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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복팔단(眞福八端)Ⅴ, ‘긍휼’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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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양식 댓글 0건 조회 12,470회 작성일 11-05-22 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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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복팔단(眞福八端)Ⅴ, ‘긍휼’④

마5:1~12

2011. 5/22   08:00, 11:00

설거지를 잘하는 남자

여자들도 감탄할 정도로 설거지를 깔끔하게 잘하는 남자 집사가 있었다(설거지뿐만 아니라 매사가 그랬다). 그가 설거지를 그렇게 잘하게 된 것은 고등학교시절 교회수련회를 갔을 때다. 그는 식당에서 간식으로 먹을 토스트를 준비해 놓은 것을 우연히 보았다. 그런데 너무 먹고 싶어서 토스트들 중 하나에서 달걀부침만 살짝 빼먹었다. 드디어 간식시간이 되었고, 선생님이 토스트를 나누어주었다. 문제는 달걀부침이 없는 그 토스트가 정확하게 자기 앞에 놓인 것이다. 그때 그는 큰 충격을 받았다. 그 때부터 그는 무슨 일을 하든, 이 일을 기억하게 되었고, 설거지를 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만약 이 그릇 중에 하나라도 제대로 닦지 않으면 분명히 다음 주일에 자신의 밥이 그 그릇에 담길 것이란 생각을 하며 설거지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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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청년이 이웃집과 농사일로 크게 다퉜다. 화가 난 그는, 밤에 이웃집 밭에다 잡초씨를 뿌렸다. 그러자 그 밭에서 잡초가 무성하게 자랐고, 이웃집은 해마다 잡초를 뽑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 모습을 볼 때마다 그는 통쾌했다. 그런데 운명의 장난이었을까? 그가 그 집 딸과 연애를 하여 결혼을 하게 되었고, 하필이면 그 밭을 결혼지참금으로 받았다. 그리고 그가 그 밭에서 잡초를 완전히 제거하는데 30년이 걸렸다.

 

수확을 결정하는 것은?

항상 결과(끝)를 생각하며 사는 사람과 현재 자신의 감정과 기분대로 사는 사람의 차이를 잘 보여주는 이야기들이다. 끝을 생각하면서 현재의 어려움을 감수하며 사는 사람은 끝에 웃을 수 있고, 현재의 감정과 기분대로 사는 사람은 끝에 가서 피눈물을 쏟게 된다. 수확을 결정한 것은 추수 때가 아니라 씨를 뿌릴 때다. 어떤 씨앗을 뿌리고, 얼마나 뿌리느냐에 따라 그 결과가 결정되는 것이다. 인생이란 추수할 그 어느 날을 바라보면서 평생을 뿌리는 과정이다. 그런 의미에서 다음의 말씀은 우리 신자가 평생 기억하며 묵상해야 할 것이다.

 

“저가 저주하기를 좋아하더니 그것이 자기에게 임하고, 축복하기를 기뻐 아니하더니 복이 저를 멀리 떠났으며, 또 저주하기를 옷 입듯 하더니 저주가 물 같이 그 내부에 들어가며 기름 같이 그 뼈에 들어갔나이다.”(시109:17~18).

 

이는 악인의 결국에 대한 말씀인데, 악인의 저주는 자초(自招)한 일이라는 것이다. 사는 동안 복을 심지않고 저주를 심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말씀은 단순히 악인의 결국에 대한 말씀으로 한정할 수 없다. 누구라도 복이 되는 선한 것에 인색하면 이렇게 되기 때문이다. 본문에서 주님도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라고 말씀하셨다. 그렇다면 긍휼히 여기는 자가 받을 ‘긍휼의 복’이란 어떤 것일까? 이 시간에는 이 점에 대하여 은혜를 나누고자 한다.

