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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어주소서! ‘마음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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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양식 댓글 0건 조회 9,135회 작성일 21-04-26 1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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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어주소서! ‘마음

13:1~9

2021. 4/25. 11:00

변화는 마음에서부터 시작된다.

루이스 워터맨이라는 보험판매원의 일화다. 그는 어느 날, 큰 계약을 성사시켰다. 서류를 준비하고, 고객의 사인을 받기 위해 가방에서 잉크와 펜을 꺼냈다. 그런데 고객이 그만 잉크병을 건드려서 잉크를 엎지르는 바람에 서류가 더럽혀지고 말았다. 그는 회사로 돌아가 새 계약서를 챙겨서 다시 고객을 찾아갔는데, 그 사이에 고객은 다른 보험판매원과 계약을 해버리고 말았다. 다른 보험회사가 더 나은 조건을 제시하여 계약을 빼앗은 것이다. 하지만 그는 고객도, 다른 보험회사 판매원도 원망하지 않았다. 오히려 잉크가 쏟아지지 않는 펜이 있었다면 이런 일이 없었을 텐데.라고 생각하고 그때부터 잉크를 담은 펜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였다. 실패를 거듭하며 노력한 끝에 지금도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만년필을 만들었다. 이렇게 만년필이 보험판매원이었던 루이스에 의하여 탄생한 것이다. 상황에 묶이지 않은 루이스의 열린 마음이 의미 있는 변화를 만들어낸 것이다. 두려운 것은 실패가 아니다. 우리 마음을 낙심과 원망으로 채워서 건강한 삶을 가로막는 것, 더 나아가 하나님의 사명을 포기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 일로 인해 마음이 좁아지고 닫히는 것이 문제다.

 

두 종류의 마음

본문은 유명한 우리 예수님의 씨 뿌리는 자의 비유다. 이 비유에서 밭은 우리의 마음이고, 씨앗은 복음의 말씀이다. 이 비유는 열매를 맺고, 맺지 못하고는 씨앗이나 씨앗을 뿌리는 사람의 문제라기보다 씨앗을 받아들이는 밭(사람 혹은 마음)에 있다는 것을 강조한다. 그러면서 씨앗을 받아들이는 마음(사람)의 모습을 4가지(나는 개인적으로 6가지로 봄)로 보여주고 있는데, 결과적으로는 두 종류다. , 열매를 맺지 못한 밭과 열매를 맺은 밭이다. 주님은 열매를 맺지 못한 밭에 대해서는 3가지로 구분하여 분명하게 말씀하셨으나 열매를 맺은 밭은 100, 60, 30배로 요약해서 말씀하셨다. 사실 이를 풀어보면 열매를 맺은 밭도 100의 열매를 맺은 밭, 60배의 열매를 맺은 밭, 30배의 열매를 맺은 밭으로 각기 다르다는 의미다. 그래서 나는 6가지의 밭으로 본 것이다.

 

비유에서 열매를 맺은 밭은 열매를 맺지 못한 밭들과 비교를 해보면 씨앗이 자라고 열매를 맺는데 장애요소가 없다는 점이다. 이런 좋은 밭이란 곧, 지난 주일에 말씀드린 넓은 마음 열린 마음을 뜻한다. 길가 밭처럼 닫힌 마음 굳은 마음은 말씀의 씨앗이 뿌리조차 내릴 수 없다. 돌밭처럼 좁고 편협하고 왜곡된 마음은 말씀의 씨앗이 뿌리를 내리지만 깊이 내리지를 못한다. 가시덤불 밭처럼 세속적인 야망과 욕심을 버리지 못해 정결하고 순결하지 못한 마음 역시 말씀의 씨앗이 열매를 맺을 수 없다. 좋은 밭처럼 유연하고 열린 마음, 수용력이 크고 넓은 마음이라야 말씀의 씨앗이 100, 60, 30배의 결심을 맺을 수가 있다. 열린 넓은 마음이 신앙생활에 있어서 왜 그토록 중요한지, 무엇보다도 말씀에 대한 이런 마음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그렇다면 이 시간에는 100배의 열매를 맺는 좋은 마음, 크고 열린 마음이 어떤 마음인지에 대하여 생각해 보려고 한다.

