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열매에 대한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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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kagathos 댓글 0건 조회 21회 작성일 26-07-05 15:40본문
첫 열매에 대한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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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7/5. 11:00(맥추감사 주일, 성령강림 후 여섯째 주일)
한국교회와 맥추감사절
맥추감사절은 한국교회가 매년 7월 ‘첫째’ 주일에 지키는 주요 감사 절기 중 하나다. 한 해의 절반을 보내며 그동안 베풀어주신 은혜에 감사하고, 남은 반년을 믿음으로 다짐하는 영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맥추감사절은 구약성경의 맥추절(Feast of Harvest)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이스라엘 백성이 40년 광야 생활을 마치고 가나안 땅에 정착한 후, 한 해의 첫 열매를 거두어 하나님께 바쳤던 감사의 축제다. 한국교회에서 맥추감사절이 중요한 절기로 자리 잡은 데에는 우리나라 전통적인 농경문화와 초기 교회의 신앙 전통이 맞물려 있다.
과거 우리나라에서, 봄철 양식이 떨어져 굶주리던 시기(4월~6월 초)를 ‘보릿고개’(춘궁기, 맥령麥嶺)라고 불렀다. 약2~3개월 동안의 힘든 보릿고개를 넘기고 마침내 햇보리를 수확했다. 선교사들과 신앙 선배들이 성경의 맥추절 정신을 우리나라의 이 보리 수확기에 대입한 것이다. 가장 배고프고 힘든 시절을 지나 첫 곡식을 주신 하나님께 눈물로 감사예배를 드렸던 것이 맥추감사절의 시작이다. 그런데 이런 뜻깊은 맥추절이, 오늘날에도 계속 지켜야 하는가에 대해 활발하게 논의되는 현실적인 주제가 되었다. 농경사회도 아니고, 도시와 직장생활 중심의 현대사회에서 보리수확을 감사하는 것이 의미가 있느냐는 것이다. 보리나 밀을 구경하기도 힘든 현대인에게 ‘맥추’(麥秋)라는 개념 자체가 삶과 동떨어진 관념적인 단어일 뿐이라는 지적이다. 나 역시 이렇게 생각한 사람 중에 하나였다. 하지만 우리 역사에서 맥추감사절은 가장 배고프고 힘들었던 보릿고개를 넘기게 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는 눈물의 절기였다(미국인에게 추수감사절과 같은 맥락의 의미). 비록 지금은 우리가 물질적인 풍요로움 속에 살고 있지만, 우리 삶의 영적·경제적 위기를 넘기게 하신 하나님을 기억하는 신앙 전수로서 가치가 있다. 인간은 본성적으로 감사를 쉽게 잊고 불평에 취약하다. 절기라는 정기적인 장치를 통해 의도적으로 감사를 훈련하지 않으면, 일상의 은혜를 당연하게 여기기 쉽다.
첫 열매로 여호와를 공경하라.
물론 본문은 맥추절과는 관련이 없다. 하나님을 섬기는 법에 대한 말씀이다. ‘네 재물과 네 소산물의 처음 익은 열매로 여호와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창고가 가득히 차고, 네 포도즙 틀에 새 포도즙이 넘치리라.’(9,10). 그런데 본문에 나온 ‘처음 익은 열매’(9)는 맥추감사절의 핵심을 관통하는 본질적인 영적 의미와 연결이 된다. 맥추감사절은 ‘첫 열매에 대한 감사’ 절기이기 때문이다. 사실 ‘첫 것을 드린다.’라는 것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류 역사에서 가장 깊고 숭고한 마음을 표현하는 행위였다. 단순히 처음 생긴 물건을 누군가에게 건네는 물질적인 행동을 넘어, 그 안에는 여러 겹의 깊은 영적 의미가 담겨있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성경과 기독교 신앙에서 ‘첫(처음 익은) 열매’(First Fruits)가 가지는 상징성과 그 안에 담긴 깊은 고백에 대해 생각해 보려고 한다. 본문은 재물이나 소산물의 ‘처음 익은 열매’, 사람이나 짐승의 ‘첫 것’으로 여호와를 공경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왜 이런 요구를 하고 있는지 그 의미는 다음과 같다.
첫째, 처음 익은 열매를 드린 것은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임을 인정하는 고백이기 때문이다(소유권 인정). 처음 익은(첫) 열매는 단순히 수확물의 ‘일부’가 아니라, 수확물 전체를 ‘대표’하는 것이다. 즉, 처음 익은 곡식과 과일은 전체 곡식과 과일의 수확물을 대표한다. 사람이나 짐승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첫 열매를 하나님께 드리는 것은, 이 모든 수확물이 내 힘이 아닌, 오직 하나님의 은혜와 공급하심으로 주어진 것임을 고백하는 일종의 신앙 선언이다. 즉, 내 삶과 소유물의 진짜 주인이 누구인지를 기억하는 자리다. 그러므로 첫 것에 대한 요구는 내 삶과 소유물의 진짜 주인이 누구인지 기억하며 살라는 것이다. 사실 이것이 단순하게 보이지만, 본질적인 문제다. 경건한 신앙생활은 여기서부터 시작이 된다. 믿는다는 것은 곧 삶의 주인이 바뀐 것을 의미한다. 즉, 내 삶에 대한 소유권을 예수님께서 넘긴 것이다. 그래서 ‘내 생명도, 내 영혼도 다 주님의 것입니다.’라는 주권의 인정 즉, 영적 소유권을 올바르게 고백하는 그 마음의 자리에서 비로소 진짜 신앙생활이 시작된다. 그러므로 첫 것을 드린다는 것은 이것을 확인하고, 고백하는 것이다.
