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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멘 인간이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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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양식 댓글 0건 조회 11,810회 작성일 15-11-15 1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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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멘 인간이 되자!

마6:9~13

2015. 11/15. 08:00, 11:00(추수감사주일)

Yes-Man

할리우드에서 만든 영화 주인공으로 악당으로부터 사람들을 구한 ‘맨 시리즈’의 주인공 3총사가 있다. ‘슈퍼맨’(Superman), ‘스파이더맨’(Spiderman, ‘배트맨’(Batman)이 바로 그들이다. 이 영화를 본 아이들은 이런 주인공을 흉내 내기도 하고, 자신이 정말 이런 사람이 되겠다고 다짐도 한다. 어쨌든 좋은 일이다. 꿈을 갖는다는 것, 무엇보다도 세상을 구하기 위해 영웅을 꿈꾼다는 것은 환영할 일이다. 그리고 정말 이런 영웅이 나타나서 이 세상의 모든 악당을 물리쳐주었으면 좋겠다. 특히 점점 부패의 늪으로 빠져들고 있는 교회와 신자를 구할 수 있는 믿음의 영웅이 나타났으면 좋겠다. 그런데 우리가 이런 영웅은 못되더라도 꼭 되어야 할 사람이 있다.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할까? ‘예스맨’(Yes-Man)이다. 주님의 말씀이라면 무조건 ‘Yes’, 주님의 뜻이라면 어떤 경우에도 ‘Yes’,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주님을 믿고 ‘Yes’하는 사람이다. 긍정적인 삶의 태도를 가진 절대 긍정의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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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도가 중요하다. 나쁜 태도를 가진 사람은 어디를 가든 누구를 만나든 최악의 장소 최악의 사람을 만나게 된다. 또한 주변을 불행하게 만들어버린다. 해리포터에 ‘디멘토’라는 캐릭터가 나온다. 디멘토는 ‘인간이 가지고 있는 행복한 기억(생각, 경험)들을 빨아들이는 능력을 가진 존재들’이다. 그들이 방에 들어서면 그곳은 어두워지고 사람들은 추위를 느낀다. 나쁜 기억, 싫은 경험을 떠올리게 된다. 어떤 일에서도 무언가 부족하고, 좋은 상황에서도 두려움과 걱정거리를 생각하게 만든다. 나쁜 태도를 가진 사람은 디멘토와 같다. 그들 역시 사람들이 가진 긍정적이고 행복한 기억들을 도적질하여 언제나 최악의 상황을 상상하고, 사람을 볼 때도 나쁜 것을 보게 만든다. 하지만 좋은 태도를 가진 사람은 항상 최상의 상황을 상상하고, 그 사람의 가능성과 좋은 면을 먼저 본다. 그러니 항상 최상의 장소 최상의 사람을 만나게 되고, 나아가서 주변을 잘되게 하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예스맨이 되어야 하는 이유다. 예스맨은 항상 최상의 장소에서 살게 되고, 최상의 사람만 만나게 된다. 또한 자신이 있는 곳을 최상의 장소가 되게 하고, 만나는 사람을 최상의 사람이 되게 한다. 신자에게는 자신이 머문 곳을 최상의 장소, 자신이 만나는 사람을 최상의 사람이 되게 해야 할 사명이 있다. 저와 여러분은, 내가 있는 이곳, 내가 만난 사람들을 최상이 되게 하는 예스맨이 되자!

 

아멘의 중요성

성경책을 약탕기에 넣고 푹푹 달인다음 꽉 짰더니 두 방울의 물이 떨어졌다. 그것이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아멘’이라고 한다. 아멘이란 말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뜻이다. 이는 예수님께서도 즐겨 사용하셨고, 초대교회 신자들도 즐겨 사용했던 말이다. 제롬에 의하면 초대교회 신자들의 아멘 소리가 ‘마치 바다의 파도소리와 우렛소리 같았다.’고 했다. 아멘은 신자들이 가장 즐겨 사용하는 신앙용어다. 그래서 교회를 아멘 공동체라고 한다. 아멘하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고, 아멘 인간을 만들어내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멘 인간이 가는 곳이 천국이다. 또한 이 아멘은 우리의 영적 상태를 보여주는 영적 온도계다. 믿음이 없거나 영적 상태가 좋지 않으면 잘 나오지 않는 것이 아멘이다. 하지만 영적으로 충만하고 믿음이 깊어지면 저절로 입에 달고 다니는 신령한 하늘의 언어가 아멘이다. 이 시간에는 주기도문 강해 마지막 시간으로 이 아멘에 대해서 은혜를 나누고자 한다(물론 아멘이 주기도문 내용과 큰 연관성은 없지만 주기도문 마지막 단어이기도 하여 아멘에 대한 바른 이해를 위해 이 설교를 준비했다).

