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의 통로22, ‘은혜로운 말’ > 설교말씀 기뻐하는교회 - 대한예수교장로회

본문 바로가기

설교말씀

설교말씀 HOME


복의 통로22, ‘은혜로운 말’

페이지 정보

작성자 장양식 댓글 0건 조회 15,336회 작성일 12-07-08 13:18

본문

복의 통로22, ‘은혜로운 말’

골4:6(참고, 약3:1~6)

2012. 7/8. 08:00  11:00

말대로 된다.

어느 주부의 간증이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유일한 즐거움은 아이를 데리고 주일, 수요일, 구역예배를 드리며 주님과 교제하는 것이었다. 날로 믿음의 성장을 경험하며 잔잔한 평화를 누리던 중 어느 날 우연히 여고동창을 만났다. 일찍 결혼한 친구는 시부모에게 물려받은 5층 빌딩을 가지고 있었다. 친구는 그녀를 반기며 각종 맛있는 요리를 파출부에게 만들어오게 했고, 늘 파출부의 손에 해주는 밥이나 먹으며 헬스까지 다니는 친구가 부러웠다. 집에 돌아온 후, ‘나도 언제 친구처럼 남이 해주는 밥을 먹고 사는 편안한 신세가 되어보냐’고 남편에게 종종 불평을 터트렸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이가 열이 나고 기침이 멎지 않아 이 병원 저 병원 돌아다니다 결국 종합병원에 입원을 했다. 고통스러워하는 아이와 함께 병실에 있는데, 보호자 밥이 나왔다. 수저를 드는 순간 ‘그렇게 원하던 남이 해주는 밥을 이렇게 먹게 되는구나.’하는 생각이 그녀의 머리를 스쳤고, ‘내 귀에 들리는 대로 시행하리라’는 말씀이 병실을 감돌았다. 그녀는 깜짝 놀라며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앞으로는 남과 비교하거나 불평의 말을 하지 않기로 주님께 약속을 했다.

  <?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

‘곰은 쓸개 때문에 죽고 사람은 혀 때문에 죽는다.’고 했다. 사람은 말대로 된다. 평소의 입버릇대로 된다. 그러니 그 사람의 입이 그의 미래인 것이다. 그러므로 믿음과 칭찬과 축복과 감사의 말을 해야 한다. 이것은 다른 사람을 위해서가 아니다. 바로 나 자신을 위해서다. 좋은 말 은혜로운 말을 하면 내가 기분이 좋아지고, 몸이 가벼워지고, 마음이 행복해진다. 그러면 나도 좋고, 남도 좋고, 모두가 좋아진다. 말은 ‘에너지’다. 좋은 말은 좋은 에너지이고, 나쁜 말은 나쁜 에너지이다. 좋은 에너지가 넘치면 나도 좋고 남도 좋다. 은혜로운 말은 내게도 복이 되고, 다른 사람에게도 복이 된다. 나를 복되게, 이웃을 복되게 하는 것은 나의 말에 있다. 복된 인생은 말에서부터 시작된다.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고 불행한 사람은 나쁜 말 악한 말 더러운 말을 일삼는 사람이다. 잘못된 말에 길들여져 있는 사람이다. 이 시간에는 복의 통로 스물 두 번째, ‘은혜로운 말’에 대하여 생각해 보자.

 

우리를 지배하는 말

뇌 전문 학자들의 연구보고에 따르면 사람의 뇌세포는 230억 개인데, 이들 중 98%가 말의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최근 의학계에서는 ‘뇌 속에 있는 언어중추신경이 모든 신경계를 다스린다.’는 학설이 정설이 되었다. 한 마디로 말이 우리의 온 몸과 행동, 삶까지도 지배한다는 뜻이다. 그래서 신경과학자 움베르트 마트라는 ‘우리가 말을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말이 우리의 인생을 통제하고 있다.’고 했다. 예를 들어 환자가 ‘아프다’는 부정적인 말을 하거나 ‘나았다’는 긍정적인 말을 하면 몸이 말의 방향대로 움직인다는 것이다. 실제로 미국 어느 병원에서 치료가 불가능한 암환자에게 하루에 세 번 ‘나는 깨끗하게 치료되었다. 난 다 나았다.’고 말하는 언어치료법을 권했다. 그랬더니 그 환자가 놀랍게도 3주 후에 완치되어 병원에서 퇴원했다.

