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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장 너머로 뻗은 가지(07-0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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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양식 댓글 0건 조회 20,707회 작성일 07-04-16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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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장 너머로 뻗은 가지
창49:22~26

성공을 파는 가게
어딘가에 세상의 모든 성공을 파는 가게가 있다고 해서 한 부자가 여행을 떠났습니다. 많은 돈을 준비해 꼭 사오겠다는 마음을 먹은 그는 짐을 챙겨 여러 도시를 돌아다녀보았지만 그 가게를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던 중 어떤 낯선 도시에 도착했는데, 「세상의 성공을 파는 가게」라고 써 있는 곳을 보았습니다. 가게로 들어가자 주인이 그를 맞았습니다.
‘어떤 성공을 원하십니까? 사소한 성공, 작은 성공, 세상에서 가장 큰 성공 등 모든 종류의 성공이 다 준비되어 있습니다.’
부자는 큰 소리로 대답했습니다. ‘당연히 세상에서 가장 큰 성공이지요. 값은 얼마가 되어도 좋으니 세상에서 가장 큰 성공을 주시오. 돈이라면 충분히 있소.’
주인이 그를 다시 한 번 훑어보며 말했습니다. ‘저 그런데 그게 워낙 비싸기 때문에 쉽게 살 수가 없을 텐데요.’
‘도대체 얼마나 비씨기에 그러는 거요. 한 번 구경이나 합시다.’
부자가 아무리 비싸도 꼭 사겠다는 각오로 서 있자 주인이 그 물건의 가격표를 보여주었습니다.
〈가격: 세상에서 가장 큰 성공을 사려는 사람은 자신의 남은 생에서 평안함을 모두 포기해야만 한다.〉
부자는 단번에 고개를 숙이고 그 가게를 나왔습니다. 그리고 그는 평안함을 포기한 만큼 성공이 커진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참된 성공이란 평안함을 뒤로 하고 많은 노력과 수고, 어려움을 감수해야만 얻을 수 있음을 교훈하는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평안함에 길들여지면 사소하고 작은 성공도 이룰 수가 없습니다. 평안함은 항상 나태와 게으름을 동반하기 때문입니다. 고통의 옷을 입고, 수고의 떡을 뜯으며, 땀과 눈물을 쏟은 사람들이 성공을 일궈냅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집니다. 나태와 게으름을 동반한 평안함은 신앙생활의 가장 무서운 적입니다. 평암함을 뒤로 하고 많은 노력과 수고, 어려움으로 감수하여 성공적인 신앙생활을 했던 신앙선배들을 우리는 성경에서 얼마든지 만날 수가 있습니다. 창49장에서 열 두 아들들에게 축복의 기도를 하고 있는 야곱이 바로 그 대표적인 인물이고, 오늘 설교의 주인공인 요셉 역시 마찬가집니다.

요셉의 약사(생략, 참고 창37장~50장)

그 가지가 담을 넘었도다.
이미 말씀드린 대로 창세기 49장은 야곱이 죽기 전에 그의 열 두 아들들에게 축복한 야곱의 축복기도문입니다. 본문은 그 중에서도 요셉을 위한 축복인데, 요셉을 ‘담장을 넘어 뻗어가는 무성한 나무 가지’에 비유를 합니다. 이는 이어 설명하고 있는 요셉 축복의 핵심과 특징을 잘 나타내 주고 있습니다. 이 말씀의 의미는 다음과 같습니다.

1. 풍성하고 형통한 삶.
무엇이든 가득 차야 넘칩니다. 그릇에 물이 가득 차면 넘칩니다. 물뿐만이 아닙니다. 모든 것이 그렇습니다. 이런 상태를 풍성하다고 표현합니다. 본문은 요셉을 무성한 나무 가지라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그 가지의 무성함을 ‘담을 넘었다’는 표현으로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이 말은 나무 가지가 자기 집안을 가득 채우고, 그것도 모자라 그 가지들이 담장을 넘어서 다른 집으로까지 뻗어가게 되었다고 것입니다. 이는 요셉과 요셉 자손들의 풍성하고 형통한 축복을 표현하는 말씀입니다.

