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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양심, 윌리엄 윌버포스(W.Wilberforce 1759-1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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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해바라기 댓글 0건 조회 20,046회 작성일 08-08-24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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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버포스는 8세 때 아버지를 여의고 초기 복음적 부흥운동의 영향을 받았던 숙부와 살았다.
숙부는 노예상인이었다가 찬송가(찬송405장) 작가각 된 존 뉴턴의 친구였다.
1780년 대학 동창생 피트(후일 영국 총리)와 함께 하원의원에 당선되어 의회개혁과 로마 카톨릭교도의 정치적 해방을 지원하였다.
그 후 1784-1785년 유럽여행 중에 그의 교장이었던 아이작 밀러와 토론을 하면서
유명한 종교서적 [영혼에서 종교의 발생과 진보]와 성경을 읽는 중에 깊은 회심을 경험하게 됐다.
이로써 그는 신실한 신앙인이 되었다.
그는 1785년 후반에 이 회심을 통하여 신앙적인 길이 아니라고 생각되는 이전의 습관들을 모두 버렸다.

그의 중요한 공적 경력은 노예해방운동이었다.
1787년 그의 노예해방투쟁은 하원의 노예 문제 개혁운동의 지휘를떠맡게 됨으로써 시작되었다.
이 일에 대한 동기와 결의를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내 앞에 두 가지 큰 목표를 두셨다.
하나는 노예무역을 금지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관습을 개혁하는 것이다."라고 그의 일기에 기록하고 있다.
그는 위협에도 굴하지 않고 노예제도를 통해 생산한 설탕 불매운동, 그리고 탄원서 제출운동 등 다양한 방식을 통한 대중여론조성과 책자출판을 통해 노예제도폐지를 전개했다.
드디어 1807년 영국하원은 그에게 유례없는 열광과 존경을 보내면서 '노예무역 폐지법(The Abolition)'을 통과시켰다.
1833년 "노예해방법령(The Emancipation Act)'을 통해 영국 전역에서 노예제도가 폐지되었다.
윌버포스는 1833년 8월 6일 세상을 떠났고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묻혔다. 그는 오늘날 영국의 양심으로 기어되고 있다.

윌버포스가 이렇게 하나님 앞에서 영향력 있는 사람으로 쓰임받았던 비결은,
바쁜 일정 속에서도 매일 아침 두 시간을 기도와 말씀묵상으로 보냈던 생활과 무관하지 않다.
오늘날 세계 역시 윌버포스와 같은 사회악들에 맞서 싸울 수 있는 헌신된 사람들을 절실히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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