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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통의 원리로서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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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양식 댓글 0건 조회 8,833회 작성일 21-03-23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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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통의 원리로서 함께

133:1~3

2021. 3/21. 11:00

호모 레시프로쿠스(Homo Reciprocus)

어느 날 소경과 절름발이가 험한 길에 동시에 도착하였다. 그때 소경이 절름발이에게 자기를 도와달라고 부탁했다. 그러자 절름발이가 대꾸했다. ‘내가 어찌 당신을 도와줄 수 있겠소? 내 다리도 끌고 다니기 힘든 지경인데...그러면서 그가 이런 제안을 했다. ‘만일 당신이 나를 업고 간다면 난 당신에게 장애물을 일러줄 수 있소. 그러면 내 눈이 당신의 눈이 되고, 당신의 발은 내 발이 되는 거요.’ ‘거 좋은 생각이오. 그렇게 합시다. 내 등에 업히시오.그러면서 소경은 절름발이를 등에 업었다. 그리하여 둘은 그 험한 길을 안전하게 통과할 수 있었다. 치명적인 약점이 있어도 함께 하면 그 약점을 넘어설 수 있다는 뜻이다. 이런 의미에서 함께는 서로 잘 되게 하는 형통의 원리이고, 축복의 원리다.

 

인간에 대한 학명(학술적인 명칭)이 많다. 그 중에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는 누구나 다 아는 것이다. ‘생각하는 존재란 뜻이다. 그런데 인간의 학명은 문명과 관련이 깊다. 인간에게 이 학명이 붙여진 것은 인간의 이성을 강조했던 계몽주의 시대다. 계몽주의 이후 하나님으로부터 인간의 해방을 부르짖던 근대는 호모 사피엔스에서 인간의 주체성을 찾았다. 그러나 생각하는 인간은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인, 타인에 대한 지배와 같은 부작용을 낳았다. 잘 아는 대로 제국주의 침략전쟁은 호모 사피엔스의 작품이다. 또한 무분별하게 자연을 훼손하고 환경을 파괴하였다. 이에 대한 반성으로 나온 것이 호모 심비우스(Homo Symbious). ‘공존()하는 인간이란 뜻이다. 사람과 사람은 물론, 사람과 자연, 사람과 동물이 함께 공존()해야 한다는 것이다. 학자들은 여기서 더 나아가 서로 의존하는 인간으로서, 호모 레시프로쿠스의 탄생을 필요로 한다. ‘호모 레시프로쿠스경쟁을 하지만 서로 의존하고 협력하지 않고는 존재할 수 없는 인간을 말한다. 호모 심비우스나 호모 레시프로쿠스의 공통점이 함께. ‘함께가 지구적 위기를 극복하고 더불어 잘 살 수 있는 핵심이란 뜻이다. 일찍이 이 함께의 가치를 깨닫고 감탄과 감동, 열띤 찬사를 보낸 사람이 있다. 바로 본문의 주인공 다윗이다.

 

얼마나 선하고, 얼마나 아름다운가!

본 시편은 3절 밖에 안 되는 짧은 시인데, 하나님께 예배하기 위해 함께예루살렘으로 모인 사람을 본 다윗의 깊은 감탄과 감동, 찬사가 잘 드러나고 있다. 1절 한 구절에만 감탄사가 세 번이나 나온다(우리 성경에는 두 번만 나옴). 특히 여기서 얼마나 선한가!’(מה טוב)는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실 때, 하나님께서 자신의 창조물에 대하여 스스로 감동하여 보이신 감탄사다(1:4,10,12,18,21,25), 선하다는 뜻의 히브리어 단어 토브는 기분이 너무 좋아서 어쩔 줄 모를 정도로 행복할 때, 감동하여 감탄할 때 표현하는 단어다. 이는 결핍이나 모자람이 없는 충만한 상태, 무엇을 보충하거나 첨가할 필요가 전혀 없는 완벽한 상태를 의미한다. 그래서 토브를 도덕적으로 완전하다.’(perfect), 신앙적으로 하나님의 마음에 쏙 들어서 만족하다.’(satisfy), 미적으로 아름답다.’(beautiful)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하나님만 바라보며 하나님께 예배하고, 하나님 안에서 교제하기 위해 함께 예루살렘에 모인 백성의 모습에 다윗이 이렇게 감동하여 감탄한 것이다.

 

다윗의 예배를 위해 함께 모인 것에 대한 이와 같은 감탄과 감동에 이어서 두 가지 사건에 비유하여 찬사를 아끼지 않고 있다. 하나는 장엄하고 영광스럽게 치러진 초대 대제사장 아론의 임직식에 이를 비유한 것이다(8장 참조). 예배하기 위해 함께 모인 백성의 모습이 이렇게 장엄하고 영광스럽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비가 절대 부족한 이스라엘 땅에 풍성한 생명을 제공하는 헐몬의 이슬에 비유하고 있다. 성경에서 헐몬의 이슬이 종종 하나님의 은혜에 비유되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국토 90%가 사막일 정도로 비가 부족한 곳에 매일 저녁 촉촉이 내리는 이슬은 생명 자체인 셈이다. 생명을 살리고, 생명을 유지하고, 생명을 풍성하게 하는 것이 헐몬의 이슬이다. 그러니 이를 하나님의 은혜에 비유한 것은 적절하다. 우리의 생명도 매일 베풀어주시는 주님의 은혜에 달렸기 때문이다. 그런데 다윗은 백성이 예배하기 위해 함께 모인 것을 여기에 비유한 것이다. 예배를 위한 모임, 함께 모여 예배하는 것이 민족 공동체에게 풍성한 생명을 공급하는 원천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그가 얼마나 선하고, 얼마나 아름다운가고 감탄을 연발한 것이다. 동시에 이는 다윗이 예배를 소중히 여기는 예배중심의 신앙인이라는 잘 보여주는 부분이기도 하다. 예배를 소중히 여기니까 예배를 위한 모임, 함께 모여 예배하는 것을 이토록 감탄과 감동, 찬사를 하게 된 것이다. 반면 주님 당시 로마인은 유대인이 예배하기 위해 함께 모인 것을 몹시 경계했다.

