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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무늬(heart-pri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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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양식 댓글 0건 조회 14,279회 작성일 08-02-18 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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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무늬(heart-prints)

행9:36~43

2008. 2/17 11:00

지문이 없는 사람이 있다고 한다. 인터넷 뉴스에 나왔는데, 대만 사람(황전톈 씨)으로 현재 3대가 함께 살고 있고, 5대에 걸쳐서 직계가족들 손발에 지문이 없는 유전이 계속되고 있다고 한다. 이런 경우를 제외하곤 모든 사람은 손발에 지문이 있고, 그 지문은 사람마다 다르며 평생 변하지 않는다. 그래서 사람의 인적 사항을 간단하게 확인하는 방법 중 하나로 지문이 널리 사용되고 있다(주민등록증, 특정국가의 입국절차, 통제구역 출입, 범죄현장, 범죄자 관리 등).


그런데 이와 같은 지문(finger print)이 우리의 손과 발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마음에도 있다. 이것을 마음의 무늬(heart-prints)라 한다. 이 마음의 무늬도 사람마다 다르고, 중요한 것은 그 무늬에 따라 그 사람이 평가된다는 사실이다. 가령 선한 사람, 아름다운 사람, 다시 만나고 싶고, 영원히 기억하고 싶은 사람.이렇게 말이다. 내 마음의 무늬는 어떨까? 사람들에게 어떻게 기억되고 있을까? 한 번 상상해 보자!


오늘 본문에 참으로 아름다운 마음의 무늬를 가진 사람이 나온다. 예루살렘에서 북동쪽으로 60㎞ 정도 떨어진 곳에 욥바라는 항구도시가 있다. 여기에 다비다(히브리어로), 즉 도르가(헬라어로)라 하는 여제자가 있는데, 홀로 사는 여인이다.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외로운 이들을 위해 한땀 한땀 사랑의 옷을 지은 구제의 어머니요, 구석구석 필요한 곳에 선행을 베푼 봉사의 어머니였다. 그런 그녀가 병이 들어 죽었다. 어려운 이웃들을 챙기고 돌보느라 정작 병든 자신은 돌보지 못했던 것 같다. 그만큼 그녀의 선행과 구제가 특별했다. 때문에 그녀의 죽음은 주변 많은 사람들에게 안타까움을 주었고, 특히 그녀의 돌봄을 받았던 어려운 이웃들에겐 큰 슬픔이었고 아픔이었다. 하지만 주님은 죽은 다비다를 다시 살려서 그녀가 섬겼던 사람들과 함께 있게 하셨다.


다비다의 삶이 본문에 짧게 기록되어 있지만, 그녀는 선행과 구제의 아름다운 마음의 무늬를 지닌 초대교회의 대표적인 여성 지도자다. 이 시간 다비다의 섬김의 삶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을 생각해 보고자 한다.


1. 섬김은-우리의 삶이 사람들에게 아름다움으로 기억될 수 있는-마음의 무늬다(36).

사냥을 좋아하는 왕자가 있었다. 이 왕자가 어느 날 사냥을 나갔다가 깊은 산속에서 실족하여 그만 낭떠러지로 떨어지고 말았다. 수행했던 사람들도 모르는 사이에 일어난 일이다. 그때 마침 그곳을 지나가던 나무꾼에게 이 왕자가 발견되었고, 나무꾼은 왕자를 자기 집으로 옮겨 정성껏 치료를 해주었고, 회복된 왕자는 궁으로 돌아갔다. 얼마 후 왕이 이 나무꾼을 궁으로 불러 잔치를 베풀고 무엇이든 소원을 말하면 들어주겠다고 약속했다. 그곳에 모인 사람들은 이 나무꾼이 무엇을 왕에게 구할까에 관심이 쏠렸다. 그런데 이 나무꾼은 아주 엉뚱한 요구를 했다. 그것은 매년 한 번씩 자기 집에서 주무셔 달라는 것이었다. 왕은 이를 흔쾌히 허락했다. 일년에 한 번씩이지만 그 날로 왕궁에서 그 나무꾼으로 집까지 왕이 다닐 수 있도록 길이 새로 만들어지고, 왕이 머물 수 있는 집이 마련되었다. 식사를 준비하는 요리사에서부터 왕이 머물 집을 지킬 군사들이 준비되었다. 그래서 이 나무꾼의 집은 왕궁처럼, 나무꾼은 왕처럼 대접을 받으며 살게 되었다.


