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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통함을 영통함으로(07-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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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양식 댓글 0건 조회 13,942회 작성일 07-09-06 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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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통함을 영통함으로
삼상1:1-11

누구에게나 있는 상처.
정채봉 씨의 생각하는 동화책 「모래알 한 가운데」에 ‘상처 없는 새가 어디 있으랴’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상처를 입은 젊은 독수리들이 벼랑으로 모여들기 시작했습니다. 날기 시험에서 낙방한 독수리. 짝으로부터 따돌림을 받은 독수리. 선배 독수리로부터 할큄 당한 독수리 등. 그들은 이 세상에서 자기들만큼 상처가 심한 독수리는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사는 것이 죽느니만 못하다는 데 금방 의견이 일치했습니다. 이때, 망루에서 이를 본 독수리 중의 영웅이 쏜살같이 내려와서 이들 앞에 섰습니다. 그리고 물었습니다.
'왜 자살하고자 하느냐?"
'괴로워서요. 차라리 죽어 버리는 것이 낫겠어요.'
영웅 독수리가 말했습니다.
'나는 어떤가? 상처 하나 없을 것 같지? 그러나 이 몸을 봐라.'
영웅 독수리가 날개를 펴자 여기저기 상처의 흔적이 나타났습니다.
'이건 날기 시험 때 솔가지에 찢겨 생긴 것이고, 이건 선배독수리한테 할퀸 자국이다. 그러나 이것은 겉에 드러난 상처에 불과하고, 마음의 상처 자국은 헤아릴 수도 없다.'
영웅 독수리가 조용히 말했습니다.
'일어나 날자꾸나. 상처 없는 새들이란 이 세상에 나자마자 죽은 새들이다. 살아가는 우리 가운데 상처 없는 새가 어디 있으랴!'

‘살아가는 우리 가운데 상처 없는 새가 어디 있으랴!’ 그렇습니다. 세상을 살면서 상처 없는 인생이 어디 있겠습니까? 사람마다 말 못할 상처의 아픔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 우리 인생입니다. 그래서 그 상처 때문에 울기도 하고 괴로워하기도 하고 고통을 당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 상처들을 어떻게 처리하느냐는 것입니다. 이에 따라 상처가 우리 인생을 파괴시키는 독이 될 수도 있고, 우리 인생을 더욱 빛나게 하는 별이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상처를 처리하는 방법
독일의 음악가 하이든은 신실한 신자였습니다. 어느 날 예술가들이 한 자리에 모여 고통의 문제를 놓고 열띤 토론을 하였습니다. 그 주제는 “인간에 대한 증오, 경제적 궁핍, 창작활동에 대한 무력감, 사람들로부터 심각한 상처를 받을 때 어떤 방법으로 이를 극복하는가?”였습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나름대로의 비법을 공개했습니다. ‘산책을 한다. 잠을 잔다. 참지 않고 그대로 분출해 버린다. 무시해 버린다.’는 등 여러 이야기들이 나왔는데, 그 중에서 독한 술을 마시거나 친구에게 말을 해 문제를 해결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습니다. 그런데 하이든의 경우는 특별했습니다. “우리 집에는 작은 골방이 하나 있습니다. 이곳은 나의 기도실입니다. 고통이 닥치면 조용히 골방에 들어가 하나님께 도움을 구합니다. 그리고 골방에서 나올 때는 희망의 빛을 발견합니다.” 기도가 그의 상처를 처리하는 방법이라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의 경우는 어떻게 이 문제를 해결합니까?  

기도는 놀라운 힘을 갖고 있습니다. 기도는 슬픔을 기쁨으로, 탄식을 환희로, 고통을 축복으로 변화시킵니다. 오늘 본문에서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를 통해 이를 확인할 수가 있습니다.

원통함을 기도로
오늘 본문에 엘가나라는 사람이 나오는데, 그에게는 아내가 둘 있었습니다. 한 사람은 브닌나요, 다른 한 사람은 한나입니다. 브닌나는 자식은 있는데 남편의 사랑이 없었고, 한나는 남편의 사랑은 있는데 자식이 없었습니다. 5절에 보면, "한나에게는 갑절을 주니 이는 그를 사랑함이라", 하면서 한나의 행복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여호와께서 그로 성태치 못하게 하시니라." 한나의 아픔을 이야기합니다. 여기에 나온 브닌나나 한나 둘 다 아픔을 가진 여인들입니다. 브닌나는 남편의 사랑을 받지 못한 상처가 있고, 한나는 자식이 없는 상처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두 여인의 상처를 처리하는 방법은 전혀 다릅니다.

