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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적인 예배자(07-0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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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양식 댓글 0건 조회 15,678회 작성일 07-03-25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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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적인 예배자
요4:19-26

예배자의 자세
건강한 신앙, 건강한 교회의 한 가지 중요한 특징이 있습니다. 그것은 예배가 살아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감격스러운 예배생활입니다. 반대로 형식적인 신앙, 침체된 교회의 특징은 감격이 없고 메마른 형식적인 예배에 있습니다. 예배에 대한 태도는 나와 교회의 영적 상태를 체크할 수 있는 좋은 방법입니다. 어느 글에서 예배의 감격을 잃어버린 사람들의 예배드리는 모습을 분류해 놓은 것을 보았습니다.

첫째, 딴 생각을 하면서 멀거니 강단을 바라보는 딴 생각파,
둘째, 주보에 낙서를 하면서 시간을 보내는 낙서파,
셋째, 졸면서 예배드리는 수면파, 그들이 드리는 헌금은 숙박비.
넷째, 수시로 시계를 들여다보며 끝나는 시간을 기다리는 시계파,
다섯째, 옆 사람과 글로 대화하는 쪽지파,
여섯째, 요사이는 휴대폰으로 문자보내기로 시간을 보내는 문자파.
일곱째, 예배 후에 회의 준비하는 회의파,
여덟째, 성경읽기로 시간 때우는 실속파 등이 있다고 합니다.

우리 중에는 이런 사람이 없으리라 믿습니다. 그러나 우리 마음에 하나님을 만나고자 하는 갈망, 주실 말씀에 대한 기대, 내 몸을 드리고자 하는 진지한 헌신이 없이 그저 졸음과 무관심, 냉담함과 아무런 기대감이 없는 마음, 딴 생각으로 가득찬 마음, 단지 예배가 끝날 때까지 예배를 견디는(?) 마음이라면 위와 같은 사람들 중 한 사람이 될 수가 있습니다.

예배의 영광스러운 회복 없이 신앙의 부흥, 교회의 부흥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역사적으로 하나님과의 만남이 사라진 예배는 모든 방종한 삶의 원인이 되어왔습니다. 하나님의 살아계신 임재를 느낄 수 없는 형식적인 예배야말로 신자들로 하여금 하나님 중심의 삶을 살지 못하게 하는 요인이 되어왔습니다.

예배의 중요성
정신위생학자 핑크(David Fink) 박사는 안정된 삶을 위해서는 4가지 균형이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그것은 일(work)과 놀이(play)와 사랑(love), 그리고 예배(worship)입니다. 그는 의사인데 예배를 강조합니다. 루이스(C.S. Lewis)는 교회의 존재 이유가 하나님이 누구인지 알고 예배하는 것과, 하나님이 행하신 것을 증거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예배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말들입니다. 하나님이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해방시킨 목적이 하나님을 예배하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이는 하나님이 우리를 지으시고, 죄악 가운데서 구원하신 목적이기도 한 것입니다. 그래서 신자를 예배자라고 부르고, 신자의 공동체인 교회를 예배하는 공동체라고 부른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배는 우리 삶의 중심이 되어야 하고, 삶의 목적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를 축복 합니다. 예배하는 자의 삶을 책임집니다. 예배로 하나님을 존귀하게 여길 때 하나님도 우리를 존귀하게 여길 것입니다.

어떤 남미 사람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우리 조상들은 황금을 찾아 이 땅에 왔으나 황금도 찾지 못하고 하나님마저 잃어 버렸으나, 북미 사람들은 신앙의 자유, 예배의 자유를 찾아서 왔으나 황금까지 얻게 되었다.’ 이런 결과가 어디서 왔습니까? 바로 예배에서 왔습니다. 그렇습니다. 예배가 형통의 비결이고 축복의 열쇠입니다. 솔로몬이 평생 부귀영화를 누리며 지혜의 왕으로 추앙을 받게 된 것도 그의 예배에 있습니다. 히브리서 11장 믿음의 명예전당에 기록된 에녹, 노아, 아브라함, 이삭, 야곱을 비롯한 수많은 믿음의 선진들도 한결같이 성공적인 예배자들이었습니다. 우리 모두 예배를 소중히 여겨 예배의 성공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잘못된 예배
모든 신자들은 주일이면 예배를 드리러 교회에 갑니다. 지금 이 시간에도 전국 각 교회마다 사람들이 모여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춤을 추실 일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예배에 성공자가 있고, 실패자가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예배에 성공이란 단어를 사용하는 것이 잘 어울리지는 않지만 여기서 성공적인 예배란 하나님이 받으시는 예배를 의미합니다.

