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빚진자의 마음으로 (07-0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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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양식 댓글 0건 조회 18,327회 작성일 07-07-09 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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빚진자의 마음으로
롬1:11~15

미국에는 가장 훌륭한 교사에게 주는 ‘올해의 교사’(National Teacher of the Year)라는 상이 있다고 합니다. 1985년도에 ‘올해의 교사’로 선정되었던 테리 도저(Terry Dozier)의 이야기입니다. 테리는 월남에서 독일인 아버지와 월남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는 나치 정보원으로 일하다가 행방불명이 되었고, 어머니는 그 충격으로 죽고 말았습니다. 어린 테리와 오빠는 친척에 의해 중국 식당에 팔려갔습니다. 죽지 못해 사는 고통스러운 삶을 살고 있을 때, 미국 군사 고문관에게 발견되어 그의 양녀가 되어 미국에 왔습니다. 기독교 신자가 된 테리는 "내가 살아남은 것은 하나님의 은혜요, 미국 사회 덕분이다. 나는 하나님과 미국에 빚을 졌으니 빚을 갚아야 한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빚을 갚는 가장 좋은 길은 교사가 되어 아이들을 잘 가르치는 일이라고 여기고 고등학교 역사교사가 되어 교육에 정열을 쏟았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미국에서 가장 훌륭한 교사로 선정되었던 것입니다. 그녀는 말합니다. "열심(熱心)은 전염됩니다. 학생들은 나에게 역사만을 배우지 않고 사회를 위한 열심 또한 배웠습니다. 많은 졸업생들이 사회에 나가 열심히 일하고 있는 것을 볼 때 나는 다소나마 하나님과 미국에 빚을 갚고 있다는 위로를 받습니다."

세상을, 그리고 인생을 채권자의 심정으로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지나치게 자신의 권익과 권리만 주장합니다. 물론 이것이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지나친 채권의식은 감사를 잃어버리는 삶을 살 수가 있습니다. 반면에 앞에서 소개한 테리처럼 채무의식, 빚진 자의 심정으로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 사람은 항상 은혜의식, 감사의식으로 세상을, 인생을 삽니다.

오늘 본문에 평생을 이런 빚진 자의 심정과 태도로 살았던 한 사람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입니다. 본문 14절에서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헬라인이나 야만인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라." 철저한 채무의식, 빚진 자의 마음에 사로잡혀 있는 바울의 모습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가 이런 고백을 한 것은 주님으로부터 받은 은혜와 사랑 때문입니다.

복음 안에서 자유자요, 하나님나라의 상속자이나 하나님께 받은 사랑과 자신을 불러 구원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 때문에 빚진 자의 의식을 갖게 된 것입니다. 여기의 '빚진 자‘를 뜻하는 '오페일레테스’는 죄와 의무의 개념을 동시에 갖습니다. 즉 빚을 갚지 않음은 율법을 어기는 것이며, 반드시 갚아야만 하는 의무를 가진다는 의미입니다. 여기서 바울이 자신을 '빚진 자'라고 말한 것은 빚 진자의 심정을 가지고 복음의 사역자로서 사명을 충실하게 감당하겠노라는 의지를 표명한 것입니다. 찬송가 28장에도 이런 가사가 나옵니다.

"주의 귀한 은혜받고 일생 빚진 자되네
주의 은혜 사슬되사 나를 굳게 매소서."

하나님의 엄청난 은혜의 빚을 진 바울은 어떻게 이 빚을 갚을까? 하며 항상 빚진 자의 심정으로 살았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않는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서 빚진 자의 심정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빚을 갚으려는 자세로 살아갑니다.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은혜의 빚을 갚을 수 있습니까? 바로 여기서부터 우리 신자의 사역은 시작이 됩니다. 지난 주일에 간증해 주신 반봉혁 장로님이 목숨을 걸고 낙도선교에 헌신한 것도 베풀어주신 주님의 은혜와 사랑에 대한 빚진 자의 마음 때문입니다.

우리 역시 이런 빚진 자의 마음으로 세상을, 인생을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어떻게 이 사랑의 빚, 은혜의 빚을 갚을 수가 있을까요?