 

불취하문

불취하문’(不取下問)이란 말이 있다. ‘자기보다 못한 사람에게 묻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 말의 유래가 있다. 중국 춘추시대, ()나라에 공어(孔圄)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의 시호(諡號)가 문()이었다. 시호란 죽은 다음 한 사람의 업적을 평가하여 붙여진 것으로, 문은 최상에 속한 시호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를 공문자’(孔文子)라고 했다. 어느 날, 자공(子貢)이 그의 선생인 공자에게 물었다. ‘공문자는 왜 시호를 문()이라 한 것입니까?아마 자공은 그가 이런 시호를 받기에 합당하지 않다고 여겼던 모양이다. 그러자 공자가 말했다. ‘그는 똑똑하면서도 배우기를 좋아하여 아랫사람에게 묻는 것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문이라 한 것이다.’(子曰 敏而好學 不恥下問 是以謂之文也). 여기서 불치하문이라는 말이 나온 것이다.

 

거장이나 성인은 그냥 되는 것이 아니다. 자기 부족을 알고 그것을 채우기 위해 누구에게든지 기꺼이 배우는 사람이다. 자신을 낮춘 사람, 누구에게나 배우려는 마음을 가진 사람이 바로 열린 마음, 넓은 마음을 가진 사람이다. 닫힌 마음은 모르면서도 배우려하지 않는다. 교만하기 때문이다. 열린 마음은 배우는 일이라면 자기보다 못한 사람에게 묻는 것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겸손하기 때문이다. 사실 모르는 것이 부끄러운 것이지 모르는 것을 알고자 묻는 것이 부끄러운 것이 아니다. 그래서 배움과 겸손은 항상 함께 하고, 열린(넓은) 마음은 곧 겸손한 마음인 것이다. 물이 부족한 곳에서 자라는 나무들 대부분이 침엽수다. 선인장을 비롯하여 사막에서 자라는 식물은 온통 가시로 덮여있고, 대부분은 강한 독성을 지닌다(식물뿐만 아니라 동물이나 곤충도 마찬가지다). 사실 이 가시들은 식물의 잎이다. 메마름 때문에 잎이 가시로 변한 것이고, 또한 독성을 지니게 된 것이다. 메마름이 가시를 만들고 독을 품게 만든다. 사람도 교만하여 닫힌 마음을 가지면 독을 지닌 메마른 가시 덩굴과 같은 존재가 된다. 열린 마음은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 풍성한 생명을 주시기 위하여 겸손하게 자신을 낮췄던 주님의 마음이다(2:5). 이런 주님의 마음을 가질 때 열린 마음 넓은 마음을 갖게 된다. 그래서 자신과 주변을 풍성하고 아름답게 만든다. 말씀에 대한 이런 마음이 100배의 열매를 맺을 수 있다.

 

사람의 말로 받지 아니하고

지난 주일에 고린도교회에 대한 이야기를 했는데, 오늘은 고린도교회와 대조적인 교회를 소개하려고 한다. 데살로니가교회다. 이 교회 역시 바울이 세운 교회로 유대인의 극심한 박해 때문에 3주 정도 선교활동을 하다가 도망을 치다시피 그곳을 빠져나왔다. 이 사실이 마음에 걸린 바울은 다시 그곳으로 가려고 했으나 형편이 여의치 않아 가지 못하고, 대신 아테네에서 디모데를 보냈다. 그리고 기다리던 중 디모데를 통해 데살로니가교회가 건강하고 은혜롭게 잘 성장하고 있다는 보고를 받았다. 이에 너무 기뻐서 편지를 쓰게 되었는데, 이것이 바로 데살로니가전후서다. 짧은 시간 복음을 듣고, 힘들고 어려운 여건에서 신앙생활을 잘하고 있는 그들에게 위로와 격려를 담고, 또한 과격한 종말사상으로 문제를 만들고 있는 사람들을 바로잡는 내용이다. 아울러 바울은 그곳에서 복음을 전할 때의 상황을 회고하며 감사와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 중에 하나가 말씀을 대하는 그들의 태도에 대한 것이다. ‘이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끊임없이 감사함은 너희가 우리에게 들은 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받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니 진실로 그러하도다. 이 말씀이 또한 너희 믿는 자 가운데에서 역사하느니라.’(살전2:13).

