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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의 위로로 성장하는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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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kagathos 댓글 0건 조회 1,530회 작성일 24-01-28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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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의 위로로 성장하는 교회

9:31~35

2024. 1/28. 11:00

치킨 런(Chicken Run)

농장을 탈출하는 닭들의 이야기치킨 런(Chicken Run)이란 영화가 있다. 지난 2000년에 영국에서 만들어진 애니메이션 영화다. 닭 농장에서 사육되고 있는 닭들이 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고 탈출을 모색하는 내용인데, 농장에 사는 암탉들은 그들의 리더 진저의 지휘 아래 필사적으로 농장을 탈출하려고 시도를 한다. 땅굴도 파보고, 울타리 아래로 기어 나오려고도 하고, 농장 주인으로 위장해 개들을 따돌려 보기도 한다. 하지만 결과는 늘 실패였고, 진저는 독방에 갇힌다. 그러던 어느 날, 달걀 수입으로 만족하지 못한 농장주인은 무시무시한 자동 치킨파이 기계를 사들였다. 그러면서 농장의 암탉은 이제 모두 치킨파이가 될 절체절명의 위기에 놓이게 되었다. 그래서 닭들은 필사적인 노력으로 기어이 하늘을 날아올라 농장을 탈출하여 어느 섬에서 천국의 행복을 누리게 된다.

 

날지 못한 닭이 날기 위해선 추진력이 필요한데, 무엇이 그 추진력이 될 수 있을까? 주인공 진저라는 암탉의 말에서 찾을 수 있다. 주인공은 날기에 실패한 닭들을 향해 이렇게 외친다. ‘문제가 뭔지 알아요? 진짜 철조망은 여러분 머릿속에 있다는 것에요.’ 생각이 문제라는 것이다. 날지 못한다는 생각, 날수 없다는 생각이 문제라는 것이다. 이런 생각의 철조망이 문제라는 것이다. 요즘 우리 사회는 물론 교회도 위기다. 특히 우리 한국교회는 90년대를 기점으로 부흥이 멈췄다. 거기다가 코로나19 사태와 더불어 인구감소를 비롯한 외적 환경의 변화, 끊이지 않는 내부적인 여러 문제로 교회와 성도의 위상이 추락하면서 교회의 위기는 더욱 가속화되었다. 소위 쇠락(衰落)과 침체라는 철조망에 갇힌 것이다. 이와 같은 침체와 쇠락의 철조망을 넘어서려면 치킨 런의 닭들처럼 비상하는 날개를 펴고 탈출해야만 한다. 그러려면 진저의 말처럼 우리 머릿속에 있는 철조망을 걷어내야 한다. 안 되다는 생각, 못한다는 생각, 할 수 없다는 생각, 이런 생각의 철조망을 걷어내야 한다. 생각이 행동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생각은 마음에서 비롯된다. 그래서 성경은 가장 먼저 변화를 받아야 할 부분으로 마음을 꼽고 있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12:2).

 

교회와 성령

본문 31절은 핍박 속에서도 부흥하는 초대교회의 모습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말씀이다. 특히 초대교회 부흥의 키워드 4가지를 보여주는 말씀이다. 지금까지 세 가지를 말씀드렸고, 이 시간에는 마지막 네 번째 성령의 위로에 대하여 생각해 보려고 한다. 지난 주일에 말씀 드린 주를 경외함과 이 시간 생각해 보려고 하는 성령의 위로는 평안하여 든든하게 서가는 교회의 특징이면서 동시에 알차게 부흥하는 비결이기도 하다. 특히 교회의 성장과 부흥에 있어서 성령의 역할은 절대적이다.

