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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총의 표적을 보이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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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양식 댓글 0건 조회 13,553회 작성일 14-03-02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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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총의 표적을 보이소서!

민17:1~13

2014. 3/2. 08:00, 11:00

괴물부모(Monster parents)

교사의 폭행으로 학생이 뇌사상태에 빠진 사건이 최근 우리 지역 어느 고등학교에서 일어났다. 아직도 폭력을 휘두르는 괴물교사가 있다는 것이 참으로 놀랍다. 그런데 괴물교사보다 더 심각한 것은 ‘괴물부모’다. 이 괴물부모란 단어는 일본에서 만들어진 유행어다. 자녀를 과잉보호하는 탓에 교사에게 터무니없는 요구를 하거나 폭력을 행사하는 부모를 일컫는 말이다. 예를 들어, 초등학생 부모가 아이를 차별대우한다며 수업시간에 교사를 때리고, 중학생 부모가 아들을 때린 학생을 교무실로 불러내 보복폭행을 하고, 학교에 찾아와 폭언을 일삼고, 협박하며 사표를 종용하고, 주먹을 휘두르는 부모들이다. 이러한 학부모의 횡포가 세상에 알려진 것은 빙산일각(氷山一角)이다. 보험업계에 따르면 자기방어를 위해 배상보험에 드는 교사가 많아지고 있다고 한다. 일본 어느 공립학교에서는 교사 1/3이 괴물부모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소송비용보험´에 가입했을 정도라고 한다. 교육현장에서 이런 괴물은 교사와 학부모뿐만 아니라 학생들 중에도 괴물학생이 많다. 이런 현상은 교권의 상실, 혹은 교권의 부정과 깊은 관련이 있다.

 

우리는 오랜 권위주의시대를 통과하며 온갖 불의한 권위들로부터 많은 상처를 받았다. 그래서 우리에게 권위는 불순하고 혐오스러운 단어가 되었다. 이러한 권위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은 탈(脫)권위를 넘어 무(無)권위를 지향하게 만들었다. 아예 권위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권위를 행사하는 방법과 그것을 행사하는 주체에 있는 것이지 권위 자체에 있는 것은 아니다. 사람은 권위를 떠나서 살 수가 없다. 사람은 둘 만 모여도 그곳에 권위구조가 형성된다. 앞에서 일례로 괴물부모 이야기를 했는데, 오히려 권위부정은 재앙이고 저주다. 데이빗 칸니스트라시(D. Cannistraci)는 권위부재, 특히 아버지의 권위부재가 미국사회에 미친 영향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사회학자들은 아버지의 역할이 가정에서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필수적이라고 말한다. 오늘날 미국이 당면한 문제들 마약중독, 자살, 아동학대, 미혼모 등은 지난 수십 년간 아버지의 부재로 인한 것이다. 아버지의 부재는 이 세대에 가장 파괴적인 흐름이다. 아버지가 없음으로 인해 끔찍한 사건들이 사회에서 발생했다..........건강한 아버지는 가정의 미래와 사명을 지켜내는 상상할 수 없는 능력이다.

 

권위에 도전하는 사람들

본문은 16장 사건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이고 결론이다. 16장 사건은 모세가 이끈 광야교회를 한순간에 무너뜨릴 만큼 심각했다. 이 사건은 광야생활 마지막 시기에 일어났다. 오랜 광야생활에 지친 백성들의 감정을 이용하여 늙은 지도자 모세와 아론에게 도전하여 정권을 잡으려던 일당의 이야기다. 즉 하나님이 세우신 권위와 그분이 위임하신 직분에 대한 도전과 찬탈욕망, 그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다루고 있다.

 