 

바울은 이 한 구절로 데살로니가교회가 짧은 기간 복음을 듣고, 그 어려운 상황에서도 건강하고 은혜롭게 부흥할 수 있었던 비결을 이야기한다. 한 마디 그들이 그의 설교를 들을 때 이렇게 될 줄 이미 알았다는 뜻이다. 개인이든 교회든 신앙성장과 부흥의 필수요소가 말씀이라는 것, 특히 말씀을 받아들이는 태도에 있다는 것을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데살로니가교회는 바울이 전한 복음을 사람의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았다. 이는 그들이 얼마나 진지하고 중요하게, 수용하는 마음으로 말씀을 들었는지를 강조한 것이다. 특히 여기서 받을 때에....받음이니는 같은 의미를 가진 다른 두 동사를 사용하여 이를 강조하고 있다. 전자는 그들을 말씀을 듣고 있는 모습을 객관적으로 묘사한 것이고, 후자는 들은 말씀에 대한 주관적인 결단을 묘사한 것이다. 전자는 현재형이고, 후자는 단순과거형이다. 그래서 전자는 말씀을 엄숙하고 진지하게 듣고 있는 모습을 강조하고, 후자는 들은 말씀을 기쁨으로 감격스럽게 받아들인 사실을 강조한다. 그들이 말씀을 진지하게 듣고, 전폭적으로 수용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 말씀이 그들 안에서 역사하여 지금의 큰 결과(열매)를 가져왔다는 것이다. 이것은 앞에서 말한 겸손함과 함께 가져야 할 중요한 말씀에 대한 마음자세다. 사람의 크기를 결정짓는 것은 몸무게나 키가 아니라 마음이다. 수용력(포용력)이 큰 마음이다. 이 수용력이 큰 마음이 열린 마음, 넓은 마음이다. 그런데 이 수용력을 결정짓는 것이 간절함’(절실함, 절박함)이다. 이런 마음에 열매가 보장된다. 이에 대한 좋은 모델이 데살로니가교회다.

 

천국을 경험하는 삶

낮추고 전폭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열린 마음이다. 낮추고 또 낮춰서 평지처럼 되면 거기엔 더 이상 울타리가 필요 없고, 벽도 담도 필요 없게 된다. 모든 차별이 사라지고, 시비도 장애도 갈등도 없다. 거칠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넓디넓은 들판에 많은 꽃들이 다투어 피어나고, 사람도 짐승도 누구나 무엇이든 와서 머물게 된다. 그리고 모든 벽과 담, 울타리가 사라지니 넓은 마음이 되고, 모든 것을 받아들여 품게 되니 풍성하게 된다. 세상의 모든 흙을 다 받아들이니 큰 산이 되고, 세상의 물이란 물은 다 받아들이니 넓고 큰 바다가 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주님은 천국은 너희 안에 있다.’(17:22)고 하셨는데, 이런 의미에서 넓은 마음 열린 마음이 곧 천국인 것이다. 천국은 차별도 시비도 장애도 갈등도 없는 곳이기 때문이다. 이런 마음을 갖는 것이 천국을 경험하며 사는 것이다. 하지만 닫힌 마음은 자꾸만 울타리만 쌓고, 벽과 담만 높아진다. 그래서 누구도 무엇도 받아들이지 못하니 소통이 막히고, 스스로 그 안에 갇히고 만다. 그러니 아무런 열매를 맺지 못한 메마른 가시덩굴 밭이 되고 돌밭이 되고 길가 밭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지옥이 따로 없다. 모든 관계가 단절이 되고 어떤 의미 있는 열매를 맺을 수 없는 곳이 지옥이기 때문이다. 세속적인 셈법은 외형의 크기나 숫자로 결정하지만 하나님의 셈법은 마음이다. 겸손하고 수용성이 큰 열린 마음을 가진 사람이 주님 앞에 큰 사람이 되고, 큰 교회를 세워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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