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는 대로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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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kagathos 댓글 0건 조회 30회 작성일 26-03-29 14:15본문
먹는 대로 된다.
겔2:8~3:3
2026. 3/29. 11:00(종려주일)
말씀은 읽는 것이 아니라 사는 것이다.
‘말씀은 읽는 것이 아니라 사는 것이다.’라는 말이 있다. 이는 말씀이 지적인 ‘정보’(Information)에 머무느냐 아니면 삶을 바꾸는 ‘변화’(Transformation)로 이어지느냐를 가르는 날카로운 지점이다. 말씀이 책(Text) 안에 머물 때는 단순한 글자지만, 그것이 나의 일상(Context)으로 들어오면 살아서 움직이기 시작한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이 말씀을 대하는 태도다. 태도가 말씀이 그저 지적인 정보로 머무느냐 삶을 바꾸는 변화로 이어지느냐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똑같은 말씀을 들어도 누군가는 인생이 바뀌고, 누군가는 지루함을 느낀다. 이는 지능의 차이가 아니라 말씀을 대하는 태도의 차이다. 이 말씀이 나를 살리고, 고치고, 회복시키고, 풍성하리라는 것을 믿고 절실한 태도를 가진 사람에게는 말씀의 의미가 들리기 시작한다. 이런 태도를 가진 사람이 히브리서 기자가 말한 말씀의 능력을 경험할 수 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히4:13). 태도는 죽은 글자를 살아 있는 동력으로 바꾸는 촉매제다. 이런 유명한 말이 있다. ‘글씨는 종이에 쓰고, 말씀은 마음에 쓰며, 진리는 삶으로 산다.’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삶으로 살아서 삶을 변화시키는 진리인 것을 입증하는 사람이 성도다. 이를 위해 본문은 말씀을 받아먹으라!네 창자에 채우라!고 말씀한다.
먹으라!
먹는 것은 모두가 잘 아는 단어다. 그런데 이 말은 다양한 언어적 확장성을 가지고 있다. 즉, 식사에서만 사용되는 말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 많은 돈을 혼자 다 먹었다. 혹은 함께 먹었다, 꿀꺽 삼켰다, 먹지 못했다 등등. 여기서 먹는다는 말은 ‘차지하다.’, ‘소유하다.’ 등의 의미다. 반대로 잃어버린 것도 ‘먹었다.’라는 표현을 쓴다. ‘그 많던 재산 다 까먹었다.’ 없애 버렸다는 의미다. 먹으면 없어지기 때문이다. ‘벌지는 않고 먹기만 한다.’라고 할 때 먹는다는 ‘소비하다.’, ‘낭비하다.’라는 말과 동의어다. 목회자들은 ‘그분은 잘 받아먹는다.’라는 표현을 자주 사용한다. 여기서는 스펀지처럼 말씀에 대한 흡수력, 곧 수용성이 아주 좋다는 뜻이다.
그렇다. 갈증이 크고 욕구가 왕성한 사람일수록 소위 ‘식성’이 좋다. 잘 먹고, 많이 먹고, 잘 소화한다. 말씀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성도는 말씀에 대한 강한 갈증(간절함)과 욕구(사모함)를 가져야 한다. 그래야 말씀을 잘 먹고, 자주 많이 먹을 수가 있다. 이런 사람이 영적 성장과 성숙이 빠르다(데살로니가 교회). 본문은 1장부터 시작된 에스겔의 소명 사건에 대한 내용이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하나님의 위엄과 위대하심을 환상을 통해 보여주신 다음 에스겔이 증거해야 할 말씀을 두루마리에 기록하여 그것을 먹도록 하셨다. 말씀의 사역자가 되려면 먼저 말씀을 먹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말씀이 기록된 두루마리를 먹으라고 하셨다(2:8, 3:1,2,3). 여기서 ‘먹다’라는 동사는 히브리어로 ‘아칼’(אָכַל)인데, 기본 의미는 ‘먹다, 삼키다, 소비하다.’라는 뜻이다. 단순히 ‘맛보다’가 아니라 ‘완전히 섭취하여 자기 안으로 들이다.’라는 의미다. 히브리어에서 먹는 것은 단순한 물리적 행위가 아니다. 먹는 것은 자기 존재 안으로 흡수하여 하나가 되는 것이다. 즉, ‘동화’(assimilation)이다. 그러므로 먹은 음식과 내 몸이 분리될 수 없는 것처럼 말씀을 먹는다는 것은 나의 생각과 가치관, 그리고 삶의 방식이 말씀과 하나가 되는 것이다. 선지자는 단순한 전달자가 아니다. 그 자신이 메시지가 되어야 한다. 메시지(말씀)와 메신저(전달자, 선지자)는 분리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선지자에게 이런 요구를 하신 것이다. 성도는 하나님의 메신저이다.
창자에 채우라!
