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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는 사람에게 소망이 있다.(07-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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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양식 댓글 0건 조회 15,492회 작성일 07-09-22 1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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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는 사람에게 소망이 있다.

막14:66-72

2007. 9/9 11:00

탈무드에 비누는 몸을 씻지만 눈물은 마음을 씻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눈물이란 감정을 드러내는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는 것입니다. 영국의 정신과 의사 헨리 모슬리는 눈물을 하나님이 인간에게 선물한 치유의 물이라고 했습니다. 미국의 생화학자 윌리엄 프레이는 눈물의 치유의 비밀을 카테콜라민이라는 호르몬을 말끔히 씻어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카테콜라민은 상실, 억압, 차별, 긴장 등에 의해 우리 몸속에서 만들어지는 스트레스 호르몬입니다. 이것이 몸에 쌓이면 만성위염 등 소화기 질환을 일으키고, 핏속의 콜레스테롤 수치를 높여 관상동맥 협착, 심근경색을 유발합니다. 뿐만 아니라 눈물은 류머티즘의 원인물질 인터로킨-6도 감소시킨다고 합니다. 그래서 요즈음 유럽에선 웃음치료와 함께 울음치료가 유행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눈물은 건강과 수명에도 영향을 끼칩니다. 여자가 남자보다 5~10년을 더 산 것도 이 눈물과 관계가 있다고 합니다. 남자들을 스트레스를 받으면 주로 술이나 담배를 피웁니다. 특히 남자는 평생 세 번만 울어야 한다는 속설 때문에 남들 앞에서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렇지만 여자들은 누군가를 붙잡고 하소연을 하며 웁니다. 좋아서 울고, 슬퍼서 울고, 그리움에 울며 스트레스를 풉니다. 그래서 남자보다 오래산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을 보면, 위대한 신앙인들의 공통점이 울보였다는 점입니다. 거룩한 울보였습니다. 그들은 어린 아이처럼 하나님 앞에서 눈물로 감을 이루며 밤을 지새웠습니다. 다윗은 시편6:6에서, 내가 탄식함으로 곤핍하여 밤마다 눈물로 내 침상을 띄우며 내 요를 적시나이다.고 했고, 선지자 예레미야는 .....내가 우니 내 눈에 눈물이 물 같이 흐름이여.......(애1:16)라고 말합니다. 모세나 바울 역시 민족의 구원 때문에 눈에서 눈물이 마를 날이 없었습니다. 오늘 본문의 주인공 베드로도 눈물의 사람입니다. 전설에 의하면 베드로는 닭 울음소리를 듣기만 하면 주님을 향한 죄송한 마음과 감사한 마음에서 통곡을 했다고 합니다.


오늘 본문은 베드로 사도가 왜 평생 울보로 살아야했는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본문은 베드로가 실패한 이야기입니다. 주님께서 유대병사들에게 붙잡혀 제사장 가야바의 집에서 재판을 받을 때 일입니다. 그 때 베드로는 사랑하는 주님을 세 번이나 부인하는 죄를 범하고 말았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제자가 스승을 세 번이나 부인하다니.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습니까? 그것도 단순히 모른다.고 부인하는 수준을 넘어 저주까지 하면서 부인을 했습니다. 저는 이 시간 베드로의 실패와 회복에 대하여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실패의 원인

1. 기도의 실패

예수님은 제자들과 마지막 저녁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자신의 죽음과 제자들의 배신에 대하여 말씀하셨습니다. 그 때 베드로가 나서서 자신은 절대로 그런 일이 없을 것이며, 주님과 함께 죽음도 불사하겠다고 장담했습니다. 그렇지만 주님은 오늘 밤 닭 울기 전에 베드로가 주님을 세 번 부인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시기를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38)고 경고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베드로는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주님은 십자가 문제를 놓고 통곡하며 기도하시는데 그는 졸며 잤습니다.


