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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해서 묵상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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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kagathos 댓글 0건 조회 30,780회 작성일 22-01-09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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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해서 묵상하기

119:9~16

2022. 1/9. 11:00

saturate!

어느 글에서 본 것이다. 유대인 중에는 치매, 정신병, 중풍병자가 거의 없다고 한다. 그 이유는 그들이 말씀을 암송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물론 사실을 확인해보지는 못했으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그들이 어려서부터 가정에서 특히 율법서(모세오경)를 소리 내어 읽고, 듣고, 또 암송하면서 자란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웬만한 유대인은 모세오경을 모두 암송한다고 한다. 그들은 유명인이나 부자를 알아주지 않는다. 우리가 잘 아는 유명한 영화감독 스티븐 스필버그나 과학자 아인슈타인과 같은 사람이 유대인인데, 이런 유명한 감독이나 과학자보다 말씀을 잘 아는 사람을 최고로 쳐준다. 그래서 유대사회에서 가장 존경받는 인물은 말씀교사인 랍비. 주님 당시 많은 유대인이 나사렛 벽촌출신의 가난한 목수였던 주님을 그토록 놀라며 따른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이는 그의 가르치시는 것이 권위 있는 자와 같고, 그들의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함일러라.’(7:29).

 

우리 기독교에서도 유대인과 비슷한 삶을 살았던 사람들이 있다. ‘청교도. 그들 역시 자녀교육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했는데, 그들의 교육목적은 말씀공부에 있다. 그들은 14살 때까지 어머니가 다른 직업을 갖지 않고, 집에서 아이에게 성경암송을 시키고, 성경공부를 시켰다. 인사를 해도 말씀으로 심령이 흠뻑 젖기를 바란다.’ 혹은 말씀으로 마음을 가득 채우라.’는 뜻을 가진 쎄츄레이티드(Saturated)라고 했다. saturated가 뭐냐? 흠뻑 젖어서 넘치는 것을 뜻한다. , 안에서부터 가득 채워서 밖으로 흘러넘치는 모습(be full of)이다. 이렇게 말씀을 심령에 가득 채워서 흘러넘치도록 사는 것을 인생의 최고목적으로 삼았던 사람들이 청교도다. 우리도 금년 한 해 주님의 말씀에 흠뻑 젖어서 말씀이 흘러넘치기를, 주님의 복에 흠뻑 젖어서 복이 흘러넘치기를 소원한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알찬 성장을 위한 주님과 친밀감 쌓기, 지난주일 끊임없는 대화에 이어 두 번째로 계속해서 묵상하기에 대해 은혜를 나누고자 한다.

 

내 마음에 두었나이다.

성경에서 가장 긴 장인 시119편은 몇 가지 특징이 있다. 우선 22개의 히브리어 알파벳 순서를 따라 8절씩 모두 22개 단락 176절로 되어 있고, 말씀을 뜻하는 여러 유사어를 사용하여 거의 모든 구절에 말씀과 관련된 단어가 나온다는 점이다. 119편의 주제는 한 마디로 말씀예찬이다. 본문은 119편의 두 번째 단락으로 매 구절이 히브리어 알파벳 두 번째 글자인 배트’(ב)로 시작을 하고 있고, 12절을 제외한 모든 구절이 전치사로 시작하고 있는 것도 특징이다. 본문의 핵심 단어는 기쁨,행복이다이 기쁨과 행복을 말씀과 관련하여 말하고 있는 것이 본문이다(14). 또한 이 기쁨과 행복은 주님과의 친밀함을 누릴 때 누리게 되는 복이다. 주님이 곧 기쁨이고 행복이시기 때문이다. 특히 주님은 우리에게 잃어버린 에덴(‘기쁨’, ‘행복이란 뜻)을 회복시켜 주신 분, 우리에게 에덴을 가져다주신 분이기 때문이다. 이 말은 곧 말씀과 주님과의 친밀함이 깊은 관련이 있다는 뜻이다. 말씀이 곧 주님이시기 때문이다.