요셉은 형제들에게 미움을 사서 종으로 팔린 신세가 되었지만 당시 초강대국이었던 애굽에서 총리가 되었습니다. 종의 신분과 죄수의 몸으로 총리가 되었으니 엄청난 축복입니다. 그 자손들도 마찬가집니다. 이스라엘의 열 두 지파 중 두 지파가 요셉 자손입니다. 므낫세와 에브라임 지파가 바로 그들입니다. 이스라엘 중에서 가장 많은 수, 가장 넓은 땅을 차지하였습니다. 야곱의 축복처럼 담을 넘은 무성한 가지의 축복, 곧 풍성하고 형통한 축복을 받은 것입니다.

2. 한계를 뛰어넘는 삶
담이란 한계를 의미합니다. 담 안에 갇혀 사는 것은 자기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 것을 의미합니다. 또한 담은 뛰어 넘어야 할 장애물입니다. 그런데 요셉의 나무 가지는 담장을 넘어 뻗어갔습니다. 자기 한계를 넘어 계속 도전하여 성장하는 삶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요셉의 삶이 이를 증명해 줍니다. 요셉은 꿈의 사람입니다(두 꿈 내용 생략, 창37장 참고). 그는 그 꿈 때문에 형제들에게 더욱 미움을 받았고, 급기야는 종으로 팔리게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이는 꿈을 이루기 위한 하나님의 섭리(뜻)였습니다. 자기 아버지의 집, 가나안 땅에서는 그 꿈을 이룰 수가 없었습니다. 그 꿈은 한 가족이나 부족을 위한 꿈이 아니고 세계를 위한 꿈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형제들의 미움이라는 도구를 통하여 자기 한계를 넘어 꿈을 이룰 수 있는 무대로 요셉을 보낸 것입니다.

삶의 시련이란 참으로 고통스러운 것입니다. 이는 그냥 걷기도 힘들 사람에게 무거운 짐을 지운 격입니다. 그런데 알고 보면 그 무섭고 무거운 시련이 나의 한계를 뛰어넘는 디딤돌이었습니다.

3. 영향력 있는 삶
야베스의 기도(대상4:9~10) 중에 ‘지경을 넓혀 달라’(10)는 내용이 있습니다. 여기서 ‘지경은’ 단순히 소유의 범위만 말한 것이 아닙니다. 소유를 넘어 관계의 의미로도 해석할 수가 있습니다. 사람들과의 관계에 있어서 더욱 영향력 있는 삶을 살게 해달라는 의미도 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그 가지가 담을 넘었다”는 말씀은 영향력 있는 삶과도 관계가 있습니다. 관계망을 확장시켜 영향력을 넓혀가는 삶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요셉에게 꿈을 주신 이유이자, 한계를 넘어 그 꿈을 이룰 수 있는 무대로 옮기신 이유입니다. 그것은 영향력 있는 하나님의 사람이 되게 하기 위함입니다. 요셉은 꿈의 실현을 통해 이를 아주 유감없이 발휘하였습니다. 애굽 왕 바로가 요셉에게 ‘사브낫바네아’라고 하는 애굽식 새 이름을 하사하였는데, 그 뜻은 ‘생명의 부양자/공급자’입니다. 그런데 요셉은 그 이름대로 애굽 사람들은 물론 주변 국가와 그의 부모와 형제들, 그 자녀들과 가축들의 생명까지 부양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요셉을 모르는 사람들이 없었고, 모두들 요셉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세상의 소금이라, 세상의 빛이라’고 하셨습니다. 나의 담, 즉 내 자신, 내 가정, 내 교회라는 담을 넘어 세상을 위한 소금, 세상을 위한 빛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세상의 썩음을 방지하고, 어둠을 몰라내는 사명을 감당하라는 것입니다. 이는 성도의 영향력을 그가 살고 있는 세상까지 확장시켜 능력있게 살라는 의미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전도야말로 우리 신자의 영향력을 교회 담장 너머로 확장시키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4. 복을 나누는 삶
영향력 있는 삶이 하나님께서 요셉에게 꿈을 주시고, 그 꿈을 이룰 수 있는 무대로 옮기신 이유였다면, 복을 나누는 삶은 그 목적과 사명입니다. 하나님께서 복을 주심은 나 혼자, 내 식구들, 내 교회만 잘 먹고 잘 살라고 주신 것이 아닙니다. 이웃과 더불어 그 복을 나누라고 주신 것입니다. 나로 축복의 통로가 되라고 복을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받은 하나님의 복이 주변으로 흘러가도록 축복의 통로가 되어야 합니다.