바로 이것이 베드로가 실패한 첫 번째 원인입니다. 누구든지 기도하지 않으면 시험에 듭니다. 실패하고 마는 것입니다. 우리가 무너지고 잘못되는 이유 중 하나는 기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잘나갈 때 일수록 더 하나님께 무릎을 꿇어야 합니다. 영적으로 무너지면 결국 모든 것이 무너집니다(3요1:2). 흔히 기도를 응답의 목적으로만 생각합니다. 잘못입니다. 기도의 응답은 하나의 결과이고 기도의 진정한 목적은 하나님과의 교제입니다. 말씀을 통해 음성을 듣고 기도로 하나님께 말하는 것입니다. 이런 교제를 통해 하나님과 친밀해집니다.


제프리 지토미는 「인맥의 기술」이란 책에서, 모든 조건이 같다면 사람들은 자기와 친한 사람과 비즈니스를 하고 싶어 한다. 모든 조건이 같지 않더라도 자기와 친한 사람과 비즈니스를 하고 싶어 한다. 따라서 성공의 자리에 오르려면 더 많은 기술이나 전략보다 더 많은 친구가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많은 사람들과의 친밀한 교제가 성공의 비결이란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역적 승리의 비결은 하나님과의 친밀함에 있습니다. 하나님과 친한 사이가 되십시오. 이것이 성공의 비결, 승리의 비결입니다. 하나님과의 교제를 통해 세상을 이기고, 환경을 이기고, 마귀를 이기고, 내 자신을 이길 수 있는 힘을 공급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 교제의 방법이 기도입니다.


2. 태도의 실패

어떤 사람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성공적인 인생이 되기 위한 조건으로 첫째가 지능이고, 둘째가 정보, 셋째는 이 정보를 실용화할 수 있는 실천력(기술), 그리고 네 번째를 삶의 태도(자세)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이 넷 중에서 삶의 태도가 96%를 차지한다고 했습니다. 머리가 좋고, 뛰어난 정보와 훌륭한 기술을 가질수록 삶의 태도가 잘못되면 더 끔찍한 사람이 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 명석한 두뇌, 좋은 정보와 기술은 곧 사람들과 사회에 치명적이 될 수가 있습니다. 이것이 베드로가 실패한 두 번째 원인입니다. 주님을 따르는 태도에 문제가 있었습니다.


54절 말씀을 다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여기 멀찍이 좇아에서, 이 멀찍이는 단순히 물리적인 거리만 의미하지 않습니다. 애매모호한 베드로의 태도를 가리킨 것입니다. 베드로는 주님을 가까이 따르자니 두렵고, 안 따르자니 자신이 한 말에 책임을 져야 할 것 같고, 그래서 멀찍이 좇은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애매모호한 태도를 경고합니다. 너는 차든지 덥든지 하라.(계3;15). 이왕 교회 다니고 예수 믿는 것이면 좀 더 적극적이고 열심히 하라는 말씀입니다. 멀찍이가 지혜 같지만, 그것은 무너짐의 징조입니다. TV 동물의 왕국이란 프로에서 가끔 호랑이나 사자가 소나 말과 같은 짐승을 사냥하는 모습을 보았을 것입니다. 호랑이나 사자가 무작정 소떼나 말떼 속으로 들어가 사냥을 하지 않습니다. 먹잇감을 떼로부터 떨어뜨린 다음 공격하거나 떼에서 떨어진 놈을 공격의 대상으로 삼습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으로부터 멀찍이 떨어진 것은 마귀의 표적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성경은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복이다.(시73:28)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대하여 적극적이고 열심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씀입니다. 이는 단순히 신앙생활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닙니다. 일반생활에서도 마찬가집니다. 무언가를 이룬 사람들을 보면 매사에 적극적이고 열심히 하는 사람들입니다. 기왕 예수 믿을 것, 좀 더 열심히 믿어 봅시다(예배, 찬송, 기도, 말씀, 자리에 앉음).


3. 결단의 실패

향을 싼 종이에선 향내가 나고 생선을 묶은 끈에선 생선 비린내가 난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는 환경의 중요성에 대한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은 좋은 환경에 있으면 좋은 영향을 받고, 좋지 않는 환경에 있으면 좋지 않는 영향을 받게 됩니다. 꽃밭에 있다가 나오면 향기가 나고, 고기 집에 있다 나오면 고기 냄새가 납니다. 이것은 꽃을 만지거나 고기를 먹은 것과 별개의 문제입니다. 그냥 그 환경의 영향을 받은 것입니다.

