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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막을 천국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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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kagathos 댓글 0건 조회 24회 작성일 26-08-23 1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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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막을 천국으로

25:23~25

2026. 8/23 11:00(성령강림 후 열세 번째 주일)

행복은 조건이 아니라 관계에 있다.

현대인에게 집은 단순히 주거 공간을 넘어 사회적·경제적 지위와 성공, 행복을 가늠하는 기준이 되었다. 그러다 보니 집을 안락한 휴식처가 아니라 금융자산으로 여기고, 주거 형태에 따른 사회적 서열화 분위기가 팽배하다. 그렇지만 아무리 대궐 같은 집이라도 그 안에 사랑이 없고 화목하지 않다면, 그곳은 창살 없는 감옥이요 지옥에 불과하다. 이런 이야기가 있다. 나폴레옹 황제는 유럽 전체를 호령하며 많은 궁궐을 소유했지만, 늘 불면증과 고독에 시달렸다고 한다. 훗날 회고록에 그는 이렇게 적었다. ‘내 인생에서 정말로 행복했던 날은 엿새도 되지 않는다.’ 반면, 고대 스파르타의 한 농부는 비가 새는 초라한 움막에 살았지만, 온 가족과 모여 웃음꽃을 피우며 단잠에 들었다. 어느 날, 이런 농부의 생활을 지켜본 한 사람이 그 농부에게 물었다. ‘당신의 집은 지붕이 뚫려 비가 새는데 어떻게 그리 늘 행복합니까?’ 농부가 웃으며 대답했다. ‘지붕이 뚫려 있어 밤하늘의 별을 마음껏 볼 수 있고, 비가 오면 온 가족이 함께 모여 앉아 서로의 체온을 나누며 모자란 곳을 채워줄 수 있으니까요.’ 행복은 외형적인 결핍을 없애는 데서 오는 것이 아니라, 결핍 속에서도 서로를 보듬어주는 온기에서 피어난다.

 

 

본문 역시 가정의 외형적인 풍요로움보다 가족 간의 화목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가르쳐 준다. ‘다투는 여인과 함께 큰 집에서 사는 것보다 움막에서 혼자 사는 것이 나으니라.’(24). 여기서 큰 집은 모든 사람이 부러워하는 부와 명예, 겉으로 보이는 화려함을 의미한다. 반면에 움막은 바람만 겨우 막아주는 초라하고 보잘것없는 거처를 뜻한다. 솔로몬은 왕으로서 부귀와 영화를 누리며 화려한 궁궐에서 살았던 사람이다. 본문은 그런 그의 고백이다. 비록 궁궐처럼 큰 집에 살지라도 다투고 미워하는 삶을 사느니, 겨우 바람만 막아주는 비좁은 움막에 살지언정 마음 편히 사랑하며 사는 것이 훨씬 낫다는 것이다. 결국 이 말은 앞의 예화에서도 확인했듯이 행복은 조건에 있지 않고, 관계에 있다는 것을 강조한 것이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바르고, 가족과의 관계가 사랑으로 묶여 있다면, 비록 움막도 천국이 된다. 이 말씀을 중심으로 우리가 거하는 가정과 교회, 일터와 심령이라는 움막을 어떻게 천국으로 바꿔 갈 수 있는지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한다.

 

 

사소한 말에서 풍파가 시작된다.

중국 송나라 때, 명재상 사마광의 일화다. 어느 날, 사마광이 부하 직원과 함께 공무를 처리하던 중, 그 부하가 작은 실수를 저질렀다. 옆에 있던 다른 관리가 그 실수를 발견하고는 부하를 향해 거칠고 험한 말로 비난을 퍼부었다. 모욕적인 비난을 들은 부하는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지더니, 화를 참지 못하고 그 자리에 있던 벼루를 집어 들어 관리를 향해 던져버렸다. 다행히 관리는 몸을 피해 다치지 않았지만, 사마광이 그 벼루에 맞아 상처를 입고 피를 흘리게 되었다. 상황이 수습된 후, 주변 사람이 그 부하에게 말했다. ‘아무리 화가 난다고 상급자에게 벼루를 던지다니, 제정신이냐?’ 그 부하가 눈물을 흘리며 대답했다. ‘비난을 듣는 순간 끓어오르는 분노를 주체할 수가 없었습니다. 죽이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사마광은 피를 닦으며 그 부하를 벌하는 대신 이렇게 조용히 말했다. ‘지나친 비난은 상대방의 이성을 마비시키고, 결국 그 화가 고스란히 자신에게 돌아오는 법이다.’

 

 

본문이 바로 이런 상황을 두고 하신 말씀이다. 북풍이 비를 일으킴같이 참소하는 혀는 사람의 얼굴에 분을 일으키느니라.’(23). 북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구름을 몰고 와서 비를 내리게 하듯, 참소하는 혀-남을 헐뜯고 비난하고 공격하고 다투는 혀-는 반드시 상대방의 마음에 분노와 상처의 폭풍을 일으킨다. 관계나 공동체를 지옥으로 만드는 원인은 다름 아닌 입술의 말이다. 비판하는 말, 헐뜯는 말, 상대의 약점을 비꼬는 말은 들은 사람의 마음에 분노의 비구름을 불러온다. 아무리 좋은 시설과 풍족한 환경을 갖추었다 할지라도, 서로를 향해 찌르는 가시 같은 말이 오간다면 그 공간은 결코 평안할 수 없다. 움막을 천국으로 바꾸기 위해 가장 먼저 이루어져야 할 변화는 입술의 변화이다. , 말이 바뀌어야 한다. 그래서 바울은 예수님을 믿어 새사람이 된 사람의 모습으로 이점을 강조하고 있다.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4:29). 나의 혀가 분노를 일으키는 삭풍(朔風)이 아니라, 상처받은 마음을 어루만지고 용기를 주는 따뜻한 훈풍(薰風)이 되어야 한다. 비판과 불평의 말을 그치고 감사와 격려, 칭찬과 존중의 말로 바뀌어 갈 때, 비로소 우리 자신과 우리가 속한 공동체에 천국이 임하게 된다.

