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르페 디엠(07-08-26) > 설교말씀 기뻐하는교회 - 대한예수교장로회

본문 바로가기

설교말씀

설교말씀 HOME


까르페 디엠(07-08-26)

페이지 정보

작성자 장양식 댓글 0건 조회 16,945회 작성일 07-08-26 15:39

본문

까르페 디엠
마6:25~34

「죽은 시인의 사회」라는 영화를 보신 분은 ‘까르페 디엠’(carpe diem)이란는 이 단어를 기억하실 것입니다. 키팅 선생이 그의 학생들에게 가르쳐 준 말입니다. 이 단어는 라틴어로 ‘삶을 즐겨라!’ ‘현재를 즐겨라!’는 뜻입니다. 특히 규율과 전통에 도전하는 청년들의 자유정신을 상징하는 말입니다. 이 단어에는 힘든 현실의 삶 속에서도 언제나 긍정적인 자세로 도전하여 진정한 행복과 즐거움을 추구하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즉 오늘 최선을 다하여, 오늘을 내 생애 최고의 날이 되게 하라는 의미입니다.

대개의 사람들은 오늘의 가치를 잊고 삽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오늘’이란 과거에 대한 회한과 탄식, 아직 오지도 않은 미래에 대한 염려로 가득 채워져 있습니다. 오늘은 어제 죽은 사람이 그토록 그리워했던 내일이었는데, 그 소중한 오늘이란 시간들을 헛되이 보내버립니다. 어느 책에서 읽은 이야기입니다. 어느 맑은 가울 날 황금빛 들판을 마차가 흙먼지를 일으키며 달리고 있습니다. 그 마차에는 세 사람의 승객이 타고 있었는데, 한 사람은 뒤를 보고 눈물을 흘리고 있고, 다른 한 사람은 망원경으로 앞을 바라보며 깊은 근심에 쌓여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중에 또 한 사람은 황금빛 들판과 단풍으로 물든 아름다운 산, 높고 푸른 하늘 등 주변 환경에 푹 젖어 콧노래를 부르며 싱글벙글거렸습니다. 이 세 명의 승객은 다름 아닌 과거, 미래, 현재입니다. 이는 과거에 대한 집착, 미래에 대한 염려는 현재 펼쳐지고 있는 가을 하늘과 주변 산천, 황금들판을 즐길 수 없게 만들어 버린다는 교훈을 줍니다.

세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첫째는 과거의 사건 때문에 울고 웃고 분통을 터뜨리며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다음은 아직 일어나지도 않는 일에 마음을 쓰며 근심과 걱정 속에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가하면 현재를 소중히 여기고 현재를 즐기면서 살아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신자도 마찬가집니다. 현재보다는 과거의 신앙경력만 자랑하며 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항상 결심만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지만 참 신앙은 과거도 미래도 아니고 현재입니다. 신앙은 현재형입니다. 지금이 중요합니다. 지금 주님을 신실하게 믿고, 지금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하여 사랑하며 섬기고, 예배를 소중히 여기고, 말씀과 기도에 집중하는 생활이 중요합니다.

스펜서 존슨은 그의 책 「선물」에서 ‘어제는 역사이고, 내일은 미스테리이며, 그리고 오늘은 선물이다.’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현재(present)는 하나님께서 모두에게 공평하게 주신 선물(present)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는 ‘까르페 디엠!’ 오늘이 선물이 되도록 의미있게 살아야 합니다. 현재를 아름답고 행복하게 살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까요? 본문이 이에 대한 훌륭한 해답입니다.

