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더 착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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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kagathos 댓글 0건 조회 197회 작성일 26-01-04 17:41본문
함께, 더 착하게
행11:19~26
2026. 1/4. 11:00(신년주일, 개당기념주일)
마인드셋(Mindset)
심리학자 ‘캐럴 드웩’(C. Dweck)은 「마인드셋」(Mindset)이란 그의 책에서 사람의 기본능력과 재능을 고정된 기질로 보느냐, 성장하는 기질로 보느냐에 따라 마음가짐(Mindset)을 ‘고정 마인드셋’(Fixed Mindset)과 ‘성장 마인드셋’(Growth Mindset)으로 나누었다. 자기 능력이 정해져 있다고 생각하는 고정된 마음가짐을 가진 사람은 어차피 해도 안 된다는 생각에 어려움을 회피하거나 포기하지만 노력(배움)으로 자기 능력이 향상될 수 있다고 믿는 성장 마음가짐을 가진 사람은 어려움에 굴하지 않고 더 큰 노력을 기울인다는 것이다. 이렇게 성장 마음가짐을 가진 사람은 자신뿐만 아니라 함께 일하는 사람까지 성장시킨다는 것이다. 한 마디로 일이 되게 만드는 사람, 일이 잘 돌아가게 하는 사람, 더 나아가 다른 사람을 잘 되게 하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반면에 고정된 마음가짐을 가진 사람은 자신은 물론이고 함께 하는 사람의 발목까지 붙들고 늘어진다는 것이다. 나는 어떤 사람인가? 새해를 어떤 마음가짐을 가지고 살아야 할까?
잘 되게 하는 사람
본문에 성장 마음가짐을 가진 사람, 그래서 자신과 주변을 잘 되게 하는 사람이 나온다. 바로 ‘바나바’라는 사람이다. 그는 구브로에서 태어난 부유한 레위인이었다. 그의 본명은 요셉인데, 사도들이 ‘바나바’(영어로 Helper)라는 새로운 이름을 주었다(행4:36). 이는 그의 삶이 어떠했는지를 말해준다. 예루살렘교회의 탁월한 특징이 나눔이었다. 그래서 유무상통(有無相通)한 교회였다. 이런 삶이 가능했던 것은 바나바와 같은 부자들이 솔선했기 때문이다(행4:37). 그리고 스데반의 순교 이후 핍박으로 흩어진 성도들이 국경을 넘어 수리아 안디옥 지역으로 가서 안디옥 교회(이방 지역에 세워진 최초 교회)를 세웠다(19). 바나바가 그 교회 초대 목회자로 파송되었다(22). 안디옥 교회는 그로 말미암아 크게 부흥하였다(24b). 한마디로 그는 예루살렘교회를 잘 섬기고, 안디옥 교회를 크게 부흥시켜 초대교회 시절 상징적인 두 교회를 다 잘 되게 한 인물이었다.
이렇게 두 교회를 잘 되게 한 그의 또 한 가지 큰 업적은 사람을 세워 잘 되게 하는 것이다. 우리 기독교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은 ‘바울’이다. 그는 성경을 13권이나 저술했고, 기독교 복음의 세계화에 앞장섰던 사람이다. 그런데 이 바울을 세워준 사람이 바나바다. 그는 핍박자 사울을 복음 전도자 바울이라는 스타로 키워낸 사람이다. 바나바라는 코치가 있었기에 위대한 사도바울이 탄생한 것이다. 그는 바울에게 좋은 코치(Coach)이자 멘토(Mentor)였다. 스타는 코치가 키운다. 바나바는 스타는 아니었으나 스타를 키워낸 사람이다. 사람을 세워주는 사람이었다. 사도행전을 보면, 바울이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서 주님을 만났지만 사도들과 교회는 그와의 교제를 두려워했다. 여기서 다리 역할을 한 사람이 바나바다. 특히 본문에선 잊혀진 존재로 고향에서 생활하고 있는 바울을 찾아서 데려와 함께 안디옥 교회를 섬겼다. ‘바나바가 사울을 찾으러 다소에 가서’(25). 여기서 ‘찾다.’(ἀναζητῆσαι)라는 동사는 바울에 대한 바나바의 간절함을 잘 보여준다. 이 동사는 ‘한집 한집 뒤져가며 세밀히 찾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고향 다소에 은거하고 있는 사울을 정성스럽게 열심히 찾았다는 뜻이다. 이런 바나바의 정성을 통해 바울이라고 하는 사람이 안디옥 교회를 거쳐, 특히 이방인 선교사로 세움을 입게 되었다. 그래서 지금의 바울이 된 것이다.
