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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법을 사랑하나이다.(06-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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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양식 댓글 0건 조회 15,151회 작성일 06-12-10 1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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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법을 사랑하나이다.
시119:113-120

구한말 서양의 신문명이 들어올 때 일입니다. 어느 대감이 서양 선교사로부터 비누 한 상자를 선물을 받았습니다. 때가 잘 씻긴다고 신기해하며 방문객들에게 비누를 자랑하고는 하나씩 나누어주었습니다. 바로 그 때 방문객 가운데 월남 이상재 선생께서 있었습니다. 아시는 대로 이상재 선생은 신자로 독립협회를 통해 독립운동에 앞장섰던 분이고, YMCA가 기틀을 잡는데 산파역할을 했던 분입니다. 이분이 비누를 받아들고서는 갑자기 칼로 비누를 깎아서 먹는 것입니다. 대감이 놀라서 말했습니다. “여보게 이 사람아 그건 때를 씻는 물건이지 먹는 물건이 아닐세.” 이상재 선생은 이렇게 답했답니다. “알다 마다요 여러분은 이것으로 얼굴의 때만 씻지만 저는 뱃속의 때를 씻어 볼까 해서 먹었습니다.” 그 때 대감과 방문객들이 부끄러워 모두 낯을 붉혔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 사회는 심각하게 ‘개혁피로증후군’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개혁을 외치지만 정작 개혁되는 것은 없고 개혁과 관련된 스트레스만 쌓여갑니다. 왜 그럴까요? 답은 간단합니다. 겉만 씻으려 하기 때문입니다. 속은 두고 모양만 무늬만 바꾸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개혁하겠다고 제도를 바꾸고, 법을 새롭게 하고, 관행을 고칩니다. 그러나 얼마 안가서 바뀐 제도, 법, 관행에 또 다른 문제가 생깁니다. 사람이 그대로이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개혁은 사람을 바꾸는 작업이어야 합니다. 사람들의 생각이 바뀌고, 삶의 태도가 바뀌고, 그 마음이 바뀌어야 합니다. 바로 속사람의 변화에서 참된 개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여기에 대해 우리 신자와 교회도 자유롭지 못하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우리 역시 개혁의 대상이기 때문입니다. 영국교회의 부흥과 개혁을 주도하고 있는 이안 머레이(Ian Murray) 박사는 「부흥과 부흥주의」라는 책을 썼습니다. 그는 이 책에서 오늘의 교회가 개혁되지 못하고 세속화된 이유를 이렇게 말합니다. 교회 안에 진정한 성도보다 변화되지 않은 세속적인 사람들이 더 많은 게 문제라고 말합니다. 이들이 많다 보니 교회는 이 사람들이 좋아하는 설교, 이들을 참여시킬 프로그램들로 넘쳐나게 되었고, 그 결과 교회는 거룩성이 약화되고, 세상을 변화시킬 능력을 잃어버리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와 세상 사이의 차이가 점점 사라져버리게 되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머레이 박사의 지적이 정확합니다. 사실 교회 안에 겉 사람만 변화된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주일을 지키고, 예배드리고, 교회 봉사에 참여하고 나름대로 열심히 신앙생활은 합니다. 그러나 그 속사람이 변화되지 않은 사람, 철저하게 회개하지 않은 사람. 하나님의 말씀에 철저하게 순복하지 않은 사람. 성령 충만함을 누리지 못한 사람이 너무 많습니다. 게다가 이런 사람들이 교회에서 중직을 맡고 있습니다. 그런데 교회의 제도를 바꾸고, 교회의 예전을 새롭게 하고, 교회 시설을 리모델링하는 것으로 개혁이 이루어지겠습니까?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진정한 그리스도인으로 거듭날 때 심령의 변화, 그리고 교회의 개혁과 부흥은 이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교회와 신자가 이 시대와 이 시대의 사람들에게 희망이 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그러면 어떻게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진정한 그리스도인으로 거듭나도록 속사람의 변화를 일으키고, 그래서 심령의 부흥, 교회의 부흥을 이루며, 교회와 신자가 이 시대와 이 시대의 사람들에게 희망이 될 수가 있을까요?  그 답은 간단합니다. 종교개혁자들이 부르짖었던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 엎드리는 것이 방법입니다. 모든 불행은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무식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떠난 데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방법이고, 원리입니다. 오래 전에 교회학교 교사의 구호 중에 이런 내용이 있었습니다. ‘내가 아니면 누가(책임감 혹은 사명감), 오늘이 아니면 언제(시급성), 말씀이 아니면 무엇으로(말씀의 중요성)’

구약성경 중에 호세아서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은 하나님을 떠난 이스라엘을 자기 남편을 두고 정분이 난 부도덕한 여인에 비유를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러한 이스라엘에게 은혜를 베푸셨지만 그들은 회개하지 않고 여전히 죄악을 즐겼습니다. 그래서 결국 하나님께 매를 맞아 찢기고 상하게 되었습니다. 죄를 범하여 하나님으로부터 징계를 받고 있는 이스라엘을 향하여 선지자 호세아는 이렇게 외칩니다. “너는 말씀을 가지고 여호와께 돌아와서 아뢰기를 모든 불의를 제하시고 선한 바를 받으소서. 우리가 입술(찬송)로 수송아지를 대신하여 주께 드리리이다.”(14:2) ‘말씀을 가지고 여호와께 돌아와서’는 말씀에 입각한 회개를 뜻합니다.

