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어주소서! ‘입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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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kagathos 댓글 0건 조회 28,545회 작성일 21-11-14 16:04본문
열어주소서! ‘입Ⅴ’
고후1:15~20
2021. 11/14. 11:00
복을 부르는 말
위장병을 앓고 있던 어떤 분이 부흥회에 참석했는데, 얼마동안 설교를 듣다가 꾸벅꾸벅 졸게 되었다. 부흥회 강사가 그 모습을 보고 ‘밥이나 실컷 처 잡수고 조세요!’ 라고 농담조로 책망을 했다. 위장병 때문에 밥 한 번 실컷 먹어보는 것이 소원이었던 이 사람은 졸다가 밥이나 실컷 먹으라는 부흥사의 말에 잠이 번쩍 깨어 벌떡 일어나서 ‘아멘’하고 외쳤던 것이다. 누가 봐도 코미디의 한 장면이었다. 한동안 그곳은 웃음바다가 되었다. 그런데 이 코미디 같은 이 사건에 하나님의 놀라운 치유의 역사가 일어났다. 사실 다른 사람에게는 욕으로 들릴 수 있는 이 말이 이 사람에게는 너무도 절실한 소원이었다. 그래서 그는 잠결에 이 말을 듣고 ‘아멘’을 외친 것이었고, 아멘을 외친 순간 위장병이 완전히 치유되었다.
지난 주일에도 말씀드렸지만 아무리 축복의 말도 듣는 사람이 합당하지 않으면 그 사람에게 복이 임하지 않고 도리어 축복하는 사람에 돌아온다고 했다. 그래서 듣는 사람을 상관하지 말고 축복하라고 했다. 그렇지만 농담도 책망하는 말도 받아들이는 사람이 그것을 은혜로 받으면 복이 된다. 말 자체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받아들이는 자세 또한 중요하다. 지난주일 말씀드린 것처럼 복이 되는 말도 있지만 복을 부르는 말도 있다. 이 시간에는 복을 부르는 말에 대하여 생각해 보려고 한다. 복을 부르는 말 중에 하나가 바로 위장병 환자가 외쳤던 ‘아멘’이다. 아멘이란 이 말이 이 사람에게 고질병을 치료하는 놀라운 복을 부른 것이다.
찬국방언, 아멘
아멘이란 말은 대표적인 우리 기독교의 용어 중에 하나다. 이 말은 신구약성경에 자주 나오는 단어다. 이 단어는 히브리어인데, 번역하지 않고 히브리어를 그대로 사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진실로’, ‘틀림없이’ 라는 뜻으로 번역하여 사용한 경우도 있다. 이 단어는 사막에서 천막의 줄을 매기 위해 땅에 박아놓은 말뚝을 가리키는 말에서 유래되었다. 아멘은 동사 ‘아만’(אמן)에서 왔는데, 이는 ‘든든한 기둥으로 받쳐준다.’는 뜻이다.
성경에서 아멘의 쓰임이 여러 가지다. 아멘이 지금은 주로 기도, 찬양, 혹은 선언이나 선포가 종결되는 끝맺음의 의미로 많이 쓰이고 있으나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 말은 선포나 선언, 찬양, 기도하는 것을 지지 내지 확신, 동의, 시인하는 중요성을 가지고 있다. 즉, 아멘의 고백은 선포되는 메시지나 엄숙한 기도에 동참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히브리어 성경을 최초로 헬라어로 번역한 70인 역 성경에서는 아멘을 ‘그렇게 되기를’(may it be so)이라고 대부분 번역하였다. 아멘은 유대회당에서도 사용되었는데, 당시 유대인의 회당예배에서 ‘아멘’은 공동의 대답이고(지지, 확신, 동의, 시인), 개인적인 책임이며, 또한 ‘하나님은 신실하신 왕’이라는 고백이었다. 특히 탈무드는 아멘을 고백적인 의미로 해석하고 있다. 탈무드에 따르면 아멘(אמן)은 ‘하나님’(אל), ‘왕’(מלך), ‘신실’(נאמן)이란 단어의 첫 자음을 모아놓은 것으로, ‘하나님은 신실한 왕이다.’는 뜻의 약자라고 해석하고 있다. 이를 ‘아크로스틱 기법’에 의한 해석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아멘이라고 외치는 것은 하나님은 신실한 왕이라는 고백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유대회당의 전통이 기독교 공동체로 이어지게 된 것이다. 그래서 우리 기독교에서도 아멘을 ‘천국방언’이라고 하고, 또한 우리 기독교를 ‘아멘종교’라고도 한다.
아멘의 삶을 실천한 바울
본문을 보면, 바울 역시 고백의 의미로 사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먼저 편지를 써서 보내고, 고린도를 직접 방문하겠다고 했다. 그래서 바울은 에베소에서 출발하여 고린도에 갔다가, 거기서 마케도니아로 가고, 다시 고린도를 들렸다 예루살렘으로 가는 여행계획을 밝혔다(15,16). 그러니까 두 번을 고린도에 가려고 했다. 그러나 바울은 계획을 수정해서 한번만 고린도로 가는 것으로 바꾸었다. 그랬더니 고린도교회에서 바울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말을 경솔하게 하고 변덕스러운 사람’이라고 비난했다. 스스로 그들에게 빌미를 제공한 셈이 된 것이다. 이렇게 비난하는 사람들에 대한 바울의 변명이 본문이다.
