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모델링,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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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kagathos 댓글 0건 조회 25,036회 작성일 22-07-31 15:10본문
리모델링, ‘행복’
창1:26~28
2022. 7/31. 11:00
행복 레시피
최근 미국의 온라인 뉴스 매체인〈허핑턴 포스트〉(The Huffington Post)에, 50세가 되기 전에 배워야 할 ‘행복 레시피’가 소개되었다. 50대가 넘어서 돈이 없어도, 부자가 아니어도, 사회적 지위가 변변치 못해도 인생에서 행복을 잃지 않고 살아가려면 반드시 익혀야 할 기술이라며 11가지를 소개하였다.
1. 분노참기
나이가 들어 버럭 화를 내는 것은 특히 건강에 해롭다고 한다. 2014년 한 의학저널에 발표된 연구에 따르면 화를 자주 내는 사람일수록 수명이 짧다고 했다. 또한 나이 들어 분노를 참지 못하고 자주 화내는 사람을 좋아할 사람은 없다. 나이를 먹을수록 화를 잘 참아야 곱게 늙었다는 소리를 듣고 대접도 받는다.
2. 친절하기
주변 사람에게 친절하게 대하는 것이다. 남에게 친절히 대하는 사람은 편안하고 건강한 마음을 갖게 되고 결과적으로 오래 산다고 한다.
3. 만족하기
없는 것에 안달하지 말고 지금 가진 것에 만족하는 것을 배우라는 것이다. 더 가진다고 행복지수가 올라가지 않는다.
4. 자연을 사랑하기
집에만 있지 말고 자연을 가까이 하라는 것이다. 산책이든 운동이든 밖으로 나가라는 것이다.
5. 자신의 몸을 학대하지 않기
스스로 몸을 해치는 나쁜 습관을 줄이라는 것이다. 대표적인 것이 흡연과 음주다. 남자가 50이 넘으면 끊거나 줄어야할 0순위는 바로 흡연과 과음이라고 한다.
6. 남과 나누기
남들과 나누는 삶을 살라는 것이다. 대화를 나누고, 마음을 나누고, 시간을 나누고, 일도 나누고, 물질 나누며 살라는 것이다.
7. 친구 사귀기
8. 남의 말 경청하기
9. 용서하기
10. 불의에 맞서기
나이가 들면 왠지 용기도 없어지고 자신감도 줄어들기 마련이다. 그렇지만 기죽지 않고 당당하게 살라는 것이다.
11. ‘아니오’보다는 ‘예’라고 말하기
긍정적인 태도를 가지라는 것이다. 부정적인 말로 분위기를 싸늘하게 만들지 말고 긍정적인 말로 분위기 메이커가 되라는 것이다.
행복은 선물이다.
위 내용이 행복한 삶을 위한 충분조건은 아니라도 필요조건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사실 행복 레시피는 없다. 행복이란 추구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흔히 행복을 영어로 ‘happiness’라고 하는데, 이 단어는 우연을 뜻하는 ‘hap’에서 왔다. 이 말은 행복의 본질이 ‘우연’이라는 뜻이다. 우리는 어떤 일의 원인이나 이유를 밝힐 수 없을 때 우연이란 말을 사용한다. 그리고 이 우연을 ‘좋은’ 운(행운), 혹은 ‘나쁜’ 운(불운)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성경은 원인 없는 결과는 없다고 분명히 말씀하고 있다. ‘두 사람이 뜻이 같지 않은데 어찌 동행하겠으며, 사자가 움킨 것이 없는데 어찌 수풀에서 부르짖겠으며, 젊은 사자가 잡은 것이 없는데 어찌 굴에서 소리를 내겠느냐. 덫을 땅에 놓지 않았는데 새가 어찌 거기 치이겠으며, 잡힌 것이 없는데 덫이 어찌 땅에서 튀겠느냐. 성읍에서 나팔이 울리는데 백성이 어찌 두려워하지 아니하겠으며, 여호와의 행하심이 없는데 재앙이 어찌 성읍에 임하겠느냐.’(암3:3~6). 이는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는 이유, 곧 심판의 필연성 강조한 말씀이다. 이 말씀의 핵심은 ‘우연은 없다.’는 의미다. 하나님의 심판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사실 세상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섭리하신다.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지 않느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하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마10:29). 이와 같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일어난 일이라면 우연은 더 이상 설 자리가 없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 주변에서 운, 혹은 행운이라고 불리는 우연한 사건을 신앙적으로 표현하면‘하나님의 손길’인 것이다. 그러니 우연에 뿌리를 둔 행복 역시 하나님의 손길이다. 그러므로 행복이란 까닭없이 찾아오는 우연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특별한 선물이다. 그리고 성경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선물로서 행복을 주신 분이라고 자주 말씀하고 있다. 본문도 그 중에 하나다. 특히 본문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 다른 피조물과 다른 특별한 존재로 지으신 다음, 인간에 대해 최초로 행복을 선포하신 내용이다(28).