성경에는 하나님이 받으신 예배와 받지 않으신 예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창세기 4장에 나온 가인과 아벨이 그 장본인들입니다. 둘 다 하나님께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가인의 예배는 받지 않으시고 아벨의 예배만 받으셨습니다. 가인은 예배의 실패자요, 아벨은 예배의 성공자인 것입니다. 이 외에도 성경에 잘못된 예배에 대한 말씀이 여러 곳에 나옵니다. “누가 제물을 요구했느냐?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다.”(사1:11-13). “헛되이 제단에 불사르지 못하도록 성전 문을 닫을 자가 있었으면 좋겠다.”(말1:8-10). 우린 여기서 잘못된 예배의 위험성을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예: 가인, 아론의 두 아들 나답과 아비후)

오늘 본문에도 예배의 실패자에 대한 좋은 본보기입니다. 이는 예수님 당시 유대인과 사마리아인입니다. 이들은 서로 갈등관계에 있었는데, 그 중에 하나가 예배문제였습니다. 유대인은 예루살렘에서 예배를 드려야 한다고 했고, 사마리아인들은 그리심산에서 예배드려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둘 다 예배의 실패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올바른 예배, 성공적인 예배에 대한 말씀을 주셨습니다. 예배의 성공자가 되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까요?

1. 예배의 원리를 알아야 합니다.
우선 예배의 원리를 알아야 올바른 예배를 드리는 예배의 성공자가 될 수 있습니다. 예배의 첫 번째 원리는 예배는 내 방법이 아니라 하나님이 가르치신 대로 드려야 합니다. 이는 구약시대 성막과 제사제도에서 확인할 수가 있습니다. 성막을 짓고, 제사 드리는 모든 방법을 하나님이 모세에게 직접 지시하셨고, 모세는 하나님이 지시하신 대로 성막을 지었고, 제사제도를 만들었습니다. 그러므로 예배는 자기 마음대로 드리는 행위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예배는 자기 만족을 위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둘째 원리는 예배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은혜(구원)에 대한 응답입니다. 이는 찬양과 감사, 헌신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우리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사랑, 영광, 위엄, 권세, 능력, 은혜를 찬양하고 감사하는 것, 그리고 내 물질과 시간과 정성, 나아가서 천하보다 귀한 내 생명까지 드리는 것이 예배입니다. 그래서 영어에서는 예배를 worship이라고 합니다. ‘최상의 가치(worth)를 드린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매 예배를 드릴 때마다 적극적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감사하고, 헌신하는 자세가 필요한 것입니다.

세 번째 원리는 예배는 공동체적 행위입니다. 예배는 혼자, 개인적으로 드려도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성전이나 회당, 교회는 존재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 땅에 교회를 세워주셨고 당신의 백성들이 모여 예배드리도록 하셨습니다(히10:25). 그래서 예배는 공동체가 같이 모여 하나님의 구원과 역사를 고백하는 축제적 특징이 있습니다.

2. 이와 같은 원리에 따라 하나님만 예배해야 합니다.
이는 예배의 대상에 대한 문제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예배의 대상이 되셔야 한다는 것, 하나님이 예배의 중심이 되시고 주인이 되셔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께만 집중하는 예배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예배에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무엇입니까? 설교, 찬양대, 친교, 예배당.......