 

11절이 이를 잘 보여준다. ‘내가 주께 범죄하지 아니하려 하여 주의 말씀을 내 마음에 두었나이다.시인 기쁨과 행복의 삶을 누린 비결이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인생의 모든 불행은 주님과의 멀어짐, 혹은 단절, 다시 말하면 주님과 친밀하지 못한데서 비롯된 것이다. 그 중심에 죄가 있다. 죄는 우리를 주님과 멀어지게 하고, 주님과의 관계를 단절시켜 친밀감을 갖지 못하도록 만든다. 그래서 죄를 주님과 우리 사이를 가로막는 담이라고 한다. 이 죄 때문에 아담과 하와가 기쁨과 행복의 상징인 에덴에서 쫓겨나게 되었다. 이런 그들에게 찾아온 것은 두려움이고, 부끄러움이고, 노동의 수고와 해산의 고통이었다. 인생이 참된 기쁨과 행복을 잃어버린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런데 말씀이 죄를 막아내는 방패이고, 죄를 죽이는 백신이다. 그래서 본 구절에서 시인은 죄로부터 자신을 지켜내기 위해 말씀을 자기 마음에 두었다고 고백한 것이다. 여기서 두다는 말은 히브리어로 차판(צפן)이라고 하는데, ‘간직하고, 저장하고, 비축한다.’는 뜻이다, 소중한 물건이나 사람을 숨겨놓고안전하게 지킨다는 의미다. 시인은 말씀을 그렇게 하고 있다는 고백이다.

 

말씀을 마음에 둔다는 것

그러면 말씀을 어떻게 마음에 간직하고, 차곡차곡 저장하고, 비축할 수 있을까? 어떻게 말씀을 마음에 둘까? 그것이 바로 묵상이다. 계속해서 묵상하는 것이다. 본문의 표현에 따르면, ‘작은 소리로 읊조리는 것’(15)이다(개역성경은 이를 묵상으로 번역하고 있음). 이는 암송이다. 말씀의 의미를 생각하면서 계속 암송하는 모습을 보여준 것이다. 이렇게 말씀을 작은 소리로 읊조리는 것, 곧 계속적인 묵상이 말씀을 마음에 두는 것이다. 말씀을 마음에 간직하고, 차곡차곡 저장하고, 비축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성숙한 성장을 위해 주님과의 친밀함을 쌓는 또 하나의 비결이다. 그렇다. 말씀을 가까이 하는 것이 주님을 가까이 하는 것이다. 말씀을 사랑하는 것이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다. 말씀을 소중히 여기는 것이 주님을 소중히 여기는 것이다. 말씀과의 친밀함이 주님과의 친밀함을 결정한다. , 말씀에 대한 태도가 주님에 대한 태도를 결정짓는다. 수많은 경건한 믿음의 사람들이 말씀을 사랑하고, 말씀을 사모하고, 말씀을 소중히 여기고, 말씀을 가까이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러므로 말씀을 계속 묵상하여 말씀을 마음에 두는 것이 주님과의 친밀함을 결정짓는다. 이와 같은 친밀함을 통해 성숙한 영적 성장이 이뤄진다.

 

말씀의 가치를 알아야

그러면 어떻게 말씀을 계속 묵상하여 마음에 둘 수 있을까? 그것은 말씀의 가치를 알아야가능하다. 사람은 가치를 추구하는 존재다. 자신이 생각하여 가치가 있다고 판단하는 것에 시간과 열정과 물질을 투자하게 된다. 그래서 이것을 가치관이라고 부른다. 앞에서 두다.’에 해당되는 히브리어 차판을 소개했다. 이 단어에 간직하다.’, ‘숨기다.’는 뜻이 있다고 했는데, 이는 너무 소중하고 중요하기 때문에 깊이 숨겨놓는 것, 혹은 깊이 간직하는 것을 뜻한다. 우리는 귀중품을 함부로 여기 저기 던져놓지 않는다. 잃어버리지 않도록, 훔쳐가지 못하도록, 함부로 망가뜨리지 못하도록 소중히 간직하거나 은밀한 곳에 깊숙이 숨겨놓는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두려면 즉, 말씀을 계속해서 묵상하려면 말씀을 보물처럼 소중히 여겨야 한다. 말씀을 존중해야 한다. 그래야 마음 깊이 간직하기 위해 계속해서 작은 소리로 읊조리게(묵상하게) 된다. 크게 성공한 어떤 분의 이야기다. 그는 평생 하나님께 많은 복을 받고, 노년에도 여전히 왕성하게 쓰임 받고 있는 분이다. 그는 항상 식사하기 전에 말씀을 읽는다고 한다. 시간이 없어서 둘 중 하나를 포기해야 한다면 식사를 포기하고, 말씀을 읽는 것을 택한다고 한다. 그가 이런 선택과 결단을 한 이유는 간단하다. 말씀의 가치를 알기 때문이다. 자신의 형통이 말씀에 대한 헌신에서 왔다고 믿기에 기꺼이 말씀에 헌신을 한 것이다