신학자 폭스 잰슨(Fokkert J. Janson)은 바나바를 이렇게 평했다. ‘바나바는 신약성경에서 가장 매력 있는 인물 중의 하나다. 그는 남의 장점을 찾아내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재능으로는 바울보다 못했을지 모르나 성도의 덕으로는 우월했다. 그는 질투를 모르고, 남의 허물을 용서하고, 정점을 보기에 빨랐고, 화평을 위해 타협을 주저하지 않았다. 역사상 바울은 세계교회 진보에 공헌한 바 컸지만 바나바는 세상을 살맛 나게 해주는 사람이었다. 우리가 바울의 위대함을 잊지 못함과 동시에 바나바는 기독교가 세계적으로 진출하는데 개척자였음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착한 사람 바나바
이렇게 교회를 잘 되게 하고, 사람을 잘 되게 한 배경에는 그의 성품이 자리하고 있다. 본문은 그를 이렇게 소개한다. ‘바나바는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라. 이에 큰 무리가 주께 더하여지더라.’(24). 여기서 ‘착한’이란 단어가 그의 성품을 특징적으로 표현한다. 이는 단순히 그의 도덕성이 아니라 영성을 반영하는 단어다. 이 단어 자체도 그렇지만 뒤에 나오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이란 구절이 이를 잘 보여준다. 착함은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결과다. 이 착함은 바울이 말한 성령의 여섯 번째 열매 ‘양선’과 같은 단어이고(갈5:22), 야고보가 말한 위로부터 난 지혜의 열매 네 번째 ‘양선’이란 단어(약3:17)와도 같다. 그러니까 여기서 착함은 성령의 열매이고, 하늘로부터 난 지혜란 뜻이다. 이렇게 그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착한 사람이었다. 즉, 성령의 열매와 하늘의 지혜로 충만한 믿음의 사람, 성령의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착함의 의미가 무엇일까? 단어적 의미는 여러 가지지만 한 마디로 ‘너그러움’이다. ‘너그럽다.’라는 것은 마음에 여유가 있고, 넉넉한 마음을 가진 것을 뜻한다. 즉, 상대방이 처한 상황을 이해하고, 동정하며, 도우려는 태도가 너그러움, 곧 ‘착함’이다. 그래서 그는 사도들조차 꺼리는 바울을 변호하고, 도와 사도들에게 소개시키고, 자기 고향에서 은거 중인 그를 직접 찾아서 데려와 자신의 목회지에서 함께 사역을 했던 것이다. 이런 그의 착함이 바울을 소중한 일꾼이 되게 한 것이다. 착함은 자기만을 생각하는 사람에게서는 기대할 수 없다. 어려움을 당한 이웃을 생각하고 그들을 위하여 무엇인가 하고자 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이어야 한다. 또한 착함은 성숙과 통하고, 마음의 풍성함과도 통한다.
함께, 더 착하게
잠22:9의 말씀이다, ‘선한 눈을 가진 자는 복을 받으리니 이는 양식을 가난한 자에게 줌이니라.’ 여기서 ‘선한 눈’은 다른 사람을 너그럽게 보는 착한 눈을 뜻한다. 영어 성경은 이를 ‘bountiful eye’라고 하였다. ‘아낌없이 주는 풍성한 눈’이란 뜻이다. 자기 것 귀하고, 아까운 줄 모르는 사람은 없다. 특히 힘들게 모아본 사람은 더욱 그렇다. 그럼에도 그 귀한 것을 생면부지의 사람에게까지 아낌없이 주는 사람이 있다. 너그럽고 착한 눈을 가졌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은 주변의 힘들고 어려운 사람을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반드시 손을 펴서 선을 베풀게 된다. 하나님 역시 이런 사람에게 복을 주신다. 명심보감에 이런 말이 나온다. ‘만사종관(萬事從寬)이면, 기복자후(其福自厚)니라.’ 모든 일에 너그러움을 좇으면 그 복이 저절로 두터워진다(쌓인다)는 뜻이다. 성도는 누구든지 너그럽게 받아주고, 너그럽게 이해하고, 너그럽게 용서하고, 너그럽게 베푸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이것이 바나바처럼 성도가 가져야 할 착함이다. 그래서 금년 우리 교회 표어를 24절을 중심으로 ‘함께, 더 착하게’로 정했다. 더욱 착한 사람이 되어 누구든지 너그럽게 수용하고, 누구에게나 풍성하게 베풀어서 교회를 잘 되게 하고, 서로를 잘 되게 하는 우리 모두가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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