 

어느 병원에서 죽어가는 할아버지가 있었다. 사람마다 죽기 전에 내는 숨소리가 있는데, 이 할아버지에게서 그 소리를 듣고 담당의사가 가르치는 학생들에게 들어보라고 하며 나갔다. 그러자 학생들이 청진기를 할아버지 가슴에 대고 ‘들린다. 들린다.’고 한 마디씩 했다. 그런데 곧 죽으리라 여겼던 그 할아버지가 죽지 않고 도리어 회복이 되었다. 이상하게 생각한 의사가 할아버지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물었다. 할아버지가 대답하기를 자기 가슴에 청진기를 대고 ‘들린다. 들린다.’하는 사람들의 말을 듣고 삶의 의욕이 생겼다고 했다. 사람뿐만 아니라 동물과 식물, 심지어 물이나 밥까지도 말의 영향을 받는다는 실험의 결과가 나오고 있다. 그러니 “죽고 사는 것이 혀의 권세에 달렸나니.”(잠18:21)라는 말씀이 실감이 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잘못된 행동이나 삶의 태도를 바꾸기 위해서는 먼저 말부터 바꿔야 한다. 말이 바뀌면 우리의 온 몸과 행동, 삶까지도 바뀌게 된다. 이는 사도 야고보가 특히 강조한 내용이다. 야고보는 말에 실수가 없는 사람이 온전한 사람이고, 말에 의해 온 몸이 굴레 씌워진다(3:2)고 했다. 또한 말(馬)을 다스리기 위해 재갈 먹이고(3:3), 큰 배를 작은 키로 원하는 방향으로 움직이듯(3:4) 우리의 혀, 우리의 말이 온 몸을 지배한다고 했다. 한 마디로 말의 영향력을 강조하고 있다. 더 중요한 것은 주님께서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시행하리니”(민14:28)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니 믿음의 말, 칭찬의 말, 축복의 말, 감사의 말을 우리 입에서 떼지 말아야 한다. 복된 인생, 복을 나누는 인생이 되는 것은 우리의 말에 있다.

 

말을 소금으로 맛을 내라.

말이 신중하면 그 사람도 신중하고, 말이 가벼우면 그 사람도 가볍다. 그러니 말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른다. 그 사람의 인격은 그의 말로 드러난다. 교회의 시험 중에서 70%가 말 때문에 생긴다. 말이 오해를 낳고, 다툼을 일으키고, 시험을 불러오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구원받은 신자가 가장 관심을 가지고 힘써할 부분이 있다면 그것은 ‘말’이다. 말이 곧 영성의 척도가 되기 때문이다(눅1:64, 약3:2). 그래서 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말에 대한 매우 특별한 당부를 하고 있다.

 

“너희 말을 항상 은혜 가운데서 소금으로 맛을 냄과 같이하라. 그리하면 각 사람에게 마땅히 대답할 것을 알리라.”

 

이는 신자의 언어생활에 대한 원칙과 관련된 말씀으로 ‘덕을 세우는 말, 듣는 사람들에게 은혜를 끼치는 말......’(엡4:29)을 하는 방법이다. 그것은 말을 항상 은혜 가운데서 소금으로 맛을 냄과 같이하는 것이다. 소금은 일상생활에서 없어서는 안 되는 필수품이다. 예전에는 소금 때문에 국가 간에 소금 전쟁이 일어날 정도로 귀한 것이다. 성경에서도 소금이 귀하게 사용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소금의 용도에는 ①정결, ②부패방지, ③맛을 내는 것 등이다. 본문은 맛을 내는 소금의 용도와 결부해서 신자의 언어생활을 권면하고 있다. 모든 음식에는 소금이 들어가야 맛이 난다. 소금이 고기에 들어가야 고기 맛이 나고, 소금이 김치에 들어가야 김치 맛이 난다. 아무리 다른 조미료를 다 집어넣어도 소금을 넣지 않으면 맛이 나지 않는다. 심지어는 커피에도 소금이 들어가야 최고의 맛을 낼 수 있다. 그러므로 “소금으로 맛을 냄과 같이하라.”는 말씀은 소금처럼 맛을 내는 말을 하라는 뜻이다.

