것이다(물론 누군가를 혹은 자신을 돋보이도록 하기 위해서 주변을 들러리로 만드는 소위 ‘들러리 이데올로기’는 경계해야할 일이다.).

 

우리나라 사람에게 들러리 의식이 부족한 것은 들러리에 대한 부정적인 이해가 그 원인 중에 하나라 생각한다. 들러리가 우리나라에서는 주된 인물 주변에서 그를 돕는 인물을 얕잡아 이르는 말로 통용되고 있다(때문에 들러리를 ‘배경이 되어준 사람’이라고 함). 그렇지만 서양에서는 결혼식에서 신랑/신부가 입장하는 것을 도와주고 신랑/신부 옆에 서는 사람을 뜻한다. 그래서 영어권에서는 들러리를 ‘베스트 맨’(Best man)이라고 부른다. 신랑(부)측의 가장 좋은 사람, 혹은 가장 좋은 친구를 가리키는 말이다. 그러니 들러리는 아무나 되는 것이 아니다. 가장 좋은 친구, 친구를 가장 빛나게 하는 사람만이 들러리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들러리는 주된 인물 주변에서 그를 돕는 별 볼일 없는 사람이 아니라 그를 빛나게 해주고, 나아가서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어주는 최고의 사람이다. 이것을 신앙의 언어로 표현하면 ‘축복의 통로’가 되는 것이다.

 

존재한다는 것은 배경이 되는 것이다.

이동원 목사의 아내 우명자 사모가 쓴「들러리의 기쁨」이란 책이 있다. 저자는 아내로, 엄마로, 사모로 지금까지 들러리 인생을 열심히 살아왔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런 저자를 그냥 두지 않으시고, 여러 가지 새로운 길과 기회를 열어주셨는데, 들러리만이 아닌 또 다른 주인공으로서의 삶을 열어주셨다고 했다. 그렇다. 주님 앞에서는 영원한 주연도, 영원한 조연도 없다. 모두가 주연이고, 또한 조연이다. 서로 배경이 되고 풍경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모두를 아름답게 만드는 것이다. 안도현의 「연어」에 이런 말이 나온다. ‘별이 빛나는 것은 어둠이 배경이 되어주기 때문이고, 꽃이 아름다운 것은 땅이 배경이 되어주기 때문이고, 연어 떼가 아름다운 것은 서로가 서로의 배경이 되어주기 때문이다.’ 서로가 서로의 배경이 되어줄 때 세상은 아름다워지고, 개인도 가정도 교회도 사회도 건강하고 행복해지는 것이다. 세상이 살벌한 정글로 변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서로 배경이 되는 삶을 거부하고 주인공만 되려고 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피나는 경쟁은 불가피한 것이다. 또한 배경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내 인생이 이렇게 평안하고 행복하고 아름다울 수 있는 것은 내가 잘나서가 아니다. 주변에 든든한 배경들 때문이다. 더불어 산다는 것은 나 아닌 모든 것을 나를 빛나게 하는 배경으로 인식하는 데서부터 출발한다.

 

초록 강이 은빛 연어에게 ‘존재한다는 것은 나 아닌 다른 것들의 배경이 되는 것’이라고 말한다(「연어」에서). 배경이 된다는 것은 누군가를 빛나게 하고, 아름답게 하고, 행복하게 하고, 잘 되게 하는 것이다. 그러니 삶이란 주변을 빛나게, 아름답게, 행복하게, 잘 되게 하는 것이다. 그래야 그 삶이 빛나는 삶, 아름다운 삶, 행복한 삶, 형통한 삶이 된다. 그래서 도종환 시인도「그랬으면 좋겠습니다.」는 시를 이렇게 맺고 있다.

 

산과 물이 억지로 섞여 있으려 하지 않고

산은 산대로 있고 물은 물대로 거기 있지만

그래서 서로 아름다운 풍경이 되듯

그렇게 있을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서로 배경이 되자!

천국은 진정한 들러리가 가는 곳이다. 주님을 주인공이 되게 하고, 주님을 빛나게 하고, 주님을 영광스럽게 한 사람이 천국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 또한 주님의 몸인 교회의 영광스러운 배경이 되어 교회를 잘되게 하고, 주님께서 피로 사신 지체들의 아름다운 배경이 되어 지체를 행복하게 하는 사람이 갈 수 있는 곳이 천국이다. 그리고 천국은 세례요한처럼 스스로 배경이 되고, 들러리가 되기를 자원하는 곳에서 시작된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서로 배경이 되고 풍경이 되자. Best man(들러리)이 되자. 배경이 되어주는 남편, 배경이 되어주는 아내, 배경이 되어주는 부모, 배경이 되어주는 자녀가 되자. 주님의 배경이 되고, 교회의 배경이 되고, 지체들의 배경이 되자. 옆 사람에게 이렇게 말해보자.

 

➠‘당신은 나의 소중한 배경입니다!

➠‘나는 당신의 아름다운 배경이 되겠습니다!

➠‘주님의 영광스러운 배경이 됩시다!

➠‘교회의 자랑스러운 배경이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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