창39:5절에 요셉에 대한 아주 인상적인 말씀이 나옵니다. “여호와께서 요셉을 위하여 그 애굽 사람의 집에 복을 내리시므로......”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요셉 때문에 그 애굽 사람 보디발의 집을 축복하셨다는 말씀입니다. 요셉은 가는 곳마다 축복의 통로가 되었습니다. 그가 감옥에 갇혔을 때에는 옥사장이 복을 받았고, 그가 총리가 되었을 땐 애굽의 바로왕과 애굽 천지가 복을 받았습니다. 심지어는 그의 부모님, 그를 팔았던 형제들과 그의 가족, 가축들까지 복을 받았습니다. 요셉은 그가 가는 모든 곳에서 축복을 나누었던 것입니다. 담을 넘은 가지처럼 말입니다.

전 여기서 복을 나누는 생활의 하나로 중보기도를 제안합니다. 중보기도는 가장 비이기적인 고상한 기도라고 말합니다. 중보기도는 다른 사람을 위한 기도이기 때문입니다. 우린 이 기도를 통하여 축복을 나눌 수 있습니다. 중보기도자야말로 담을 넘은 무성한 가지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살아야 할 사명 인생인 것입니다.

샘 곁의 무성한 가지.
본문에서 ‘그 가지가 담을 넘었도다.’는 말씀과 함께 기억해야 할 중요한 말씀이 있습니다. 그것은 ‘요셉은 샘 곁의 무성한 가지라.’는 말씀입니다. 이는 담을 넘은 무성한 가지의 비결입니다. 이 나무가 샘 곁에 있었기에 무성하게 자랐고, 그 가지들이 담을 넘게 된 것입니다. 물은 나무의 생명과 성장에 절대적입니다. 나무는 물을 공급받아야 번성하고 풍성한 열매를 맺습니다. 이것이 풍성하고, 형통한 비결입니다. 그런데 야곱은 요셉을 축복하되, ‘무성한 가지’라고 하였습니다. ‘샘 곁의 무성한 가지’라고 하였습니다. 바로 여기에 요셉의 풍성하고 형통한 삶, 한계를 뛰어넘고, 영향력 있고, 복을 나누는 삶의 비결이 있었습니다.

요셉은 하나님의 샘에서 늘 생명력을 공급받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형제들에게 미움을 받아 종으로 팔렸을 때도, 보디발의 집에서 종살이를 할 때도,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옥에 갇혔을 때도 꺾이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어느 곳, 어떤 형편에 처하든 자기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이 자기 곁에 계심을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이런 어려움들을 딛고 애굽의 총리로 우뚝 서게 되었습니다. 렘17:8절에, 물가에 심기운 나무는 ‘더위도 두려워 아니하고 가뭄에도 걱정이 없다.’는 말씀이 나옵니다. 어떤 환난도 두려움이 될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우리 역시 요셉처럼 풍성하고 형통한 삶을 소망합니다. 우리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어 사방으로 뻗어나가기를 원하고,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력이 있고, 복을 나누는 축복의 통로가 되기를 원합니다. 그렇지요? 요셉을 위한 야곱의 축복은 우리 신자들의 축복된 삶의 원리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 비결은 샘 곁의 나무처럼 샘 곁에 우리의 터전을 두는 것입니다. 이 샘은 생명과 축복의 공급처로,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합니다. 예수님을 떠나지 않고 예수님과 더불어 사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 생명의 공급자십니다. 예수님은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요10:10)고 하셨습니다. 또한 “나를 믿는 자는 그 배에서 생수가 넘쳐나리라”고 하십니다. 우린 예수님을 통하여 열매 맺는 삶을 살 수가 있습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니라.”(요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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