 

그런데 이와 같이 소금으로 맛을 내기 위해서는 소금이 ‘적당하고 고르게’ 들어가야 한다. 이는 당연하다. 소금이 너무 많이 들어가거나 적게 들어가면 제 맛을 낼 수가 없고, 소금이 고르게 들어가지 않아도 마찬가지다. 오히려 음식물을 버리게 된다. 이는 말을 할 때 적절한 때와 장소, 상황에 맞게 하라는 것이다. 아무리 좋은 말도, 아무리 아름다운 노래도 상황에 맞지 않으면 욕이 되고, 저주가 될 수 있다. 그래서 성경은 “이른 아침에 큰 소리로 자기 이웃을 축복하면 도리어 저주같이 여기게 되리라.”(잠27:14)고 했다. 반면에 “경우에 합당한 말은 아로새긴 은쟁반에 금 사과니라.”(잠25:11)고 했다. 때와 장소, 상황에 적절한 말은 더욱 돋보이게 된다. “소금으로 맛을 냄과 같이하라.”는 말씀은 좋은 말만 하라는 뜻이 아니다. 경우에 합당한 말을 하라는 뜻이다. 그리고 여기에는 ‘훈련하라’는 의미도 포함되어 있다. 경우에 합당한 말에는 훈련이 따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소금처럼 가정이나 일터, 교회에서 우리의 말 때문에 맛이 나야 한다. 살맛이 나고 일할 맛이 나고 교회 다닐 맛이 나야 한다. 우리의 말 한마디가 다른 사람의 기분을 살리고, 희망을 주고, 기쁨을 주고, 위로와 회복을 주는 말이 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우리의 말을 항상 은혜 가운데서 소금으로 맛을 냄과 같이하여야 한다. 이런 사람이 복을 받고, 복이 되는 사람이다.

 

의기문화(椅器文化)

소설 「상도」에서 거상 임상옥이 항상 곁에 두고 과욕을 다스렸다는 계영배(戒盈杯)와 같은 교훈용 기구를 의기(椅器)라 한다. 이것은 선비들 사이에서 크게 유행한 문화였다고 한다. 또한 선비들은 ‘謝-忍-讚-過-責-詰-誹’와 같은 일곱 글씨가 새겨진 일곱 면으로 된 주사위를 굴리며 살았다고 한다.

 

(謝)하루에 감사하는 말을 세 번 하라.

(忍)홧김에 나오는 말을 세 번 참아라.

(讚)칭찬하는 말을 세 번 하라.

(過)잘못했다는 말을 세 번 하라.

(責)꾸짖는 말을 세 번만 하지 마라.

(詰)탓하는 말을 세 번만 하지 마라.

(誹)헐뜯는 말을 세 번만 하지 마라.

 

이렇게 우리 선조들은 말과 마음을 다스렸던 것이다. 영국 신사도에도 다음 세 가지 말을 말머리나 말끝에 꼭해야 한다는 조건이 있다. ‘I am sorry. Thank you. Please’가 바로 그것이다. 선비나 신사로 살아가기 위해서도 이와 같이 말을 훈련했다면 거룩하신 하나님의 자녀이고, 영광스러운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서 우리는 얼마나 많은 훈련을 해야 할까? “너희 말을 항상 은혜 가운데서 소금으로 맛을 냄과 같이하라.”는 말씀처럼 은혜 안에서 우리의 말을 부단히 훈련하여 우리의 말 때문에 살맛나는 가정, 일터, 세상, 교회를 만들자! 나의 말이 아내를 살맛나게 하고, 남편을 살맛나게 하고, 자녀를 살맛나게 하고, 부모를 살맛나게 하고, 형제와 이웃을 살맛나게 하자. 어디에 있든, 누구를 만나든 살맛나게 하는 사람이 되자! 이런 사람이 주님의 복을 받고, 복을 나누는 사람이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