 

 

풍파를 잠재우는 것도 사소한 말 한마디다.

인간관계에서 말이 가진 힘은 때로는 기적과도 같다. 날카로운 화살처럼 날아와 마음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기는 것도 말이지만, 얼어붙은 마음을 녹이고 터진 둑을 막아내는 치유의 힘 역시 말에서 시작된다. 뜨겁게 달아오른 분노 앞에서는 그 어떤 논리나 충고도 통하지 않는다. 그런데, ‘그동안 정말 힘들었겠다!’, ‘내가 그 입장이었어도 화가 났을 거야!’라는 말 한마디에 그 뾰족했던 사람이 그대로 텁석 주저앉아 눈물을 쏟아낸다.감정을 온전히 수용해 주는 따뜻한 한마디가 기적을 만든 것이다. 찌를 것 같던 날 선 태도가 무너지고 닫혔던 마음이 열린 것이다. 사실 분노란 자신의 아픔을 알아달라는 무언의 신호. 한마디 말이 폭풍을 일으킨 것처럼, 그 폭풍을 잠재우는 것도 말 한마디에 있다. 본문 25절이 말의 이와 같은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먼 땅에서 오는 좋은 기별은 목마른 사람에게 냉수와 같으니라.’(25). 타들어 가는 더위 속에서 갈증으로 죽어가던 사람에게 시원한 생수 한 잔은 목숨을 살리는 기적과도 같다. 좋은 소식과 같은 말이 그렇다는 것이다.

 

사실 뉴스 피드(News Feed)나 소셜 미디어는 수입과 연관이 되기에 우리의 시선을 붙잡기 위해서 공포, 분노, 갈등, 비난, 욕설 등을 유발시키는 자극적인 소식을 끊임없이 쏟아낸다. 매일 접하는 세상의 어두운 단면은 개인에게 무력감과 정서적 번아웃을 안겨주어 마음의 우물을 바닥까지 바짝 마르게 한다. 이런 세상을 살다 보니 우리는 어느 때보다 좋은 기별과 같은 말에 깊은 갈증을 느끼고 있다. 그래서 인지 본문에서, ‘좋은 기별은 냉수와 같다.라는 말씀이 더욱 날카롭고 따뜻한 울림을 준다. 이 갈증을 해소하기 위한 우리 시대의 대안은, 우리 자신이 굿 뉴스 메이커(Good News Maker)가 되는 것이다.세상이 주는 탁한 정보에 휩쓸리지 않고, 주변 사람에게 작은 선행, 칭찬, 따뜻한 안부 같은 맑은 소식을 전파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가장 좋은 소식 중에 소식인 복음을 전하는 것이다.

 

 

움막을 천국으로 만들려면

행복한 좋은 공동체를 이루는 것은 외적인 환경이나 물질적 풍요보다 구성원 간의 내면적 태도와 관계의 질에 달려있다. 행복한 공동체의 필수 조건을 몇 가지 소개하면서 말씀을 마치려고 한다.

첫째, 정서적 안정감을 주는 안전지대를 구축하는 것이다. 삶에 지치고 상처를 받아 힘들 때, 언제든 쉴 수 있는 심리적 울타리가 되는 곳이어야 한다. 실수나 실패했을 때, 비난이나 책망 대신 그럴 수도 있지’, ‘괜찮아’, ‘다시 시작하면 돼!’라고 말해주는 관용의 태도가 필요하다(비난 없는 수용). 잘잘못을 따지기 전에 상대방이 느낀 감정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읽어주는 공감 능력이 발휘되는 곳, 이런 안전지대가 구축되어야 행복한 공동체다.

둘째, 건강한 대화와 언어습관입니다. 이미 말씀드렸지만, 말은 공동체를 천국으로 만들 수도, 지옥으로 만들 수도 있는 가장 강력한 도구다. 갈등이 생겼을 때 공격하거나 비꼬는 언어를 쓰지 않고, 문제 자체에 집중하는 대화법이 필요하다. 특히 상대방의 행동이나 태도를 지적하거나 평가하는 화법(You-Message)을 피해야 한다. 대신 그 문제로 인한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것이다(I-Message). 더불어 고마워’, ‘수고했어’, ‘미안해’, ‘사랑해라는 표현이 자주 오가야 한다.

셋째, 존중 위에 세워진 건강한 경계선(거룩한 거리)을 갖는 것이다. 지난번에도 말씀드렸지만, 친밀한 사이라도 서로를 소유하려 하거나 개인의 영역을 침범해서는 안 된다. ‘따로 또 같이할 수 있는 적절한 균형이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나눔과 협력의 역할 분담이다. 공동체는 한 사람의 희생으로 유지되어서는 안 된다. 모두가 함께 가꾸는 곳이다. 한 사람에게만 집중되면 불평과 피로가 쌓이게 된다. 상황을 배려하며 역할을 나누는 협력의 태도가 필수적이다. 결국 행복한 공동체는 저절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날마다 서로를 위해 입술을 가다듬고, 마음을 낮추며, 정성을 다해 가꾸어가는 수고의 결과다. 바로 여기에 움막을 천국으로 만드는 비결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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