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져주시더냐! > 설교말씀 기뻐하는교회 - 대한예수교장로회

본문 바로가기

설교말씀

설교말씀 HOME


건져주시더냐!

페이지 정보

작성자 kagathos 댓글 0건 조회 18회 작성일 26-04-12 12:37

본문

건져주시더냐!

6:16~24

2026. 4/12. 11:00

타협 없는 신앙

신앙 때문에 불이익을 당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 핍박까지는 아니어도 조직의 문화나 개인의 신념이 충돌하면서 가끔 발생하는 경우가 있다. 술자리가 비즈니스의 연장선인 직장 사회에서, 신앙의 이유로 술을 거절하면 분위기를 깨는 사람’, 혹은 사회성이 부족한 사람으로 낙인찍히기도 한다. 그래서 이 때문에 중요한 정보 공유에서 소외되거나 은근한 따돌림을 당하는 경우가 있다. 대기업 마케팅 팀에서 근무하던 A씨는 일요일마다 진행되는 강제적인 팀의 결속력과 성과를 높이기 위한 활동(Team Building)이나 비공식 회의를 신앙상의 이유로 반복해서 거절했다. 결과적으로, 능력은 인정받았음에도 조직 융화력 부족이라는 평가를 받아 승진에서 누락 되었다. 이렇게 신앙 때문에 겪은 불이익은 당사자에게는 아프고 고단한 일이다. 그렇지만 역설적으로 그 불이익은 무엇을 진정으로 소중히 여기는지를 세상에 보여주는 강력한 증거가 되기도 한다.

 

1~6장에는 바벨론 시대에 포로로 끌려간 유다인 다니엘과 그의 세 친구가 목숨을 걸고 신앙을 지킨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다. 1장에서는 우상에게 바쳐진 제물이라 하여 황제가 제공한 음식을 거부하고 채식만 먹은 이야기, 3장에서는 뜨거운 풀무불 속에 던져 넣겠다는 위협에도 황제가 만든 황금 신상에게 절하지 않은 이야기, 그리고 6장에서는 황제의 명령을 어기고 신이나 사람에게 기도하면 굶주린 사자 굴에 던져 넣는다는 법령을 알고도 여전히 기도한 이야기다. 본문은 이 세 번째 이야기다. 여기서 다니엘은 자신을 함정에 빠뜨리려는 음모로 꾸며진 사건이란 것을 알면서도 전에 하던 대로 자기 집에 가서 창문을 열고 하루 세 번씩 기도를 드렸고, 결국 법령 위반자로 붙잡혀 굶주린 사자 굴에 던져지게 되었다. 다니엘을 사자 굴에 넣고 뒤늦게 후회한 왕이 밤새 잠을 이루지 못하고 이튿날 새벽에 일어나 급히 사자 굴로 가서 슬피 부르짖었다. ‘......살아계시는 하나님의 종 다니엘아 네가 항상 섬기는 네 하나님이 사자들에게서 능히 너를 구원하셨느냐.’(20).

 

능히 너를 구원하셨느냐?

능히 너를 구원하셨느냐?예전 번역은 건져주시더냐?였다. 다리오 왕의 이 질문은 참으로 도전이 된다. 이는 단순히 다니엘의 생사를 묻는 질문 이상의 의미가 있다. 세상이 믿음의 사람을 향해 던지는 도전이자, 문제 앞에 선 우리가 우리 자신에게 던지는 질문이기도 하다. 과연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위기의 순간에 우리를 건져주시는 분이신가? 이런 하나님을 경험하며 살고 있는가? 또한 주변 사람이 이렇게 물을 때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는가? 우리 찬송가 가사 중에 믿는 사람은 받은 증거가 많다고 했는데, 나도 이런 고백을 할 수 있는가? 이런 여러 질문을 갖게 하는 것이 다리오의 질문이다. 우리가 항상 섬기는 우리 하나님은 우리를 능히 모든 문제에서 구원하시는 분이시다. 이것은 우리의 신앙고백이자 신앙생활의 명제다. 이런 하나님을 일상에서 늘 경험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소원한다. 지금 우리는 너무 좋은 환경에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 때문에 다니엘과 그의 친구들처럼 신앙 때문에 풀무불이나 사자 굴에 던져지는 물리적인 위협은 없다. 그래서 목숨 걸고 신앙생활을 한다는 표현이 낯설게 느껴진다. 그럼에도 다니엘이 직면했던 사자 굴, 곧 우리를 힘들게 하는 사자 굴이 여전히 우리 주변에 많이 존재하고 있다.

 