염려를 극복하라!
현재 우리의 삶을 무덤으로 만들어 버리는 것이 염려입니다. 염려에 사로잡히면 편안도 기쁨도 없습니다. 삶의 균형과 감사를 잃어버리게 됩니다. 염려 중에 가장 보편적인 것이 생활의 염려입니다. 본문에서처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는 염려가 인간에게 있어서 가장 보편적인 염려입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육체를 가지고 있고, 또한 욕구가 있기 때문입니다. 먹고 마시고 입는 문제는 인간의 생물학적 욕구입니다. 그런데 인간은 배고픔을 면하고 갈증을 해소하고 몸을 기리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더 잘 먹고 싶은 욕심, 더 좋은 것을 마시고 싶고, 더 좋은 것을 입고 싶은 욕심이 있습니다. 이 욕심이 있는 한 인간은 무엇을 먹든, 무엇을 마시든, 무엇을 입든 만족할 수 없고 계속해서 더 좋은 것, 더 나은 것을 좇아 염려하게 되는 것입니다. 특히 본문의 이 말씀은 당장 내일 먹고 마시고 입을 것이 없는 상황에 대한 염려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그것까지도 오늘 있는 것으로 만족하고 내일 일은 염려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 날 괴로움은 그날에 족하니라.”(34).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당장 내일 먹을 양식이 없고, 마실 물이 없습니다. 입을 옷도 없습니다. 그런데도 어떻게 염려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어떻게 이 염려를 극복할 수가 있겠습니까?

1. 믿음을 가지는 것.
그토록 행복을 갈망하면서도 행복과 거리가 먼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 우리의 삶입니다. 그 원인은 욕심 때문입니다. 소유가 늘어날수록 욕심도 늘어나고, 욕심이 커질수록 염려도 커진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소유를 늘리기보다 욕심을 줄여야 하고, 현재의 삶을 주님이 주신 최선의 것으로 받아들이며 자족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자족하면 감사가 피어나고 염려는 떠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최상의 하루하루를 보낼 수가 있을 것입니다. 이와 같이 염려를 우리 삶에서 몰아내고 자족하므로 감사하는 생활을 하는 열쇠가 바로 바로 ‘믿음’입니다(32, 참조 25~30).

본문에서 주님은 하나님을 두 가지로 우리에게 소개하면서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가질 것을 말씀하십니다. 하나는 우리의 필요를 잘 아시는 분(32), 다른 하나는 우리의 필요를 채우시는 분(33)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필요를 아실뿐만 아니라 그것을 채울 수 있는 능력이 있는 뿐이시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나보다 나의 필요를 잘 아시는 분이시요, 또한 그 필요들을 채워주시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잠잠히 그 분을 믿고 따르는 일입니다. 믿음은 우리 마음에서 모든 염려와 걱정을 지워내는 지우개와 같습니다. 염려라는 영어 단어를 보면, 믿음의 중요성이 더욱 분명해 집니다. 염려를 영어로 'care'라고 합니다. 이 단어는 두 가지 서로 다른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는 ‘염려, 걱정, 근심’이란 뜻이고, 다른 하나는 ‘돌봄, 관심’이란 뜻입니다. 무슨 일이든 그것을 내가 붙들고 있으면 ‘염려, 걱정, 근심’의 대상이 되지만, 믿음으로 하나님께 맡기면 ‘돌봄, 관심’의 대상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현재 내 삶의 모든 염려를 극복하는 일, 그래서 현재를 아름답고 행복하게 사는 길은 하나님께 대한 분명한 믿음을 가지는 것입니다. 참 믿음의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2. 올바른 삶의 목적을 추구하는 것.
33절에,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이 말씀은 전후 문맥과 연결이 되지 않는 독립구절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조금만 깊이 생각해 보면 그렇지 않다는 것을 금방 알 수가 있습니다. 왜 사람들이 먹고 마시는 문제, 입는 문제와 같은 육적인 일에 염려를 하면서 욕심을 부릴까요? 그것은 삶의 목적과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지난주일 설교에서 말씀드렸듯이 관심이 하늘보다는 땅(영적인 것보다는 육적인 것, 영원한 것보다는 부질없는 것)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먹는 것, 마시는 것, 입는 것으로부터 자유롭지를 못한 것입니다. 주님은 이런 태도를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32)고 단정하십니다. 이방인이 누구입니까? 믿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본문은 신자들 역시 그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에 대한 주님의 탄식입니다.

