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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있을 때 눕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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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kagathos 댓글 0건 조회 6,443회 작성일 23-10-22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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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있을 때 눕지 마라!

12:41~48

2023. 10/22. 11:00(성령강림 후 스물한 번째 주일

어머니의 성소

고진하 시인의 어머니의 성소라는 시가 있다.

 

장독대의 항아리들을

어머니는 닦고 또 닦으신다.

간신히 기동하시는 팔순의

어머니가 하얀 행주를

빨고 또 빨아 반짝 반짝 닦아놓은

크고 작은 항아리들

……………………………

어제 말갛게 닦아놓은 항아리들을

어머니는 오늘도

닦고 또 닦으신다.

세상에 어느 성소인들

저 보다 깨끗할까.

맑은 물이 뚝뚝 흐르는 행주를 쥔

주름투성이 손을

항아리에 얹고

세례를 베풀듯어머니는

어머니의 성소를 닦고 또 닦으신다.

 

 

도시생활에서는 낯설지만 어린 시절 늘 보았던 모습이다. 시인의 어머니처럼 장독대의 항아리를 애중중지 닦으시던 어머니의 모습이 선하다. 무슨 보물단지라도 된 듯 하루도 거르지 않고 닦고 또 닦는 모습을 보며 자랐다. 시인은 그의 어머니가 매일 항아리들을 닦고 또 닦는 일을 세례를 베푸는 것과 같은 성례(聖禮), 그 항아리들이 놓인 장독대를 성소’(聖所)라고 말한다. 어떤 일이든 열심히 하는 사람의 모습은  아름답다마음을 담아 일하는 이들은 일상적인 일에 신성한 빛을 부여한다그러므로 맡은 일에 대한 태도가 참으로 중요하다.

 

 

위임받은 청지기

35절부터 48절까지는 예수님의 재림에 대한 초대교회 상황을 보여주고 있다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기다림의 시간이 길어지자 마음의 긴장이 많이 풀려 있었다. 그래서 기다림의 이유(35~40)와 태도(41~48)를 말씀하게 된 것이다주인이 언제 돌아오든지 간에깨어서맞이하는 종의 복에 대한말씀(35~40) 베드로는 이런 말씀이열두 제자에게만 해당되는 것인지다른 사람에게도 해당되는 것인지를 묻었다(41). 주님은 그의 질문에 직접적인 대답을 주는 대신 다른 질문을 던졌다. ‘주께서 이르시되 지혜있고 진실한 청지기가 되어 주인에게 그 집종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누어 줄 자가 누구냐.’(42).


 

질문 속에는 답이 있다 질문에 담긴 속뜻은 너희는 청지기라는 것이다.주인은 청지기에게 재산뿐만 아니라 종들의 관리까지도 위임했다청지기를그만큼신뢰한 것이다그의 성실함을 인정한 주인은 그에게 자기 권한을 다위임한 한 가지 당부했다종들에게 제때에 양식을 내주라는 이다. 사람들은 여기서 말하는 양식을 ‘영의 양식으로 해석한다.복음을 선포하고 가르쳐야 할지도자의 책임을 일깨우는 말씀이라는 것이다그럴 수도 있다하지만 ‘양식 무엇을 의미하든 본문이 우리에게 상기시키는 것은 사람을 돌보는 일이야말로 청지기가 해야 할 일이라는 것이다그렇다. 우리는 주님으로부터 사람을 돌보도록 위임을 받은 청지기다. 주인의 마음을 시원하게 해드릴 수 있도록 충성을 다하는 것이 청지기의 사명이자,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사람의 자세다.


 

뜻밖의 시간에

본문은 비유를 통하여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자세를 말씀하고 있다. 그것은 주인의 신임을 받아 주인의 모든 것을 위임받은 청지기 이야기다. 이 청지기는 주인이 곁에 있을 때 더할 나위 없이 성실한 사람이었다. 주인이 보는 앞에서는 그토록 싹싹하고 착하고 성실하고 충성스러운 사람이었다. 정말 주인의 마음을 시원하게 해주는, 주인의 마음에 쏙 드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주인은 집안의 모든 소유를 그에게 맡기고 먼 길을 떠났다(44). 그런데 문제는 주인이 집을 비우자 전혀 딴 사람으로 변했다. ‘만일 그 종이 마음에 생각하기를 주인이 더디 오리라 하여 남녀종들을 때리며 먹고 마시고 취하게 되면’(45). 모든 소유를 맡긴 주인의 신임을 오히려 무기로 삼아 폭군으로 변했다.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주며 섬겨야 할 종들 위에 군림하여 그들을 괴롭히면서 호의호식했다. 위임받은 권위와 물질을 자기 마음대로 사용한 것이다. 빈 주인의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주인행세를 하며 자기 마음대로 먹고 마시고 취했다. 이 청지기의 모습이 오늘 우리의 모습이 아닌지 심심히 돌아보았으면 좋겠다. 그러면서 본문은 뜻밖의 날에 주인이 와서 이 청지기를 처벌할 것이라고 말씀으로 끝을 맺는다(46~48).