 

긍휼의 복

먼저〖사58:6~12〗말씀을 찾아서 함께 교독하겠다. 사58장은 올바른 신앙생활, 즉 예배, 금식, 안식일 준수에 대한 말씀이다. 그리고 함께 교독한 이 말씀은 외식적인 금식에 대한 책망(4~5)에 이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금식, 하나님이 원하시는 올바른 금식에 대한 교훈이다. 금식이란 단순히 음식공급을 중단하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긍휼을 베푸는 것’이란 말씀이다(6,7). 그리고 이런 올바른 금식에는 풍성한 주님의 복이 따르게 된다(8~12). 여기서 금식에 약속된 복을 긍휼의 복으로 적용할 수 있다. 금식의 핵심이 ‘긍휼’이기 때문이다(6,7절은 긍휼의 내용).

 

이사야 선지자가 말한 ‘금식’은 예배를 포함한 신자의 모든 영적 행위를 뜻한다. 주님은 예배하는 자를 기뻐하시고, 우리의 찬양과 기도를 기뻐하신다. 그러나 예배를 드리고, 찬양과 기도를 드리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이에 합당한 삶이 따라야 한다. 그것이 긍휼이다. 저는 이 시간 주님 말씀이 선포될 때 우리의 삶과 우리 교회에 긍휼사역이 차고 넘치기를 기대한다. 그래서 이웃의 마음이 내 마음이 되고, 그들의 아픔과 고통, 어려움이 나의 아픔과 고통, 어려움으로 느낄 수 있기를 바란다(6~7절 참조). 이것이 주님이 기뻐하시는 것이고, 주님께서 원하시는 것이다. 주님의 일을 하는 사람은 주님이 책임지신다. 주님께서 좋아하시는 일을 하는 교회는 주님께서 역사하게 되어 있다. 정말 그렇다. 그 복이 8절에 기록되어 있다.

 

“그리하면 네 빛이 새벽 같이 비칠 것이며, 네 치유가 급속할 것이며, 네 공의가 네 앞에 행하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뒤에 호위하리니

 

1. “네 빛이 새벽 같이 비칠 것이며”

매일 아침에 동쪽 하늘에서 찬란한 빛을 뿜으며 힘차게 솟아오르는 해를 상상해 보라. 긍휼을 베푸는 사람의 삶이 이와 같이 빛이 날 것이라는 뜻이다. 해 같이 빛나는 인생이 된다.

 

2. “네 치유가 급속할 것이며”

상처와 질병은 인류의 보편적인 문제이다. 이것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은 없다. 그런데 긍휼을 베푸는 사람은 비록 상처가 있고, 병에 걸렸을지라도 그 치유를 급속하게 하시겠다는 말씀이다. 실제로 남을 돕다가 자신의 문제가 해결된 경우가 허다하다.

 

3. “네 공의가 네 앞에 행하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뒤에 호위하리니”

「현대인의 성경」은 이 부분을 “내가 항상 너희와 함께 하여 사방으로 너희를 보호하겠다.”라고 번역하고 있다. 사방에서 주님이 우리를 지키시고 보호하시겠다는 뜻이다. 주님이 기뻐하시고, 주님이 원하시는 일을 하는 사람을 주께서 돌보시는 것은 당연하다. 주의 복은 여기서 끝나지 않고, 9~10절에서도 계속된다.

 

네가 부를 때에는 나 여호와가 응답하겠고 네가 부르짖을 때에는 말하기를 내가 여기 있다 하리라. 만일 네가 너희 중에서 멍에와 손가락질과 허망한 말을 제하여 버리고 주린 자에게 네 심정이 동하며 괴로워하는 자의 심정을 만족하게 하면 네 빛이 흑암 중에서 떠올라 네 어두움이 낮과 같이 될 것이며

 

4. “네가 부를 때에는 나 여호와가 응답하겠고, 네가 부르짖을 때에는 말하기를 내가 여기 있다 하리라.”

