걱정 마, 잘 될 거야!
페이지 정보
작성자 장양식 댓글 0건 조회 14,872회 작성일 08-01-27 16:40본문
요14:1
2008. 1/27. 11:00
천재적 음악가, 목소리의 마술사, 천상의 목소리 등 이름 앞에 여러 가지 수식어를 달고 다니는 그래미상을 10회 수상한 바비 맥퍼린(Bobby McFerrin)이란 재즈가수가 있다. 그의 노래 중에 “Don't worry, be happy"(걱정 마, 잘 될 거야!)라는 노래가 있다. 유명한 인도 수도사의 말을 가사와 제목으로 삼은 노래인데, 침대가 없고 빚에 시달려도 “Don't worry, be happy"라며 격려를 준다. 모든 사람은 다 나름의 걱정과 근심이 있다. 어떤 사람은 진로 때문에, 어떤 사람은 자녀 때문에, 혹은 건강문제, 가정문제, 경제문제, 또는 개인적인 문제 등 여러 가지가 있다. 그중 가장 큰 근심은 이제까지 믿어왔던 근거가 무너질 때 생기는 두려움일 것이다.
사람마다 자기를 지탱해 주는 든든한 배경이 있다. 사람, 물질, 정신, 사회적 위상, 신념이나 신앙 등. 그러데 그 근거가 무너질 때 사람은 깊은 근심에 빠진다. 시편에 “터가 무너지면 의인이 어찌할꼬”(시11:3)라는 말씀이 있다. 의인이라도 자신을 지탱해 주는 근간이 무너지면 서지 못한다는 것이다. 때때로 우리 신자들에게도 이런 일이 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마찬가지다. 본문은 근심에 빠진 제자들에게 주님께서 주신 위로와 격려의 말씀이다.
제자들의 근심
제자들을 지탱해 주는 힘은 바로 예수님이었다. 예수님께서 그들의 모든 것을 해결해 주셨다. 먹을 것, 세금, 질병, 심지어 외부의 공격도 막아주시고 풍랑 가운데서도 보호해 주셨다. 그들은 단지 따르기만 하면 되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예수님께서 자신의 죽음을 말씀하셨다. 제자들은 그 말에 일말의 두려움을 가졌으나 아무도 묻질 못했다. 너무 두렵고, 있어서는 안 될 일이었으니까! 그런데 예수님께서 식사를 마치고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신 다음 유다의 반역, 당신의 떠나심, 베드로의 부인을 강하게 말씀하셨다(요13장). 그러자 제자들은 큰 근심과 혼란에 빠졌다. 제자들의 근심은 무엇이었나?
1. 앞날에 대한 불안감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과 불안함. 여기서 근심과 걱정, 염려가 생기게 된다. 제자들 역시 마찬가지다. 이렇게 예수님께서 떠나시면 우리는 어떻게 되는가? 우리의 미래는, 우리의 꿈은 어떻게 되는가? 생각할수록 막막하기만 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 자신들의 인생을 걸고 이제까지 따랐는데, 그래서 집도 생업도 다 포기하고 따랐는데, 그 예수님이 죽으신다하니 앞날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사실 우리들의 근심의 대부분도 이것이다. 왜 정초가 되면 많은 사람들이 점집이나 철학관을 찾아 사주나 점을 보는가? 자신의 미래가 불확실하여 불안하기 때문에, 염려가 되기 때문이다.
2. 소망과 계획의 물거품
제자들은 예수님을 통해 뭔가 이루기를 소망했다. 비록 당시 유대 사회에서 환영받지 못한 사람들이었지만 애국심만은 다른 사람들과 다르지 않았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을 통해 정복자 로마를 몰아내고 독립된 주권국가를 세우는 것이 소원이었다. 그리고 그 나라에서 자신들이 무엇인가를 기여하고 싶었다. 이것이 지난 3년 동안 예수님을 따르며 가졌던 계획이고 소망이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분명히 그 계획과 소망을 이루어 주시리라 확신했었다. 그런데 예수께서 떠나신다니. 소망도 계획도 다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누구라도 소망이 사라지고 계획이 틀어질 때 깊은 상실감과 함께 근심과 염려에 빠지고 만다.