브닌나는 남편의 사랑을 받지 못한 상처를 한나를 괴롭히는 것으로 풀었습니다(6, 7). 하지만 한나는 자식이 없는 상처, 브닌나에게 받은 상처를 하나님께 기도하므로 풀었습니다(10~11). 물론 한나는 남편의 사랑을 받고 있었으니까 남편을 들볶을 수도, 브닌나에게 처절한 복수를 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한나는 이 원통함을, 이 상처를 기도의 기회로 삼은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고통과 아픔을 당하고, 때로는 상처를 받기도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 있습니다. 그 아픔과 상처들은 우리를 하나님께 인도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미끼인 것입니다. 이런 사실을 알았기 때문에 한나는 ‘하나님께 기도’로 반응한 것입니다. 이렇게 상처의 영적 비밀을 알고 하나님께 기도로 반응하기 위해선 다음 두 가지의 전제가 필요합니다.

1. 주님만이 해결자시다.
우린 본문에서 사람의 위로가 얼마나 허망한 것인지를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고통이 있고, 아픔이 있고, 상처를 받으면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기보다는 사람을 먼저 찾는 어리석음을 범합니다. 한나가 마음이 괴로워서 우니까 남편 엘가나가 위로를 합니다.  “그 남편 엘가나가 그에게 이르되 한나여, 어찌하여 울며, 어찌하여 먹지 아니하며, 어찌하여 그대의 마음이 슬프뇨! 내가 그대에게 열 아들보다 낫지 아니하뇨?" 열 아들보다 나은 내가 있는데, 당신을 향한 나의 사랑이 있는데 왜 슬퍼하고 괴로워하느냐는 것입니다.

여기에 두 가지 중요한 교훈이 있습니다. 하나는 앞서 말씀드린 대로 사람으로서는 참 위로가 될 수 없다는 것과, 다른 하나는 아무리 사소한 문제라도 사람에게 그 해결책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엘가나가 아무리 아내를 사랑한다고 한들, 아내의 빈 마음, 허전한 영혼에는 남편이 해결해 주지 못할 것이 있는 법입니다. 그것은 우리를 사랑하시는 전능자 하나님만이 해결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것이 무엇이든 하나님 앞에 가지고 나가야 하고,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만이 진정한 해결자이시기 때문입니다. 한나는 이런 하나님을 믿었기에 남편의 위로를 뒤로 하고 하나님의 전에 올라가서 통곡하며 기도를 하게 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이 우리 인생의 진정한 해결자라고 믿습니까? 그러면 하나님께로 나아오십시오. 기도가 진정한 방법이라고 믿습니까? 그러면 항상 기도의 무릎을 꿇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2. 문제의 본질을 볼 수 있어야한다.
10, 11절을 같이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한나가 마음이 괴로워서 여호와께 기도하고 통곡하며 서원하여 가로되 만군의 여호와여 만일 주의 여종의 고통을 돌아보시고, 나를 생각하시고, 주의 여종을 잊지 아니하사, 아들을 주시면 내가 그의 평생에 그를 여호와께 드리고 삭도를 그 머리에 대지 아니하겠나이다.” 이것은 한나의 기도내용입니다. 한나의 기도에 중요한 세 단어가 나옵니다. ‘돌아보다.’ ‘생각하다.’ ‘잊다.’는 동사입니다. 이 세 단어는 지금 한나가 겪고 있는 문제의 핵심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지금 한나의 고통 중 가장 큰 것은 단순히 자식이 없는 문제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자기를 돌아보지 않고, 자기를 생각하지 않고, 자기를 잊어버렸다고 느껴지는 겁니다. 자식이 없는 것은 그 결과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나는 하나님 ‘나를 돌아보십시오.’ ‘나를 생각해 주십시오.’ ‘나를 잊지 마십시오.’라고 통곡하면서 기도한 것입니다.

인간이 참으로 절망스럽고 원통한 근본적인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나를 돌아보시지 않은 것 같고, 나를 생각하지 아니하신 것 같고, 나를 잊어버리신 것 같은 영적인 공허함, 하나님께 버림받은 것 같은 두려움, 나에게는 상관없으신 것 같은 하나님, 내 영혼이 하나님과 너무나 멀어진 것 같은 영적인 피곤함과 곤고함입니다. 이것이 한나의 고통이었고, 이 때문에 한나는 하나님을 붙들고 늘어진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이런 영적 통찰력이 있기를 바랍니다. 겉으로 드러난 현상이 아니라 본질을 보는 눈, 그래서 그것을 위해 통곡하면서 기도할 수 있는 믿음이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고통 중에 있는 나를 돌아보시고, 하나님이 나의 당한 아픔을 생각하시고, 하나님이 내가 받은 상처를 기억하신다면 문제될 것이 없습니다. 다 해결되고 다 치료되고 다 회복되는 것입니다.