반역의 주동자는 16:1,2절에 나온 대로 고라와 다단과 아비람과 온이고, 여기에 지휘관(족장) 250명이 동참했다. 이들 중에서 고라는 성막봉사를 맡은 레위지파 사람으로 모세와 아론의 사촌이고, 이 사건의 우두머리다. 다단과 아비람과 온은 야곱의 장자 르우벤 지파 사람들이다. 그들은 아론의 제사장직(고라의 일당)과 모세의 지도력(다단과 아비람과 온의 일당)에 대항했다. 특히 아론과 그의 아들들로 이어지는 제사장직의 세습에 대한 반기였다. 자신들도 제사장직을 맡을 자격이 있다는 것이다. ‘회중이 다 거룩하고 하나님께서도 자신들과 함께 계시기 때문’(3)이라는 것이다. 출신(레위지파)으로 보나 영성(거룩하고 하나님이 함께 하심)으로 보나 자신들도 자격을 다 갖추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모세와 아론이 스스로 백성 위에 군림하여 그 지위를 독점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결국 이들의 주장은 ‘모세와 아론은 하나님이 세우신 지도자가 아니다. 우리도 얼마든지 지도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세상일을 하는 데는 자격이 중요하지만 주님의 일은 자격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세워주심’이다. 하나님이 세우신 자가 아니면 주의 일을 할 수 없다. 그러므로 일꾼들이 살펴야 할 것은 이 일을 위해 ‘주님이 나를 세워주셨는가?’ 나아가서 ‘주님이 나를 세워주셨다!’는 확신을 갖는 것이다.

 

하나님의 징계

참으로 위대한 사람은 하나님 앞에 ‘자주’, 그리고 ‘많이’ 엎드린 사람이라고 한다. 모세가 그런 사람이다. 모세는 일이 있을 때마다 자신의 감정을 표출하거나 권한을 사용하지 않고 먼저 하나님께 엎드렸다. 그는 고라 일당의 반역에 대해서도 그랬다(:4). 이는 무슨 일이든 감정적 대응이나 인간적인 방법보다 먼저 하나님께 기도하라는 것, 그래서 하나님의 공의로운 판결에 의존하라는 교훈을 준다.

 

고라 일당의 반역에 대한 하나님의 준엄한 심판이 주어졌다(:15~35). 하나님은 이들의 선동에 동조한 백성들까지 심판하시려 했으나(:19) 모세와 아론의 간절한 중보기도로 그 화를 면할 수 있었다(:22). 그렇지만 그 주동자들은 화를 피할 수가 없었다. 백성들이 그들로부터 떨어져 나간 직후, 하나님께서는 급작스럽게 땅의 입을 벌려 고라 일당과 그들의 가족과 집과 모든 재물을 삼키게 하셨다(:31~33). 또한 그들에게 동조했던 지휘관 250명은 불살라 죽게 하셨다(:35). 모든 백성 앞에서 순식간에 일어난 끔찍하고 두려운 사건이었다. 이 일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권위에 도전하고, 하나님이 택하신 공동체를 무너뜨리는 일이 얼마나 치명적이고 잘못된 것인가를 분명히 깨닫도록 하는 표적이다. 그런데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와 같은 하나님의 표적을 보고도 깨닫지 못하고 도리어 모세와 아론을 원망했다(:41). 모세와 아론이 그들을 죽였다는 것이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다시 진노하셔서 염병으로 백성을 치셨는데, 4만4천7백 명이 죽었다(:46,47). 은혜를 베풀어주셨는데도 깨닫지 못하고 불평하고 원망하는 사람들에게 임하는 준엄한 하나님의 심판이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께서 백성들에게 이토록 진노하신 것일까? 이것은 반역사건의 모든 책임을 모세와 아론에게 떠넘기고, 하나님의 심판을 인간적인 보복으로 왜곡시켰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세우신 사람, 아론

본문은 이와 같은 일련의 끔찍하고 두려운 사건에 대한 결론이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각 지파별로 지팡이 열 두를 가져오게 하여 그 지팡이에 각 지파의 대표 이름을 적게 하셨다. 레위 지파의 지팡이에는 아론의 이름을 적게 하셨다. 그리고 그 지팡이들을 성막 안에 있는 언약궤 앞에 두도록 하셨다. 이튿날 모세가 성막으로 들어가 보니 아론의 지팡이에만 움이 돋고 순이 나고 꽃이 피어서 살구열매(원문에는 아몬드로 되어 있다. 성지에 가장 흔한 나무)가 열려있었다. 이것을 이스라엘 모든 백성들에게 확인시켰다. 지팡이에서 꽃이 피고 열매가 맺은 것도 놀랍지만 이 모든 것이 하룻밤 사이에 일어났다는 사실이 더욱 놀랍다. 이것은 하나님의 능력이 아니고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 표적은 하나님께서 아론을 세우셨고, 그의 제사장직 또한 하나님께서 주셨다는 증거다. 즉 아론의 권위가 하나님에게서 나온 것임을 보여준다. 이를 공개적으로 증명하기 위해 각 지파별로 모아놓은 지팡이 중에서 아론의 지팡이에서만 꽃이 피고 열매가 맺게 하신 것이다. 지팡이는 이미 생명력을 상실한 것이다. 그런데 그 곳에서 꽃이 피고 열매가 맺힌 것은 오직 하나님의 능력에 의한 것이다. 마찬가지로 아론의 권위는 생명력을 잃은 지팡이와 같은 아론 자신으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적 은혜로부터 나온 것이다. 그렇다. 하나님의 종은 하나님이 지키시고, 하나님이 보장하신다. 그리고 하나님이 세우신 권위를 부정하는 것은 그를 세우신 하나님을 부정한 것이고, 하나님이 세우신 권위에 대한 도전은 그를 세우신 하나님을 도전하는 것이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특히 인간적으로 존경할만한 아무런 조건이 없는데도 하나님이 세우셨고 보냈다는 단 하나의 이유만으로 그를 존중하고 따른다면 그 상은 더욱 크다. 그는 그 사람을 본 것이 아니라 그 배후에 계신 하나님을 보고 행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아주 중요한 신앙생활의 원리다.