말씀만이 회복의 비결임을 의미한 것입니다. 시편에도 비슷한 말씀이 있습니다. “사람이 흑암과 사망의 그늘에 앉으며 곤고와 쇠사슬에 매임은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함”(107:10~11上)에 있다고 말씀합니다. 계속해서 말씀하시기를, “이에 저희가 그 근심 중에서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그 고통에서 구원하시되, 저가 그 말씀을 보내어 저희를 고치사 위경에서 건지시는 도다.” 하나님의 말씀을 떠난 것이 사람의 비극이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오는 것이 회복의 방법, 형통의 길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어야 소망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의 말씀이어야 하는가?
히4:12,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라고 말씀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의사가 수술용으로 사용한 칼과 같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심령 속에 들어오면 칼처럼 우리 심령 속에 있어서는 안 될 것들을 잘라내고, 문제가 있는 부분을 처리하여 우리 속사람을 새롭게 변화시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만이 우리를 찌르기도 하고, 찢기도 하여 우리를 고치시고 회복시켜 주십니다.

렘23:29,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 말이 불같지 아니하냐. 반석을 쳐서 부스러뜨리는 방망이 같지 아니하냐.”라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태우는 불이고, 반석을 깨뜨리는 방망이라는 것입니다. 우리 속에 있는 모든 악하고 더러운 죄들을 깨끗이 태워버리는 불이요, 교만을 비롯한 잘못된 습관과 태도, 선입관, 세속적인 가치관 등을 산산이 쳐서 부스러뜨리는 방망이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속사람을 새롭게 할 수 있는 능력은 하나님의 말씀 밖에는 없습니다. 세상의 지식이나 철학, 기술이 변화시킬 수 없습니다. 사람의 주의 주장이 속사람을 새롭게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심령 속에 들어오면 우리 속사람을 새롭게 합니다. 우리 속사람을 변화시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창세기 1장에서 확인할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셨습니다. 모든 것들이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되었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니 빛이 생기고, 궁창이 생기고, 육지와 바다, 바다와 육지에 사는 모든 생물들이 생겼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말씀이 곧 능력임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복음서에 나타난 예수님께서 행하신 기적들도 이를 증명합니다. 예수님이 바다의 풍랑을 향하라 잠잠하라고 말씀하시자 바람이 그치고 바다가 잠잠해 졌습니다. 열매없는 무화과나무를 꾸짖으시니 나무가 곧 말랐습니다. 죽은 소녀를 향하여 ‘소녀 일어나라!’ 죽은 청년을 향하여 ‘청년아 일어나라!’ 죽은 지 나흘이나 된 나사로를 향하여 ‘나사로야 나오라!’고 말씀하시니, 죽은 소녀가 깨어나고, 죽은 청년이 일어나고, 죽은 지 나흘이나 된 나사로가 무덤에서 걸어 나왔습니다. 이뿐만 아닙니다. 귀신에게 말씀하시니 귀신이 떠나고, 앉은뱅이, 중풍병자, 문둥병자가 깨끗케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니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곧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영화 「벤허(Ben Hur)」의 작가 루 웰리스(Lew Wallace, 1827∼1905)는 미국 남북전쟁 당시 유명한 장군이고, 문학의 천재였습니다. 그는 무신론자요 회의주의자인 친구 로버트 잉거숄(R. Ingersoll)과 함께, 기독교의 신화를 영원히 없애버릴 책을 써서 인류를 예수라는 미신의 굴레로부터 벗겨주자고 다짐했습니다. 그는 유럽과 미국의 유명한 도서관을 돌아다니며 자료를 수집하고 깊이 연구하여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하나님의 말씀)가 허위라는 것을 주장하는 책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드디어 책의 제1장을 쓰고는 제2장의 첫 페이지를 쓰다가 도저히 부인할 수 없는 사실 앞에서 그는 엎디어 무릎을 꿇고 "당신은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이라고 부르짖었습니다. 예수님의 신성에 대한 확실성에 더 이상 대항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는 그 사건이 있은 2주 후 「벤허」를 썼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이 무신론자의 마음을 변화시켜 굴복시킨 것입니다.