물론 여기서 그는 변경이유를 구체적으로 밝히고 있지 않지만 핵심은 하나님의 뜻을 따르다보니 이렇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가 한 유명한 고백이 ‘아멘’이다. ‘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니 그런즉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아멘 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느니라.’(20). 우리에게는 ‘아니오’가 분명히 있다. 사실 우리가 계획한대로 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기도하면서도 이 길인지 저 길인지 고민하기도 하고, 기도하면서도 기도가 어떻게 응답될 것인지 알지 못하여 고민할 때도 있다. 그러나 우리의 믿음이 무엇인가? 하나님은 언제나 ‘예’가되신다는 사실이다. 일을 행하신 분도 하나님, 그것을 만들어 성취하시는 분도 하나님, 게다가 하나님은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때문에 하나님은 언제나 ‘예’(아멘)이 되신다. 바울은 이 점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바울의 아멘신앙
사실 바울이 얼마나 사려가 깊은 사람인데, 계획을 발표해놓고, 그것을 지키지 않으면 자신에게 비난과 불이익이 따른다는 것을 왜 몰랐겠는가? 고린도교회 안에 자신을 싫어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그로서 계획을 번복하는 일이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는 자신에게 쏟아질 비난과 불이익을 감수하며 자신의 계획을 내려놓았다. 그가 이렇게 한 이유는 분명하다. 첫째는 하나님의 뜻에 아멘하기 위해서였다. 그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뜻은 항상 우선순위 1번이었다. 이런 모습을 그의 삶에서 자주 확인할 수 있다(행16:6~10, 행20:22~24). 그리고 다음은 하나님의 뜻에 아멘 하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바울의 인생목적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었다(고전10:31).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것을 삶의 목적으로 살아가는 그에게 이런 선택은 당연한 일이었다. 마지막으로 이것이 아멘의 삶을 사셨던 주님의 삶을 본받는 길이기 때문이다. ‘.....너희 가운데 전파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예하고 아니라함이 되지 아니하셨으니 그에게는 예만 되었느니라.’(19).
이와 같은 바울의 아멘신앙에는 이런 고백이 전제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하나님은 신실하시고, 하나님의 말씀 또한 신실하다.’(18). 이와 같이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의 신실하심을 믿기에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의 뜻에 아멘 할 수밖에 없고, 아멘 해야 하는 것이다. 칭찬보다 비난이 쏟아지고, 막대한 불이익이 따르고, 좁고 험하여 힘들고 어려운 길인 줄 알면서도 우직하게 아멘을 외친 이유가 이 때문이다. 이것이 아멘의 뜻이고, 아멘신앙이다. 가끔 이렇게 소중한 의미를 가진 아멘의 뜻과 상관없이 아멘을 유도하는 사람이나 그냥 맹목적으로 아멘을 외쳐대는 사람들 때문에 아멘하지 말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초대교부 제롬의 기록에 보면, 초대교회에서 성도의 ‘아멘’ 소리가 얼마나 컸던지 마치 바다의 파도소리와 같고, 하늘의 우레와도 같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초대교회는 아멘의 중요성을 알고, 아멘을 역동적으로 고백한 교회였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오늘의 우리도 아멘의 이와 같은 의미를 알았으니 아멘을 역동적으로 고백하여 아멘의 복을 누리자.
자성예언(Self-Fulfilling Prophecy)
심리학에 ‘자성예언’(自成豫言)이라는 말이 있다. 자꾸 자신이 반복해서 말하면 말한 그대로 된다는 이론이다. 즉, 자주 불행하다고 말하는 사람은 결국 불행해 진다는 것이고, 힘들다고 말하면 정말 힘들어지고, 아프다고 말하면 진짜 아프게 된다는 것이다. 반면에 잘된다고 잘될 것이라고 말하면 잘된다는 것이다. 입술의 열매가 자신의 운명을 결정한다는 뜻이다. 전적으로 동의할 수는 없지만 어느 정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가 말한 대로 되게 하시는 분이시기도 하기 때문에 그렇다. ‘그들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내 삶을 두고 맹세하노라.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민14:28). 하나님께서 우리의 말이 하나님의 귀에 들린 대로 시행하시니 우리의 말대로 되는 것은 당연한 말이다. 하지만 꼭 그렇게 하시지 않는 경우도 자주 있기에 꼭 우리가 말한 그대로 된다고 말할 수 없다.
그렇지만 지난번에 말씀드린 신앙고백이나 찬양, 그리고 축복의 말처럼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듣고 싶어 하시는 말이라면 상황은 달라질 것이다. 이런 말들은 자주, 많이, 크게 할수록 좋고, 반드시 복을 부르게 된다. 반드시 귀에 들린 대로 시행해주실 것이기 때문이다. 아멘도 마찬가지다. 자주, 많이, 크게 할수록 좋다. 특히 본문에서 바울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방법 중에 하나가 아멘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 한 가지 사실만으로도 아멘의 중요성과 가치를 충분히 알 수가 있다. 성도에게 삶의 목적인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일이 아멘이란 고백으로 가능하다니 이 얼마나 놀랍고 반가운 일인가! 말씀을 읽거나 들을 때, 기도와 찬양에서, 그리고 일상에서 입을 크게 열어 자주, 많이, 크게 아멘의 고백을 드립시다.
관련링크
- https://youtu.be/C8yFc6pzUCQ 13150회 연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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