 

흔히 성령을 교회의 영()이라고도 한다. 성령과 교회가 깊은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교회의 탄생과 확장, 부흥의 역사를 보여주는 사도행전이 이를 잘 보여준다. 사도행전은 예루살렘 마가의 다락에서 시작된 교회가 어떻게 당시 세계의 수도였던 로마까지 확장되었는지를 보여주고 있는데, 그 배후에 성령이 계시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기 직전에 성령을 약속하시고 하늘로 올라가셨다. 사도들을 포함한 120명의 성도가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 약속하신 성령을 기다리며 전혀 기도에 힘썼고, 오순절에 그곳에 성령이 임하여 모두가 큰 권능을 받았다. 이렇게 교회가 탄생하였다. 그리고 그 교회가 하루에 삼천 명, 오천 명씩 폭발적으로 부흥하였다. 모두가 성령의 역사하심 때문이다. 특히 사도들을 통하여 많은 이적과 기사가 나타났는데, 이 역시 성령의 역사였다. 핍박 후 교회가 온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로 확산이 되고, 국경을 넘어 시리아 지역에 안디옥 교회가 세워진 것도, 안디옥 교회의 파송으로 바울과 바나바가 최초의 선교사가 된 것도 마찬가지다. 성령은 바울과 바나바의 선교사역 현장마다 복음의 역사를 일으켰다. 그리고 바울의 선교가 아시아를 넘어 유럽으로, 로마제국의 수도 로마까지 전파된 것도 성령의 역사였다. 이렇게 교회의 시작과 확장, 선교를 다루고 있는 사도행전을 성령행전이라고 한다.

 

부흥하는 교회의 특징

본문 역시 이와 같은 성령의 역사를 보여준다. 특히 흩어진 교회가 성령의 위로로(31) 유대 각 지역으로 확장되어 나가는 모습이다. 성령의 위로로 교회가 알차게 부흥하며 확장되어 나갔다는 것이다. 여기서 성령의 위로는 성령의 도우심이나 역사하심을 뜻한다. 31절 이후에 나온 애니아(32~36)와 다비다(37~42) 사건에서 이를 확인할 수가 있다. 베드로가 룻다 지역에서 중풍으로 8년 동안 누워있는 애니아를 고쳐주었고, 이어 욥바에서 병들어 죽은 다비다를 살려냈다. 이 두 사건은 베드로 개인의 경건이 아니라 성령의 도우심이었다. 이 모두가 성령께서 하신 일이었다. 베드로는 그저 도구로만 쓰임을 받은 것이다. 어쨌든 그 결과는 당사자나 주변 사람에게 큰 위로를 주었고, 이와 같은 성령의 위로가 교회의 확장과 부흥에 중요한 원인이 되었다. ‘룻다와 사론에 사는 사람들이 다 그를 보고 주께로 돌아오니라.’(36). 애니아 사건에 대한 주변 사람의 반응으로, 이 사건으로 교회가 부흥했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본문에서 성령의 위로는 따뜻한 말이나 행동으로 괴로움을 덜어주거나 슬픔을 달래주는 것(국어사전의 정의)이 아니라 성령의 강력한 역사하심, 혹은 성령의 놀라운 도우심이다. 이것이 초대교회에 역사한 성령의 위로다.

 

평안하고 든든하게 서가는 교회는 성령의 강력한 역사하심이나 놀라운 도우심과 같은 성령의 위로가 있고, 이와 같은 성령의 위로로 알차게 부흥하게 된다. 물론 성령의 역사하심이나 도우심이 방언이나 이()적이 전부는 아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가장 보편적인 현상이 방언이고 기적이라고 할 수 있다. 사도행전을 보면 이와 같은 현상이 교회를 세우고 확장하고 부흥에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을 확인할 수가 있다. 그리고 부흥의 현장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언제가 말했지만 내가 어려서 다녔던 시골교회도 그랬다. 노회에서 폐쇄결의 직전에 한 성경학생의 자원으로 보류가 되었는데, 그 학생 전도사의 헌신으로 교회가 부흥하게 되었다. 그때 나타난 현상을 내가 잘 기억하고 있다. 어린 주일학생까지 방언의 은사를 받아 방언기도가 교회에서 보편적인 현상이었고, 심지어 어떤 성도는 대중교통을 타고 가다가도 방언기도가 나와 차 안에서 요란하게 기도를 했다. 충분히 비웃음거리가 될 수 있었는데도 누구 하나 비웃는 사람이 없었고, 오히려 다들 숙연했다. 그리고 전도사님이 절제시키면 조용해졌다. 이 외에도 다들 확인할 수 있는 기적이 자주 일어났고, 이 소문이 주변으로 확산되어 교회를 외면하던 사람들이 교회로 몰려들었다. 그래서 지역의 애물단지였던 교회가 지역의 자랑이 되었다.