사람은 특별한 존재로 지음 받았습니다. 창2:7,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 말씀했습니다. 사람은 흙에서 온 육이 있고, 또한 생기에서 온 영이 있습니다. 이 육과 영이 조화롭게 생령 곧 사람을 구성한 것입니다. 우리는 육을 위해서 떡이 필요합니다. 반면에 영을 위해서 하나님의 말씀이 필요합니다. 다시 말하면 겉 사람을 위해서는 떡이 필요하지만 속사람을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이 필요하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마4:4)고 하셨습니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려면 떡만으로는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먹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육적인 존재 이상의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겉 사람 중심으로 살아가는 이유는 우리 안에 하나님의 말씀이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먹지 않기 때문에 우리 속사람이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세상이 이렇게 동물농장으로 전락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바로 이런 모습을 개혁해야 합니다. 새로워져야 합니다. 그러려면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함으로
그러면 하나님의 말씀으로 산다는 것은 무엇을 말합니까? 한 마디로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믿고 순종하는 것을 말합니다. 단순히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을 말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아는 것을 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아는 것은 굳이 신자가 아니라도 가능합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것은 다릅니다. 하나님의 사람이 아니고는 불가능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어야 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순종해야 하는 것을 말합니다.

한때 해양 심층수(深層水) 열풍이 불었습니다. 심층수란 북극이나 남극 지방에서 만들어져 해저 200미터 이하로 바다 심층에 흐르는 물을 말합니다. 여기에는 인체 생장에 필수적이고 유익한 미네랄이 풍부하고 유기물이나 병원균이 거의 없어 인체에 가장 완전한 물이라고 알려져 왔습니다. 이 물을 먹으면 각종 성인병 치료에 탁월한 효과를 볼 수 있다고 광고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물로 효과를 보려면 장기적으로 먹어야 한답니다. 우리 몸이 약 70%가 물로 되어있는데 이 몸의 물 성분이 심층수로 완전히 바뀔 때까지 먹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적어도 6개월에서 1년 이상 지속적으로 먹어야 효과를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우리 몸의 수분을 이 심층수 성분으로 다 바꿔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는 것은 우리 마음과 우리 생각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가득 차게 만드는 비결입니다. 말씀을 믿고 순종함으로 세속적인 마음, 물질주의적인 생각, 쾌락주의의 욕망들이 사라지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채워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말씀이 채워질 때 우리 안에 하나님의 말씀의 위대한 역사가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종교개혁의 위대한 업적 중에 하나가 성경을 자기 나라말로 번역한 것입니다. 루터가 종교개혁을 일으키고 첫 번째 한 일이 성경을 상용 독일어로 번역한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자기 나라말로 성경을 직접 읽고, 자기 나라말로 예배를 드리도록 한 것입니다. 종교개혁 전에는 성경을 자기 나라말로 번역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라틴어를 공부한 사제들과 같은 특별한 사람들이 아니고는 성경을 읽을 수가 없었고, 예배도 라틴어로만 드렸습니다. 상황이 이러다 보니 신자들은 성경에 대하여 무지할 수밖에 없고, 예배는 생명력을 잃어 버렸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성경을 직접 가지고 읽고, 공부할 수 있다는 것은 엄청난 은혜입니다. 교회력에 의하면 오늘은 성서주일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기록되어 있는 성경을 생각하고 이 성경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동시에, 이 성경을 더욱 사랑하여 읽고 연구하며, 이를 널리 반포할 목적으로 1954년부터 대강절 둘째 주일을 성서주일로 정해 지켜오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어느덧 이 세상 한 복판에서 세속주의, 물질주의, 쾌락주의의 물결에 휩쓸려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풍성한 삶을 잃어버리지 않았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풍성한 삶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온 신인의 고백을 우리 고백으로 삼아야겠습니다. “내가 주의 법을 사랑하나이다.” “내가 주의 말씀을 바라나이다.” “내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리로다.” 우리는 이 고백을 함께 드리며, 하나님의 말씀 앞으로 나아갑시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합시다. 그럴 때 우리는 심령의 부흥, 교회의 부흥을 경험하고, 신자와 교회가 이 사회에서 영향력 있는 존재로 세워지게 될 것입니다.


*함께 생각해 봅시다.
1. 성경에 나온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묘사들을 찾아보고, 그 의미를 이야기해 봅시다.

2. 하나님의 말씀은 능력입니다. 말씀의 능력에 대한 사례들을 이야기해 봅시다.

3. 말씀의 능력을 삶 속에서 경험할 수 있는 방법들에 대하여 이야기해 봅시다.


*함께 기도합시다.
1. 우리에게 하나님의 마음과 뜻이 담긴 성경을 주심에 대하여
2. 성경이 더욱 널리 보급되어 성경을 모르는 사람, 민족이 없도록
3. 성경과 관련된 사역을 하고 있는 사람들과 단체들을 위하여(예, 대한성서공회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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