첫째로 섬김의 생활을 통하여
아프리카 감비아에서 15년의 선교사역을 마친 이재환 선교사가 「검은색이 아름답다」라는 책을 출간하였습니다. 그 책에 나오는 감동적인 내용 가운데 미국 선교사 톰에 관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톰은 미국에서 농과대학을 졸업하고 23세의 나이로 감비아에 선교사로 건너와 옥수수, 수수, 콩, 땅콩, 조 등을 재배하는 법을 가르치면서 감비아 사람들을 가난에서 해방시키는 일을 했습니다. 그 곳에서 로라 선교사와 결혼하여 다섯 명의 딸을 낳아 감비아 사람들과 함께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분이 초임 선교사들에게 항상 권면하는 말이 있습니다. "좋은 선교사가 되려면 노새가 되십시오." 라는 것입니다. 감비아에는 노새가 많은데, 평소에는 주민들의 교통수단이 되고 농사철에는 자기 몸통보다 몇 배나 크고 무거운 짐을 실은 수레를 묵묵히 끌고 다닙니다. 노새들은 밤이 되면 하루의 피곤함이 몰려와 '끄윽, 끄윽' 하며 슬프게 웁니다. 이처럼 선교사의 삶은 주인을 위해 존재하는 노새처럼, 현지인들을 위하여 최선을 다해 섬겨야 한다는 것. 너무 힘들고 지쳐서 '끄윽, 끄윽' 하며 슬프게 울면서도 주님을 향한 뜨거운 사랑으로 섬김을 다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너무 힘들고 지쳐서 '끄윽, 끄윽' 하며 슬프게 우는 노새처럼,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주님을 향한 뜨거운 사랑으로 섬김의 삶을 사는 것. 이것이 바로 주님의 사랑에 매인 신자의 모습입니다. 우리는 평생 갚아도 갚을 수 없는 큰 은혜, 큰 사랑을 받은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섬김으로 이 사랑의 빚, 은혜의 빚을 갚아야 하는 것입니다. 은혜 받은 사람은 항상 빚진 자의 심정을 가지고 섬기며 살아갑니다.

안산제일교회에 오창석 집사라는 분이 있습니다. 그는 장의사를 운영하고 있는데, 작업복에 흰 고무신을 신고 수익금에서 생활비와 운영비를 빼고는 모두 구제 사역에 씁니다. 정박아 시설, 보육원 아이들의 장례를 전담해 치러 주고, 사할린 귀국 동포를 위한 무료 장례도 도맡고 있습니다. 가족도 모르게 생면부지의 학생에게 신장 한쪽을 기증해 주었습니다. 어떻게 이 은혜를 갚을 수 있느냐고 찾아온 학생과 가족에게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예수만 잘 믿으십시오. 그러면 됩니다. 나는 감사받을 수 있는 사람이 아니며 감사받을 수 있는 분은 오직 예수님이고, 예수님이 제게 생명을 주셨습니다. 내 목숨도, 내 몸도, 내 재산도 내 것이 아닙니다. 오직 주님의 것입니다." 오창석 집사는 주님께 받은 사랑의 빚을 자신의 몸까지 주는 사랑의 실천으로 갚고 있는 것입니다.

섬김의 공동체인 교회 안에서 섬기는 사람들 간에 불화가 생기고, 조그마한 섬김에도 생색을 내기도 하고, 심지어는 섬김을 이익의 재료로 사용하여 자신의 힘을 과시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는 그 섬김 속에 빚진 자의 마음이 빠져있기 때문이고, 빚진 자의 마음이 빠지면 공로의식이 자리를 잡게 됩니다. 빚진 자의 마음으로 사는 사람의 마지막 고백은 ‘내가 해야 할 일을 한 것뿐이다.’는 말입니다. 서울노량진교회를 평생 섬겼던 임택진 목사님 이야깁니다. 그분의 은퇴식 때 일입니다. 은퇴소감과 함께 교인들에게 권면의 말을 부탁받았을 때, ‘나는 무익한 종이라. 마땅히 할 일을 한 것뿐입니다.’라는 한 마디 말을 남기고 단을 내려왔습니다. 우리 한국교회를 빛낸 목사님의 그 모습에 장내는 숙연해 지고 말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섬김의 올바른 자세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들도 빚진 자로서의 주님을 섬기고, 몸된 교회를 섬기고, 지체들을 섬길 수 있기를 바랍니다.

둘째로 복음 전파의 삶을 통하여
본문 14절과 15절에서 바울은 "헬라인이나 야만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라. 그러므로 나는 할 수 있는 대로 로마에 있는 너희에게도 복음 전하기를 원하노라"고 말합니다. 복음전파에 대한 바울의 심정을 아주 잘 보여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익히 아는 대로 바울은 복음전파에 목숨을 걸었던 사람입니다. 그는 복음전파를 위해 모든 것을 포기했습니다. 로마 시민권도, 보장된 안전한 생활도, 명예도, 심지어는 결혼도 포기하고 복음전도에만 전력했습니다. 그는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화가 임하리라는 거룩한 부담감을 안고 평생을 살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집에 있을 때에나 일할 때, 감옥에 갇혀서도 복음을 전했습니다. 저 개인적으로 사도행전에 기록된 전도자 바울의 모습에서 가장 감동을 받은 곳이 두 군데 있습니다(행14:19~20, 26:29).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복음을 위해서라면 내 생명이 조금도 아깝지 않다.’고 고백했습니다. 바울이 평생을 이렇게 산 이유가 무엇입니까? 주님께 받은 사랑과 은혜 때문입니다. 그 사랑의 빚, 은혜의 빚을 갚기 위해 복음 전파의 삶을 산 것입니다.

