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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예수 외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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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양식 댓글 0건 조회 10,033회 작성일 19-09-11 1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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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예수 외에는

17:1~8

2019. 9/8. 11:00

예수만 보고 교회 다닙니다.

전에 법관과 대법관을 거쳐 국무총리까지 지낸 분의 인터뷰가 어느 기독교 잡지에 실렸다. 그분은 상가 2층에 있는 작은 교회를 출석하고 있었는데, 줄곧 그 교회를 출석하며 총리직을 마친 다음엔 그 교회에서 구역을 맡아 구역장으로 구역예배도 인도하고 있었다. 기자가 그를 찾아가 여러 이야기를 나눈 끝에 계속 그 조그마한 상가교회를 다니고 있는 이유를 물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자신의 사회적 수준에 맞춰 사람도 사귀고 교회도 찾고, 특히 정치하는 사람은 사람이 많이 모이는 대형교회, 목회자도 유명하고 영향력이 있는 교회를 선호하는데, 사뭇 다른 그의 행보에 관심을 갖고 이런 질문을 한 것이다. 이러한 기자의 질문에 마치 선문답처럼 그는 짧게 대답했다. ‘나는 예수님만 보고 교회 다닙니다.

 

나는 이 인터뷰 기사를 읽고 큰 감동을 받았다. 이렇게 순수하고 아름다운 신앙을 추구하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 놀랍고 감동이 되었다. 사실 신앙생활의 본질이 교회의 외양이나 시설, 성도의 수와 교회의 규모, 목회자의 인지도나 영향력이 아니라 예수님이라는 것은 상식이고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 반대로 작동하고 있다. (수준도 없는 것 같은데)교회가 자기수준에 맞지 않는다며 떠난 사람을 본 나로선 이 대답이 더욱 감동적으로 다가왔다. 바로 이 짧은 대답 속에서 다시 한 번 신앙생활의 본질에 대해, 어떻게 신앙생활을 해야 하는 지에 대해 마음을 가다듬었다. 그것은 두말할 것도 없이 예수 그리스도. 신앙생활은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것이고, 예수 그리스도께 집중하는 것이다. 예수님이 본질이고 핵심이다. 다른 것은 들러리에 지나지 않다. 그런데 우리는 들러리만 보고 본질을 놓친 경우가 많다. 이것은 예배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예배의 초점, 예배자의 초점도 예수 그리스도께만 두어야 한다. 예수님만 보여야 하고, 예수님만 보아야 한다.

 

예배의 본질

본문은 변화산 사건이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 세 제자를 데리고 높은 산으로 올라가셨는데, 갑자기 주님께서 변모(變貌)하신 사건이다. 여기서 변모란 주님께서 본래의 상태(모습)로 돌아가신 것을 의미한다. 본래의 상태란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시기 전의 모습(신성의 회복)을 의미한다(2:6). 이는 얼마 후에 있을 주님의 부활을 예고하신 것이다. 그리고 변모하신 주님 곁에 율법을 상징하는 모세와 선지자를 상징하는 엘리야가 나타나 주님과 이야기를 나눴다(누가는 주님의 죽으심을 의논했다고 구체적으로 이야기 내용을 소개하고 있음). 이런 놀라운 광경을 본 베드로가 주님께 초막 셋을 지어 그곳에 눌러 살았으면 좋겠다고 청했다. 그러자 빛난 구름이 그들을 덮으면서 구름 속에서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5)는 음성이 들렸고, 놀란 제자들은 무릎을 꿇고 엎드렸다(6). ‘일어나라. 두려워하지 말라.’(7)는 주님의 음성을 듣고 일어나보니 오직 주님 외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8).

 

이 사건은 신앙의 본질, 특히 예배의 본질을 잘 보여준다. 우선, 신구약시대를 통틀어 경배의 대상이 주님이시라는 것을 강조한다. 율법과 예언이 구약성경을 대표한 것처럼 율법의 상징 모세와 선지자의 상징 엘리야는 구약시대 모든 사람을 대표한다. 그리고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는 열두 제자를 대표하고, 나아가서 신약시대 모든 사람을 대표한다. 그런데 그 중심에 신적인 모습을 회복하신 주님이 계셨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그것을 확증하셨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5). 그러므로 성도는 주님 앞에 무릎을 꿇고 경외함으로 주님의 음성을 들어야 한다. 이것이 올바른 예배자의 자세다. 그리고 또 한 가지는 구름이 걷히면서 모세도 엘리야도 사라지고 오직 예수님만 보였다. ‘오직 예수 외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는 말씀은 단순히 당시 상황을 설명한 것 이상의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올바른 예배는 예배의 대상이신 주님만 보이도록 해야 하고, 주님만 보이고, 주님만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즉 예배의 초점, 예배자의 초점이 오직 예수님께만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올바른 예배의 모습이고, 또한 예배자의 태도다. 천국의 영원한 기쁨과 영광을 경험하는 예배, 십자가의 능력이 드러나는 예배다. 이것은 예배를 집례하는 목회자를 비롯하여 예배를 섬기는 찬양대나 찬양팀, 반주자, 기도 인도자, 봉헌, 안내를 맡은 사람 등 예배에 참여한 모든 회중이 진지하게 고민하며 점검해야 할 문제다. 심지어는 예배실의 장식까지도 신경을 써야 한다.

