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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의 열매Ⅱ, ‘화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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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양식 댓글 0건 조회 10,659회 작성일 17-09-17 1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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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의 열매, ‘화평

3:13~18, 2:1~4

2017. 9/17. 11:00

예수 Vs 그리스도

두 사람이 전철 안에서 큰 소리로 다투고 있었다. 싸움이 점차 거칠어져서 주변 승객을 불편하게 했다. 그러자 이를 지켜보고 있던 한 노() 신사가 그들을 점잖게 꾸짖었다.

 

여기가 국회인줄 아시오! 왜 그렇게 싸우는 거요?

 

싸움질만 하고 월급 받는 곳이 국회라는 말이 있을 만큼 우리나라 국회가 시끄러운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국회만큼 싸움이 잦은 곳이 또 있다. 바로 교회. 한국교회가 하도 싸우니까 선교사가 본국에 돌아가서 이런 선교보고를 했다고 한다. ‘한국교회는 잘 싸워요. 그런데 예수하고 그리스도가 싸워요.’ 실제로 싸웠다하면 ‘예수하고, ‘그리스도하고 갈라졌다. 그래서 생겨난 것이 예수교 장로교와 기독교 장로교다. 예수교 성결교와 기독교 성결교, 예수교 감리교와 기독교 감리교, 예수교 침례교와 기독교 침례교다. 화평의 도구로 부름받은 성도와 교회가 오히려 불화의 상징이 된 것이다. 존 번연(John Bunyan)은 이런 상황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이상하다. 이해할 수 없는 것이 하나있다. 마귀를 대적해야 할 교회와 성도가 자기들끼리 싸우는구나!성도와 교회가 서로 다투는 것은 싸워야 할 진정한 대상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우리가 대적하여 싸워야 할 대상은 사단이고, 그 사단이 지배하고 있는 세상이다. 성도는 서로 사랑해야 할 대상이고, 교회는 사랑으로 섬겨야 할 대상이다. 그런데 그 대상을 혼동한 것이다. 적과 동지를 구분하지 못한 어리석음에 빠진 것이다. 이 모두가 사단의 덫이다. 여기에 성도도 교회도 걸려든 것이다. 이것을 끊어내는 방법이 화평이다. 그래서 이 시간에 성도다운 삶의 원리인 지혜의 열매 두 번째 화평’(和平)에 대하여 은혜를 나누려고 한다.

 

화평의 중요성 

본문에서 저자는 위로부터 난 지혜의 열매를 7가지로 제시하고 있지만 화평을 가장 대표적인 열매로 꼽은 것 같다. 화평을 다시 언급한 것(18), 땅의 지혜를 설명하는데 화평을 깨뜨리는 주범인 시기와 다툼을 강조한 것(14,16), 그리고 이어지는 4장에서 교회 안에서의 갈등문제를 다룬 것도 그렇다(4:1, 여기서 교회의 갈등을 국가 간의 큰 전쟁πολεμοι을 뜻하는 단어로 사용하고 있음). 아무튼 화평을 원하면서도 세상은 늘 화평하지 못하고, 화평을 누리면서 가르치는 곳이 교회인데 교회 안에 다툼이 많다는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다. 화평이란 말이 신약성경에 88번 정도 나온다. 이는 구약의 ‘샬롬’(שלום)을 번역한 말인데, 신구약을 합하면 400번 이상 나온다성경이 화평을 얼마나 소중히 여기는지, 화평이 성도와 교회에게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바울은 화평을 성령의 열매로 보았고(5:22~23), 예수님은 하나님의 자녀다움, 곧 성도다움을 가장 잘 드러내는 것이 화평이라고 하셨다(5:9). 본문도 마찬가지다. 화평을 성도다운 삶의 원리인 지혜의 열매로 보았다.

