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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리의 원리로서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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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양식 댓글 0건 조회 9,229회 작성일 21-03-22 1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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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리의 원리로서 함께

17:8~16

2021. 3/14. 11:00

하늘엔 비익조, 땅엔 연리지, 바다엔 비목어

인간이 만들어낸 말 중에 가장 아름다운 것이 사랑이다. 이 사랑을 완벽하게 보여준 것이 바로 하늘엔 비익조(比翼鳥), 땅엔 연리지(連理枝), 바다엔 비목어(比目魚). 이것은 인간이 홀로 살 수 없는 치명적인 약점을 가진 존재이지만 함께 하나가 되어 협력하면 그 약점을 극복하고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을 교훈한다.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능히 당하나니 삼겹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4:12). 혼자서는 실패하기 쉽고, 넘어지기 쉽고, 포기지기 쉽지만 기도하면서 함께걱정해주고, 붙들어주고, 격려해주고, 용기를 주는 사람이 있으면 견딜 수 있고 이길 수 있다. 이것이 사랑이고, 서랑은 서로 함께 협력을 통해 완성이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함께 협력해야 한다. 그래서 서로 약점을 담당해주고, 날개가 되어주고, 눈이 되어주어야 한다. 이것이 함께 잘 되고, 함께 잘 살고, 함께 승리하는 비결이다. 아무리 탁월한 영성을 가진 믿음이 좋은 성도라도 도움을 받지 않고 홀로 설 수 있을 만큼 강하고, 완벽하지 않다. 누군가 붙들어줘야 설 수가 있고, 도와줘야 살 수 있다. 그리고 이렇게 돕는 사람을 통해 승리하는 삶을 살 수 있고, 또한 영향력 있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본문은 함께가 이와 같은 승리하는 삶의 원리인 것을 잘 보여주는 말씀이다.

 

이상한 전쟁 이야기

본문은 이집트를 나온 이스라엘이 겪은 최초의 전쟁 이야기다. 홍해이후 경험한 가장 힘든 시험이었다. 아말렉은 당시 가나안 남부에서 시나이 반도 북부에 걸쳐 살면서 목초지를 찾아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니던 호전적인 유목민족이다. 그들은 광야여행에 지친 이스라엘의 후방을 기습 공격하여(25:17,18) 살상과 약탈을 일삼았다. 광야생활도 힘든데 적의 공격까지 받으니 이스라엘에게는 심각한 일이었다. 그래서 모세는 르비딤에 도착했을 때, 여호수아를 앞세워 그들과 맞서 싸우게 하고, 자신은 아론과 훌과 함께 근처 산꼭대기로 올라갔다. 사실 객관적으로 이 전쟁은 이스라엘이 결코 이길 수 없는 싸움이었다. 아말렉은 광야에서 나고 자랐기에 그곳의 지리에 밝고, 거친 환경에 적응하다보니 모두 싸움에 능한 용사였다. 반면에 이스라엘은 지금까지 노예생활만 했다. 무기를 들고 전쟁터에 나가서 싸워본 경험도 없고, 광야생활에도 익숙하지 못했고, 무기도 없었다. 그저 모세의 명령에 따라 여호수아와 함께 전장으로 나간 것이다.

 

그런데 이 전쟁에는 상식적으로 이상한 점이 많다. 고대 전쟁은 총사령관인 왕이나 황제가 앞장서서 전쟁을 총지휘했다. 하지만 이스라엘의 총사령관 모세는 전장이 아니라 산으로 갔고, 모세를 섬기던 부사관 여호수아가 백성을 이끌고 전장으로 나아간 것, 전쟁에 대한 어떤 전략이나 전술도 없고, 훈련도 무기도 없었다. 더욱 이상한 것은 전세를 좌우한 것이 전장에서 싸우고 있는 병사가 아니라 멀리 산 위에 있는 모세의 손이었다. 마치 모세가 원격조정이라도 하듯이 그의 손이 올라가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그의 손이 내려가면 아말렉이 이겼다(11). 참으로 이상한 전쟁이다. 이런 사실에 비춰볼 때 이 사건은 단순한 전쟁이야기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어떤 중요한 메시지가 있다는 것이다.

 

함께 협력이 승리의 비결이다.

대부분 설교자나 본문을 읽은 사람은 이 사건에서 기도의 중요성을 말한다. , 기도가 얼마나 중요하고, 기도하는 사람이 얼마나 중요한지 강조한다. 물론 틀린 말이라고는 할 수 없다. 신앙생활에서 기도가 얼마나 중요하고, 기도하는 사람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말이 필요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사건은 다르다. 본문을 유심히 보면 단순히 기도를 강조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기도에서 중요한 것은 기도를 드리는 것 자체에 있지 기도의 형식에 있지 않다. 어떻게든 기도하면 되는데, 본문은 모세의 손이 올라가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손이 내려오면 이스라엘이 패했다(11). 그렇다면 모세가 손을 들 때에만 기도하고 내려올 때는 기도를 쉬었다는 말인가? 어디에도 그런 기록은 없다. 만약 그랬다면 모세는 지도자로서 자격이 없는 사람이다. 기도하면 이기고 기도를 쉬면 지는데 어떻게 기도를 쉴 수가 있겠는가? 그리고 이는 성경적인 기도신학에도 맞지 않는 내용이다. 성경은 기도하라.’고 했지 손을 들고 기도하라고 하지 않고, 손을 들고 기도해야만 응답한다고 것도 없다. 그런데도 모세의 손이 올라가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손이 내려오면 아말렉이 이겼다. 그렇다면 여기에는 우리에게 말하고자 하는 다른 중요한 교훈이 있다고 본다. 그 교훈이 무엇일까?