 

성령이 아니고는 예배가 안된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으시고, 또한 범죄한 우리를 구원하신 이유가 예배에 있다고 말씀한다. 그리고 우리에게 교회라고 하는 영적 기관을 허락하심도 예배를 위해서다. 그러므로 성도와 교회의 존재이유는 올바른 예배를 드리는데 있다. 그런데 이와 같은 올바른 예배는 성령님의 주도(主導)로 가능하다. 예배뿐만 아니라 성령이 없는 신앙생활 자체가 불가능한 일이다. 이 사실을 주님과 사마리아 여인의 대화’(4:1~)에서 확인할 수 있다. 사실 이 본문은 여러 주제를 담고 있다. 그래서 어떤 분은 이 본문으로 만남이란 주제로 설교를 하기도 하고, 혹자는 교제(대화), 전도, 생수, 치유 등 다양한 주제로 설교를 한다. 하지만 이 본문이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것은 예배다. 주님과 여인의 대화가 예배문제에서 절정에 이르기 때문이다(23,24). 이와 같이 예배라는 핵심주제 배후에 이런 다양한 주제가 포함되어 있다는 것은 예배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생각하게 만든다. 주님은 여기서 예배문제와 관련하여 세 가지를 강조하셨다.

 

먼저, 하나님은 예배자를 찾고 계신다는 것이다(23). 하나님이 찾으시는 사람은 학식이 많은 학자도, 강력한 힘을 가진 권력자도, 역사의 방향을 바꿔놓은 영웅도, 사람을 잘 이끄는 유능한 지도자도, 많은 재물을 소유한 부자도, 존경받는 종교가도 아니고 예배자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관심, 곧 주님의 관심이 어디에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다음은, 하나님이 영이시라는 것이다(24a). 예배의 대상이신 하나님을 올바로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대상을 모르고는 그 대상을 잘 섬길 수 없다. 성경이 꼼꼼하게 제사규정을 정하여 주면서 임의로’(자기 마음대로) 제사하지 못하게 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예배의 대상이신 하나님을 바로 알고 그에 적합하게 예배하라는 뜻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예배하는 방법이다(24b). 그 방법은 영과 진리로예배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영이시니까 영 안에서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은 당연하다. 여기서 영과 진리는 서로 다른 것이 아니라 성령님을 강조한 것이다. 주님은 성령님을 진리의 영’(14:17)이라고 했다. 물론 진리의 영이란 참 진리이신 예수님께로 우리를 인도하시는 분이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님을 통해서 참 진리이신 예수님을 알고, 믿고, 바라고, 순종할 수 있다. 예배도 마찬가지다. 성령님의 주도 하에 성령님 안에서 예배할 때 진리이신 예수님만 바라보는 예배, 예수님만 보이는 예배, 예수님만 보이도록 하는 올바른 예배를 드릴 수가 있다. 그런데 전에도 말했듯이 성령님과 예배는 순환관계. 성령님이 주도하는 성령님 안에서 드리는 예배라야 올바른 예배를 드릴 수 있지만 우리가 올바른 예배를 드릴 때 성령님께서 충만하게 임하시는 것도 사실이다. 이것이 선순환으로 작동하면 성령충만과 더불어 예배의 영광과 복이 경험되는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살아있는 예배를 드리게 되고, 역순환으로 작동하면 예배를 드릴수록 주님의 마음을 불편하고 역겹게 만드는 형식적인 예배로 전락하게 된다(1). 그러므로 올바른 예배는 성령님께 달렸고, 올바른 예배자에게는 성령님이 충만하게 임하신다.

 

예배가 성령충만의 최고비결이다.

나는 지금까지 여러 주()에 거쳐 성령충만의 방법에 대하여 설교를 하였다. 순종에서 시작하여 기도, 간절함, 찬양, 감사, 섬김, 헌신, 전도, 말씀 들음, 겸손 . 그런데 이 모든 주제를 예배로 묶을 수가 있다. 예배는 마치 영적 종합선물세트와 같다. 예배 안이 이 모든 것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올바른 예배자에게는 앞에서 열거한 이 모든 것이 자연스럽게 나타나게 된다. 즉 올바른 예배자는 자연스럽게 기도하게 되고, 찬양하게 되고, 감사하게 되고, 순종하게 되고, 섬기고, 헌신하고 등등. 그리고 이 모두가 성령충만의 방법(비결)이니 예배는 당연히 성령충만의 최고 비결(방법)이다.

 

그러므로 성령님 안에서 주님만 보이도록 하는 예배, 주님만 보이는 예배, 주님만 보는 올바른 예배를 드리는 올바른 예배자가 되어야 한다. 그래야 타협 없는 예배, 사람의 눈치를 보지 않는 예배, 십자가 능력이 드러나는 예배, 피 묻은 복음으로 세상의 견고한 성을 무너뜨리는 불타는 예배, 천국의 영원한 기쁨과 영광이 경험되어지는 예배를 드릴 수 있다. 이와 같은 예배와 예배자에게 성령충만은 당연한 일이 될 수밖에 없다. 예배가 살아야 영이 살고, 신앙이 살고, 삶이 산다. 예배에 성공해야 성공적인 신앙생활, 성공적인 삶을 보장받을 수가 있다. 성도의 모든 것은 예배와 연관되어 있다. 우리 모두 성령님께 이끌려 초점을 주님께만 둔 올바른 예배자, 그래서 성령으로 충만한 예배자가 됩시다. 바로 여기에 우리와 우리 가정과 우리 교회와 우리 주변을 복되게 하는 비결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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