 

축복의 문을 여는 비결

여러분, 상대방의 지갑을 여는 비결, 특히 고객의 지갑을 여는 비결이 무엇인지 아는가? 그것은 감동이 감동을 주는 것이다. 감동을 받으면 부모의 지갑이 열리고, 남편의 지갑이 열리고, 친구의 지갑이 열리고, 고객의 지갑이 열린다. 그래서 기업들이 마케팅전략으로 고객만족에서 고객감동으로, 더 나아가 고객졸도를 목표로 삼고 있다. 아무튼 감동을 받으면 열성 팬이 된다.

 

우리가 주님의 관심을 끌고, 주님께 칭찬을 받고, 주님의 복을 받는 비결도 마찬가지다. 주님을 감동하시게 만드는 것이다. 복음서에 주님께 감동을 드려 복을 받은 사람의 이야기가 나온다. 대표적인 사람이 수로보니게 여인이다(15:21~28). 주님께서 잠시 쉬기 위해 두로와 시돈지방으로 가셨다. 그곳까지 주님에 대한 소문이 퍼져 있어서 주님이 그곳에 도착하시자 한 여인이 흉악한 귀신이 들린 딸을 고쳐달라고 간청했다. 그렇지만 주님의 반응은 냉담했다. 여인은 포기하지 않고 따라오면서 계속 고쳐달라고 소리쳤다. 이제는 제자들까지 나서서 여인의 소원을 들어주자고 했다. 그때 주님께서 의외의 말씀을 하셨다. 자신은 이스라엘의 잃은 자를 위해 보냄을 받았고, 자녀에 줄 음식을 개에게 줄 사람이 누가 있겠냐고 하셨다. 한마디로 이 여인과 그녀의 동족을 개 취급을 하신 것이었다. 누가 들으면 깜짝 놀랄 발언이었다. 이쯤 되면 여인이 물러설 법도한데, 오히려 이 여인은 주님께서 감동하시도록 말을 했다. ‘옳습니다. 개는 자기 주인의 상에서 떨어진 부스러기를 먹습니다.자신을 개라고 인정하면서 부스러기라도 달라는 것이었다. 이 말에 주님께서 크게 감동을 받아 이렇게 말씀하셨다. ‘여인이여,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주님께서 감동하시니까 자녀의 안타까운 문제가 즉시 해결되었다. 또 한 사람은 가버나움에 주둔한 로마 백부장이다(8:5~13)....(생략).

 

우리는 어떤 문제를 만나면 문제에만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다보니 문제에 눌려서 헤어나지를 못하는 경우 많다. 다시 말하면 문제에 질식을 당해버리는 것이다. 그런데 앞에서 소개한 두 사건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이것이다. 문제를 보지 말고 문제보다 크신 주님을 보라는 것, 어떻게 그 주님께 감동을 드릴 것인가에 집중하라는 것이다. 그러면 문제는 절로 해결이 된다는 것이다.

 

주님께 감동을 드리는 비결

그러면 어떻게 주님을 감동하시도록 할 수 있을까? 물론 성경에는 그 비결이 많이 소개되어 있다. 오늘 본문도 그 중에 하나다. 본문의 시적 화자(話者)가 누구인가? 다윗이다. 다윗이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해 함께 모인 백성, 함께 모여 예배하는 백성을 보고 감탄하고 감동하고 찬사를 보내고 있는 것이 본문이다. 이 화자를 예수님으로 바꾸면 답이 금방 나온다. 그러면 주님이 무엇에 감탄을 하시고, 누구에게 감동을 하시는지를 알 수가 있다. 그것은 바로 예배하기 위해 함께 모인 사람들, 함께 모여서 예배하는 사람들을 보시고 감탄하시고 감동하신다는 것이다. 함께 모인 시간, 함께 모인 장소, 함께 모인 사람들과 주님은 함께 하시고, 기뻐하신다. 우리가 함께 모여 기도하고, 함께 모여 찬양하고, 예배하고, 섬기고, 교제할 때 주님은 크게 감탄하시고 감동하신다. 형통의 비결, 형통의 은혜가 바로 여기에 있다. 여러 가지로 함께 모이는 것이, 그래서 예배하고 찬양하고 기도하고 섬기고 교제하는 어렵게 되고 있다. 단순히 전염병 상황이어서가 아니다. 성경은 이미 이것이 말세적 현상이라고 말씀하고 있다. 아무튼 사람들이 자기 일에 바쁘고, 마음과 열정이 주님을 예배하고 찬양하고 기도하는, 영적인 일로 향하지 않고 있다. 이럴수록 함께 하는 일에 마음과 열심을 쏟아야한다. 이것이 저와 여러분이, 자녀와 섬기는 일터가, 그리고 몸인 교회가 잘 되고 부흥하는 비결이다. ‘함께가 형통의 원리인 것을 기억하며 함께 모여 기도하고, 함께 모여 찬양하고, 예배하고, 섬기고, 교제하므로 주님께 감탄과 감동을 드리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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