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년에도 그대로 두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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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kagathos 댓글 0건 조회 3,793회 작성일 23-12-31 14:04본문
금년에도 그대로 두소서!
눅13:6~9
2023. 12/31(송년주일) 11:00
덤으로 사는 인생
(영상) 이 노래를 부른 사람이 진요근이라는 가수인데, 대장암으로 5년 동안 투병 끝에 완치가 되었다. 이렇게 투병생활을 마치고 자신의 이야기를 노래로 만들어 부른 것이 이 노래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성한데 하나 없이
부서지고 상처가 났지만
비틀비틀 아슬아슬 여기까지 왔다.
험한 세상 끝까지 나를 더 사랑해준 당신,
고맙고 사랑합니다.
지나간 모든 것 나에겐 선물이고 기적이었어.
아 이제부터 이제부터 난 덤으로 사는 인생.
머리부터 발끝까지 성한데 하나 없이
닳고 닳아 진물이 났지만
온 세상이 보란 듯이 여기까지 왔다.
최고다 잘 한다 용기를 준 당신,
고맙고 사랑합니다.
지나간 모든 것 나에겐 선물이고 기적이었어.
아 이제부터 이제부터 난 덤으로 사는 인생.
우리도 마찬가지다. 사는 것 자체가 ‘덤’이다. 부서지고 상처가 났지만 아슬아슬 여기까지 온 것, 닳고 닳아 진물이 났지만 온 세상이 보란 듯이 여기까지 온 것은 우리를 사랑해주신 우리 주님 때문이다. 우리는 죄인이고, 죄인은 마땅히 죽어야 했는데, 오늘까지 이렇게 살아있는 것은 주님께서 봐주신 것이다. 이렇게 주님께서 사랑하시고 봐주신 인생이니 덤으로 사는 것이다.
금년에도 그대로 두소서.
본문은 우리가 덤으로 산다는 것, 그리고 덤으로 사는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잘 보여주는 말씀이다. 본문은 열매를 맺지 못한 나무를 두고 주인과 관리인(과원지기) 간의 대화다. 한 주인이 자기 포도원에 무화과나무를 심어놓고 열매를 기다렸다. 3년을 기다려도 열매가 없자 관리인에게 무화과나무를 베어버리라고 했다. 열매도 맺지 못한 나무를 그대로 두면 포도원 땅만 버린다는 것이다. 적어도 유실수는 5년 정도 지나야 열매를 맺는데 3년 만에 열매를 맺지 못한다고 찍어버리라니 주인의 성정이 너무 급하다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이것은 본문을 서구적 사고방식으로 접근하기 때문이다. 율법에는 유실수를 심는 것과 그 열매를 얻는 것에 대한 법이 있다. ‘각종 과목을 심거든 그 열매는 아직 할례 받지 못한 것으로 여기되 곧 삼 년 동안 너희는 그것을 할례 받지 못한 것으로 여겨 먹지 말 것이요.’(레19:23). 그리고 나무의 처음 난 열매는 하나님께 드려야 했다(레19:24). 주인이 무화과 열매를 구한 것은 적어도 무화과나무를 심은 지 5년 만이고, 그 이듬해인 6년째도 구했다. 그리고 7년째는 안식년이니 쉬었다가 또 제8년째 구했는데, 여전히 열매가 없었다. 그러니까 8년 동안 열매를 맺지 못한 것이다. 그래서 주인이 찍어버리라고 한 것이다. 그러니 주인은 성급한 사람이 아니라 인내심이 만은 사람이다.
