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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로운 자의 소원(07-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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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양식 댓글 1건 조회 14,529회 작성일 07-10-20 17:37

본문

 

지혜로운 자의 소원

잠30:7-9


그리스 신화 중에 마이더스라는 왕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 왕은 황금을 매우 좋아했습니다. 이 왕에게 어느 날 신이 찾아왔습니다. 신이 그에게 물었습니다. 너의 소원이 무엇이냐? 이 왕은 당장에 내 손으로 만지는 모든 것이 다 황금이 되게 해주십시오.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그가 만지는 것은 무엇이든 황금으로 변했습니다. 그는 하루 종일 황금을 만드는 일에만 열중했습니다. 여러분, 한번 상상해 보십시오. 만지는 것마다 황금으로 변하니 얼마나 행복했겠습니까? 얼마나 즐거웠겠습니까? 그러나 그는 하루도 지나지 않아서 후회하고 말았습니다. 그는 자기 손으로 만들어 놓은 이 황금의 세계를 바라보면서 절망하기 시작합니다. 그가 사랑하는 딸도 그의 손이 닿는 순간 황금으로 변합니다. 이제 그의 주변은 평소 그의 소원대로, 그의 꿈대로, 그의 이상대로 모두 황금이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그는 그 황금의 한복판에서 절망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는 이렇게 부르짖기 시작합니다.

내가 원한 것은 황금이 아닙니다. 나의 딸 메리의 생명을 돌려주십시오.

내가 원한 것은 황금이 아닙니다. 한 모금의 물입니다.

내가 원한 것은 황금이 아닙니다. 지나간 시절 친구들과의 우정입니다.


이 이야기는 황금만능주의에 젖어있는 사람들에게 도전을 주는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살아가는데 있어서 참으로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해줍니다. 우리들은 일상성에 대하여 중요성을 잊을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생각해 보십시오. 가족이나 친구, 얼마나 소중한 사람들입니까? 한 모금의 물이나 공기, 얼마나 귀한 것입니까? 그런데 우리들은 그 중요성을 잊고 살 때가 많습니다.

이 왕은 신으로부터 엄청난 능력을 얻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기 마음을 다스릴 능력이 부족했습니다. 그래서 그것이 오히려 자기에게 엄청난 재앙으로 변하고 말았습니다. 이는 아무리 좋고, 훌륭하고, 놀라운 것을 소유해도 그것을 바르게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바르게 이용할 수 있도록 자기 마음을 잘 다스릴 줄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여러분의 소원을 물으신다면 여러분은 무엇이라고 말하겠습니까? 소원을 보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를 알 수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아주 멋진 소원을 가진 사람이 나옵니다. 이 사람의 소원은 소박하지만 참으로 중요한 것입니다. 그의 소원은 두 가지였습니다.

 

첫째로, 정직한 삶을 위한 기도입니다(8절上).

대부분의 사람들은 오래 사는 것, 건강하게 사는 것, 부자로 영화를 누리는 것, 권력을 가지고 사는 것을 소원합니다. 그리고 이런 것을 얻었을 때 성공했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본문에 나온 이 사람의 소원은 전혀 다른 것이었습니다. 오직 허탄과 거짓말을 자기에게서 멀리 하는 것이 소원이었습니다. 거짓이 없는 진실하고, 정직한 삶을 한 번 살다가 죽는 것이 그의 소원이었습니다. 하루를 살아도 진실하게 살고, 단 한순간이라도 정직하게 사는 것이 그의 소원이었습니다.


우린 이와 같은 이 사람의 소원에서, 물질적인 면보다 정신적인 면에 보다 큰 가치를 두는 그의 성숙함을 볼 수가 있습니다. 여기서 허탄은 영원한 가치를 지니지 못하는 대상들을 얻으려다가 진정한 삶의 가치를 상실한 자에게 찾아오는 내적인 허탈감을 말합니다. 그리고 거짓말이란 자신의 유익을 위해 상대를 속이는 이기적인 태도를 의미합니다. 바울 서신에서는 이와 같은 것을 우리 신자들이 벗어버려야 할 옛 사람의 특징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반대로 새 사람, 즉 예수 그리스도의 사람들은 정직한 삶을 살아야 한다고 역설하고 있습니다.