 

청지기의 어리석음

본문에 나온 청지기 참으로 어리석은 사람이었다. 우선, 맡겨진 일을 어떻게 감당하느냐가 곧 자신의 운명과 관련되어 있음을 깨닫지 못한 것이다. 그는 주인의 부재를 틈타 주인의 신임을 무기삼아 권세만 부리고 맡겨진 일을 소홀히 했다. 사람을 평가하는 방법이 여럿 있는데, 그 중에 하나가 일을 맡겨보는 것이다. 일을 맡겨보면 어떤 사람인지 알 수가 있다. 충성스럽게 일을 잘 하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대충하면서 자기에게 돌아올 몫만 계산하는 사람이 있다. 일이 되게 하려고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적당히 시간만 채우는 사람이 있다. 이렇게 계산만 하고 시간만 채우며 한눈이나 팔고, 자신의 이익이나 챙기고, 불퉁거리기나 하는 사람은 당장에는 좋을지 모르나 장기적으로 보면 바보다. 마치 하나님이 흙으로 빚은 아담에게 생기를 불어넣으신 것처럼, 어머니가 장독대 항아리들을 닦고 또 닦은 것처럼 자기가 하는 일에 정성을 다 쏟는 사람은 참으로 아름답다. 이런 사람은 어디서든지 누구에게든지 환영을 받고 칭찬을 받게 된다. 이것이 청지기로서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성도의 자세다.

 

다음은, 주인이 언젠가는 돌아오겠지만 지금은 아니라고 생각한 것이다. 소위 종말의식의 부재다. 주인이 돌아오는 것에 대하여 긴장을 갖지 않은 것이다. 그러니 기다림도, 사모함도, 준비도 없었다. 주인이 언제 돌아올지 모른다는 생각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 뜻밖의 시간에 주인이 올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본문의 청지기는 권세를 누리는 시간의 달콤함에 취하여 스스로 만든 마음의 함정에 빠진 것이다. 주인이 언젠가는 돌아오겠지만 지금은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주인이 언제라도 돌아올 수 있음을 자각한 청지기는 맡겨진 일에 최선을 다 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주인이 눈에 보이지 않아도 주인이 있는 듯 단정하게, 성실하게, 충성스럽게 처신을 할 수가 있다. 이것이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성도의 또 하나의 자세다그 다음은, 맡겨진 일에 대한 결산을 생각하지 못한 것이다. 청지기가 맡은 것은 자기 것이 아니라 주인 것이다. 맡은 일에는 반드시 결산이 따르게 된다. 자기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본문은 3절에 거쳐 이 점을 강조하고 있다(46~48). 성경의 다른 곳에서도 재림과 관련하여 이 점을 자주 강조하고 있다. 포도원 일꾼 비유(20:1-8), 달란트 비유(25:14-30), 므나 비유(19:12-26) . 이 세상에서도 현재 흘리는 땀이 미래에 받을 메달의 색깔을 좌우한 것처럼 영적 세계에서도 현재의 삶이 장래의 영광을 좌우한다. 심는 대로 거두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법칙이다. 이것을 기억하며 분투하는 것이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성도의 자세다.


 

끝으로, 주인의 부재를 선용하지 못한 것이다. 이 청지기는 주인이 곁에 있을 때는 더할 나위 없이 성실한 사람, 부지런한 사람, 충성스러운 사람이었다. 그래서 주인의 신임을 얻었고, 중책을 맡았다. 그런데 주인이 자리를 비우자 전혀 딴 사람이 되었다. 청지기로서 해야 할 일은 하지 않고 위임받은 권위와 물질을 마음대로 사용하고, 빈 주인의 자리를 차지하여 주인행세를 했다. 자신이 위임받은 청지기라는 사실을 망각하고, 종이면서도 주인이라고 착각한 것이다. 도산 안창호 선생의 말 중에 혼자 있을 때 눕지 마라!’는 말이 있다. 혼자 있을 때 어떤 마음과 태도를 갖는가가 중요하다는 뜻이다. 혼자 있을 때 시간을 어떻게 사용하고, 어떤 생각을 하고, 무슨 행동을 하느냐를 보면 그가 어떤 사람인지를 알 수가 있다. 우리 동양에서는 흔히 사람이 보든 보지 않든, 사람이 있든 없든 자세나 행동이 한결같은 사람을 군자(君子)라고 했다. 성숙한 성도, 주님의 재림을 사모하며 기다리는 성도 역시 마찬가지다. 그러므로 주인의 부재는 청지기로서 주인에 대한 태도와 위임받은 일에 대한 충성을 증명할 수 있는 기회다. 주인이 있을 때, 주인이 보는 앞에서 잘 한 것은 중요하지 않다. 보는 앞에서는 누구나 잘 하기 때문이다. 보지 않는데도, 보는 사람이 없는데도 잘 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런 의미에서 주님의 재림의 지연은 우리에게 소중한 기회다. 지금까지 잘못 믿고 잘못 살았던 사람에게는 회복할 수 있는 기회이고, 잘 믿고 잘 살고 있는 사람에게는 더욱 분발할 수 있는 기회다. 주님의 부재를 청지기로서 주인 되신 주님에 대한 태도와 주님께 위임받은 일에 대한 충성을 증명할 수 있는 기회로 선용하자.

 

우리는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주님의 소유를 위임받은 청지기다. 그래서 우리가 가진 그 어떤 것도 우리의 소유를 주장할 수 있는 것이 없다. 생명도, 몸도, 건강도, 물질도, 자녀도, 가정도, 일터도, 교회도 모두가 주님의 것이다.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주님으로부터 위임받은 것들이다.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 이 모든 것에 대한 결산을 해야 할 텐데, 위임받은 것들을 어떻게 감당했느냐로 결정이 난다. 주님이 당장 오시더라도 문제가 되지 않도록 준비를 잘 하여 잘 믿고 잘 살고 잘 섬기는 충성스러운 청지기가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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