초등학교시절 쉬는 시간마다 친구들과 땅따먹기 놀이를 하였습니다. 조금이라도 더 넓은 땅을 갖기 위해 손가락을 느려가면서 땅바닥에 선을 그었습니다. 그러다가도 수업 시작종이 울리면 손으로 다 휘저어 버리고 흙을 털고 교실로 들어갔습니다. 우리 인생살이도 땅따먹기와 같습니다. 종이 울리면 다 놓고 가야하는데도 그것이 전부인 것처럼 더 가지려고 울기도, 다투기도, 화를 내기도합니다. 그것 때문에 잠을 못자며 근심, 걱정, 염려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소중한 것을 발견하면 미련없이 포기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더 이상 울거나 다툴 필요도, 염려하거나 걱정할 필요도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고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자는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러면 땅의 염려는 다 살아지게 됩니다. 우리의 필요를 다 아시는 주님께서 우리의 육적인 생활에 필요한 것들은 책임지고 채워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33)” 그리고 이러한 삶에는 욕심과 염려가 틈을 탈 수가 없습니다. 더 나아가서 이렇게 올바른 목적을 추구하는 사람은 삶의 방황이 없고, 세월을 허송하지 않습니다. 하루하루를 최상으로 보내게 되는 것입니다.

3. 현재를 소중히 여기는 것.
어떤 사람이 동이 트기 전에 강가로 산책을 갔습니다. 강둑을 걷다가 한 곳에 자리를 잡고 걸터앉았습니다. 그는 그곳에 종이 가방을 하나 발견했는데, 그 가방 안에 작은 돌들이 들어 있었습니다. 이 사람은 그 돌들을 꺼내서 하나씩 강물 속으로 던져 넣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마지막 돌을 던져 넣으려는 순간 막 떠오르는 아침 햇살이 자기 손에 들려 있는 작은 돌에 비치면서 그 돌에서 빛이 났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물속에 던지지 않고 유심히 보았더니 그것은 다이아몬드였습니다. 지금까지 그가 물속에 던져 넣었던 것은 돌이 아니라 다이아몬드였습니다. 이 사람은 너무 기가 막혀서 다리를 뻗고 통곡을 했습니다.

이는 우리 인생을 잘 반영해주는 이야기입니다. 다이아몬드는 우리 인생일 수도 있고, 혹은 기회, 시간일 수도 있습니다. 문제는 다이아몬드인줄 모르고 강 속에다 무심코 던져버리듯 이 소중한 것들을 그저 허송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생각할수록 가슴을 치며 통곡할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아직 그것이 하나 남아 있다는 사실입니다. 남은 인생, 남은 기회, 남은 시간을 잘 활용하면 얼마든지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것입니다.

톨스토이의 민화 중에 「세 가지 질문」이 있습니다. 이 책은 톨스토이가 그의 나이 일흔이 넘어서 자신의 문학인생을 돌아보며 쓴 것입니다. 그 세 가지 질문은 ‘가장 중요한 때는 언제 인가? 가장 중요한 사람은 누구인가? 가장 중요한 일은 무엇인가?’ 이에 대한 답은 가장 중요한 때는 지금이고, 가장 중요한 사람은 지금 내 곁에 있는 사람이며, 가장 중요한 일은 그 사람에게 선을 베푸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내게 가장 소중한 것은 지금 이 시간입니다. 지금 이 시간 내 곁에 있는 사람,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이 일이 가장 소중한 것입니다. 이것을 깨닫고 아는 것이 현재를 아름답고 행복하게 사는 비결입니다.

본문 34절의 말씀을 보십시오.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 날 괴로움은 그날에 족하니라.” 이는 내일에 대한 아무런 계획이나 준비 없이 막 살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이 말씀은 역설입니다. 건강한 내일, 건강한 미래에 대한 말씀입니다. 그것은 바로 오늘이라는 시간을 소중히 여기며 충실하게 사는 것입니다. 오늘 성실하지 못하고, 오늘 게으르고 나태한 사람에게 건강한 내일은 없습니다. 행복한 내일, 희망찬 미래를 기대하십니까? 오늘을 소중히 여기십시오.

현재는 선물입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들에게 공평하게 주신 선물입니다. 우리에겐 오늘 최선을 다하여, 오늘을 내 생애 최고의 날이 되게 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선 현재 우리의 삶을 파괴시키는 염려를 극복해야 합니다. 염려는 총칼로 정복할 수도, 약물로 치료할 수도 없는 무서운 우리의 내적인 적입니다. 이것을 극복하는 비결은 믿음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일입니다. 그리고 이 믿음을 기초로 하여 올바른 삶의 목적을 추구하면서 오늘이라고 하는 이 시간에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Total 835 / 9 page

설교말씀 목록

게시물 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