부르는 소리를 들을 수 있을 만큼 가까이 계시겠다는 것, 그리고 우리의 기도마다 응답해 주시겠다는 약속이다. 물론 주님은 앞에서 우리를 결코 홀로두지 않고 보호하시겠다고 했다. 그런데 여기서는 그 보호와 함께 우리의 필요를 채우시겠다는 말씀이다.

 

5. “네 빛이 흑암 중에서 떠올라 네 어두움이 낮과 같이 될 것이며”

우리의 삶에서 모든 어둠의 요소들과 세력들을 제거하고 변화시켜, 우리의 삶을 분명하고 긍정적으로 바꿔주시겠다는 것이다. 특히 “네 어두움이 낮과 같이 될 것이며”는 ‘어두움’을 제거한 것이 아니라 그것을 ‘낮’으로 변화시켜 주시겠다는 뜻이다. 즉 상처로 별이 되게 하시겠다는 의미다. 바울은 ‘육체적 가시’(고후12:7)라는 어두움 때문에 심한 고통을 당했다. 하지만 주님은 그 가시를 교만을 막고(7), 주님의 능력이 머물게 하는 별이 되게 하셨다(9). 주님은 배고픈 자에게 먹을 것을 주고, 헐벗은 자에게 입을 것을 주고, 짐은 진 자의 짐을 같이 지기 위해 땀을 흘린 긍휼이 풍성한 가정, 인생, 교회, 민족에게 복을 주신다. 긍휼을 베푼 자에 대한 복은 11절에서도 계속된다. 저는 우리 교회, 가정, 인생이 이렇게 되었으면 좋겠다.

 

“여호와가 너를 항상 인도하여 마른 곳에서도 네 영혼을 만족하게 하며 네 뼈를 견고하게 하리니 너는 물 댄 동산 같겠고 물이 끊어지지 아니하는 샘 같을 것이라.”

 

6. “너는 물 댄 동산 같겠고 물이 끊어지지 아니하는 샘 같을 것이라.”

물 댄 동산은 물이 항상 흘러서 온갖 생명으로 충만한 동산이다. 저와 여러분의 삶이, 가정이, 교회가 물댄 동산 같기를 축원한다. 더 놀라운 것은 물이 끊어지지 않는 샘이다. 우리 인생의 푸르름, 풍성함, 강건함의 비결이 바로 여기에 있다. 이 샘으로부터 지속적으로 물을 공급받는 것이다. 여기서 ‘끊어진다.’는 히브리어 단어에는 ‘속인다.’는 뜻이 있다. 어떤 사람이 목이 말라서 샘에 왔는데, 와 보니 물이 없었다. 그 사람이 ‘속은’ 것이다. 긍휼의 사람은 푸른 동산처럼 생명력이 넘치는 풍성한 삶을 누리고, 만나는 사람을 실망시키지 않는다. 건강한 신자, 건강한 교회는 물 댄 동산 같고, 물이 끊어지지 않는 샘과 같다. 우리 자신과 우리 가정과 우리 교회가 물 댄 동산 같고, 물이 끊어지지 않는 샘과 같기를 원한다. 그래서 사람과 주변으로 풍성한 생명, 풍성한 복을 흘려보낼 수 있기를 바란다.

 

7. 마지막 일곱 번째 복은 12절 말씀이다.

 

“네게서 날 자들이 오래 황폐된 곳들을 다시 세울 것이며, 너는 역대의 파괴된 기초를 쌓으리니 너를 일컬어 무너진 데를 보수하는 자라 할 것이며, 길을 수축하여 거할 곳이 되게 하는 자라 하리라.”

