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의 열매Ⅰ, ‘성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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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양식 댓글 0건 조회 11,112회 작성일 17-09-10 12:56본문
지혜의 열매Ⅰ, ‘성결’
야고보서 3:13~18
2017. 9/10. 11:00
털 때문에
족제비 잡는 법을 아는가? 족제비의 값은 살코기에 있지 않고 멋진 털에 있다. 그래서 사냥을 할 때 총이나 칼을 사용하지 않는다. 털이 상하면 값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영국 사람들이 애용(愛用)하는 특별한 족제비 사냥법이 있다. 족제비가 살고 있는 곳을 발견하면 도망갈 수 있는 통로를 열어두고 사람들이 족제비가 살고 있는 곳을 포위하여 올라간다. 물론 그 통로의 끝에는 함정이 있다. 그 막다른 길의 함정에는 오물이 가득 채워져 있다. 열어놓은 통로로 쫓긴 족제비는 함정을 발견하고 우뚝 멈추어 선다. 얼마든지 도망칠 수 있는데도 말이다. 그 이유는 차라리 붙잡혀 죽을지언정 빛나는 털에 오물 묻히지 않기 위해서다. 그래서 사람들은 털을 상하지 않고 족제비를 생포할 수가 있다. 털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포기한 것이다. 털 때문에 목숨을 포기한 족제비의 이런 태도를 어리석다고 말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작은 이익과 욕망을 위해 자존심도, 소신도, 신념도, 양심도, 신앙도 헌 신짝처럼 버린 사람들을 생각하면 족제비의 이런 태도는 도전과 큰 울림을 준다. 사실 주변에 족제비만도 못한 신자가 얼마나 많은가?
세계 인권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를 불법 성매매가 심각한 나라로 규정하고 있다. 국민 1인당 약 20만 원을 성매매에 지출한다고 한다. 거기다가 낙태아가 200만 명을 넘고, 아직도 대표적인 고아수출국이라는 오명을 가지고 있다. 불법적인 성행위를 엄격하게 금하고 계시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이토록 많은 우리나라가 성매매공화국, 낙태공화국, 고아수출국이라는 오명을 가지고 있는 것은 신자와 교회가 사회에서 소금과 빛이 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요즈음 인권과 더불어 성적 취향 운운하며 동성연애를 합법하려는 움직임까지 일어나고 있어 더욱 걱정이 많다. 그러니 어느 때보다 성결운동이 절실하다고 하겠다. 그러나 이와 같은 성결운동보다 선행되어야 할 것이 우리 마음의 성결이다. 오늘부터는 본문을 중심으로 성도다운 삶의 기초가 되는 지혜의 열매에 대하여 은혜를 나누려고 한다. 이 시간에는 지혜의 첫 번째 열매인 ‘성결’에 대하여 생각해 보려고 한다.
성결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야고보서는 5장으로 된 짧은 책이지만 신앙생활에 소중한 주제를 풍부하게 다루고 있는 보석과 같은 책이다. 본문이 취급하고 있는 지혜도 그 중에 하나다. 구약성경에서 지혜는 하나님의 백성을 하나님의 백성답게 만드는 삶의 원리를 총칭하는 말이다. 신약성경에서 이와 같은 구약성경의 지혜사상을 이어받은 책이 야고보서다. 그러므로 야고보서에서의 지혜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받은 성도를 성도답게 하는 삶의 원리를 총칭하는 말이다. 저자는 본문에서 지혜를 땅의 지혜와 위로부터 난 지혜로 구분하여 그 열매를 소개하고 있다(14~17). 특히 위로부터 난 지혜, 곧 하늘의 지혜 첫 열매가 성결이다(17).
성결(聖潔)은 한자로 거룩하고(聖) 깨끗하다(潔)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전형적인 기독교 용어다. 흔히 성결을 제2의 은혜라고 부른다(성결교회에서). 물론 제1의 은혜는 구원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 사람들에게 구원이 선물로 주어진 것처럼 성결한 삶 또한 주님의 은혜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동시에 구원받은 성도가 살아내야 할 사명이다. 이스라엘을 이집트에서 구출하여 시내산 중턱까지 인도하신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거룩하라. 나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 거룩함이니라.”(레19:2).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거기에 걸맞게 살라는 요구다. 그래서 신약의 저자들도 이와 같은 하나님의 요구를 신약의 성도에게 똑같이 적용하고 있다(벧전1:15,16). 그러므로 성결은 선택사항이 아니라 필수사항이다.