 

아멘의 뜻

아멘은 히브리어를 그대로 음역(音譯)한 것이다. 번역하지 않고 원어를 그대로 사용한다는 것은 여기에 어울리는 적절한 뜻을 가진 말이 없을 만큼 이 단어가 다양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뜻이다. 실제로 아멘은 다양한 뜻을 가지고 있다. 우선 아멘은 전적으로 인정하고, 동감(의)한다는 뜻이다. 주님의 말씀을 인정하고 동감한다는 것을 나타내는 말이다(마15:21~28, 가나안 여인). 우리는 모든 기도(주기도문, 축도)와 신앙고백(사도신경), 성경봉독, 찬송(양)의 끝맺음으로 아멘을 사용한다. 또한 기도하면서 아멘하고, 찬송을 부르면서도 아멘하고, 말씀을 읽거나 설교를 들으면서도 아멘한다. 이 때 아멘은 ‘정말로 그렇습니다.’ ‘전적으로 동감합니다.’ 라고 하는 뜻이다. 인정의 표현, 동감의 표현이다. 절대 긍정의 표현이다. 앞에서 말한 예스맨은 바로 이런 사람이다. 즉 아멘인간이다.

 

다음으로 아멘은 전적으로 신뢰(지지)한다는 뜻이다. 아멘은 히브리어 동사 ‘아만’에서 유래했는데, ‘지지하다.’ ‘신뢰하다.’가 기본적인 뜻이다(믿음이란 단어도 여기서 유래함). 아멘은 인정하고 동감하는 것 이상의 뜻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신뢰다. 아멘은 단순한 긍정이 아니라 신뢰에 기초한 긍정, 믿음에 기초한 긍정이다. 신뢰 없이는 아멘할 수 없다. 신뢰 없이는 인정도, 동감도 할 수 없다. 그러므로 아멘은 내가 주님을 믿는다는 믿음의 표현이고, 주님의 말씀을 전적으로 신뢰한다는 신뢰의 표현이다. 영적 상태의 표현이다. 그래서 아멘을 영적 온도계라고 한 것이다.

 

또한 아멘은 전적으로 수용하여 순종하기로 결단한다는 뜻이다. 아멘은 신뢰하거나 시인하는 정도가 아니라 자신의 삶에서 순종하겠다는 강력한 결단의 의지를 나타내는 것이다. 성모 마리아의 모습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눅1:26~38). 목수 요셉과 정혼한 마리아에게 홀연히 하나님께서 보내신 천사 가브리엘이 나타나서 엄청난 소식을 전했다. 그녀가 하나님의 은총을 입어 아들을 잉태하였다는 것이다. 이 소식을 들은 그녀는 놀라서 기절을 할 정도였다. 당시 유대사회에서 처녀가, 그것도 정혼한 처녀가 아이를 잉태했을 경우 율법에 따라 공개처형(돌로 쳐 죽이도록)을 하였다(신22:23,24). 그러니 이 사실을 잘 알고 있는 그녀로서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천사의 말을 듣고 나서 그녀는 이렇게 결단한다.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38). 자신은 주님의 종이니까 하나님의 뜻을 전적으로 수용하고, 그대로 순종하겠다는 것이다. 어떤 불이익도, 그것이 죽음일지라도 감수하고 순종하겠다는 결단이다. 이것이 아멘이다. 아멘 영성이다.

 

아멘 인간의 모델, 예수 그리스도

아멘은 복을 부르는 통로다. 바로 이런 경우를 두고 한 말이다. 주님의 말씀을 목숨도 불사하고 순종하기로 결단한 사람을 주님께서 복을 쏟아부어주시지 않겠는가? 마리아가 그 증인이다. 당시 유대사회에서 목수는 비천한 직업이었다. 이런 직업을 가진 가난하고 나이 많은 홀아비에게 처녀가 혼인을 할 정도면 마리아의 형편이 어떠했는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그런 그녀가 ‘하나님의 어머니’(God’s Mother)라는 영광스러운 이름을 얻게 되었다. 하나님의 말씀과 그 뜻에 ‘아멘’했기 때문이다. 마리아처럼 아멘의 복을 받은 또 한 사람이 구약에 나온다.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가 그 주인공이다(삼상1:18).