본문에 나온 사람은 소박하지만 본질적이고 멋진 이 기도를 자신의 마지막 소원으로 하나님께 드린 것입니다. 많은 신자들까지도 위대한 삶, 위대한 사람이 되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그리고 위대한 일을 위해서 기도합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허탄과 거짓이 없는 정직한 사람이 되게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자신의 기도를 한번 비교해 보십시오. 여러분의 기도는 주로 어떤 내용입니까? 위대한 사람, 위대한 일, 위대한 삶을 사는 것보다 정직한 삶, 정직한 사람이 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사람들은 여러 가지 이유로 진실을 버리고, 거짓에 발판을 두고 살려고 합니다. 그것이 쉽고 편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거짓은 순간적인 방편은 될 수 있어도 궁극적인 방법은 아닙니다. 오히려 그 사장된 진실의 무덤에서 무서운 폭발현상이 일어나 마침내 상상할 수도 없는 비극을 가져오고야 마는 것입니다.


오늘날 세상이 날로 살벌해 지고, 모든 관계들이 깨어지고 있는 이유는 진실이 사라지고 거짓이 판을 친 까닭입니다. 모든 관계는 상호간의 믿음을 전제로 형성되고, 그 믿음은 정직과 진실에 생깁니다. 그런데 그 중요한 정직과 진실이 사라져 버렸으니 세상이 믿을 수 없는 곳, 사람들이 믿을 수 없는, 짐승으로 변한 것은 당연한 결과. 비록 진실하게 살아가는 것이 당장은 어렵고 고통스럽더라도 우리들은 진실을 외면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 진실과 직면하면서 살아가는 생의 용기와 지혜를 가져야 합니다. 진실보다 소중한 재산이 없습니다. 정직보다 더 좋은 전략이 없습니다. 진실이 힘이요, 정직이 가장 위대한 지혜입니다. 하나님은 항상 진실하고 정직한 사람들의 편에 서서 그들을 위해 일하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진실과 정직이기 때문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해요, 방패시라. 여호와께서 은혜와 영화를 주시며 정직히 행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아끼지 아니하실 것임이니이다.(시84:11). 정직한 사람, 정직한 나라가 잘 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런 사람과 나라를 축복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시51:10절에서 다윗은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라고 기도했습니다. 정직한 생각, 정직한 말, 정직한 행동, 정직한 삶을 위해 기도합시다. 하나님께서 노아를 그 시대의 희망으로 생각하셨던 것처럼, 이 시대의 희망은 우리들입니다.


둘째로, 필요한 양식을 위한 기도입니다(8절下).

여기서 필요한 양식은 주기도문에 나온 일용할 양식과 같은 의미입니다. 일용할 양식이란 매일 매일의 존재를 위한 최소한의 양식을 의미합니다. 그가 어떤 사람들처럼 많은 재물을 구하지 아니하고 자신의 존재를 위한 최소한의 양식을 구한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①배가 불러서 하나님을 모른다, 여호와가 누구냐 할까 두려움 때문입니다.

조금만 입장과 처지가 바뀌어도 변하는 게 인간입니다. 조선 선조 때, 임진왜란으로 피난 중에 있었던 일화입니다. 고단한 피난생활로 입맛을 잃은 임금님에게 어느 지역 백성이 이라는 고기를 잡아와 반찬을 해드렸습니다. 임금께서 그 고기반찬을 맛있게 먹은 다음 그 고기의 이름을 묻자 묵이라고 하였고, 임금님은 그 고기에게 은어라는 새로운 이름을 하사하였습니다. 전란이 끝나고 환궁한 임금님은 피난 중에 먹었던 묵 요리가 먹고 싶다고 하여 먹게 되었는데, 이제는 맛이 없어 먹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도루묵이라 하라고 했다는 이야깁니다. 그 이후 무슨 일이 잘되다가 원상태로 다시 돌아가 버린 것을 가리켜 도루묵이라고 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사람이 빈궁할 때와 풍요할 때의 마음가짐이나 자세가 판이하게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는 좋은 예입니다. 어려운 형편에서는 작은 것에도 감사하고 만족하던 사람도 조금 넉넉해지면 어려울 때의 고통을 잊고 교만해지기가 쉽습니다.