 

여기서 무너진 ‘벽’이나 폐허가 된 ‘길’은, 6,7절에서 언급된 사람들의 영적 정신적 상태를 뜻한다. 누구를 막론하고 궁지에 몰리면 무너진 벽처럼, 폐허가 된 길처럼 된다. 긍휼사역은 이런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긍휼을 베푸는 사람을 ‘무너진 곳을 보수하는 사람’(repairer), ‘길을 수축하는 사람’(restorer)이라고 한 것이다. 이는 긍휼사역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를 보여준다. 긍휼은 무너진 것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것, 접은 꿈을 다시 갖게 하고, 가정과 삶을 회복시키고, 절망 속에서 방황하는 이들에게 꿈을 심어주는 것이다. 선교기관들이 아프리카나 동남아시아의 어린이들에게 매월 3만원 후원을 ‘희망 찾기’라 말하고, 작은 저금통을 생명을 살리는 ‘사랑의 밥그릇’이라 말하고, 집이 없는 사람들에게 집을 지어주는 것을 가정을 세우고, 꿈을 지어주는 것이라고 표현한 것도 이 때문이다.

 

사람은 영육이 하나이기 때문에 외(육)적인 것이 무너지면 내(영/정신)적인 것도 무너진다. 주변에 사고로 무너진 가정, 질병으로 절망 가운데 있는 사람, 가난 때문에 꿈을 접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면 결국 인생 자체가 파괴되는 것이다. 긍휼은 외적인 것을 통하여 내적인 것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운동이다. 그래서 인생을 다시 회복시키는 일이다. 그러므로 긍휼사역은 신자와 교회가 결코 포기할 수 없는 너무도 소중한 일이다. 신자와 교회가 하는 일이 파괴된 기초를 다시 쌓아올리는 일이고, 무너진 성을 보수하여 재건하고, 파괴된 길을 다시 수축하고, 황폐된 곳들을 다시 세우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님은 신자와 교회에게 ‘무너진 곳을 보수하는 사람’, ‘길을 수축하는 사람’이라는 이 영광스러운 이름을 주신 것이다.

 

긍휼을 실천하자.

지금까지 일곱 가지로 긍휼의 복을 말씀드렸다. 이를 한마디로 표현하면 주님은 긍휼을 베푸는 사람을 확실하게 밀어주신다는 것이다. 우리가 언제 복을 받느냐? 그것은 주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할 때, 주님이 원하시는 일을 할 때다. 긍휼을 베푸는 것은 주님이 기뻐하시는 일이고, 주님이 원하시는 일이다. 때문에 긍휼을 베푸는 사람은 위와 같은 복을 받고 누리게 되는 것이다. 주님도 이런 일을 하셨다. 메시아로 오신 주님께서 주린 자를 먹이시고, 아픈 자를 고치시고, 외로운 자의 친구가 되어주시고, 우는 자와 함께 우셨다. 짐 진 자의 짐을 대신 져주셨다.

 

우리는 주님이 기뻐하시는 교회, 주님의 마음을 시원케 해드리는 교회를 꿈꾸고 있다. 그 비결은 주님이 원하시는 일을 하는 교회가 되면 된다. 그래서 저는 주님이 기뻐하시는 긍휼사역이 우리 교회에서 풍성하게 일어났으면 좋겠다. 그리고 여러분이 설교만 듣고 끝나지 않기를 바란다. 긍휼을 베푸는 것은 선한 사마리아인처럼 시간을 내는 것이다. 물질을 드리는 것이다. 자신의 안전과 편안함을 포기하는 것이다. 마음으로만 돕는다면 누굴 돕지 못하겠는가? 마음으로만 선교한다면 못갈 곳이 어디 있겠는가? 이 시간 우리의 마음이 열리고, 눈과 귀가 열리고, 손과 발이 풀리기를 원한다. 그래서 이웃의 아픔을 보고 듣고, 다가가서 도울 수 있기를 바란다. 더 나아가 지갑도 열려서 물질도 아낌없이 내어놓을 수 있기를 바란다. 가장 귀중한 것은 내어놓는 것이다. 하나님은 단 한 명의 아들을 우리를 위해 내어주셨다. 우리 모두, 그리고 우리 교회가 긍휼사역으로 인하여 복 받기를 원한다. 가슴이 따뜻한 사람, 함께 돕고 웃는 사람이 바로 예수 믿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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