 

이런 점에서 한나와 마리아는 아멘 인간의 좋은 모델이다. 그렇지만 가장 완벽한 모델은 역시 예수님이시다. 바울은 예수님에 대하여 이렇게 말하고 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예하고 아니라 함이 되지 아니하셨으니 그에게는 예만 되었느니라.”(고후1:19). 예수님은 절대적인 예스맨이셨고, 가장 완벽한 아멘 인간이셨다는 뜻이다. 주님은 하나님의 말씀과 그 뜻에 단 한번도 ‘아니라’고 한 적이 없었다는 것이다. 주님의 삶은 한마디로 아멘이었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하나님의 뜻에 대한 아멘이었다(주님의 ‘탄생-생애-죽으심’ 참조). 그래서 요한은 주님을 ‘아멘이신 그리스도’(계3:14)라고 불렀다. 우리는 주님을 믿고 따르는 주님의 사람들이다. 그렇다면 주님처럼 살아야 하고, 또한 주님처럼 되어야 한다. 즉 주님의 말씀과 그 뜻을 전적으로 신뢰하여 인정하고 동감하는, 수용하여 순종하기로 결단하는 아멘 인간이 되어야한다는 것이다.

 

아멘은 감사의 꽃이다.

미국 그레이스빌 교회 젊은 부부 이야기다. 이 부부는 정말 아름답게 주님을 섬기고, 주님의 몸된 교회를 섬기고 있었는데, 안타깝게도 이들 사이에 아이가 생기지를 않았다. 그렇게 7년의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이들은 포기하지 않고 간절히 기도했고, 그 응답으로 아이를 갖게 되었다. 그리고 아기를 낳았는데, 그 아기는 불행하게도 심각한 장애를 가진 기형아였다. 아내는 아기를 보자 충격을 받아 기절을 했고, 남편은 그 길로 교회로 달려가 통곡을 하며 하나님께 원망의 쏟아냈다. 주먹이 터지도록 예배당 바닥을 치면서 울부짖었다. 얼마나 많이 기도하고 얼마나 잘 섬겼는데 이해할 수 없는 결과가 주어지게 되니까 이렇게 절망적인 분노를 폭발하게 된 것이다. 그 때 남편의 마음에 그의 가슴을 치는 주님의 음성이 들렸다. ‘사랑하는 아들아, 정말 미안하다. 나도 지난 7년 동안 이 아이를 맡길 사람을 찾았단다. 하지만 마땅한 사람을 찾지 못했다. 그래도 너희 부부가 가장 잘 기를 것 같아 너희에게 보낸 것이다. 그런데 너희에게 너무 큰 짐이 되었구나. 미안하다.’ 이러한 주님의 음성에 남편은 다시 통곡을 했다. 그것은 분노의 눈물이 아니었다. 감사의 눈물이었다. 그리고 이렇게 결단했다. ‘주님 그러셨군요. 그래서 저희에게 이 아이를 보내셨군요. 그렇다면 저희가 잘 기르겠습니다. 저희 가정에 찾아오신 주님으로 알고 잘 섬기겠습니다.’ 남편은 병원으로 달려가 아내에게 자초지종을 알리고 아기를 잘 키우기로 결심했고, 이 소식을 전해들은 사람마다 감동의 눈물을 흘렸다.

 

오늘이 추수감사절인데, 감사가 아니라 아멘에 대하여 설교한 것을 의아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사실 아멘은 감사의 시작이고, 또한 감사신앙의 꽃이다. 이 그레이스빌 교회 젊은 부부 이야기가 이것을 확인해 준다. 인정한다고 동의한다고 아멘하니까 그 절망적인 사건이 감사의 대상으로 바뀌었다. 순종하겠다고 결단하여 아멘하니까 절망적인 분노의 눈물이 감사의 눈물로 바뀌었다. 그렇다. 믿음 안에서 인정하고 동감하고, 받아들여 순종하기로 결단할 때, 즉 아멘할 때, 모든 것, 모든 상황은 감사의 대상이 된다. 여러분, 우리 모두 아멘 인간이 되자! 주님의 말씀과 그 뜻을 전적으로 신뢰하여 인정하고 동감하는, 순종하기로 결단하는 아멘 인간이 되자! “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니 그런즉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아멘 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느니라.”(고후1:20).

 

◆ 금주의 Mission, 누구에게든지 ‘무조건 예(yes)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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