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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치하는 교회(06-0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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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양식 댓글 0건 조회 20,520회 작성일 06-01-27 1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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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치하는 교회          
눅14:15-24

콜롬비아의 작가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께스라는 사람이 쓴「백 년 동안의 고독」이라는 소설이 있습니다. 이 책의 내용은 해괴한 전염병이 돌고 있는 한 마을에 대한 이야깁니다. 그 전염병은 건망증입니다. 어느 날부터 그 마을 사람들, 나이 든 노인에서부터 어린 아이들까지 심각한 건망증을 앓게 됩니다. 사람들은 흔한 일용품의 이름을 비롯하여 자신의 아내, 자식, 부모 등 가까운 사람들의 이름까지도 다 잊어버렸습니다. 그러자 아직 이 병에 걸리지 않은 몇 명의 청년들이 사물에 이름표를 붙여 피해를 줄이려고 노력합니다. 먼저 그들은 마을 입구에 두 개의 간판을 만들어 답니다. ‘이 마을의 이름은 마칸도’라는 간판과 ‘신은 존재한다’라는 간판입니다.

저는 이 두 개의 의미있는 간판을 통해 작가 말하려고 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사람에게 가장 위협적인 상실은 신의 존재와 공동체를 잊어버린 것임을 시사하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절대로 잊어서는 안 되는 것, 그것은 ①공동체요, ②신의 존재(영성)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잊어버리는 것은 인간의 본질적인 근원을 잊어버리는 것이고 인간에게 부여된 심오한 영성을 상실한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사는 세상은 점차 이런 세계로 나아가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어떤 분이 말하기를 21세기의 중요한 화두는 ①공동체 ②영성 ③소그룹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21세기를 지향하는 교회는 여기에 관심을 둬야 한다고 말합니다. 실제로 오늘날 교회들이 이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하고, 여기에 목회적 초점을 모으고 있습니다. 저 역시도 마찬가집니다. 이 세 가지를 중요한 목회적 과제로 여기고 있습니다.

지난주에 우리는 ‘갑절의 영감을 주소서’라는 제목으로 영성에 대하여 생각해 보았습니다. 오늘은 신앙공동체인 교회에 대하여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사람마다 교회에 대한 견해가 다릅니다. 어떤 사람은 교회를 병원으로 비유를 하고, 어떤 사람은 학교로, 혹은 군대나 전투함으로 비유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저는 교회를 잔칫집에 비유하고 싶습니다. 그 이유는 성경이 천국을 잔치하는 곳으로 묘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교회는 천국의 그림자이기 때문입니다. 마22:2~4에 “천국은 마치 자기 아들을 위하여 혼인 잔치를 베푼 어떤 임금과 같으니..."라고 기록합니다. 마25장에 처녀가 신랑을 맞이하는 잔치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시23편에서는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상을 베푸신다고 했는데, 여기서 상은 개근상 우등상이 아니라 잔칫상입니다.

한 마디로 기독교는 「잔치하는 종교」요, 교회는 「잔칫집」입니다. 그리고 신앙생활은 잔치하는 삶입니다. 교회는 잔치하는 곳입니다. 기쁨의 잔치, 은혜의 잔치, 말씀의 잔치, 넘치는 성령의 잔치, 이 땅을 살아갈 축복을 받는 축복의 잔치가 있는 곳입니다.

잔치의 컨셉
교회가 잔치하는 곳이라면 잔치의 컨셉이 무엇일까요? 기뻐하는 것입니다. 은혜란 말은 헬라어로 카리스, 기뻐한다는 뜻입니다. 잔치는 기쁨과 즐거움이 있는 곳입니다. 맛있는 음식이 풍성하게 있고, 사람들과의 즐거운 만남, 즐거운 교제가 있어서 기쁘고 즐거운 곳입니다. 교회 역시 잔치하는 곳이라면 즐겁고 기쁜 곳이어야 합니다. 기독교는 기쁨의 종교입니다.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에서 오는 행복, 기쁨, 이것이 교회생활입니다.

예전에는 교회 오면 초상집에 온 사람처럼 웃지도 말고 엄숙해야 한다고 가르쳤습니다. 교회에서 우는 것은 용납이 되었어도 웃는 것은 용납이 되지를 않습니다. 오래 전 일이긴 하지만 심지어 예배 중에 웃었다고 하여 책벌을 당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이것이 ‘거룩’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아닙니다. 이것은 거룩한 것이 아니라 거북한 것입니다. 아직도 교회에 오는 사람들 중에 지옥에서 출장 나온 얼굴을 하고 교회에 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여러분 예수 잘 믿는 사람들은, 행복이 얼굴에 표현되어지는 웃고 다니는 사람입니다.

잔치의 격
그런데 잔치란 그 주인이 누구인가에 따라서 잔치의 격이 결정됩니다. 주인이 대감이면 대감 잔치라 부릅니다. 주인이 왕이면 왕의 잔치가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잔치는 하나님 잔치, 하늘나라 잔치입니다. 본문 15절은 이렇게 시작하고 있습니다. “함께 먹는 사람중에 하나가 이 말을 듣고 이르되 무릇 하나님의 나라에서 떡을 먹는 자는 복되도다 하니ꡓ

교회의 잔치는 하나님 나라 잔치입니다. 잔치를 배설하고 손님을 초대하신 분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나라 잔치는 당연히 기쁨이 있습니다. 감격이 있습니다. 흥분이 넘칩니다. 풍성함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하나님 나라 잔치에 가장 큰 특징은 많은 사람, 모든 사람이 다 함께 참여해야 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는 잔치의 생명입니다. 물론 잔치의 생명에는 이 외에도 여럿이 있습니다.