이 주인은 바보거나 무화과를 너무 좋아한 사람이거나 둘 중에 하나다. 당시 유대사회에서 포도원에 무화과를 심는 것은 농사를 모르는 바보나 하는 짓이었다. 그런데 관리인을 둔 포도원 주인이라면 농사를 모를 리 없다. 그럼에도 그가 포도원에 무화과나무를 심고, 지난 8년을 기다린 것이다. 이는 그가 얼마나 무화과를 좋아한 사람인지 알 수가 있다. 이런 주인의 마음에 부응하지 못하자 더 이상 땅을 버릴 수 없으니 찍어버리라고 한 것이다. 이 비유에서 주인은 하나님이시고, 포도원에 심겨진 자격이 없는 무화과는 우리다. 이런 우리를 포도원에 심어놓으신 주인이 원하는 것은 단 하나, ‘열매’다. 실제로 무화과의 존재가치와 이유는 열매다. 열매 외에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것이 무화과나무다. 그러니 열매를 맺지 못한 무화과는 존재가치도, 이유도, 목적도 없다. 그저 찍혀서 버려지거나 아궁이에 던져질 뿐이다. 우리 인생의 가치와 목적도 마찬가지다. 열매 맺는 삶, 곧 열매에 있다. 열매를 맺지 못해 당장 찍혀져 마땅한 우리가 이렇게 살고 있는 것은 관리인의 간곡한 부탁 때문이다. ‘주인이여 금년에도 그대로 두소서.’ 그래서 우리의 하루하루가 덤이고, 은총의 나날인 것이다. 금년에도 이렇게 여기까지 온 것이다. 여기서 오늘의 우리를 있게 한 관리인의 태도에 대하여 좀 더 생각해 보려고 한다.
Proactive
상황을 앞서서 주도한다는 뜻의 ‘Proactive’라는 영어 단어가 있다. 이 단어는 나찌 수용소에 수용되었던 정신과 의사 빅터 프랭클(V. Frankl)이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는「죽음의 수용소에서」라는 책에서 이 단어의 의미를 이렇게 정의하고 있다. 환경이나 다른 사람에게 핑계를 대기보다 자신의 삶에 대하여 책임을 지려는 태도라고 했다. 즉, 발생한 문제에 적절하게 대응하며 스스로 행동하고 움직이는 것이다. 그는 수용소에서 부모, 아내, 가족을 모두 잃었음에도 외부환경에 책임을 돌리지 않고, 존재의 의미를 찾으려고 했다. 그리고 이 단어가 유명해진 것은 「성공하는 사람들의 일곱 가지 습관」이라는 책의 저자 스티븐 코비(S. Covey)가 그의 책에서 성공한 사람의 첫 번째 특징으로 ‘Proactivity’라는 단어를 사용한 후다. 그에 따르면 자기에게 주어진 일에서 성공한 사람은 책임감이 강하다고 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이나 환경에 책임을 전가하지 않고, 자신과 자신의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한 모든 책임을 지려고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태도가 Proactive이다.
보통 사람들은 문제가 발생하면 쉽게 핑계를 댄다. 이것이 타락한 인간의 중요한 특징 중에 하나다. 잘 알다시피 범죄한 아담과 하와가 왜 금한 나무의 열매를 먹었는지를 묻는 하나님의 물음에 보인 첫 반응이 핑계와 책임전가였다. 아담은 하와에게 책임을 전가하며 핑계를 댔고, 하와 역시 뱀에게 책임을 전가했다. 심지어 아담의 경우는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있게 하신 여자’(창3:12) 운운하며 하나님에게까지 책임을 전가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러한 태도는 그들의 자녀 가인에게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하나님께서 아벨의 죽음에 대해 묻자, ‘내가 아우를 지키는 자냐!’고 항의를 했다. 당연히 형이면 동생을 지키고 보호해야 하는데 동생을 죽여 놓고 뻔뻔하게 무책임한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부모에게서 배운 것이다. 신학적으로 표현하면 타락한 본성 때문이다. 만약 이들이 모두가 ‘내 탓’이라고 했다면, 내가 하와와 함께 있지 못했던 것이 문제였고, 내가 하나님의 말씀에 철저하지 못하여 뱀에게 틈을 주었던 것이 문제였고, 내가 순간적인 분노를 다스리지 못한 것이 문제였다고 자기 책임을 강조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책임감이 성숙이다.