 

신앙생활에 있어서도 좋은 영적 분위기에 있으면 신앙적인 도전을 받고, 신앙생활에 좋은 영향을 받습니다. 반면에 좋지 않은 환경에 있으면 시험에 빠질 위험과 신앙의 실패를 경험할 수가 있습니다. 오늘 베드로의 또 하나의 실패 원인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베드로는 지금 있어서는 안 될 자리에 앉아 있었습니다(54). 당장 그 자리를 피하는 결단을 해야 하는데, 그 결단에 실패를 하였습니다. 살다보면 어쩔 수 없이 어떤 환경에 사로잡힐 때가 있습니다. 그 때 중요한 것은 그곳을, 그 자리를 피하는 결단입니다. 내가 그 자리에 있어서, 그곳을 변화시킬 힘이 있다면 모르지만 그렇지 않다면 속히 피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어떤 사람은 술자리에 앉아서 술잔을 받아놓고 주여,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라고 기도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것은 술을 피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시험하는 것입니다.


지금 베드로의 문제는 있어서는 안 될 자리에 있는 것입니다. 피해야 될 자리를 피하지 못한 것입니다. 물론 그가 전혀 피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첫 번째 주님을 부인하고 아래 뜰(66)에서 앞 뜰(68)로 움직이기는 했습니다. 그러나 그 자리를 완전히 떠나지는 못했습니다. 그가 두 번째 부인한 후 세 번째 부인까지는 한 시간 정도(눅22:59)의 시간이 있었습니다. 자신의 신분이 드러난 이상 그 자리를 떠나든지, 아니면 인정하기로 결단을 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머뭇거리다가 세 번째 부인을 하고 말았습니다. 유혹을 받을 수 있는 자리에 들어가지 말아야 합니다. 혹 그런 자리에 들었으면 속히 그곳을 피하는 결단을 해야 합니다. 결단의 기회를 놓치면 안됩니다. 그러면 실패하고 마는 것입니다.


베드로의 소망

그런데 베드로가 실패로만 끝났다면 우리는 베드로를 기억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본문에 베드로의 회복을 알리는 단어가 있습니다(72). 울었더라. 우는 자에게는 소망이 있습니다. 마26:75, 눅22;62에는 심히 통곡했다고 쓰여 있습니다. 이는 단순한 감정의 눈물이 아니라 참회의 눈물인 것입니다. 특히 주의 말씀이 기억되어, 즉 하나님의 말씀에 자신을 비춰보고 흘린 눈물이었습니다. 나는 왜 이 모양인가? 내 말에 책임도 못 지고, 주님을 세 번씩이나 부인하고 저주하다니..... 자신의 연약함, 자신의 어리석음, 자신의 죄악 됨을 슬퍼하면서 흘린 회개의 눈물입니다. 웃음이 얼굴을 비추는 빛이라면, 눈물은 영혼을 닦아내는 물입니다. 주님은 베드로의 이 눈물을 보시고 그를 다시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이후 베드로는 자신을 신뢰하지 않고 주님만 신뢰했고, 자기중심적인 신앙에서 주님 중심적인 삶을 살았습니다. 이 깨달음의 변화가 그를 위대한 사도로 만들었던 것입니다.


주님께서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산상을 오르실 때 많은 예루살렘 여인들이 울면서 주님의 뒤를 따랐습니다. 그 때 주님께서 그들을 향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해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 주님의 말씀처럼 지금이야 말로 우리 모두 자신을 위하여 우리 자녀를 위하여 큰 소리로 울 때입니다. 주님 앞에서 바르게 살지 못한 내 자신, 여전히 죄를 떠나지 못하고 있는 내 자신, 주님이 주신 사명에 올바로 응답하지 못한 내 자신을 위해 통곡해야 할 때입니다. 주님이 사랑하시는 잃어버린 영혼을 위해서, 내 자녀, 가족, 이웃, 교회, 사회와 민족을 위해 소리 높여 울 때입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는 주님 앞에서 울보가 되어야 합니다. 우는 사람에게 소망이 있습니다. 우는 가정, 교회, 사회에 소망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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