잔치의 생명
1. 음식(맛있고 풍성해야 합니다.)
2. 잔치 분위기(밝고 환영하는 분위기여야 합니다.)
3. 초대받은 손님(하나님 나라 잔치에는 3번이 가장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1.2번은 하나님의 잔치에 있어서 너무 당연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16절에, “어떤 사람이 큰 잔치를 배설하고 많은 사람을 청하였더니” 잔치의 생명은 많은 손님이 참석하는데 있습니다. 손님이 많이 와야 잔치는 신이 납니다. 잔치의 분위기는 손님이 함께 만드는 것입니다.(23절)

딤전2:4절에서,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받기를 원하신다.”고 바울은 말하고 있습니다. 베드로 역시 말하기를 주님의 재림이 이렇게 지연된 이유가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구원받기를 바라는 마음(벧전3:9)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한 사람이라도 더, 더 많은 사람이, 아니 모든 사람이 구원받고 하나님 나라 잔치에 참여하길 원하십니다. 가끔 손님이 너무 적어 쓸쓸한 잔치를 참석한 적이 있습니다. 주인이 남의 잔치에 가는 일을 게을리 했구나! 활동을 하지 않아 교제가 부족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주님 말씀하십니다. 강권하여 데려다가 내 집을 채우라! 우리가 섬기는 교회, 예배의 자리를 채우는 것은 참 중요합니다. 예배당이 크든 작든 관계없이 채우지 못하는 교회는 쓸쓸함이 있습니다. 외롭습니다. 힘이 없습니다. 교회는 은혜도 넘쳐야 하고 사람도 넘쳐야 합니다. 기도도 은혜도 성령도 넘치고 사람들도 북적북적 넘치는 곳 이것을 가리켜 “부흥”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넘치는 곳에 임재하십니다. 넘치는 자리에 기름을 부어주십니다. 기도가 넘치는 교회, 은혜가 넘치는 교회, 믿음이 넘치는 교회, 사랑이 넘치는 교회, 기쁨이 넘치는 교회, 충성과 헌신이 넘치는 교회, 그 교회에 성령의 기름을 부어 주십니다. 할렐루야!

빌 하이벨스 목사가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예배와 교육, 선교와 친교, 봉사가 균형 잡힌 교회가 건강한 교회인줄 알았는데,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헤아리고 나니 아버지는 잃은 영혼들을 바라볼 때 균형감각을 잃어버리더라는 것입니다. 99마리의 울안에 있는 양보다 울 밖에 있는 한 마리 양을 볼 때 균형감각을 잃어버리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이 아버지의 마음을 헤아리는 교회가 건강한 교회임을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아버지의 마음은 잃어버린 영혼에게 있습니다. 전도는 잃은 영혼을 찾아내는 영적인 전쟁입니다. 사탄에게 빼앗긴 잃어버린 영토를 되찾는 거룩한 전쟁입니다. 교회와 성도는 영혼이 병들 때 생기는 첫 번째 증상을 알아야 됩니다. 그것은 잃은 영혼을 향한 아버지 마음을 상실한 것, 영혼에 대한 안타까움이 없는 것입니다. 아버지의 마음을 잃어버리고 사는 사람이 병든 신앙인입니다. 초점이 회복되어질 때 능력이 나타납니다. 태양 빛을 볼록렌즈로 모으면 종이도, 나무도, 심지어 쇠도 녹일 수 있습니다.

언젠가 남극의 얼음덩어리 밑에서 불이 났습니다. 과학자들이 조사해 보니 얼음덩어리가 묘하게 볼록렌즈의 역할을 해서 태양 빛을 모아 불을 붙였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초점을 가지면, 아버지의 마음에 집중하면, 잃어버린 영혼들을 향한 뜨거움을 회복하면, 하나님께서 거기에 기름을 부어 주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부흥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물론 이 부흥이라고 하는 것은 단순히 교회의 수를 늘리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새생명 운동입니다. 생명의 역사를 의미합니다. 생명의 역사를 일으키는 것. 이것이 부흥입니다. 우리가 초점을 가지고, 아버지의 마음에 집중하고, 잃어버린 영혼들을 향한 뜨거움을 회복하면, 하나님께서 거기에 기름을 부어 주셔서 우리와 우리 교회가 이 부흥의 주역이 될 수 있습니다.

요즘이야 그런 일이 없겠지만, 전에는 교회에서 부흥회를 할 때 부흥사들이 헌금을 작정하게 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부흥사가 외쳤습니다. “여러분 제가 백만원 외칠 때 감동되시는 분은 자리에 일어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반주자에게 부탁을 했습니다. “내가 크게 소리 지를 때에 많은 사람들이 감동을 받아 일어날 수 있도록 멋지게 연주를 해달라고!” 반주자가 어떤 곡을 연주할까? 망설이는 시간에 부흥사가 크게 소리를 질렀습니다. “백만원!” 어떨 결에 반주자가 반주를 했는데, 모든 교인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무슨 곡을, 얼마나 감동적으로 연주했기에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요? 반주자가 연주한 곳은 애국가였습니다.

지금이야말로 애국가를 연주해서라도 우리 모두 일어나야 할 때입니다. 우리 민족이 일어나야 됩니다. 한국교회가 일어나야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잔치에 사람들을 초청해야 합니다. 천국의 잔치가 손님들로 미어지도록 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금년 1년 동안 ‘도전 153’을 실천하여 우리 교회에서부터 이 역사를 만들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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