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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어주소서! ‘귀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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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양식 댓글 0건 조회 10,258회 작성일 21-09-22 0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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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어주소서! ‘

17:10~15

2021. 9/19. 11:00

출세를 하려면(學干祿)

자장(子張)이 공자에게 벼슬자리를 구하는 법’(출세하는 법, 學干祿)을 묻자 공자가 이렇게 말했다. ‘많은 것을 듣되 의심스러운 것을 빼고(多聞闕疑) 그 나머지를 조심스럽게 말하면 허물이 적다. 많은 것을 보되 위태로운 것을 빼고(多見闕殆) 나머지를 조심스럽게 행하면 후회하는 일이 적다. 말에 허물이 적고, 행동에 후회가 적으면 출세는 자연히 이루어진다.’(논어」 ‹위정편). 빨리 출세하고 싶어 하는 제자에게 준 공자의 교훈이다. 한 마디로 출세란 비법이 있는 것이 아니라 평소 말과 행동을 바르게 하고, 꾸준히 노력할 때 절로 따라온다는 것이다. 그 세부적인 실천덕목이 다문궐의’(多聞闕疑)다견궐태’(多見闕殆). , 먼저 많은 것을 들으라는 것이다. 다양한 생각과 의견을 듣고 그중에 확실치 않은 것, 의심 가는 것은 제쳐두고 확실한 것만 받아들이라는 것이다. 그다음 많은 것을 보라는 것, 다양한 견문을 쌓는 것이다. 폭넓게 의견을 수렴하고 다양하게 상황을 살펴서 위태로운 것은 제거하고 합당한 것만 취해서 실행한다면 큰 실책을 저지르지 않을 수 있다.


다문궐의다견궐태는 공직자의 자세에 대한 공자의 가르침이다. 하지만 이런 자세는 공직자뿐만 아니라 누구에게도 필요하다. 특히 정보의 홍수 속에 사는 오늘날 더욱 절실한 덕목이다. 오늘날은 스마트폰과 컴퓨터에서 단 한 번의 클릭만으로 많은 정보가 쏟아진다. 하지만 정보가 많다고 해서 꼭 긍정적인 것은 아니다. 날마다 접하는 정보에는 많은 거짓정보가 포함되어 있고, 그중에는 악의적인 정보도 많다. 소위 가짜뉴스라는 것이다. 이는 비단 정보뿐만 아니다. 사람도, 학위도, 종교도, 상품도, 음식도 온통 가짜가 판을 치는 가짜 전성시대에 살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공자시대에는 많이 듣고(多聞), 많이 보는 것(多見)에 방점이 찍혔지만, 오늘날엔 의심스럽고() 위험한 것()을 걸러내는 것(), 곧 가짜와 진짜를 분별하는 분별의 지혜가 필요하다. 이는 듣는 것에도 마찬가지다. 잘 듣고, 많이 듣되 의심이 가는 것, 확실하지 않는 것, 잘못된 것은 가려서 들어야 한다. 이것이 베뢰아 사람들이 보여준 듣기의 태도다.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베뢰아 사람들은 바울이 전한 복음의 말씀을 열린 마음(‘더 너그러워서’)으로 들었고, 기꺼이 받아들일 모든 준비를 갖추고 자발적인 열정과 호의(‘간절한 마음’)를 가지고 들었다. 그리고 세 번째는 그들은 들은 말씀의 진위여부를 분별하기 위해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였. ‘베뢰아 사람들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들보다 더 너그러워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11). 베뢰아 사람들은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였다. 그 이유는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말씀의 올바른 의미를 알아보기 위함이다. 다시 말하면 복음의 말씀을 바로 알고, 바로 깨닫기 위함이다. 올바르게 분별하기위해서였다. 그래야 바로 믿을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그들이 유대회당에서 유대랍비를 통해 들은 말씀과 바울이 전한 복음에는 중요한 차이가 있었다. 둘 다 같은 성경을 가지고 말하지만 유대랍비는 다윗의 위를 가지고 흩어진 유다백성을 비롯한 열방을 구원할 메시야가 아직 오지 않았다고 가르쳤고, 바울은 이미 오셨다고 가르쳤다. 그리고 그 메시야는 곧 유대인이 이방인의 손에 넘겨 십자가에서 죽게 한 나사렛 예수라고 했다. 그분은 죽으셨으나 다시 3일 만에 부활하셨고, 지금은 하나님의 보좌우편에 계신다고 가르쳤다. 이것이 유대교와 기독교의 차이점이다. 유대교는 오실 메시야를 기다리는 종교이고, 기독교는 오신 메시야를 섬기며 증거하는 종교. 유대교가 아직 구원을 바라보는 종교라면 기독교는 이미 구원을 확보한 종교다. 구원에 있어서도 유대랍비는 율법을 지켜야 구원을 받는다고 했고, 그래서 엄격한 율법준수를 강조했다(율법종교). 하지만 바울은 메시야이신 예수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고 했다(은혜종교). 그렇다고 율법을 포기한 것은 아니다(영지주의). 구원의 조건으로서 율법이 아니라 구원받은 사람의 본분으로서 율법준수를 강조했다. 그러니 일방적으로 한쪽 말만 듣고 따르는 것은 위험한 일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열린 마음, 간절함 마음으로 듣되 올바른 분별을 위해 진지하게 알아보았다.