 

기적이 상식이 된 교회가 되려면

성령의 도우심과 역사하심은 기적 외에도 다양하게 많다. 그럼에도 굳이 기적을 뽑은 것은 객관적으로 드러나는 가장 중요한 역사이기 때문이다. 주님께서도 수많은 기적과 이적을 통해 자신이 어떤 분이신지를 보여주셨다. 이런 의미에서 성도의 삶과 교회 현장에서 기적이 중요하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기적이 우리의 삶과 교회에서 상식이 될 수 있을까? 그것은 전적으로 성령의 도우심과 역사하심이 있어야만 된다. 그리고 성령의 도우심과 역사하심은 이런 필요조건이 충족될 때 드러난다(사도행전에 따르면). 그 첫째가 뜨겁고 간절한 기도. 오순절 강령강림 사건이 그랬고(2:1~), 베드로와 요한이 공회에 잡혀갔다가 풀려나 함께 기도할 때 모인 곳이 진동하였고(4:31), 사마리아 지역에서 베드로와 요한이 기도하자 그곳에 성령이 임했다(8:15,17). 그리고 죽은 다비다를 베드로가 기도하자 다시 살아났다(9:40). ‘기도-성령-기적이라는 영적 공식이 성립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둘째는 말씀이 선포되고 선포되는 말씀을 듣는 것이다. 베드로의 설교를 들은 사람들에게 성령을 통해 회개의 역사가 일어났고(2:41), 베드로와 요한의 선포를 듣고 앉은뱅이로 태어난 걸인이 걷게 되었고(3:1~10), 본문에서도 8년 동안 중풍으로 누워만 있던 애니아가 베드로의 선포를 듣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애니아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를 낫게 하시니 일어나 네 자리를 정돈하라.그리고 가이사랴에 주둔한 로마 백부장 고넬료의 집에서 성령강림 사건도 베드로의 설교를 듣는 중에 일어났다(10:44). 여기서도 말씀-성령-기적이다. 셋째는 복음을 전하는 것이다. 빌립이 사마리아 지역에서 복음을 전할 때 많은 기적이 일어났다. ‘많은 사람에게 붙었던 더러운 귀신들이 크게 소리를 지르며 나가고, 또 많은 중풍병자와 못 걷는 사람이 나으니’(8:7). 또한 사마리아 지역에서 활동하던 빌립이 성령에 이끌려 유대 사막으로 내려가 에티오피아 관리를 만나 복음을 전하고 그에게 세례를 베풀었다. 이 역시 빌립이 복음을 전하던 중에 경험한 사건이다. 그리고 바울의 선교현장에는 성령의 역사로 항상 기적이 따라다녔다. 복음전파-성령-기적이다. 간절히 기도하고, 전심으로 말씀을 듣고, 기회있는 대로 말씀을 전파하는 것이 기적을 일상에서 경험하는 삶의 필요조건이다. 금년도 우리 개인과 가정, 그리고 교회 안에서 기적이 일상이 되어 알찬 성장과 알찬 부흥이 있기를 소망한다. 따라해 보라!

 

자나깨나 힘써 기도하자!

밤낮으로 말씀 묵상하자!

기회있는 대로 전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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