 

우선, 이 사건은 전쟁의 승패가 훈련된 병사의 숫자나 무기, 전략이나 전술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성경에 기록된 대부분의 전쟁이 그렇다. 그래서 여호와의 전쟁이라고 부른다. 이런 점에서 기도의 중요성이 강조될 수 있다. 여기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하나님께 부르짖는 것이기 때문이다. 다음은, 지도자의 중요성을 보여준다. 지도자의 사소한 행동이 공동체에 심각하고 결정적인 결과를 초래한다는 것이다. 모세의 손이 올라가고 내려옴이 전세를 결정지었다. 그리고 셋째는, 인간은 심지어 모세처럼 하나님과 대면할 정도로 영성이 뛰어난 하나님의 사람도 자기 손이 내려오는 것을 막지 못할 만큼 연약한 존재라는 것이다. 모세는 자기 손이 내려오는 것이 자기 민족에게 얼마나 끔찍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는 자꾸만 내려오는 손을 어쩔 수가 없었다. 이것은 기도의 사람 모세로서도 어떻게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아무리 탁월한 사람도, 아무리 기도를 많이 하고, 하나님과 대면할 만큼 영성이 뛰어난 사람도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것이 인간이고, 인간이 이렇게 연약한 존재라는 것이다. 인간은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한 존재라는 것이다. 아무리 탁월한 지도자도 예외일 수 없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사람은 함께 하면서 서로 도와주고 도움을 받아야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모세가 아론과 훌과 함께 산으로 올라간 이유다. 그들이 곁에서 모세를 도와 불가능한 전쟁을 승리로 이끈 기적을 경험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이 전쟁 이야기는 하나님께서 세우신 지도자 모세의 중요성과, 그 역시 연약한 인간이니 모세를 중심으로 함께 협력해야 광야를 넘어 가나안까지 안전하게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학자들은 이 사건을 승리하는 삶의 원리로 꼽는다. 그리고 이 원리중심에는 함께가 있다.

 

이름 없이 빛도 없이

그런데 함께 협력하는 것이 쉽지 않다. 사람에게는 누구에게나 주인공 심리가 있다. 소위 공주병’, ‘왕자병이 있다. 다른 사람의 도움 받아서라도 자신이 더 빛나고 싶고, 드러나고 싶고, 주인공이 되고 싶은 욕구가 있다. 하지만 협력은 자신이 빛나는 일이 아니다. 다른 사람을 빛나게 하는 일이다. 다른 사람을 드러나게 하고, 주인공이 되게 하는 일이다. 그러니까 욕구충돌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그래서 함께 협력하는 것이 어렵다. 그러므로 좋은 협력자가 되려면 먼저 자신을 비우고, 내려놓아야 한다. 우리 주님이 이에 대한 가장 완벽한 모델이시다(2:5~).

 

본문 또한 이점을 잘 보여준다. 모세의 손이 내려오지 않도록 붙잡아주는 일 정도는 누구라도 할 수 있다. 그런데 성경은 그 일을 아론에게 맡겼다. 아론과 훌이 누구인가? 아론은 모세의 형이고, 훌은 모세의 누나 미리암의 남편, 곧 모세의 매형이다. 이 두 어른으로 모세를 돕도록 한 것이다. 이는 지도자가 함께 협력해야 한다는 교훈과 더불어, 협력하고 돕는 일은 나이도 체면도 위치도 모두 비우고 내려놓아야 가능하다는 것을 교훈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함께 협력하는 것이 쉽지 않다고 한 것이다. 그래서 나는 협력을 이름도 빛도 없이 섬기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심은 대로 거두게 하시는’(6:7) 분이시기에 그 수고를 결코 헛되지 않게 하신다. 이 그 증인이다. 훌에 대한 기록은 본문과 출24:14, 35:30절에만 나온다. ‘빛 남이란 그의 이름처럼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그저 모세를 빛나게 했던 사람이다. 묵묵히 나무를 붙들어주고 있는 버팀목처럼 이름도 빛도 없이 협력하며 섬기는 삶을 살았다. 그렇지만 이렇게 다른 사람을 빛나게 섬긴 그를 하나님은 기억하셨고, 그의 손자 브살렐이 그 복을 받았다(35:30~). 브살렐은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성막건축의 총감독이다. 남을 빛나게 했더니 자신의 자손이 빛나게 되었다(11:25). 함께 협력이 지금 우리 앞에 놓인 2021년도라는 광야, 인생이란 광야를 성공적으로 넘을 수 있는 비결이다. 그렇다. 함께 협력하고, 함께 붙잡아주고, 함께 지지해주고, 함께 사랑하고, 함께 기도하고 함께 용서하고, 함께 응원할 때 승리를 보장받을 수 있다. ‘함께가 승리의 원리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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