 

지식 없는 열정은 위험하다!

예수가 메시야(그리스도). 구원은 예수를 믿음으로서만 받는다.’ 이것은 초대교회와 바울이 외친 복음의 핵심이다. 물론 지금 우리에게도 이것은 신앙의 핵심이다. 아무튼 베뢰아 사람들은 이와 같은 바울의 가르침을 맹목적으로 따르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것이 사실인지를 알아보고자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였다. 여기서 날마다 성경을 상고했다는 것은 정확히 말하면 날마다 바울을 찾아가서 바울에게 말씀을 듣고 질문하면서 궁금증을 풀어갔다는 뜻이다. 당시에는 성경(구약)을 개인적으로 소장할 수도 없었고, 더군다나 신약성경은 기록되기도 전이기 때문이다. 사실 아무리 열린 마음, 간절하고 절실한 태도로 들었어도 그것이 가짜복음이라면 그 결과가 어떻게 될까? 마찬가지로 아무리 열정적으로 가르쳐도 복음과 상관이 없는 사이비 복음을 가르치는 사람이라면 어떻게 될까?

 

이 문제는 당시 바울에 의해 세워진 대부분의 교회가 겪은 일반적인 문제였다. 그 대표적인 교회가 갈라디아 교회였다. 갈라디아 교회는 바울의 1차 선교여행 때 바울이 전한 복음을 듣고 세워진 교회다. 그런데 얼마 후, 그곳에 거짓 교사들이 찾아와서 바울이 전한 오직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以信得義)는 복음은 가짜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그들은 믿음과 함께 율법을 지켜야 구원을 받는다고 주장했다. 거기다가 바울은 사도가 아니기 때문에 그의 가르침은 가짜라고까지 했다. 문제는 이와 같은 거짓 교사들의 주장에 갈라디아 교회가 홀딱 넘어갔다는 것이다. 이런 그들의 모습에 바울이 당황할 정도였다. ‘그리스도의 은혜로 너희를 부르신 이를 이같이 속히 떠나 다른 복음을 따르는 것을 내가 이상히 여기노라.’(1:6). 심지어는 탄식하기도 했다. ‘어리석도다. 갈라디아 사람들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 너희 눈앞에 밝히 보이거늘 누가 너희를 꾀더냐.’(3:1). 왜 십자가 복음을 떠나 율법으로 돌아서냐는 것이다. 그들이 이렇게 쉽게 거짓 교사의 가르침에 넘어간 것은 진지하게 사실여부를 알아보지 않고 들었기 때문이다. 듣는데 열정이 중요하지만 지식 없는 맹목적인 열정은 오히려 위험하다. 이런 사람은 감동도 잘 하지만 쉽게 선동도 잘 된다. 기준이 되는 분명한 지식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분별의 지혜가 없어 누구의 말에도 쉽게 휘둘릴 수가 있다. 갈라디아 교회가 그랬다. 그래서 베뢰아 사람들처럼 진지하게 검토하며 알아보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