나무꾼의 지혜가 돋보이는 이 이야기는 눈앞의 이익보다 먼 미래를 보며 살라는 교훈을 준다. 현실만 바라보는 사람은 꿈을 꿀 수가 없다. 자신을 포함한 주변 사람의 꿈까지 훔치는 사람(꿈 도둑)이 되고 만다.


동시에 본문의 다비다처럼 섬김의 삶이 다른 사람들에게 아름답게 기억되는 마음의 무늬임을 교훈하는 이야기기도 하다. 섬김이라고 하는 작은 행위가 왕과 나무꾼을 이어주는 중요한 고리가 된 것이다. 이는 나무꾼의 행동이 왕의 마음에 깊이 각인된 것을 의미한다. 섬김은 마음의 무늬다. 사람들의 마음에 가장 강하게 각인되는 무늬이다. 소위 인류의 스승이라고 하는 분들의 공통적인 삶이 섬김의 삶이다. 종교나 종파를 떠나서 성자로 추앙받는 마더 테레사가 바로 그런 사람이다. 평생을 빈민들의 친구로 그들과 함께하면서 그들을 섬기는 손이 되고 발이 되고 눈이 되었다. 그녀 또한 다비다처럼 어려운 이웃들을 선행과 구제로 섬기는 마음의 무늬를 가졌고, 사람들은 그녀의 아름다운 마음의 무늬에 강동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역시 섬김이라고 하는 아름다운 마음의 무늬를 간직할 수 있기를 바란다. 우리 주님께서 오신 것도 이를 위해 오셨고(막10:45), 친히 몸으로 보여주셨고(요13:14), 이를 위해 죽으셨다. 그리고 우리에게도 주님처럼 살 것을 명하셨다(막10:43~44, 요13:15).


어느 무명작가의 기도다. 오, 하나님! 오늘 제가 가는 곳마다 마음의 무늬를 남기도록 도와주소서. 동정심과 이해, 사랑의 마음의 무늬들. 친절과 진실한 관심의 마음의 무늬들을. 저로 하여금 외로운 이웃, 집나간 자녀들, 이들을 걱정하는 부모들, 할아버지 할머니들까지 마음으로 만지도록 도와주소. 마음의 무늬를 남기도록 도와주소서. 이것이 우리의 기도가 되기를 바란다.            


2. 섬김은-장차 주님 앞에 섰을 때 살아온 우리의 삶에 대한-보증이다(39).

성경은 두 종류의 심판을 말씀한다. 하나는 구원의 심판이고, 다른 하나는 행위의 심판이다. 우리 신자들은 이미 구원의 심판은 통과한 사람들이다. 하지만 행위의 심판이 남아 있다. 이 행위의 심판을 결정하는 것은 현재의 삶이다. 지금 얼마나 풍성하게 베풀고 나누며, 섬기고 사랑하며 사느냐가 중요한데, 우리는 주님 앞에서 그것을 보여줄 수가 있어야 한다. 그 보증, 곧 증거물이 바로 내가 이 땅 살면서 베풀고 섬겼던 사랑하고 돌보았던 그 사람들이고, 그 일들이다.


본문 39절을 보라. 다비다에게 은혜를 입었던 사람들이 다비다가 자신들에게 지어준 속옷과 겉옷을 베드로에게 내어 보여주고 있다. 이 속옷과 겉옷은 지금까지 살아온 다비다의 삶에 대한 증거물들이고, 그녀의 죽음을 슬퍼하며 이것들을 보여주고 있는 과부들은 다비다의 삶에 대한 증인들이다. 이것이 장차 주님의 심판대 앞에서 우리가 경험하게 될 모습이다. 정말 놀랍지 않는가? 장차 내가 주님 앞에 섰을 때, 나의 선한 삶을 보증해줄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지금 내가 섬기고 있는 이 일, 그리고 섬기고 있는 이 사람들이 천국에서 나의 생활을 결정할 중요한 보증인이고 보증물이다. 데살로니가전서에서 바울도 비슷한 이야기를 한다. 우리의 소망이나 기쁨이나 자랑의 면류관이 무엇이냐, 그의 강림하실 때 우리 주 예수 앞에 너희가 아니냐. 너희는 우리의 영광이요, 기쁨이니라.(2:19~20) 데살로니가 신자들이 장차 주님 앞에 설 바울의 보증인이라는 말씀이다. 저 역시 이 말씀을 목회적 소망으로 삼고 있습니다.