원통함이 영광으로
미국 하버드 대학의 동물학자 로버트 로젠달 박사는 들쥐의 생태를 연구하기 위해 들쥐 200여 마리를 연구소에서 키우고 있었습니다. 어느 여름, 세계 여행을 떠나기 위해 3개월이나 되는 긴 휴가를 냈습니다. 그는 여행을 떠나면서 키우던 들쥐 중 50마리만 골라 그들의 머리 위에 흰 페인트를 조금씩 칠해주었습니다. 박사가 여행을 떠나고 들쥐를 키우던 사육사들은 몹시 궁금해졌습니다.
‘박사님이 왜 50마리만 골라 머리에 흰 페인트칠을 해놓으신 걸까?’
그러고는 나름대로 추측하기 시작했습니다.
‘머리에 흰 페인트칠로 표시해놓은 들쥐는 품종이 좋을 거야.’ ‘지능이 뛰어나고 영리한 것이거나 하여튼 좀 다른 것이겠지.’
그런 생각이 들자 사육사들은 무의식적으로 다른 쥐들보다 머리에 흰 페인트칠을 한 쥐들에게 좀 더 관심을 가지고 정성을 기울였습니다. 3개월 뒤, 로젠달이 휴가를 마치고 돌아와 보니 들쥐들이 달라져 있었습니다. 그가 휴가를 떠나기 전에는 모두 똑같은 평범한 들쥐였는데, 3개월 동안 머리에 흰 페인트가 칠해진 들쥐는 다른 들쥐들보다 발육이 더 좋았고 훈련도 잘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평범했던 들쥐가 어떻게 3개월 만에 특별한 들쥐로 거듭날 수 있었을까요? 그 해답은 바로 사육사들의 태도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사육사들은 50마리의 들쥐들을 특별하다고 인정하며 그들에게 각별히 관심을 쏟았던 것입니다. 말은 통하지 않았지만 들쥐 역시 자기를 대하는 사육사의 태도를 알았던 것입니다. 상대방을 특별한 존재로 인정해주는 것, 그것이 바로 평범함을 특별함으로 바꾸는, 잠재되어 있던 무한한 가능성을 일깨워주는 의욕의 날개였던 것입니다.

기도야말로 평범함을 특별함으로 바꾸는 가장 확실한 능력입니다. 한나는 상처로 인하여 마음속에 원통함을 간직하고 사는 평범한 여인이었습니다. 그런데 기도를 통하여 원통함을 영통함으로, 원통함을 영광으로 변화시킨 특별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녀를 실망시키지 않았습니다. 그녀의 기도를 들으시고 아들을 주신 것입니다. 그 아들이 누구입니까? 사무엘입니다. 사사 시대에, 철저히 타락한 어두운 시대에, 하나님의 말씀이 희귀한 암흑기에 신앙의 대 각성 운동을 일으킨 사람입니다. 위태로운 나라를 바로 세우고, 나중에는 다윗을 왕으로 기름부은 위대한 선지자입니다. 이후 한나는 기도의 어머니라는 영광스러운 타이틀과 함께 오고 오는 세대의 모든 믿는 여성들의 존경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도 이런 영광스러운 타이틀에 도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기도의 사람, 기도의 아버지, 기도의 어머니라는 타이틀을 가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한나가 자신의 문제를 놓고 하나님께 기도할 때, 그 고통과 상처는 엄청난 축복의 통로가 되었습니다. 그녀의 원통함이 영광으로 변하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그녀 개인뿐만 아니라 민족의 앞길에 절대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됩니다. 고통에는 뜻이 있습니다. 우리가 기도하는 순간 고통은 고통이 아니라 축복의 씨앗으로 변함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한나의 기도는 원통함을 영통함으로 바꾸는 기도였습니다. 철저하게 상황을 역전시킨 기도입니다.

아프리카에 ‘비서 새’(secretary bird)라는 특이한 새가 있다고 합니다. 이 새는 평상시에는 잘 날아다니는데, 위기를 만나면 날지를 못하고 걷는다고 합니다. 날아야 할 때 날지 못하는 새. 이것이 우리 신자들의 영적 상태가 아닐까요? 마땅히 기도해야 하는데 기도하지 못하고, 찬양해야 하는데 찬양하지 못하고, 영혼을 살리기 위해 복음을 전해야 하는데 전하지 못하고, 어느 때보다도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일이 중요한데 예배드리지 못하는 것. 이 모든 것이 비서 새와 같은 신자들의 모습입니다. 인생의 모든 아픔과 상처는 기도하라는 주님의 음성입니다.

모든 것이 완벽했던 주님께서도 끊임없이 기도하며 사셨습니다. 새벽과 밤에 하나님께 부르짖으며 사셨습니다. 그런데 우리 같은 약한 사람들이 기도를 멀리해서야 되겠습니까? 새벽을 깨웁시다. 주일과 수요예배에 와서 기도합시다. 이 전이 기도하는 집이 되게 합시다. 서로의 약함과 병듬과 쓰러져감을 보면서 간절히 기도할 때입니다. 원통함을 영통함으로, 원통함을 영광으로 바꾸는 것이 기도입니다. '평범'을 '특별'로 바꾸는 힘이 기도입니다. 바쁠수록 기도하고, 능력있는 신자로 승리하시길 바랍니다. 이와 같은 기도의 불길이 일어나는 우리 교회(개인, 가정, 일터)가 되길 하나님은 기대하십니다. 하나님의 기대와 주님의 소원을 이루어드리는 사람들이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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