흔히 인격을 책임감이라고 말한다. 성숙한 인격을 가진 사람은 핑계나 책임전가를 하지 않고 불이익을 감수하면서라도 책임을 다한다. 주님의 비유에 등장하는 이 관리인은 책임감이 강한 성숙한 사람이다. 앞에서 말한 ‘Proactive’(혹은 Proactivity)의 전형이다. 나무가 열매를 맺지 못한 것을 두고 누구를 비난하거나 누구에게 핑계를 대지 않았다. 주인이 열매를 맺지 못하는 나무를 심었다고 말하지 않았다. 포도나무들이 거름을 다 빼앗아갔기에 열매를 맺지 못하였다고 말하지도 않았다. 밭이 나빠서 열매를 맺지 못하였다는 말은 더욱 더 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주인에게 시간을 더 달라고 요청하며 이렇게 말했다. ‘내가 두루 파고 거름을 주리니.’ 그는 이전에도 그 무화과나무 주위를 두루 파고 거름을 주었을 것이다. 주인이 무화과 열매를 간절히 원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다시 두루 파고 거름을 주겠다는 것이다. 무슨 말인가? 나무가 열매를 맺지 못하는 원인을 자신에게 두고, 자신이 책임을 지겠다는 태도를 보인 것이다. 기회를 주면 열매를 맺도록 더욱 힘써 보겠다는 것이다. 이렇게 사는 것이 덤으로 사는 사람의 자세다. 우리 또한 우리 자녀에게, 교회에, 가정에, 사업에, 건강에 대하여 이러한 태도를 가져야 한다. 속담에 ‘잘 되면 내 탓, 잘못되면 조상 탓’이라는 말이 있다. 남의 탓만 하는 사람을 빗댄 속담이다. 남을 비난하거나 남에게 책임을 돌리는 것이 아니라 책임을 다하려고 할 때, 영적으로 성숙한 성도가 되고, 자녀는 책임감이 있는 자녀로 자라게 될 것이다. 우리 교회는 건강하게 성장할 것이고, 성숙한 공동체가 될 것이다.
이 관리인은 우리 주님이시다. 주님은 열매 맺지 못한 우리를 탓하지 않고, 도리어 자신의 책임으로 여기며, 우리가 열매를 맺도록 최선을 다하셨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의 포도원에서 쫓겨나지 않고 오늘에 이른 것이다. 이와 같은 주님의 모습에 큰 감동을 받았다. 60평생을 기다렸는데도 변변한 열매하나 맺지 못한 나에게 실망하여 당장 뽑아버리라는 노한 하나님의 음성과 함께, 나의 잘못을 자신의 잘못처럼 생각하며 안타까운 모습으로 ‘아버지여 금년에도 그대로 두소서. 내가 더 잘 보살펴서 열매를 맺도록 하겠습니다.’고 말씀하시는 주님의 모습이 너무 감동이었다. 그래서 ‘더 이상 하나님 아버지께 실망을 드리지 말자! 더 이상 주님을 곤란하게 만들지 말자! 그것이 사랑이든 감사든 섬김이든 영혼구원이든 적은 열매라 꼭 맺어서 주님의 마음을 시원하게 해드리자.’고 결심했다. 지금까지 여러분의 뜨거운 헌신과 섬김으로 오늘의 우리 교회가 있다고 믿는다. 지금까지의 헌신과 섬김의 열매만으로도 주님께 기쁨이 되고 주님의 마음을 시원하게 해드리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신앙생활은 멈추지 않고 주님 나라에 이르기까지 계속 되어야 하는 것처럼 우리의 헌신과 섬김도 마찬가지다. 덤으로 주실 2024년도에도 더욱 풍성하고 튼실한 신앙의 열매로 주님께 기쁨이 되고 주님의 마음을 시원하게 해드리는 여러분이 되기를 바란다.
관련링크
- https://youtu.be/o-jc-Rk0fvU 1407회 연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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