 

유익한 것에 가치를 둔다.

그렇다면 이런 가치를 결정짓는 것이 무일까? 그것은 유익이다. 사람은 자기에게 유익한 것이라야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가치를 말해도 자기에게 유익하지 않으면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것은 말씀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본문에서 시인은 말씀을 마음에 두게 된 이유를 이렇게 말한다. ‘내가 모든 재물을 즐거워함 같이 주의 증거들의 도를 즐거워하였나이다.’(14). 이를 표준 새번역은 이렇게 번역하고 있다. ‘주의 교훈을 따르는 이 기쁨은, 큰 재산을 가지는 것보다 더 큽니다.말씀이 주는 기쁨이 세상의 모든 재물이 주는 기쁨보다 더 크다는 고백이다. 사실 재물이 주는 기쁨은 실로 크다. 이것 때문에 울고 웃는 것이 인생이고, 이것 때문에 온갖 고생과, 심지는 수모도 견딘다. 그만한 유익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시인은 이런 재물보다 말씀이 자신에게는 더 유익하다는 것이다. 더 큰 보람과 기쁨을 준다는 것이다. 그래서 말씀이 그에게는 최고의 가치가 된 것이다. 그래서 그는 이 소중한 주의 말씀을 마음에 두기위해 작은 소리로 읊조리게 된 것이다(15). 주의 말씀을 사랑하여 종일 작은 소리로 읊조리고(97), 늘 읊조리고(99), 조용히 읊조리며 새벽녘에 눈을 뜨고(148), 주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하루에 일곱씩 찬양하였다(164). 말씀에 대한 유익을 통해 말씀의 가치를 알았기 때문이다. 다윗도 같은 고백을 하고 있다.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시키며,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하여 우둔한 자를 지혜롭게 하며, 여호와의 교훈은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고, 여호와의 계명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하시도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도는 정결하여 영원까지 이르고 여호와의 법도 진실하여 다 의로우니 금 곧 많은 순금보다 더 사모할 것이며 꿀과 송이꿀보다 더 달도다.’(19:7~10).

 

금년에도 교회에서 주님과 친밀함을 쌓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동원하여 말씀을 마음에 두는 훈련을 하고 있다. 이런 말씀과 관련된 경건활동이 성공하려면 시인처럼, 그리고 다윗처럼 말씀의 유익을 깊이 경험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우리의 선수적인 태도가 필요하다. 사랑하는 마음을 품고 말씀을 계속해서 묵상하는 것이다. 말씀 묵상을 통해 말씀의 은혜와 능력을 경험하고, 구원의 생명과 확신, 기쁨, 치유, 감사, 행복 등 다양한 말씀의 유익을 경험하게 된다. 이런 경험은 더욱 말씀 묵상에 집중하게 만든다. 이것이 순환적으로 작동하게 되고, 이런 순환과정을 통해 마치 물결처럼 우리 삶으로 확장되어 퍼지게 된다. 이와 같은 영적 순환작용을 통해 주님과의 친밀도를 높이게 된다. 식사를 포기하고 말씀 읽기를 선택한 어떤 분처럼 보배로운 주의 말씀을 사랑하고 사모하여 계속해서 묵상하기를 바란다. 이와 같은 경건한 습관이 우리를 주님과 더욱 친밀하게 하여 성숙한 영적 성장을 이루게 할 것이다. ‘내가 주께 범죄하지 아니하려 하여 주의 말씀을 내 마음에 두었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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