3. 무지와 불신
그렇지만 제자들의 이런 근심의 근원은 다른 데가 있었다. 그것은 바로 무지와 불신이다. 그들은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 그 동안 가르치신 교훈의 내용, 나아가서 예수님의 죽음의 의미에 무지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은 죽음과 함께 부활을 말씀하셨는데 제자들은 주님의 부활에 대한 말씀을 불신했다. 그래서 이렇게 근심하고 있는 것이다. 무지와 불신은 항상 두려움, 걱정, 염려, 근심을 동반한다.
예수님의 처방책
1. 근심하지 마라.
긴장하면 종이를 찢는 버릇을 가진 사람이 있었다. 약을 먹고 병원을 가서 심리치료를 받아도 효과가 없었다. 마지막으로 어느 개인 병원을 찾아갔다. 여전히 종이를 찢으며 의사 앞에 앉아 있었다. 의사가 가만히 이 사람을 바라보더니, ‘종이 찢지마!’라고 꾸짖었다. 그러자 이 사람이 종이 찢는 것을 딱 멈추었다. ‘찢지마!’라는 그 한마디에 그토록 힘들어했던 종이 찢는 버릇이 치료된 것이다.
이것이 바로 중요한 근심의 해결책이다. ‘근심하지 마!’라는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우리 마음의 근심과 걱정, 염려, 두려움들이 다 사라지는 것이다. 말에는 능력이 있다. 특히 말하는 사람의 인격에 따라 말의 능력도 다르다. 예수님은 능력자시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말씀도 마찬가지다. 복음서에 주님께서 바람과 파도를 꾸짖자 잠잠해진 사건이 나온다. 거친 풍랑이 일고 있는 바다는 우리 마음의 상징이다. 우리 마음에는 끊임없이 근심의 파도, 염려의 바람, 걱정의 풍랑이 일고 있다. 그런데 말씀으로 바람과 파도를 잠잠하게 하신 주님이 우리 안에 계신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그 말씀에 순종해야 한다. 그러면 우리는 근심의 파도, 염려의 바람, 걱정의 풍랑을 넘을 수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주님은 근심하고 있는 제자들에게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1)고 말씀하신 것이다.
근심은 마음의 병이다. 셰익스피어는 ‘근심을 생명의 적’이라고 했다. 근심은 정신적 육체적 건강을 해친다. 특히 노년기에 알츠하이머병에 걸릴 위험이 매우 높다. 근심은 모든 파괴적이고 부정적인 결과의 근원이다. 수없이 많은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근심으로 인하여 그 가능성을 상실하고 무용지물의 인생을 산다. 주님은 말씀하신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요14:27). ‘근심에 사로잡히지 마라.’ ‘근심이 네 마음에 머물지 못하게 하라.’ ‘네 마음에서 근심을 몰아내라.’ ‘근심에서 자유자가 되라.’는 말씀이다. 근심에 빠진 제자들에게 주신 위로의 말씀이다. 중요한 것은 이 말씀 붙잡고 순종하는 것이다. 그러면 근심으로부터 자유, 승리를 경험할 수가 있다.
2. 믿어라.
앞에서 근심의 뿌리를 무지와 불신이라고 했다. 이것을 극복하는 것이 믿음이다. 흔히 근심의 해결책을 소원성취라고 한다. 하지만 성취이후 다른 종류의 근심이 또 다가온다. 소원성취는 결코 근심의 해결책이 아니다. 그렇다고 서론에서 말한 “Don't worry, be happy"라는 노래처럼, 막연히 잘 될 거라는 희망만 가지고도 근심을 해결할 수 없다. 그러므로 이 근심의 해결책은 믿음이다. 이 믿음은 막연한 것이 아니다. 예수님은 그 근거를 제공하신다. 하나님과 나를 믿어라. “Don't worry, be happy. believe me."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1). 주님을 믿는 믿음이 우리 인생의 모든 근심과 걱정을 해결하는 길이다. 그렇다면 이 믿음이란 무엇인가?