 

분별의 지혜를 갖으려면

그렇다면 상고하다.’는 것이 무엇일까? 이는 헬라어로 아나크리노(ἀνακρίνω)인데, ‘자세하게 골라내다.’ ‘체를 쳐서 가려내다.’ ‘탐색하다.’ ‘조사하다.는 의미다. 이 말은 종종 죄인을 심문하는 일 즉, 수사관이 죄인을 심문하여 죄를 밝혀내는 것을 뜻한다. 그러니까 여기에는 철저한 조사를 통해 범인의 죄를 입증하는 것과 함께 여러 혐의자 중에서 범죄자를 가려내는 것을 다 의미한다. 한 마디로 탐구와 분별이다. 진리를 찾아내는 것과 진리를 분별하는 것을 동시에 뜻한다. 이는 말씀에 대한 매우 중요한 자세다. 말씀을 듣거나 읽거나 혹은 공부할 때 꼭 필요한 자세다. 베뢰아 사람들은 날마다 바울을 찾아가 복음의 진리를 알아보고(탐구하고), 또한 바울이 전한 복음의 진의를 알아보았다(분별하였다). 그리하여 그의 가르침을 따랐고, 건강한 신앙, 건강한 신앙공동체를 이뤘다.

 

이는 말씀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일상생활에서 탐구와 분별은 매우 중요하다. 몇 년 전 어느 인터넷 매체에 나온 기사다. 한 남성이 개구리가 건강에 좋다니까 두꺼비를 황소개구리인줄 알고 요리해서 먹고 죽었다는 내용이다. 개구리나 개구리 알에는 독성이 없지만 특히 두꺼비 알은 독성이 강하다고 한다. 실제로 알을 밴 두꺼비가 구렁이에게 잡아먹히면 두꺼비 알에 있는 독으로 구렁이가 죽고, 구렁이 뱃속에서 알이 부화하여 두꺼비 새끼가 자란다고 한다. 한 마디로 황소개구리와 두꺼비를 구별하지 못해서 일어난 어처구니없는 사건이다. 버섯도 마찬가지다. 독버섯을 구별 못하여 죽은 사람도 가끔 있다. 다양화된 세상, 온갖 지식과 정보가 범람한 세상이다. 성경말씀에 대한 지식과 정보도 홍수를 이루고, 설교도 마찬가지다. 심지어는 기독교를 무너뜨리고, 성경의 진리를 왜곡시킨 정보도 많다. 사이비와 이단도 많다. 오늘날 성도는 이 모든 것에 열려있다. 그래서 의도치 않게 이런 지식과 정보를 들을 수도 있고, 볼 수도 있다. 지난주일 소개했던 암8:11절 말씀,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을 홍수가 나면 오히려 마실 물이 부족한 것처럼 올바른 말씀의 부재로 해석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므로 각별한 분별이 요구된다. 그 방법이 베뢰아 사람들처럼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말씀을 상고하는 것이다. 말씀을 읽거나 듣거나 공부할 때 그 의미를 밝혀내기 위하여 자세하고 세밀하게 살펴보아야 한다. 그리고 진리를 옳게 분별하는 지혜를 구해야 한다. 지난주일 말씀드린 것처럼 말씀을 적으면서 듣는 것도 좋은 방법 중에 하나다. 일반적으로 적어놓으면 점검과 검토가 용이하고, 이로써 바르게 분별할 수가 있게 되기 때문이다. 분별의 지혜, 분별의 은혜를 가지고 말씀을 듣고, 그래서 올바로 진리를 알고, 깨닫고, 섬기는 여러분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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