시기와 질투

다니엘이 이런 어려운 상황에 처한 이유가 있다. 그것은 동료의 시기와 질투때문이다(1~4). 그들은 다니엘을 시기하여 제거하고 싶었지만 그를 제거할 만한 흠이 없었다. 굳이 있다면 그가 그의 하나님께 기도하는 일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다니엘의 기도생활을 빌미로 그를 제거하고자 덫을 만들었다. 30일 동안 왕을 제외한 어떤 신이나 사람에게 기도하면 사자 굴에 던져 넣는다는 법령이다. 하지만 다니엘은 이 법령이 공포되었어도 여전히 전에 하던 (습관)대로 하루에 세 번씩 예루살렘을 향한 창문을 열고 기도했고, 발각이 되어 사자 굴 속에 던져지게 되었다. 시기와 질투 때문이다. 이것이 시기와 질투의 악마성이다. 유대인의 민담에 나온 이야기다. 어느 날, 천사가 한 여자에게 나타나서 무엇이든지 그녀가 구하는 대로 주겠다고 했다. 단 한 가지 조건이 있는데, 그녀의 단짝인 친구에게는 그녀가 구한 것과 같은 것을 두 배로 주겠다고 했다. 이 말을 듣자마자 그녀의 마음속에서 질투심이 불같이 일어났고, 그녀는 이렇게 외쳤다. ‘천사님, 그러면 저의 한쪽 눈을 멀게 해주세요.’ 다른 사람이 잘 되는 것을 용납할 수가 없어서 스스로 자기 눈을 찌르는 것이 시기와 질투다. 본문에서도 이를 확인할 수가 있다. 시기와 질투 때문에 다니엘을 사자 굴에 던져 넣었으나 결국은 자신들이 그 굴속으로 던져지게 되었고, 굶주린 사자들의 먹이가 되고 말았다(24). 스스로 자신의 눈을 찌른 것이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이 말은 관계적인 존재라는 의미이고, 그래서 관계가 삶의 질을 결정짓는 핵심 요소라는 뜻이다. 관계는 정신적 신체적 건강은 물론 자아 성장에까지 깊은 영향을 미친다. 이런 중요한 관계를 사자 굴처럼 엉망으로 만든 것이 시기와 질투다. 우리도 시기와 질투 때문에 직장이나 공동체 안에서 억울한 모함과 왕따를 당할 때가 있다. 누군가 무너뜨리려고 악의적인 소문을 퍼뜨려 억지로 사자 굴로 밀어 넣은 것이다. 이 정도면 그곳은 더 이상 직장도 공동체도 아니다. 말 그대로 사자 굴이다. 그래서 관계라고 하는 사자 굴에 갇혀 고통의 시간을 보내는 경우가 왕왕 있다. 이때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 다니엘처럼 자신의 영적 페이스를 잃지 않는 것이다(10). 주도권과 결정권이 하나님께 있기 때문이다. 본문을 보면, 하나님이 그의 천사를 보내어 사자들의 입을 막으셨다(22a). 하나님은 반드시 험담과 모함하는 사람들의 입을 막으시고 억울함을 풀어주시는 분이시다. 하여간 성도는 다니엘처럼 시기와 질투를 받는 사람이 될지언정 하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된다. 성경은 시기와 질투를 단순한 심리적인 문제를 넘어 우리 몸의 근간인 뼈를 썩게 하는 강력한 독소라고 경고한다. 물론 살면서 시기와 질투를 할 수도 있고, 받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감히 시기와 질투를 할 수 없도록, 그래서 시기와 질투가 존중과 존경으로 바뀌도록 자신을 탁월하게 가꾸기를 바란다.

 

나를 상하지 못하였사오며

이 외에도 갑작스러운 실직, 사업의 부도, 감당하기 힘든 빚, 바닥이 난 통장 잔고, 날아드는 카드 명세서 등도 현대인에게 매우 위협적인 사자다. 스스로를 파괴하는 나쁜 습관, 갑작스러운 사고나 중병의 진단도 인생의 모든 빛을 삼키는 사자와 같다. 이런 수많은 사자와 마주하며 살아가는 것이 인생이다. 겨우 하나를 벗어났다 싶어 한숨을 돌리고 나면 또 다른 사자가 달려들고, 이런 고단한 일상의 반복이 우리의 삶이다. 그러니 하나님의 도우심이 절실한 것이 또한 우리 인생이다. 이런 우리에게 다니엘의 고백은 참으로 위로가 되고, 우리도 일상에서 이런 하나님을 경험하며 이런 고백을 드릴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나의 하나님이 이미 그의 천사를 보내어 사자들의 입을 봉하셨으므로 사자들이 나를 상해하지 못하였사오니. 이는 나의 무죄함이 그 앞에 명백함이오며, 또 왕이여 나는 왕에게도 해를 끼치지 아니하였나이다 하니라.’(20). 하나님께서 자신을 사자의 입에서 건져주셨고, 또한 자신의 결백을 확인해 주셨다는 것이다. 그리고 네가 항상 섬기는 네 하나님이 능히 너를 구원하셨느냐’(20)라는 왕의 질문에 대한 대답이기도 하다.

 

하나님의 건져주심2,500년 전 메데와 바사 제국의 사자 굴에만 갇혀 있는 박제된 사건이 아니다. 오늘 우리가 마주한 시기와 질투라는 사자를 비롯하여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이라는 사자, ‘경제적 위기라는 사자, ‘상사의 질책이라는 사자, ‘자녀 문제라는 사자, ‘심각한 질병이라는 사자 앞에서도 하나님은 여전히 일하고 계신다. 다니엘이 사자 굴에서 나올 수 있었던 비결은 그가 사자보다 크신 하나님을 바라보며 영적 페이스를 놓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늘 우리의 일상 속 사자 굴에서 이렇게 고백하자. ‘하나님, 세상은 네 하나님이 너를 건져주시더냐고 묻지만, 저는 지금 이 굴에서 저와 함께 계시는 하나님을 봅니다. 주님, 저를 건져주실 줄 믿습니다!’ 이 고백이 우리의 일상이 기적이 되고, 기적이 상식이 되는 삶으로 인도할 것이다. 하나님은 반드시 우리를 건져내시고, 우리를 통해 당신의 영광을 드러내실 것이다. 다니엘에게 사자 굴은 죽는 곳이 아니라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나는 거룩한 지성소였다. ‘다니엘이 굴에서 올라온즉 그의 몸이 조금도 상하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그가 자기의 하나님을 믿음이었더라.’(23).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