성결은 마음의 문제다.
성결이란 개념은 구약성경을 비롯한 옛 사람들이 매우 중요하게 생각했던 문제다. 소위 ‘금기’(Taboo)와 깊은 관련이 있다. 옛 사람들은 신비로운 힘이 자연계에 들어있다고 믿었다(animism). 이 힘이 인간의 운명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것에서 자신을 보존하기 위해 많은 금기를 가지게 되었다. 즉 날을 구별하고, 음식을 구별하고, 장소를 구별하고, 사람을 만나는 것도 구별하였다. 어떤 불행한 일이 발생하면 금기의 습관을 잘 지키지 않았기 때문에 불순한 힘이 침투하여 더럽힌 것이라 생각하여 그것을 씻어내는 의식을 행했다. 이것을 의식화한 것이 고대‘종교’다.
구약성경도 성결과 반대되는 것은 부정(不淨)이고, 이 부정을 죄로 규정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부정을 씻기 위해서 마련한 것이 ‘제사제도’다(레1:~7:). 이렇게 성결의 목적을 삶을 보존해가는 유일한 길이고 수단으로 삼았다는 점에서 원시종교와 구약성경이 서로 비슷하다. 하지만 구약성경은 이것이 하나님과 화해의 길이고, 하나님을 만나는 방법으로 생각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예수님은 바로 이 점에 주목하셨다. 그래서 성결의 목적을 ‘하나님을 뵙는 길’이라고 하셨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마5:8). 그리고 성결을 마음의 문제로 보셨다(당시 사람들은 종교의식이나 윤리적인 행위로 봄). 그런데 주님은 외적 성결이 아니라 마음의 성결을 강조하셨다. 그래서 성결을 외적인 행위의 결과가 아니라 내적 동기의 순수함으로 그 의미를 완성시켰다(마5:21~22, 27~28). 마음이 중요하다. 성결은 마음의 문제다. 달라스 윌라드(D. Willard)는 ‘인생은 마음으로 사는 존재’라고 했다. 지금까지 인류의 역사는 보다 나은 세상, 보다 나은 환경, 보다 나은 제도, 보다 나은 삶을 위한 선한 노력의 역사였다. 지금도 이와 같은 선한 노력은 계속되고 있다. 그래서 많은 부분이 깨끗해졌고, 투명해졌고, 편리해졌다. 크게 발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악이 창궐한 이유는 무엇일까? 여전히 이 세상이 천국보다는 지옥에 더 가까운 이유는 무엇일까? 인간은 마음으로 사는 존재인데, 그 마음이 ‘거짓되고 심히 부패했기’(렘17:9) 때문이다. 한마디로 마음을 간과하고 외적 청결에만 집중한 것이다. 아무리 샘 주변을 깨끗이 소재하고 단장해도 샘 근원이 오염되면 깨끗하고 좋은 물을 기대할 수 없는 것과 같다. 마음이 성결해야 성결한 삶이 가능한 것이다.
성결의 의미
그러면 마음의 청결, 곧 성결의 본질적인 의미는 무엇인가? 성결이란 단어가 이를 잘 보여주고 있다. ‘성결’이란 단어(קדש)에는 ‘분리’와 ‘헌신’의 의미가 있다. 소극적으로는 ‘~로부터 떨어지다.’(separate from)는 뜻이고, 적극적으로는 ‘~로 향하기 위해 떨어지다.’(separate to)는 뜻이다. 이를 종합하면 ‘다른 존재의 소유가 되도록 분리해 놓는 것’을 의미한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 드리기 위하여 구별해서 떼어놓는 것을 의미한다(레27:32~33 참조). 그러므로 성결의 의미는 분리(구별)보다 헌신(드림)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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