명심보감에 賢人多財則損其志하고 愚人多財則益其過니라-어진 사람이 재물이 많으면 곧 그 뜻을 손상하고, 어리석은 사람이 재물이 많으면 곧 그 허물을 더한다.는 말입니다. 지나친 재물은 어진 사람이나 어리석은 사람 모두에게 이로움이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본문에 나온 이 지혜자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이를 신앙적인 문제로까지 승화시키고 있습니다. 즉 배가 불러서 하나님을 모른다,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고 교만할까 두렵다는 것입니다. 물론 모든 사람이 다 그렇겠습니까? 많은 재물, 큰 권력을 가지고도 얼마든지 겸손하며, 선한 사업에 부한 믿음의 부자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돈이 없던 사람에게 많은 돈이 생기고, 권력이 없던 사람에게 갑자기 큰 권력이 생기면 사람이 변하게 됩니다. 그 겸손하던 사람이 교만하게 됩니다. 그 선량하던 사람이 거칠어지고, 검소하고 성실하던 사람이 사치연락에 빠져 타락의 길을 걷게 됩니다. 새벽마다 그토록 간절히 주님을 부르던 사람이 기도를 멈추고, 예배를 소홀히 합니다. 진지하고 겸손하게 하나님을 섬기던 사람이 하나님을 떠나 물질의 노예로 전락하게 됩니다. 그래서 결국은 그것 때문에 멸망하고야 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도 이 지혜자처럼 물질에 대하여 하나님을 믿는데 방해가 되지 않는 한에서 채워주시도록 기도하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다른 것을 모두 얻어도 신앙을 잃는다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모든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서만이 의미있는 것입니다.


②가난하여 도적질하고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까 두려움 때문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는데 너무 가난한 것도, 부한 것과 마찬가지로 하나의 시험거리가 될 수 있습니다. 사람이 지나치게 궁핍하면 온전한 인격을 유지하기가 힘들게 됩니다. 나아가 그 사람의 본디 심성과는 무관하게 굶주림과 가난 때문에 죄를 범하게 되는 경우도 허다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속담에도 사흘 굶고서 도적질 안하는 사람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너무 부한 것도 물질 때문에 교만하거나 물질을 지나치게 의존해서 문제가 되지만, 너무 가난한 것도 문제입니다. 너무 가난해도 물질에 대하여 자유롭지를 못하게 됩니다. 살기 위하여 어쩔 수 없이 불의를 용납하게 되고, 신앙도 양심도 진실도 순결도 윤리도 잃어버리고, 다만 자신의 생존을 위해 비굴한 인간이 되기 쉽습니다(왕하6: 북조 이스라엘의 여호람시대.).


우리 시대도 보십시오. 가난을 비관해서 자살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종종 신문 사회면에 나오지 않습니까? 그들인들 생명의 중요성을 모르겠습니까? 나름대로 살아보려고 얼마나 발버둥쳤겠습니까? 그래도 너무 어려우니까 극단적인 방법을 선택하게 된 것이지요. 물론 그들의 선택이 옳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그래서 지혜자는 자신에게 적당한 물질을 허락해 달라고 기도한 것입니다.     


결국 이 기도는 생존에 필요한 적당한 물질을 허락해 달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적당이라는 말이 참 애매합니다. 왜냐하면 사람의 욕구가 자기의 소유보다 항상 크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소유를 늘리려고 하지 말고, 욕심을 줄여야 합니다. 그래서 먼저 자족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행복한 사람이란 현재 자기가 소유한 것으로 만족한 사람입니다. 욕구가 크면 그에 따르는 만족은 적은 법입니다. 자족할 줄 아는 사람에겐 부요함도 가난함도 문제가 되지 않는 것입니다(빌4:11-13). 그런데 이 자족이라 하는 것, 우리의 성품으로 다스릴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성령 충만해야 가능한 일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거짓말을 하지 않게 하소서!” “필요한 양식을 주소서!라고 한 지혜자의 두 가지 소원은 사실은 하나의 소원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이름만 높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이 되게 해 달라는 기도였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성도의 처음이자 마지막 소원이 아니겠습니까? 우리 역시 하나님의 영광에 최고의 목적을 두고 살아갈 수 있기를 원합니다. 인생의 성공은 삶의 성취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영광에 있습니다. 살면서 얼마나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았느냐, 얼마나 하나님께 기쁨이 되는 삶을 살았느냐에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 우리의 인생을 걸고 분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댓글목록

정성규.님의 댓글

정성규. 작성일

오늘 아침 채플시간에도 비슷한 설교가 있었습니다. <BR><BR>내 소원이 뭐냐?  예쁜 여자와 돈을 함께 가지고 싶어서 "돈 여자" 를 말했다던 내용이였는데<BR><BR>혹시 저도 물질 만능주의에 빠져 살지는 않는지 생각해 보았습니다.<BR><BR><BR>오늘 문득 생각해 보았는데요.  기도에  "감사"는 적고 "주세요"는 많은 기도를 들으실 때 얼마나 섭섭하실까요?<BR><BR>참으로 욕심많고 나약한 존재가 바로 내가 아닌가 반성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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