또 하나는, ‘네 창자에 채우라.’(3)는 말씀이다. 여기서 ‘창자’를 뜻하는 히브리어 ‘메임’(מֵעִים)이란 단어는 단순한 소화기관이 아니라 ‘감정과 깊은 내면의 자리’(존재의 중심)를 의미한다. 그러니 ‘창자에 채우라’는 것은 말씀을 머리가 아니라 ‘내면 깊은 곳, 존재의 중심’에 두라는 뜻이다. 그리고 ‘채우다.’라는 뜻의 히브리어 ‘말레’(מָלֵא)는 신성한 임재가 공간을 완전히 점유하고 있는 상태를 의미한다. 고대 염색공이 천이나 가죽을 염색할 때 천이나 가죽을 염료 통에 푹 담가서 염색약이 섬유 조직의 가장 깊은 안쪽까지 완전히 스며들게 했던 것과 같다. 그러므로 말씀을 창자에 채운다는 것은 존재의 중심이 말씀의 지배를 철저하게 받는 것을 뜻한다. 내 생각의 무늬와 성품의 빛깔이 말씀의 빛깔에 완전히 절여지는 상태를 의미한다. 겉모습만 흉내 내는 것이 아니라 속사람의 빛깔 자체가 변하는 것이다. 완전히 ‘물이 든 것’(Soak into)이다. 음식물이 창자에서 분해되어 영양분이 되고 피가 되듯, 말씀이 내 인격과 삶의 에너지가 되게 하는 것이다. 이렇게 말씀과 하나됨(동화)을 넘어 말씀의 지배를 받는 것(물듦)이 창자에 채우는 것이다.
말씀에 ‘동화’(하나됨)와 ‘물듦’(지배를 받음)은 성도가 갖추어야 할 중요한 모습이다. 에스겔서는 성경 전체를 통틀어 '말씀에 이끌리고, 사로잡히고, 물든'한 인간의 모습을 가장 역동적으로 보여주는 책이다. 에스겔은 단순히 말씀을 전하는 자를 넘어, 말씀이 그의 존재를 장악하여 움직이는 ‘말씀의 도구’ 그 자체였다. 그래서 에스겔은 말로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지 않고, 그의 삶 전체로 말씀을 전했다. 그의 삶이 곧 강력한 메시지였다. 일종의 시청각 교재였다. 에스겔서에 에스겔의 행동 예언이 많이 나온 것도 이 때문이다(토판에 예루살렘 성을 그리고 그 주변에 공성 퇴와 사다리를 넣은 것, 좌로 390일 우로 40일간 누워지냄, 말린 소똥으로 구운 떡을 먹음, 삭도로 머리털과 수염을 깎아 셋으로 나눈 뒤 불로 사르고 칼로 치고 바람에 날림, 포로의 행장 꾸리기, 떨며 먹고 마시기, 갑작스러운 아내의 죽음과 애곡 금지, 두 막대기를 하나로 합치기 등). 에스겔이라는 한 인간의 삶은 이미 사라지고, 그 자리에 하나님의 말씀만이 남았다.
먹는 대로 된다.
‘사람은 먹는 대로 된다.’(You are what you eat)라는 말이 있다. 이는 단순히 배고픔을 해결하는 것을 넘어, 섭취하는 영양분이 신체뿐만 아니라 정신 건강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는 뜻이다. 우리가 섭취하는 음식이 혈액이 되고, 세포가 되고, 살이 되고, 뼈가 되고, 나아가 그 사람의 기질과 성격까지 형성한다. 프랑스의 미식가 브리야 사바랭이 이런 유명한 말을 남겼다. ‘당신이 무엇을 먹는지 말해보라. 그러면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말해 주겠다.’ 먹는 것이 중요하고, 특히 무엇을 먹느냐가 중요하다. 생명은 먹는 것에 따라 변화가 생기기 때문이다. 잘 먹고, 골고루 먹고, 건강한 것을 먹어야 건강한 생명을 유지할 수가 있다.
먹는 대로 된다는 말은 생물학적 진리이자 정신적 원리이기도 한다. 의심에 자꾸 노출되면(먹으면) 세상을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는 의심의 사람이 되고, 분노를 먹으면 시도 때도 없이 분노를 터뜨리는 분노의 사람이 된다. 반면 사랑을 먹고 칭찬을 먹으면 사랑과 칭찬의 사람이 된다. 그래서 부정적인 것을 먹으면 삶이 어두워지고, 긍정적인 것을 먹으면 삶 또한 밝아지는 것이다. 우리가 무엇을 마음에 받아들이고 되새기느냐에 따라 결국 자신의 본질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내가 먹는 것이 곧 나라는 말은 육체뿐만 아니라 정신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그러니 건강한 삶을 위해 무엇을 먹을 것인지 ‘마음의 식단 관리’를 잘 해야 한다. 영적으로도 마찬가지다. 이것이 우리가 말씀을 먹어야 할 이유다. 우리가 매일 귀로 듣고 눈으로 읽으며 마음에 새기는 ‘말씀’은 단순히 머리에 머물지 않고 생각의 회로와 인격의 골격을 만든다. 그래서 주님처럼 생각하고, 주님처럼 말하고, 주님처럼 행동하는 주님을 닮는 사람이 된다. 그러므로 말씀에 대해 왕성한 식욕을 느껴 항상 주리고 항상 목마른 사람이 되어 말씀을 자주 먹고, 많이 먹어 창자에 가득 채워야 한다. 말씀의 지배를 받아 말씀에 이끌리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래야 말씀이 권세가 되고, 삶의 능력이 된다. 우리는 먹는 대로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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