둘째, 처음으로 익은 열매를 드린 것은 우선순위와 존중의 의미이기 때문이다. 첫 열매는 수확의 과정에서 가장 먼저 얻은 것이자, 가장 신선하고 질이 좋은 것을 의미다. 신앙에서 하나님께 첫 것(첫 열매, 첫 시간, 첫 수입 등)을 드린다는 것은 단순히 물질이나 시간을 떼어 드리는 행위 그 이상을 의미다. 그것은 내 삶의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하나님을 내 삶의 ‘최우선 순위’로 모신다는 고백의 표현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첫 것을 요구하신 것도 같은 의미다. 하나님을 우선순위에 두는 삶을 살라는 요구인 것이다. 첫 것을 드릴 때 하나님께서 기뻐하신 것도 마찬가지다. 하나님을 우선순위에 두고 산다는 고백이자 확증이 되기 때문이다. 앞에서 말했지만, 첫 것은 신선하고 질이 좋은 ‘최상의 것’을 의미한다. 쓰고 남은 나머지를 드리는 것이 아니라, 최상의 것을 구별하여 먼저 드리는 것은 그만큼 하나님을 소중히 여기고, 또한 존중한다는 의미다. 하나님께 대한 최고의 존경과 사랑, 가치 부여를 의미한다. 첫 것이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것이 이런 마음의 표현이기 때문이다.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말하지 않아도 어느 정도는 알 수가 있다. 그렇지만 표현하면 기쁨과 감동이 배가 된다.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마음과 태도가 표현되었을 때 하나님께 큰 기쁨이 되고, 영광이 되고, 감동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나님을 우선순위에 두고 존중과 사랑, 신뢰를 뜻하는 첫 열매를 요구하신 것이다.
셋째, 앞으로의 풍성함을 신뢰하는 믿음과 감사의 의미이기 때문이다. 첫 열매는 뒤이어 올 수확의 ‘시작’이자 ‘약속’이다. 첫 열매가 맺혔다는 것은 곧 밭 전체에 추수가 시작될 것임을 알리는 신호탄이다. 하지만 농사라고 하는 것은 변수가 많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지만 과거에는 더욱 심했다. 수확을 앞두고도 뜻하지 않는 가뭄이나 태풍, 병충해 등 자연재해를 입을 수가 있고, 그러면 수확을 보장할 수가 없다. 게다가 고대는 약탈경제 시대라 수확기를 노린 약탈자의 침략이 빈번했다. 그래서 한 해 수확물을 다 빼앗기고 목숨까지 위협받는 일도 자주 일어났다. 그러니 첫 열매가 마지막 수확이 될 수도 있었다. 그런데 이런 불확실한 상황에서 먼저 수확한 첫 것을 드린다는 것은 쉽지 않은 결단이다. 따라서 첫 열매를 기쁘게 드리려면 ‘나머지 열매도 풍성하게 채워주실 것’이라는 미래에 대한 깊은 신뢰와 기대가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이런 불확실성 속에서도 처음 익은 열매, 그것도 최상의 것으로 하나님께 드린다는 것은 풍성하게 채워주실 것이라는 미래에 대한 믿음과 기대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처음 익은 열매로 하나님을 공경하는 것은 신앙의 본질을 잘 보여주는 행위다. 마지막이 될 수도 있는 절박한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깊이 신뢰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맥추감사절의 의미
맥추절은 이스라엘 백성이 거친 광야 생활을 끝내고 가나안 땅에 정착해 ‘처음으로 땅의 소산’을 얻었을 때 지킨 절기다. 광야에서는 하늘에서 내리는 만나만 바라보며 살았지만, 땅을 갈고 농사를 짓기 시작하면서 그들은 쉽게 착각에 빠졌다. ‘내 힘과 내 손의 능력으로 이 재물을 얻었다!’ 맥추절은 이런 교만을 꺾고, 여전히 내 삶의 공급자는 하나님이심을 각인하는 브레이크 역할을 한다. 이런 의미에서 현대사회에서 우리가 농사를 짓지는 않지만, 처음 익은 열매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맥추감사절은 여전히 유효하다. 맥추절을 통해 내 삶의 진정한 주인이 누구인지, 내가 누리고 있는 이 모든 것이 어디에서 왔는지를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기서부터 삶의 우선순위가 바뀌고, 가장 좋은 것, 최상의 것으로 섬기는 일도 가능해진다. 불확실한 미래를 풍성하게 채워주실 것에 대한 기대와 믿음도 마찬가지다. 맥추절은 그냥 절기가 아니다. 흐려졌던 ‘삶의 소유권’ 관계를 다시 명확히 세우는 가장 적극적인 경건의 훈련이다. 게다가 신약에 와서는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 50일째 되던 날(오순절) 성령이 임하셨고, 그날 삼천 명이나 되는 사람이 회개하며 ‘첫 영적 수확’이 일어났다. 맥추절은 단순히 농산물에 대한 감사를 넘어, 성령을 통해 우리 영혼이 주님의 소유가 된 것을 감사하는 절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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