행복의 원리
선물은 일방적이다. 다시 말하면 주는 사람의 마음이다. 받는 사람의 의지나 노력이 개입할 수가 없다. 그렇지 않다면 그것은 선물일 수가 없다. 그럼에도 성경을 보면 하나님의 선물로서 행복이 임하는 원리가 작동하고 있는 것을 발견할 수가 있다. 특이하게도 행복은 행복을 뜻하는 단어 자체에 그 비밀이 담겨있다. 히브리어로 복에 해당되는 단어가 여럿 있다. 본문에서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에서 복에 해당되는 히브리어 단어가 ‘바라크’(בּלק)인데, 바라크도 그 중에 하나다. 이 바라크라는 단어의 본래 의미는 ‘무릎을 꿇다.’, ‘꿇어 엎드리다.’, ‘절하다.’등 여러 가지다. 가장 기본적인 의미는 ‘무릎을 꿇다.’이다. 도대체 무릎을 꿇는 것과 복이 무슨 상관이 있을까? 이것이 히브리어의 매력이고 특징이다. 어떤 내용을 설명하기보다 보여준다. 그래서 히브리어에는 명사보다 동사가 월등히 많다. 복에 대한 것도 마찬가지다. 복이 무엇이라고 설명하기보다 이렇게 사는 것이 복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즉, 이렇게 살면 하나님의 복을 받아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이다. 그 비결이 무릎을 꿇는 것이다. 바라크하는 것이다. 무릎을 꿇는다는 것은 적어도 세 가지 행위를 반영한다. 첫째가 ‘항복’이고, 둘째가 ‘기도’이고, 셋째가 ‘경배’다. 여기서 우리는 행복의 원리를 유추할 수가 있다.
행복의 첫 번째 원리는, ‘항복’하는 것이다. 어느 작가가 동유럽의 도시들을 소개하면서 헝가리와 폴란드를 비교하며 이렇게 설명했다. 두 나라 다 외세의 침략을 많이 받았는데, 헝가리의 도시들은 대부분 심각하게 파괴가 되었으나 폴란드의 도시들은 옛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고 했다. 헝가리의 경우는 죽기 살기로 항전을 하다 보니 파괴가 심하고, 폴란드는 전쟁을 해도 주로 도시 외곽에서 하고, 전세를 살펴서 불리하면 빨리 항복을 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누가 옳으냐의 문제를 떠나 패전한 사람이나 나라, 혹은 힘이 없는 사람이나 나라가 살길은 항복하는 것이다. 이것이 자신은 물론 무고한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방법이다. 하나님 앞에서는 더욱 말할 것도 없다. 하나님 앞에서 잘사는 법, 형통하게 사는 법은 하나님께 항복하는 것이다. 여기서 항복이란 ‘삶을 드리는 것, 곧 삶의 주도권을 양도하는 것’을 뜻한다. 킹 제임스 성경은 롬12:1절에서 ‘합당한 예배’를 ‘항복’이라고 번역했고, 현대영어성경에서는 항복을 ‘하나님을 섬기는 가장 현명한 방법’이라고 번역하고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항복은 행복하게 잘 살기 위한 최선의 방법이 아니라 유일한 방법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복, 곧 행복을 부르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라크다.
행복의 두 번째 원리는, ‘기도’하는 것이다. 무릎을 꿇는다는 것은 기도에 대한 관용적인 표현이다. 그래서 성경에서 무릎을 꿇는다는 것은 간절히 바라는 동작, 공손함의 표현으로 무엇보다 기도하는 자세를 말한다. 성경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엘리야가 갈멜산에서 기도할 때 그의 얼굴을 무릎 사이에 넣고 기도했고(왕상18:42). 솔로몬은 이스라엘 백성 앞에서 무릎을 꿇고 하늘을 향하여 손을 펴고 기도했다(대하6:13). 다니엘은 하루에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했다(단6:10). 에스라는 저녁 제사 때 금식을 그치고 일어나서 의복과 겉옷은 찢은 채 무릎을 꿇고 두 손을 펼쳐 기도를 올렸다(스9:5). 신약에서 베드로도(행9:40), 스데반도(행7:60), 바울도(행20:36), 예수님께서도 무릎을 꿇고 기도하셨다(눅22:41). 이처럼 예수님까지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모범을 보여주신 것은 기도의 중요성과 자세를 잘 말해준다. 흔히 기도를 신령의 복을 여는 열쇠라고 한다. 이 신령한 복에는 행복도 들어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자주 주님 앞에 무릎 꿇고 기도할수록 우리의 행복지수가 높아진다.