 

행복은 돈이나 명예나 지식에서 오지 않다. 어떤 제도나 이념이나 사상도 아니다. 행복은 화목하고 화평한 관계에서 온다. “마른 떡 한 조각만 있고도 화목 하는 것이 육선이 집에 가득하고 다투는 것보다 나으니라.”(잠언17:1). “다투는 여인과 함께 큰 집에서 사는 것보다 움막에서 사는 것이 나으니라.”(21:9). 많은 재산과 탁월한 지식, 높은 지위와 좋은 환경이라도 화평하지 못하면 행복할 수 없다. 화평이 깨지면 이런 것들은 무용지물이 되고 만다. 그래서 본문은 화평하게 하는 사람이 의의 열매를 거둔다고 한 것이다(18). 화평하게 하는 사람이나 화평한 곳에는 신령한 열매가 따르게 마련이다(세인트루이스).

 

화평의 길

성도는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과 화평을 이룬 사람이고, 화평의 영이신 성령께서 그 안에 거하고 계신 사람이다. 이 말은 우리는 화평의 삶을 살 수 있는 여건을 모두 갖춘 사람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성경은 우리에게 화평의 삶을 요구하고 있다. 화평의 삶이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가 힘써야 할 사명이라는 것이다. 그만큼 화평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어떻게 화평의 삶을 살 수가 있을까? 빌립보서의 말씀을 통해 간략하게 소개하겠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무슨 권면이나 사랑에 무슨 위로나 성령의 무슨 교제나 긍휼이나 자비가 있거든 마음을 같이 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 마음을 품어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각각자기 일을 돌아볼 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아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케 하라.”(2:1~4).

 

우선, 한 마음을 품는 것이다(2). 이는 역지사지(易地思之)하는 것이다. 같은 마음 같은 입장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울 때 같이 울고, 괴로워할 때 같이 괴로워하고, 힘들어할 때 같이 힘들어하고, 즐거워할 때 같이 즐거워하는 것이다. 화평과 비슷한 단어가 화목인데, 화목은 서로 뜻이 맞고 정다움이라는 뜻이다. 뜻이 맞고 정다운 곳에 화평이 있다. 성도는 이미 뜻이 맞는 사람이다. 같은 믿음을 가지고 같은 주님을 섬기며, 같은 사랑 안에서 같은 목표(주님의 영광과 그 나라)를 위해 살고 있다. 그러므로 서로 밀어내지 않고 정답게 품기만 하면 된다. 품는다는 것은 받아주는 것이다.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따뜻하게 받아주는 것이다.

 

다음은,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는 것이다(3). 인정해주고 존중해주는 것이다.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는 겸손한 마음과 태도에서 화평이 일어난다. 자기를 들어 내다보면 허영에 빠지기 쉽다. 잘 보이려다보니 과장하거나 지나치게 꾸미게 되는 것이다. 또한 다른 사람으로부터 시기와 질투를 받게 된다. 시기나 질투가 있는 곳엔 다툼이 있게 마련이다. 허영과 다툼은 교만의 열매다. 아무튼 질투하는 사람도 문제지만 그것을 받는 사람도 문제다. 시기나 질투가 심한 사람은 마음이 삐뚤어진 사람이고, 그것을 받는 사람은 미숙한 사람이다. 그래도 나는 질투를 하는 사람보다는 받는 사람이 낫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기왕이면 질투를 받는 사람이 되고, 질투하지 못할 만큼 탁월한 사람이 되라고 말하고 싶다. 그런데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는 겸손한 사람, 그래서 인정해주고 존중해주는 사람은 누구에게도 시기나 질투를 받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이런 사람이 있는 곳은 항상 화평의 바람이 분다.

 

또한, 남의 짐을 함께 져주는 것이다(4). 기꺼이 희생을 감수하는 것이다. 화평은 대가를 지불해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화평은 화해의 열매다. 화해(καταλλσσω)양자 간에 불편했던 관계가 어떤 대가를 서로 교환함으로 완전히 변화되어 그 불편했던 관계가 다시 회복된 것을 뜻한다. 결국 화해는 대가를 지불해야 얻어지는 것이란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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