 

한편 아론의 지팡이에 핀 꽃은 아론이 맡은 사역(제사장직)의 특징을 상징한다. 아몬드는 히브리어로 ‘깨어나다’는 뜻이다. 이는 겨울이 지나고 가장 먼저 싹이 나서 꽃을 피우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이와 같이 제사장은 백성을 대신 하여 하나님 앞에서 ‘깨어있는’ 사람, 또한 죄악의 잠에 빠져있는 백성을 ‘깨우는’ 사람이다. 바로 이 일을 감당하도록 하나님께서 아론을 백성의 제사장으로 세우신 것이다. 우리 역시 왕 같은 제사장들이다. 우리의 사명 또한 교회를 위하여, 지체들을 위하여 늘 ‘깨어있고’, 죄의 깊은 잠에 빠진 사람들을 ‘깨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은총의 표적을 보이소서!

 지난번에 금년의 기도제목으로 삼자며 간단하게 6가지를 소개한 적이 있다. ①은총의 표적을 보이소서! ②은혜의 소낙비를 내려주소서! ③시온의 대로를 주소서! ④물 없는 구덩이와 같은 절망적인 곳에서도 소망을 품는 믿음을 주소서! ⑤하나님의 휘파람 소리에 민감하게 하소서! ⑥주님의 재림을 사모하게 하소서! 앞으로 이 6가지 기도제목으로 설교를 하려고 한다. 오늘 설교는 그 첫 번째다.

 

고라 일당의 반역은 모세와 아론의 권위에 치명적이었다. 하지만 그들에 대한 심판으로 드러난 하나님의 표적은 모세와 아론의 권위가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졌다는 것을 공개적으로 증명해 주었다. 그리하여 다시금 그들의 권위와 위상을 회복시켜주었다. 저는 요즈음 ‘하나님께서 나(우리교회)를 세우셨고, 하나님이 나(우리교회)와 함께 하심을 보여줄 수 있는 표적을 보이소서!’ 라고 ‘은총의 표적을’ 절실하게 구하고 있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지금 우리는 모든 권위를 부정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게다가 기독교가 ‘개독교’로, 목사가 ‘먹사’로 조롱당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교회와 목회자, 신자의 위상이 형편없이 추락하고 있다. 상황이 이러다보니 교회를 다니던 사람들까지도 교회를 떠나는 지경이 되었다. 크고 놀라운 하나님의 표적이 구체적으로 나타나지 않고서는 우리가 당면한 현실을 극복할 수 없게 되었다. 이런 시대에 교회와 목회자, 그리고 신자의 권위를 되찾고 위상을 회복하는 길은 살아계신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보여줄 수 있는 은총의 표적이 우리 교회와 우리 삶에서 드러나는 것이다. 다윗도 자신을 미워하는 원수들 앞에 은총의 표적을 보여 달라고 기도했다. “은총의 표적을 내게 보이소서. 그러면 나를 미워하는 그들이 보고 부끄러워하오리니 여호와여 주는 나를 돕고 위로하시는 이시니이다.”(시86:17). 우리 교회가 주님께서 세우신 주님의 몸인 것과 우리가 주님께서 택하신 백성, 왕 같은 제사장, 주님을 섬기는 거룩한 종인 것을 확증할 수 있는 은총의 표적을 보여 달라고 기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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