바울은 딤전6:18~19절에서 디모데에게 부자들을 이렇게 권하라고 한다. 선한 일에 행하고, 선한 사업에 부하고, 나눠주기를 좋아하며, 동정하는 자가 되게 하라. 이것이 장래에 자기를 위하여 좋은 터를 쌓아 참된 생명을 취하는 것이니라. 여기서 바울은 섬김을 장래에 자기를 위하여 좋은 터를 쌓는 일이라고 정의한다. 즉 영적으로 부유해지고 장래의 상급을 확실히 보장받는 비결이라는 뜻이다. 


3. 섬김은-축복과 은혜의-통로다(40, 42).

테레사 효과, 혹은 슈바이처 효과라는 말이 있다. 1998년 하버드대학교 의과대학에서 남을 돕는 활동을 통하여 일어나는 정신적, 신체적, 사회적 변화에 대한 연구를 했다. 그 결과 테레사수녀처럼 남을 위한 봉사활동을 하거나 그들이 행한 선한 일을 보기만 해도 인체의 면역기능이 크게 향상되는 것을 발견했다. 그래서 이를 테레사 효과, 혹은 슈바이처 효과라 부르게 되었다.


실제로 누군가를 도우면 기분이 아주 좋아진다. 정신적인 만족감을 느낀다. 이를 헬퍼스 하이(Helper's High)라고 한다. 남을 돕고 섬기는 일을 하고 난 뒤에는 거의 모든 경우 심리적 포만감, 즉 '하이' 상태가 며칠 또는 몇 주 동안 지속된다고 한다. 의학적으로도 혈압과 콜레스테롤 수치가 현저히 낮아지고, 엔돌핀이 정상치의 3배 이상 분비되어 몸과 마음에 활력이 넘친다고 한다. 이것이 섬기는 자들이 경험하는 섬김의 축복이고 은혜다.


다비다를 보자. 다비다는 섬김을 통해 주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소중한 존재가 되었다. 그녀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는 사람들의 모습(37), 이미 죽은 몸이지만 살리고 싶어 베드로에게 달려가는 모습(38), 베드로 앞에서 그녀의 죽음을 슬퍼하면서 그녀의 삶을 소개하는 모습(39)에서 이를 확인할 수가 있다. 그녀는 어려운 이웃들에게 물질을 주었는데, 그들로부터 더 많은 것을 받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더욱 중요한 것은 베드로가 죽은 그녀의 시신 앞에서 기도하자 주님께서 다시 살려주셨다(40). 섬김은 먼 장래뿐만 아니라 현실에서 그 은혜와 축복을 경험하게 하는 통로다. 그래서 섬기는 개인, 섬기는 가정, 섬기는 교회가 잘되는 것이다.


오늘이 교회력에 의하면 사순절 둘째주일이다. 사순절은 주님의 고난을 묵상하면서 기도와 금식, 섬김 등 경건생활에 힘쓰는 교회의 중요한 절기다. 이것은 지난 2천년 동안 계속되어 온 교회의 아름다운 전통이다. 사도 야고보는 행동하는 믿음이 참된 믿음(약2:26)이라고 했다. 그리고 그것은 고아와 과부를 그 환란 중에 돌아보는 것(약1:27)이라 했다. 주님께서 친히 이 땅에 섬기는 종으로 오셔서 귀한 생명을 던져 섬김의 본을 보이셨던 것처럼, 그리고 우리로 그 자취를 따르라고 명령하신 것을 기억하여 섬김의 삶을 살자. 그리하여 우리 마음에 아름다운 섬김의 무늬를 갖자. 섬김의 무늬가 선명한 마음을 가진 우리 기뻐하는교회 지체들이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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