한 사람을 평가하는 것은 그가 남긴 업적이나 소유, 명예나 명성과 같은 외적인 것이 아닙니다. 그의 생각입니다. 무슨 생각으로, 어떤 생각을 품고 살았느냐에 달렸습니다. 생각이 곧 그 사람입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님에 대한 생각, 예수님의 복음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 찬 사람입니다. 앉으나 서나, 자나 깨나, 감옥에 갇혀 있을 때나 자유로운 몸일 때나 항상 이 생각에 사로잡혀 살았습니다. 이것이 사도 바울입니다. 우리들도 내게 베풀어주신 주님의 은혜와 사랑을 기억하면서 복음전파로 주님의 빚을 갚겠다는 생각으로 가득 찰 수 있기를 바랍니다.

어느 분이 홈페이지에 ‘언더우드의 기도’라는 동영상을 올려놓은 것을 보았습니다. 27살의 청년 언더우드가 생전 들어 보지도 못한 가난과 질병, 우상숭배에 절여있는 우리나라에 와서 교회를 세우고, 병원을 세우고, 학교를 세워서 이 땅의 복음화를 위해 헌신했습니다. 그것도 당대에 그치지 않고, 5대째 대를 이어서 이 일을 하고 있습니다. 무엇이 그로 이런 삶에 헌신을 하게 했겠습니까? 바로 이 빚진 자의 마음입니다.

보이지 않는 조선의 마음

주여! 지금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주님, 메마르고 가난한 땅
나무 한 그루 시원하게 자라 오르지 못하고 있는 이 땅에
저희들을 옮겨와 앉히셨습니다.
그 넓고 넓은 태평양을 어떻게 건너 왔는지
그 사실이 기적입니다

주께서 붙잡아 뚝 떨어뜨려 놓으신 듯한 이 곳
지금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보이는 것은 고집스럽게 얼룩진 어둠뿐입니다.
어둠과 가난과 인습에 묶여 있는 조선사람 뿐입니다.
그들은 왜 묶여 있는지도, 고통이라는 것도 모르고 있습니다.
의심부터 하고 화부터 냅니다.

조선 남자들의 속셈이 보이지를 않습니다.
이 나라 조정의 내심도 보이지를 않습니다.
가마를 타고 다니는 여자들을 영영 볼 기회가 없으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조선의 마음이 보이지를 않습니다.

그러나 주님, 순종하겠습니다.
겸손하게 순종할 때 주께서 일을 시작하시고
그 하시는 일을 우리들의 영적인 눈이 볼 수 있는 날이 있을 줄 믿나이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라고 하신 말씀을 따라
조선의 믿음의 앞날을 볼 수 있게 될 것을 믿습니다.

지금은 우리가 황무지 위에 맨손으로 서 있는 것 같사오나
지금은 우리가 서양귀신이라 손가락질 받고 있사오나
저들이 우리 영혼과 하나인 것을 깨닫고,
하늘나라의 한 백성, 한 자녀임을 알고 눈물로 기뻐할 날이 있음을 믿나이다.
지금은 예배드릴 예배당도 없고 학교도 없고
그저 경계와 의심과 멸시와 천대만이 가득한 곳이지만
이 곳이 머지않아 은총의 땅이 되리라는 것을 믿습니다.
주여! 오직 제 믿음을 붙잡아 주소서.

전도야말로 주님께 받은 사랑의 빚, 은혜의 빚을 갚는 최선의 길입니다. 또한 이웃을 사랑하고 섬기는 최선의 방법이 전도입니다. 이것보다 더 큰 사랑의 실천, 더 좋은 섬김이 없습니다. 죽은 영혼을 살리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마귀의 자녀 지옥 백성을, 하나님의 자녀 천국 백성으로 만드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 바울처럼, 언더우드 선교사처럼 복음의 빚 진자의 마음을 가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실천하는 삶을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과연 빚진 자의 심정을 가지고 사는가? 그 빚을 갚으려고 할 수 있는 대로 힘을 다하고 있는가? 한 영혼을 사랑으로 품고 있는가? 진심으로 섬기며 사는가? 잃어버린 영혼을 위해 복음을 전하고자 하는 열정이 있는가? 우리 스스로에게 물어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이런 거룩한 빚을 진 심정으로 살아감으로 복을 얻는 신자들이 다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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