인도의 어느 왕국에 젊고 아름다운 왕비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왕비는 결혼한 지 1년 만에 병으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왕은 너무 슬퍼서 어찌할 바를 알지 못했습니다. 궁리 끝에 왕은 아주 정성을 들여 왕비의 무덤을 만들었습니다. 그로부터 1년이 지난 후 왕은 무덤을 찾아가 보았습니다. 그때 왕의 눈에 비친 무덤은 너무 쓸쓸해 보였습니다. 그래서 신하들을 시켜 왕 자신을 상징하는 미남자의 조각을 새겨 무덤 동편에 세워 두었습니다. 아마도 자기는 비록 무덤가에 있지 못할지라도 자기를 닮은 동상이라도 두어 왕비의 영을 위로하고 싶었던 모양입니다. 1년 뒤에는 무덤 앞에 재력을 상징하는 호화로운 궁전을 짓게 하였고, 그것만으로도 부족하여 다시 1년 뒤에는 무덤 북편에 권력을 상징하는 성곽을 세웠습니다. 몇 년 후 무덤이 있는 동산에 올라 아래를 내려다보니 참으로 근사하기 이를 데 없었습니다. 동쪽엔 미남조각, 호화로운 궁전에 훌륭한 성곽까지 잘 조화되어 아름답기 그지없었습니다. 흡족한 마음으로 좀더 살펴볼 양으로 자세히 보니 가운데 초라하게 서있는 무덤이 눈에 거슬렸습니다. 그래서 왕은 이렇게 명하였습니다. "저 가운데 있는 무덤을 치워 버려라."

우리도 예배에 있어서 이런 과오를 범할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께 집중하지 않으면 자기가 드러나고, 다른 것들에 집중하게 되면 하나님이 없는 예배가 될 수가 있습니다. 끝내 하나님이 귀찮은 존재가 되어 "집어치워 버리자"라는 생각을 갖기에까지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3. 예배는 신령과 진정으로 드려야 합니다.
이는 우리 예수님이 친히 가르쳐주신 올바른 예배를 드리는 방법입니다. ‘신령’이란 성령 안에서 우리의 영으로 드리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영이시기 때문입니다. 성령 안에서 드려지지 않는 예배, 성령의 임재를 의식하지 않는 예배는 형식적인 예배로 떨어지게 됩니다. 그리고 ‘진정’이란 진리를 따라, 즉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여 드리는 예배입니다. 하나님을 바로 알고 바르게 예배하는 것입니다. 성령의 임재를 의식하지 않는 예배가 형식적인 예배로 떨어지는 것이라면, 진리를 따라 드리지 않는 예배는 미신과 우상숭배로 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성령 안에서 예배의 원리와 예배의 대상이신 하나님을 바로 알고 드리는 예배가 신령과 진리로 드리는 예배입니다. 이와 같이 예배하는 사람이 예배의 성공자입니다. 예배에 참석해 잠자고, 딴 생각하고, 주보나 읽고, 감상이나 하고, 분석이나 한다면 그는 예배 실패자입니다.

4. 6일 동안 준비하여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은혜는 준비한 사람에게 임하고, 준비한 만큼 받습니다. 준비는 갈망과 사모함이 있어야 합니다. 6일 동안 주일 예배를 기억하며 예배에 대한 갈망과 사모함을 달라고 기도하면서 마음으로 준비를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몸 상태, 시간, 환경(예를 들어, 함께 예배에 참석할 수 있는 사람이면 몰라도 예배드리는데 방해가 될 수 있는 사람의 방문은 미리 막아야.......), 드릴 물질까지도 미리 준비해야 합니다. 그 사람은 예배당에 앉는 순간부터 하나님의 은혜가 부어지는 것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성령의 임재와 예배의 감격 속에 사로잡히게 될 것입니다. 특히 토요일 관리가 중요합니다. 토요일을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주일예배의 성공이 결정됩니다. 그래서 전통적으로 신자들은 토요일을 예비일이라고 부른 것입니다.

예배는 하나님 앞에서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예배하는 자를 찾으시느니라.” 우리가 매주일 예배를 드리지만 얼마나 하나님이 찾으신바 되는 예배를 드리고 있는가? 정말 우리의 예배가 주님의 마음을 시원케 해드리고 있는가? 우리 자신을 반드시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여러분은 성공적인 예배자입니까? 하나님은 이런 사람을 찾으십니다. 하나님이 찾으시는 바로 그 사람이 우리가 되고, 하나님이 찾으시는 그 교회가 우리 교회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렇게 하나님이 우리를 찾으심은 은혜주시고 복을 주시고 사랑하기 위해서 입니다. 예배를 통해 하나님의 치유와 도움과 은혜와 능력과 사랑을 공급받는 사람이 어떻게 인생에서 실패할 수 있겠습니까? 결코 실패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예배의 성공자는 인생의 성공자입니다. 예배의 성공자가 되어 성공적인 인생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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