행복의 세 번째 원리로, ‘경배’하는 것이다. 고대 헬라인은 무릎 꿇는 것은 자유인에게 어울리지 않고 야만인이나 하는 자세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무릎을 꿇는 것은 아주 긍정적 의미를 담고 있다. 억지로 하는 비굴한 자세가 아니라 상대방에 대한 극진한 존경과 사랑을 표현하는 자세다. 우리나라 전통예절 중 하나인 큰절을 할 때도 무릎 꿇는 동작을 먼저 한다. 이처럼 무릎을 꿇는 것은 자기를 낮추고 존경과 겸손을 드러내는 동작이다. 특히 인간이 하나님 앞에 나설 때에는 자연히 경배의 자세로 무릎을 꿇었다. 그러므로 무릎을 꿇는다는 것은 곧 ‘예배하는 것’이다. ‘오라 우리가 굽혀 경배하며 우리를 지으신 여호와 앞에 무릎을 꿇자.’(시95:6). 예배의 자세는 몸을 굽혀 경배하는 것이다. 하나님 앞에 겸손히 마음을 열고 감사하고 찬양하는 것이다. 무릎 꿇는 것이 중요한 또 하나의 이유다. 이것이 예배자의 자세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예배하는 자에게 세상이 줄 수 없는 기쁨을 주신다. 하나님 앞에 예배드리게 되면, 우리 마음속에 기쁨이 생기기 시작한다. 이 비밀을 잘 알았던 사람이 다윗이다. 그가 성경에서 역동적인 예배자 중에 한 사람 된 이유다. 그는 예배에 대한 말만 들어도 기쁘고 행복했던 사람이다. 이런 그의 마음을 잘 보여주는 말씀이 시편에 나온다. ‘사람이 내게 말하기를 여호와의 집에 올라가자 할 때에 내가 기뻐하였다.’(시122:1). 이처럼 그가 예배를 기뻐하고 좋아한 것은 예배의 즐거움, 예배의 기쁨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예배자에게 예배를 통한 기쁨을 주시고, 행복을 주신다. 우리 또한 예배를 통해 이런 기쁨과 행복을 경험하는 예배자가 되자!
무릎을 꿇는 신앙
무릎을 꿇고 비석을 다듬는 석공이 있었다. 석공은 땀을 흘리며 비석을 깎고 다듬은 다음 비석에 명문을 각인했다. 그 과정을 바라보고 있던 한 정치인이 작업을 마무리한 석공에게 말했다. ‘나도 돌같이 단단한 사람의 마음을 당신처럼 유연하게 다듬는 기술이 있었으면 좋겠소. 그리고 돌에 명문이 새겨지듯 사람의 마음과 역사에 내 자신이 새겨졌으면 좋겠소.’ 그러자 석공이 대답했다. ‘선생님도 저처럼 무릎을 꿇고 일한다면 가능한 일입니다.’ 무슨 일이든 무릎을 꿇는 자세로 하면 영향력 있는 삶, 주변에 두루 기억되는 삶을 살 수 있다는 뜻이다. 신앙은 물론이고 일상도 무릎 꿇는 자세가 중요하다. 그래서 성경은 무릎을 꿇는 것이 복이라고 한 것이다. 일상에서 행복을 부르고, 행복을 누리고, 행복을 나누는 삶은 하나님께 무릎 꿇는 것이다. 즉, 항복하는 것이다. 자신의 주도권과 권한을 주님께 양도하고 그저 믿고 따르는 것이다. 그리고 항상 기도의 무릎으로 살고, 예배가 중심이 되는 삶을 사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의 삶을 ‘행복’으로 리모델링하는 것이다. 나이가 들고 신앙의 연수가 길어질수록 더욱 집중해야 할 일이다.
관련링크
- https://youtu.be/g_c0rpcyxss 14102회 연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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