첫째로, 믿음은 예수님을 의지하고 신뢰하는 것이다.
예수님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해 자기 몸을 내어주신 분,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갖고 세상 끝날까지 나와 함께 하시는 분이시다. 바로 이 예수님을 의지하고 신뢰하는 것이 믿음이다. 다윗은 시편에서 주님께 대한 자신의 믿음을 이렇게 고백했다.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하고 용감히 행하리니 저는 우리의 대적을 밟으실 자심이로다.”(60:12).
인간은 현실의 종이지만 하나님은 현실을 초월한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사는 동안 근심과 걱정의 노예로 사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리고 주님을 의지하고 신뢰할 때 근심과 걱정으로부터 자유롭게 되는 이유 또한 여기에 있다.
둘째로, 믿음은 예수님께 모든 것을 맡기는 것이다.
나의 과거, 현재, 미래, 나의 인생 전체와 생명까지도 모두 몽땅 주님께 맡기는 것이 믿음이다(시37:5/길을 맡김, 시55:22/짐을 맡김, 잠16:3/행사를 맡김, 벧전5:7/염려를 맡김). 저는 목욕탕에 들어갈 때마다 ‘귀중품은 카운터에 맡기세요. 맡기지 않은 것은 책임지지 않습니다. -주인 백.’이라는 글귀를 본다. 이 글귀를 읽을 때마다 주님께서 내게 하신 말씀으로, 그리고 이 글귀를 예배당 안에 붙여두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렇다. 맡기지 않는 것은 내가 책임을 져야한다. 때문에 근심과 염려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맡긴 것은 주님이 책임을 져주신다. 때문에 근심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영어로 근심, 걱정, 염려, 불안을 ‘care’라고 한다. 그런데 이 단어에는 보호, 돌봄, 간호라는 뜻도 있다. 첫째 의미와는 반대다. 이는 무엇이든 내가 붙들고 있으면 근심, 걱정, 염려, 불안의 대상이 되지만 주님께 맡기면 보호, 돌봄, 간호의 대상이 됨을 보여준다.
셋째로, 믿음은 예수님을 바라보는 것이다.
사람이 근심하고 불안해하는 것은 주님을 믿지 않고 자기에게 집착하기 때문이다. 주님을 바라보고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문제에만 집중하기 때문이다. 베드로가 주님을 바라볼 때는 주님처럼 물 위를 걸을 수 있었으나 주님에게서 시선을 놓는 순간 물 속으로 빠져들었다(막6:45~52). 근심과 걱정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주님께 집중하면 근심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으나 놓치면 근심에 사로잡히는 것이다.
영국 비행기 제작자 페이지는 실험 비행 중 엔진에 쥐가 들어온 것을 발견했다. 만약 쥐가 엔진에 있는 그 많은 회로 중에 하나라도 망가뜨리면 비행사고로 이어질 상황이었다. 그 때에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의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사40:31)라는 말씀이 생각이 났다. 그래서 그는 재빨리 비행고도를 더욱 높여 쥐가 죽게 했다. 근심과 염려가 있을 때, 인생의 문제를 만났을 때도 마찬가지다. 주님을 바라보고 주님을 향해 믿음의 고도를 높여라.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님을 바라보는 것(히12:2)이 믿음이다. 이 믿음이 우리에게 근심과 걱정이 없는 삶을 보장해 준다.
미국인 길모어(H. L. Gilmour)라는 사람이 있다. 그는 16세 때부터 고단한 선원생활을 했고, 남북전쟁 때는 포로가 되어 많은 고초를 겪었다. 그러나 후에 뉴저지 주에 거하면서 교회를 세우고, 교회에서 교사와 찬양대 지휘자로 섬기면서 비로소 평안을 맛보았다. 그런 그의 고백이 찬송가 474장이다.
이 세상에 근심된 일이 많고
참 평안이 없었구나.
내 주 예수 날 오라 부르시니
곧 평안히 쉬리로다.
주 예수의 구원의 은혜로다.
참 기쁘고 즐겁구나.
그 은혜를 영원히 누리겠네
곧 평안히 쉬리로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